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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p.40 | 타고난 친절함이 이미 그를 유죄로 만들었다. 미덕과 선행은 이제 공공모독죄로 처벌받았다. 모든 사람은 고귀하고 기사도적인 행동으로 타인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이들을 정부에 신고할 의무가 있었다. 소수가 모범을 보이려 하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 사람들의 양심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은 용납되지 않았다.
고통을 다루는 소설은 많다. 그리고 그를 설명하고자 그로테스크한 장치를 사용하는 방식 또한 낯설지 않다. 하지만 바바라의 소설은 고통을 그저 드러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고통은 지속성을 가진다. 인물들은 강요받거나, 오인당하거나 지저분한 방에 갇힌 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 던져진다. 내가 내 손으로 끝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읽는 사람들은 그 출구 없는 환상 속을 인물들과 머물러야 한다.
특히 「잘린 손」은 현대 소설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세련됨을 가지고 있다. 개인 나름의 배려는 쉽게 무례로 오독당하고, 군중들은 각자의 사정을 모른 채 쉽게 손가락질한다. 선한 행동은 어리석고 유약한 것으로 취급되며, 위악일지라도 사회 전체적으로 개인에게 악한 행동을 할 것을 강요한다. 그런 식으로 개인에게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광신론자의 광기와도 같다. 멈출 수 없고, 나 외의 타인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게 가족일지라도.
「머리 없는 남자」 속 여자는 머리가 없는 남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에게 머리가 생긴 것을 보고 절망하여 밖으로 내달린다. 그 얼굴이 아름다울지라도, 형태가 생긴 얼굴은 그녀에게 공포를 준다. 과연 그 여자가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표제작이 이 단편집 중에서 그녀의 고통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나를 '돌보겠다'고 말하는 남자들. 내게 고통을 주면서도 나를 낫게한다고 하고, 나를 돌본다면서 지저분한 방에 가둔다. 나는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남자들이 내가 다 나았다고 판단할 때. 나의 고통과 외침과는 관계없이 나의 의사는 모조리 타인에 의해 묵살당한다. 이것만큼 여성이 가지고 있는 악몽을 직설적으로 나타내는 게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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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이고 기괴한 이야기의 인물들은 끝내 구원받지 않는다. 희망은 희미하다. 그러나 그 잔혹함이 독자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기묘한 매력을 가지고 끌어당긴다. 개인에게 불현듯 덮쳐오는 고통을, 인물의 신체와 인생을 사방에서 점령하는 폭력들을 끝까지 응시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메시지는 쉬이 나의 이야기로 치환된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이 일은 한 때의 환상같은 악몽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을.
+ 작가님 부활 기원 1일차.
++ 작가가 찢고 찢어서 그 끝에 남긴, 생애 단 한 권의 책 낭만 미쳤죠. 근데 독자한테는 좀 많이 비극 ;ㅅ;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