비욘드
최의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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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1 / 참사가 사람들을 죽였다. 정부는 무능했고, 심지어 악의적이었다. 시민들은 무관심했고, 심지어 정부의 편을 들었다. 



나는 진짜 이런 소설이 너무 좋음


이 소설은 SF의 형식을 빌려 현실을 우회하지 않는다. 현실과 매우 가깝게 밀착되어 있어, 오히려 가상의 세계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낼 뿐. 같은 사회를 살아가며 동일한 사건들을 통과해온 사람들이라면, 이 이야기가 보내는 메시지가 더욱 선명하게 와닿을 것이다.


2036년, 천안은 이동에 취약한 중증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천안에서 서울까지 잇는 차세대 열차를 만든다. 개통식, 꿈에 부푼 사람들이 열차에 오르고, 장엄한 경적과 동시에 역사는 무너져 버린다. 천안역은 그대로 없어져버린다. 그렇게 2045년 폐허가 된, 누군가에게는 자본 상승의 기회이며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터인 천안에서 펼쳐지는 버려진 자들의 투쟁기.



이 소설은 참사와 장애, 소수자 등 굉장히 많은 지점을 동시에 건드린다. 특히 '사이보그' 이야기는 생각보다 낯설지 않다. '사이보그'의 정의를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 속 로봇이 아니라, 신체의 손상을 보완하는 기계를 착용한 사람으로 본다면 이미 우리 근처에도 수많은 사이보그들이 있다. 『사이보그가 되다』(김초엽·김원영, 사계절)가 말하듯, 사이보그는 먼 미래의 존재가 아니라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훨씬 가깝다.

이 책에는 그런 수많은 사이보그들이 나온다. 오히려 사회의 기준에 따라 정상성으로 분류되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한다.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이 오히려 약자의 방패가 되고 천안을 지킨다. 그렇다면 수많은 '평범한' '정상인'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찌른다. 읽는 동안 독자는 자연스럽게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나는 어디에 서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외면해왔는가.


이 책의 핵심 스토리를 이끄는 살아 있는 사이보그들은 '불구단'에 소속되어 있다. 자칫 멸칭으로 읽힐 수도 있는 그 '불구'라는 단어를 이 소설은 오히려 장애를 가진 인물들의 입을 통해 당당히 꺼내 놓는다. 그렇게 그 단어는 사회가 규정해온 ‘비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전복되어 그들의 것이 된다. 불구란, 장애란 생활에 다소 불편함이 따를 수는 있으나 위축되어야 할 이유는 아니다. 그것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 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어떤 불편함을 곧바로 비정상으로 분류하지 않듯이 말이다.



어쩌면 쉽게 읽히지는 않을 수도 있다. 왜냐면 서술 자체가 '당신은 ~했습니다.'라는 2인칭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근데 왜 이런 방법을 선택했는지는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책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서술이란 말. 게다가 장르 자체가 SF 누아르라서 머리를 비우고 읽기에는 결코 수월하지 않다. 하지만 읽어내기만 한다면, 그 불편함을 견뎌낸다면 진짜 품에 꼬옥 안을 수 있을거라 장담합니다.


 

+ 제 최애는 마빈입니다. 아 마빈 진짜 귀여워!!!!

++ 솔직히 두 번 읽었음. 소설인데도 박박 필기해가면서. 저 인덱스들이 보이시나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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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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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 | 타고난 친절함이 이미 그를 유죄로 만들었다. 미덕과 선행은 이제 공공모독죄로 처벌받았다. 모든 사람은 고귀하고 기사도적인 행동으로 타인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이들을 정부에 신고할 의무가 있었다. 소수가 모범을 보이려 하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 사람들의 양심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은 용납되지 않았다.



고통을 다루는 소설은 많다. 그리고 그를 설명하고자 그로테스크한 장치를 사용하는 방식 또한 낯설지 않다. 하지만 바바라의 소설은 고통을 그저 드러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고통은 지속성을 가진다. 인물들은 강요받거나, 오인당하거나 지저분한 방에 갇힌 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 던져진다. 내가 내 손으로 끝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읽는 사람들은 그 출구 없는 환상 속을 인물들과 머물러야 한다.


특히 「잘린 손」은 현대 소설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세련됨을 가지고 있다. 개인 나름의 배려는 쉽게 무례로 오독당하고, 군중들은 각자의 사정을 모른 채 쉽게 손가락질한다. 선한 행동은 어리석고 유약한 것으로 취급되며, 위악일지라도 사회 전체적으로 개인에게 악한 행동을 할 것을 강요한다. 그런 식으로 개인에게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광신론자의 광기와도 같다. 멈출 수 없고, 나 외의 타인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게 가족일지라도.


「머리 없는 남자」 속 여자는 머리가 없는 남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에게 머리가 생긴 것을 보고 절망하여 밖으로 내달린다. 그 얼굴이 아름다울지라도, 형태가 생긴 얼굴은 그녀에게 공포를 준다. 과연 그 여자가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표제작이 이 단편집 중에서 그녀의 고통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나를 '돌보겠다'고 말하는 남자들. 내게 고통을 주면서도 나를 낫게한다고 하고, 나를 돌본다면서 지저분한 방에 가둔다. 나는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남자들이 내가 다 나았다고 판단할 때. 나의 고통과 외침과는 관계없이 나의 의사는 모조리 타인에 의해 묵살당한다. 이것만큼 여성이 가지고 있는 악몽을 직설적으로 나타내는 게 어디에 있을까.


몽환적이고 기괴한 이야기의 인물들은 끝내 구원받지 않는다. 희망은 희미하다. 그러나 그 잔혹함이 독자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기묘한 매력을 가지고 끌어당긴다. 개인에게 불현듯 덮쳐오는 고통을, 인물의 신체와 인생을 사방에서 점령하는 폭력들을 끝까지 응시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메시지는 쉬이 나의 이야기로 치환된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이 일은 한 때의 환상같은 악몽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을.



+ 작가님 부활 기원 1일차.

++ 작가가 찢고 찢어서 그 끝에 남긴, 생애 단 한 권의 책 낭만 미쳤죠. 근데 독자한테는 좀 많이 비극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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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음의 밤
최지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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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0 | 나를 살게 하는 것은 결코 '박제된 정답'이 아니다. 길을 헤매다 지쳐 쓰러졌을 때 홀연히 나타나는 길이 있다. 그 길의 끝에는 네가 있을 것이다.


한 줄 요약 : 감성



챕터가 엄청 짧은데도 문장의 밀도는 높다. 여기에 글과 어울리는 음악을 같이 큐레이션 함으로서, 흐름을 유지한 채 텍스트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심지어 QR코드로 들어가 있으니 굳이 검색할 필요도 없음) 제목 그대로 일렁이는 밤에, 일렁이는 음을 곁에 두고 고요히 흐르는 문장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적합하다.


이 시인은 특별하지 않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문장을 구사하는 것도, 남들과는 다른 귀를 가지고 음악의 특성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특별한 감각을 지닌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지나치게 일상적이고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평범한 사람. 치열하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느슨한 부분도 있으며, 가끔은 있으나 마나 한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흔들리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시인의 자아에서 문장을 길어 올릴 때, 그 글에 몰입하지 않기란 무척 어렵다. 그저 솔직하게 놓여 있고, 그 솔직함 때문에 마음이 열리고 만다.



이태원 참사가 있었던 밤에는 이상은의 「공무도하가」를 찾고, 요조의 「나의 쓸모」를 들으면서 쓸모없더라도 멈추지 않고 걸을 것을 다짐한다. 그런 마음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정의 한가운데를 정확히 건드린다. 음악으로 사람을 잇고, 글로 마음을 잇는 일. 이 밤에, 그렇게 희미해진 경계 위에서 시인의 진솔한 고백은 어느새 조용히 나의 이야기가 된다.



p.161 | 지나간 시간은 이미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몸 어딘가에 머물다 불쑥 되살아난다. 그 밤들은 음악의 힘을 알게 했다. 음악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음音에 불과하지만, 그 음들이 모여 세상을 이룬다. 그러므로 한 존재를 살게 하는 것은 다른 존재이다.



+ 사실 시인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알라딘 오프라인에서 책을 들춰보다가 좋아서 사온 시집의 저자가 이 분이었다.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2022, 창비) 근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이 책과 저 책의 결이 비슷하긴 해. 죽지 않고 살아가는 삶, 지나치게 낙관하지도 그렇다고 슬픔과 절망에 빠져 폭삭 주저않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하고 글을 쓰는 그런 사람의 뒷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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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기분 -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최다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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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에 대한 교육과 필요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시대다. 솔직히 말하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명과 자기 이름 석 자가 싹 다 한자임에도 영어로는 쓸 줄 알지만, 한자로는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쓸 줄 아는 것이 상식의 문제인가?' 라는 질문에도 의견이 분분한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 한자를 굉장히 좋아해서 그런 점이 슬펐던 찰나에 반가운 책을 만났다. ( 솔직히 산문인지, 뭔지도 모르고 '한자'라는 단어에 꽂혀서 한자? 냉큼 읽어, 바로 그냥 펼쳐주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음. )


사나운 기세의 더위는 '폭暴'이란 글자가 수식해 폭염暴炎이라 한다. 매서워 보이는 이 글자는 원래 햇볕에 말린다는 뜻으로, '햇볕[日] 으로 나가[出] 두 손[廾]을 모아 담은 [米]을 말리다'라는 순한 이야기에서 비롯해 만들어졌다. / p.152

산문 자체도 읽기 좋지만, 역시 다른 책과 가장 차별화 된 특징 중 하나는 한자 하나를 앞세워 그 뜻을 풀고, 글자의 형태와 기원을 따라가며 저자의 생각을 덧붙인다. 그렇게 완성된 글은 그야말로 한자를 매개로 한 ‘마음사전’이다. 한자를 이리저리 가지고 놀듯 풀어내며, 어렵고 복잡한 글자들을 감각의 영역으로 끌어온다.

발췌한 글만 보아도 딱딱한 정의에서 벗어나 그를 해체해보고 조금 더 말랑하게 한자를 이리저리 가지고 놀고 있다는 특징이 드러난다. 어려운 한자라도 하나씩 나누어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는 것, 복잡하게 얽힌 세상이나 마음도 이렇게 한 겹씩 풀어보면 그 근원이 조금 더 단순하게 보인다는 것을 저자는 이 책으로 증명한다.


주디스 루이스 허먼은 '어떤 고통은 그 실재성을 의심받기 때문에 그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형상을 부여해서 공적 공간에 존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한다. 고통도 그냥 '아프다'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결을 세세히 나눠서 이름을 부여해야 한다는 말인데, 이 책은 바로 그 작업을 한자를 통해 수행한다. 사람의 기분, 혹은 저자의 일기에 한자를 빌려 결을 나누고, 분류하여 말한다. 그렇게 이름을 얻은 감정은 이전보다는 덜 막막해진다. 즉, 나 스스로를 파악하여 조금 더 너그러워지는 작업과도 같다.


한자를 단순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책. 딱딱하고 어려운, 단지 누군가에겐 복잡한 그림일 뿐인 글자들은 어쩌면 사람의 마음을 닮아 있고, 우리는 그 글자를 따라가며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나의 기분을 조금 더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 아 그냥 산문 말고 마법천자문 읽는 느낌으로 읽어도 됨. 이해가 아주 쏙쏙 되어버림. 한자 공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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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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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일은 언제건 되더라고.” 이소선 어머니의 이 말을 낙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 p.144


사실 이런 책을 읽고 울지 않기란 어렵다. 뉴스를 보듯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사건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시선에 붙잡힌 채 그 아픔을 통과하게 된다. ‘참사’라는 말도, ‘비극’이라는 단어도 부조리가 만들어낸 개인의 고통 앞에서는 지나치게 가볍다. 그 부조리가 국가와 사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개인에게 국가는 더 이상 보호자가 아니라 거대한 기만을 연출하는 존재로 남는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의 인권운동가 박래군이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45년 간의 시간이 담겨 있다. '질 줄 알면서도' 싸우는 마음이, 그림자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여 어떻게든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있다.


아무래도 현재 시점과 가장 밀접한 사건이 마음을 크게 요동치게 하는데 그게 4장의 용산 참사와 5장의 세월호 참사이다. 5장은 정말 내가 함부로 감상을 남기기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난다..진짜 화가 나. 정제된 말로 글을 쓰기가 어려울 정도로. 우리는 '잊지 않겠다'고 하지만 5•18 유가족이 세월호 유가족을, 세월호 유가족이 이태원 유가족과 연대하는 걸 보면 진짜 기억하는게 맞을까? 국가가 진실을 앞장서서 묻는 무책임의 구조는 왜 여전히도 견고할까.

4장도 장난 없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용산 참사를 '서울 한복판에서, 온라인으로 현장이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국가 권력에 의한 학살'(300)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구조하러 들어갔다면 충분히 구했을 생명이 진압이 목적이었기에 사라져버렸다. 특히 국가에 의해 사람이 6명이나 살해된 그 자리에 현재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인 '용산 센트럴파크'가 들어왔다는 부분이 너무나 한국스러워서 말 잃음. '여전히 철거민은 쫓겨나고 그 자리에 고층 빌딩이 들어선다'(312)

(아 솔직히 4~5장은 그냥 눈물파티임 덮고 펴고 훌쩍거리기를 반복했음)



저자는 ‘나의 뒷배는 죽은 자들이다’라는 말로 이 책을 마친다. 마치 한강 작가의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처럼, 죽은 자들을 뒷배로 산 자들을 위해,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자들을 위해 쓰인 기록이다. 그 기록은 울음과 침묵이 겹쳐진 여백 속에서조차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으며, 기억해야 할 이유를 끝까지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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