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 팔도 최고의 족집게 선생부터 기상천외한 커닝 수법까지, 처음 읽는 조선의 입시 전쟁
이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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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교육이라 하면 어떤 상이 먼저 떠오르는가. / 첫 문장


한글을 뗐을 무렵부터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대학입시를 위한 지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커다란 목표 하에서 자잘한 시험들을 통과해가며 어찌저찌 한 차례 치르고 나면 인생의 방향에 따라 다를 뿐 또 다른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또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흰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요 하면서 머리를 쥐어싸매고 어떻게든 암기하려 몸부림치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나 싶다. 고매한 선비들은 맨날 정자세로 앉아서 글을 읽고 꼼수같은 건 절대 쓰지 않겠지. 



이윤경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도 아이에게 힘든 공부를 시키며 “지금 고생하면 남은 인생은 편하게 살 수 있다”라고 속삭였다. 왜 공부하는가. 출세하기 위해서다! 과거에 급제해 높은 관직에 올라 부와 명예, 권력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다! (p.19)


조선과 시험을 묶어보면 그저 그 시절 어른들의 바른 자세, 어떻게 공부했는지, 몇 번을 읽고 반복했는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정도가 연결되면서 떠오른다. 누가 경복궁이 사교육 1번지이고, 조카 답안지 훔치기(이거 진짜 충격적) 이런 생각을 하겠는가. 심지어 입주 과외에 입시 정보를 꿰겠다고 고급 정보를 탐색하는 그 시절 조선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 조선판 <스카이 캐슬>이 따로 없다. 


1442년(세종 24년)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 26명이 북한산의 유명 사찰인 덕방암으로 몰려갔다. 조용한 곳에서 공부하기 위함도 아니었고, 템플스테이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도 아니었다. 이단을 척결한다며 절을 때려 부수고, 승려들을 두들겨 패기 위해서였다. (p.305)


깡패인지 학생인지 모를 인간들의 행패는 충격적이고 (가증스럽게) 출세에 대한 욕망을 포장한 율곡 이이나 100일 된 아기한테 과거급제하라는 정약용, 임금이 된 가방끈 짧은 개똥이 등 위인전으로나 읽었던 인물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역시 재미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꼭지 중 하나는 허균이 누나인 허난설헌의 남편을 매우 싫어해서 글로 흉을 보는데 "천재이면서 선녀 같은 우리 누나는 괴롭힌 매부(새끼)는 진짜 무식하고 별거 없는데 시험 답안지 쓰는 요령만 좋아서 답안지 하나는 잘썼다"ㅋㅋㅋㅋㅋㅋㅋㅋ심지어 이게 중국까지 소문나서 '못생기고 재주 없는 놈' 타이틀이 붙은게 진짜 웃음포인트.


심지어 그래도 선비들을 모아 관직에 오를 공무원을 뽑는 시험인데 뭔가 대단한걸 물어보겠지 싶은데, 신기한 질문들이라 놀랍다. 이런게...과거...? 


이를테면 광해군은 섣달그믐이 되면 왜 슬픈지 물었고, 정조는 온 백성이 담배를 피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p.30)


워낙에 흥미롭고 충격적인 사건들이지만 이를 다루는 저자의 글맛이 너무 유쾌하다. 작정하고 웃기려는 글이 아닌데 그냥 툭툭 던지는 말이 웃겨 죽을거 같다. 무심하게 그냥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딱 그런 느낌.


(진심으로 처음에는 몰랐음. 읽으면서 이 시시콜콜함, 이 툭툭 던지는 유머 어디서 봤는데... 그 책이랑 비슷한데 했는데 진짜 같은 저자였음.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위즈덤하우스,2022)) 


전작은 표지만 봐도 유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은 표지로 유머러스함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깜짝 놀랐고 그저 그런 흥미로운 비문학 저서 중 하나로 끝난게 아니라 훨씬 유쾌하게 돌아와서 마지막까지 스트레스받지 않고 즐겁게 읽었다. 



+ 추석 연휴 동안 소설조차 집중하지 못해서 초단편 소설집을 읽었는데 이 책은 끝까지 붙잡은 것만 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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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야기는 우리 곁에 있다 - SF와 인류학이 함께 그리는 전복적 세계
정헌목.황의진 지음 / 반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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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류학적 논의들이 현실에서 당연시되어온 사실을 새롭게 고찰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낯설게 볼 수 있도록 만든다면, 낯설게 보기의 또 다른 통로인 SF는 상상을 이야기로 구현함으로써 세상을 낯설게 보도록 한다. (p.74)

SF가 유행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겠다. 신작 소설의 대다수는 하드하든 소프트하든 SF적 상상력이 꽤나 가미되어 있고, 사람들은 이를 오락처럼 즐기고 있다. 왜? 


인류학은 그 무엇보다 현실과 밀접하다. 외계인이 인간을 관찰해서 글을 쓴다면 그것이 바로 인류학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SF는 설정상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현실에서는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알을 까는 외계인도 없을 것이고(진짜 없나?),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사람을 끄집어 내 선물처럼 보내는 외계 행성의 바다도 없다 (진짜 없나?). 현실에 없고, 있을 법하고 언젠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이 펼쳐지는데 이 상상력의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 어떤 배경으로 그리던 인간이 하고 싶은 말이 담겨있다.


작품은 현실의 남성이라면 절대 겪을 일이 없는, 임신·출산과 유사한 신체적 기능성을 외계 생명체의 숙주라는 독특한 장치를 활용해 남성에게 배치한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진실(작지 않은 신체 변화와 함께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남성이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고찰한다. (p.77, 『블러드차일드』와 생물학적 재생산의 인류학)


소설을 꿰뚫어보는 인류학적 논의의 깊이도 절대 얕지 않다. 책장이 훌훌 넘어가는 가벼움은 아니지만 너무 어렵지도 않아서 천천히 읽었을 때 기분 좋은 지적 쾌감이 오는 정도이며, 생각보다 논의의 거리감이 가까워서 몰입하고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ex.'청소년 유해 관련 도서' 지정으로 성교육 관련 도서를 학교에서 폐기하라고 했던 사건)  


흔히 인류학은 비서구 지역의 이른바 ‘원시 부족’을 연구하는 학문, 혹은 낯선 타문화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사실 현대의 인류학자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p.201)


​이 가상 민족지 챕터가 굉장히 흥미롭다.


책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가 진짜로 있다고 가정하고 연구지를 쓴 것인데, 상당히 끔찍했다. 물론 설정 자체의 파격은 기존부터 알고 있긴 했지만 그건 전부 가상의 세계라는 한꺼풀의 막이 씌워진 상태였는데, 소설 내 인물들을 인터뷰한 형식도 그렇고 그냥 지금 당장의 옆나라가 그러고 있다고 가정하고 바라보기 시작하니 다가오는 느낌이 놀라웠다. 이름을 부를 필요도 없고, 마음이 있을 필요도 없고 그저 여성은 '걸어다니는 자궁일 뿐'이라는 말이 상상 이상으로 타격이 컸다. SF를 바라보는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이었는데 신선해서 바로 다음 챕터로 넘어가지를 못했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블러드차일드』, 『네 인생의 이야기』, 『파견자들』 등 다양한 SF를 인류학적 관점으로 다시 뜯어본다. 읽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면 훨씬 재밌게 읽을 수 있겠지만, 읽지 않은 시선에서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나만 해도 여기 있는 전 작품을 읽지 않았다. (시녀 이야기 하차, 우빛속...너무 유명해서 손이 잘 안가...ㅠ) 그럼에도 읽는 내내 너무나 즐거웠고 오히려 책을 추천하는 그 어떤 글보다 강하게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SF는 특수한 상황 속에 사람을 밀어넣어 두고 행동 양상을 상상해낸다. 마치 외계인이 인간의 연구를 위해 특수 장치에 사람을 넣고 관찰하듯이. 그런 SF와 사람을 탐구하는 인류학이 만나 퍼즐처럼 짜맞춰진다. 짜맞춰진 자리에는 날카롭게 파헤쳐진 세상이 보인다. If의 세계인 SF를 바라보는 관찰적 학문인 인류학의 조합은 보는 이들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더욱 깊어지게 만든다. 저자들이 다음의 낯선 이야기로 어떤 세계를 보여줄 지 궁금하다. (속편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를 옭아매고, 불평등의 경계로 우리를 나누고,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환경을 파괴하는 기존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넘어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삶도 가능하다는 상상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 상상을 위한 원천을 인류학과 SF에서 찾고자 했다. 설령 그것이 진부하게 보이더라도, 세상은 더 많은 ‘착한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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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당한 집 - 제4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최수진 지음 / 사계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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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부조리한 일들은 이 세상에서 그냥 일어나 우리를 덮치곤 한다. 언제나 우리 중에서 가장 약한 쪽을. 가장 무르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p.167, <금일의 경주>)


2031년 한국 경주에서 원전사고가 터졌다. 그러나 사고 자체가 서사의 중심축이 아니다. 그저 사고 이후의 시점을 배경으로 어떤 이들의 이야기가 커다란 극적 서사 없이 담담하게 기록된다.


1. 취재 기자인 화자가 2033년 6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을 점거한 시위대와 보름간 함께 했던 기록을 2036년 5월에 작성한 <길 위의 희망>


2. 예술가 남매의 십 년간의 활동을 돌아보는 기록인 <점거당한 집>. 용인 백남준아트센터를 무대로 누나 박하니가 2033년 개인전을 연 그곳에서 2044년에 동생 박한일이 누나의 회고전을 연다.


3. 젊은 소설과 금일과 그의 작품을 2044년에 기록한 <금일의 경주>



제 4회 박지리 문학상 수상작인 해당 작품은 구병모 작가의 심사평처럼 '도파민을 분비하는 일에 최적화된 소설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은 뒤엉키며 자극성은 떨어져 최근 소설들이 갖추고 있는 대중성과 오락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실험적이고 주제는 예사롭지 않다. 첫 번째 단편인 <길 위의 희망>의 배경이 광주이며, 시위대와 이를 진압하려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흔히들 머릿속을 자연스레 스쳐지나가는 주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편들은 장소를 가지고 놀고 있다. 장소의 쓰임을 의도적으로 뒤바꾼다. 무언가에 의해 점거당한다. 집은 미술관으로, 미술관은 집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시위대가 머무는 공공장소. 시민을 위한 장소이나 강제력으로 쫓겨나는 곳. 


역사와 예술이 포개진 전당은 어떻게 공공공간으로 기능하는가? 시민의 공공공간 점거가 언제 어느 때라도 부당한 거라면, 그곳을 짓밟고도 연이어 되풀이된 폭력은 누구의 책임인가? (p.31, <길 위의 희망)


공간을 특수하게 쓴 특징이 있다면 또 시간 역시 독특하게 쓰고 있다. 소설 안에서 뒤엉키는 시간은 마치 밖에서도 흐트러지는 것 같다. 사진과 평면도가 이리저리 첨부된 글들은 어쩐지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실 같고, 사건은 과거의 일을 답습하는 것만 같다. 1980년 5월의 기록과 2036년 5월의 기록, 거의 천 년에 걸친 왕조의 마지막을 바라본 도시에서 다시 맞은 종말같은 사고. 역사는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반복된다. 직접적인 문장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 모두 공유하는 공간의 특수성을 이렇게 가지고 논다.


눈 씨는 우리 시위가 광주 시민들의 억울한 역사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작으나마 분명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반면 하마 씨는 그런 희망 자체를 의심했다. 유령을 본다 한들 우리가 유령이 될 수는 없다. 그들의 고통과 죽음 너머로 우리가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p.39, <길 위의 희망>)


아름다운 그림들이 쭉 걸려있는 미술관이 아니라 이리저리 미로처럼 조형물이 툭툭 놓여있는 현대미술관을 보는 것만 같은 소설이다. 서사를 즐겼다기 보다는 구조적 실험을 들여다보고 온 느낌이다. 의도적으로 배치한 난잡함이 그저 정신 없음으로 끝나지 않게 서사를 사용해 공백을 채운 책으로, 요 몇 년간 읽은 그 어떤 소설들보다 구조적 파격이 놀라웠다.



+ 띠지의 '신예 작가의 과감한 플레이팅'이라는 말에 확실히 동감한다.


 


엄마에게 물어 이해한 표현대로라면, 우리는 친구라기보다 '동지'인 것 같네요. 싸움에 임할 때 뜻을 함께하는 상대를 이르는 표현이라는군요. 일 년 중 가장 겨울이 긴 밤을 이르는 말이라고도 하네요. (p.58, <길 위의 희망>)


"가는 길이 희망이 되고자 하여, 나 구태여."

왜 여기다 밑줄을 그었느냐고 찬란 씨는 물었다. 나는 구태여라는 표현이 흥미로워서라고, 일부러 애쓴다는 뜻의 표현이 희망의 도래를 더 조심스럽게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지만 와야만 하는 것에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p.61, <길 위의 희망>)


살면서 저는 제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든 옮겨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단 걸 알게 됐습니다. 누나는 잔여물을 삼키고, 누르고, 더 나은 뭔가로 변환시키는 데 전력을 쏟았지만 저는 그걸 그냥 보존했어요. 일상 속에서. 잔여물은 다만 잔여물로써. (p.117, <점거당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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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 도시로 숨 쉬던 모던걸이 '스위트 홈'으로 돌아가기까지
김명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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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번 거리로 나선 여성들은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여성들은 살아남는다. 여성들은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K양을 사랑하는 T군이 있다. K양을 너무 좋아하는데 이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도무지 모르겠다. 자유연애라는 개념이 들어온지도 얼마 되지 않아 연애를 하고 싶긴 한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T군은 일단 K양을 자신의 하숙집으로 부른다. 그리고 면도칼을 꺼낸다. 자신의 왼손바닥을 긋는다. 피를 뚝뚝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K양이 뜨거운 키스를 해주리라 믿는다(어째서?). 그러나 K양은 울면서 돌아가버리고 T군은 파출소로 호출된다.


 


잡지 <신여성>에 소개된 일화이다. 묵묵히 부모가 정해준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결혼하는게 아니라 자유연애라는 개념이 들어오고 서구의 문명이 들어오기 시작하던 그 시절. 틀어올린 머리 혹은 단발에 짧은 치마, 구두와 목이 긴 양말, 학교에 다니고 유행의 변화에 민감했던 신여성. 권투에 열광하고 거침없이 담배를 피우며 이 잡지를 읽던 그 신여성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해당 책은 잡지 <신여성>을 통해 보이던 시대상과 여성들의 변화, 이 변화를 바라보고 바른 방향으로 '계몽'하려는 남성들의 시각과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신여성'들에게 씌워지는 각종 프레임들을 선명히 보여준다.  


잡지는 소비와  관련된 구체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상업지로의 성격을 강화하면서도, 마찬가지로 신여성/모던걸을 낭비적 소비의 주체로 인식하고 비난했다. 화장품과 화장법에 관한 시시콜콜한 기사를 내보내고 세련된 맵시에 대한 충고를 잊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여성이 옷차림, 머리 단장, 얼굴 치장 같은 물질적 향락과 사치에만 열을 올리는 '못된 걸' 이 되어간다고 비난했다. 거기에, 먹여주고 입혀주기를 바라는 의타적 심성이나 세속의 헛된 명예를 얻고 싶어 하는 천박한 허영심이 신여성의 소비를 조장하고 정신을 타락시키는 원인이라는 심층적 분석까지 내걸었다.

김기전은 조선의 학교와 사회가 교육받은 여자로 하여금 사회에서 나름의 새로운 직분을 찾을 수 있도록 그들의 능력과 시야를 함께 함양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직분을 좀 더 맵시 있고 슬기롭게 수행하도록 만들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들의 소비는 허영이 되고, 사회에 진출해보려는 첫 걸음은 헛된 명예를 얻고 싶어하는 천박함이라고 치부된다. 여성들을 위한 잡지이자 소비를 부추기는 매체인 <신여성>에서조차 이러는데, 다른 사회적 시선이라고 고왔을까. (솔직히 말하면 한문장 한문장 떼어다가 글 쓴 사람을 요목조목 쥐어다 패고 싶음) 


이중성과 여기에 쏟아지는 각종 맨스플레인들. 그들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에게는 정숙할 것과 엄마가 될 준비를 강요하고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비난의 화살을 돌리면서 엄마가 된 사람들에게는 또한 가정에 충실하고 슬기롭고 현명한 엄마가 될 것을 가르치고자 한다. 지금이라고...뭐가 다르지...? 현재도 여성이 향유하는 문화들은 쉽게 후려쳐지며 그 문화를 제공하는 자들도 여성을 쉽게 무시한다. 핑크텍스는 너무나 만연하고 여성이 좋아하는 SNS 유행 카페는 허세의 상징처럼 비춰진다.



일반 여성의 향학열이 높아져 '학교'가 대세가 되었고 1926년 정도에 이르면 "늙어가는 몸으로 인력거를 끌어서 딸의 학비를 대어주는" 부모가 등장하고, (···)


그런데 이번에는 송계월이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았고, 아이의 아버지가 여럿이라는 소문이 났다. 문제는 그것이 "한낱 서울 거리의 불량 청년들 사이에서" 나도는 뜬소문이 아니라 무려 카프KAPF의 문인이었던 이갑기가 <여인>이라는 잡지를 통해 말했다는 데 있다.


또 이런 말도 한다. 아들은 온 집안이 노력해서, 부모가 밤낮으로 일하고 딸이 공장에서 노동력을 갈려서 학교에 보내는 것을 미덕처럼 여기다가, 딸이 학교에 가기 시작하니 부모의 늙어가는 몸을 강조한다. 늙은 부모가 저렇게까지 노력해서 보내야 하는가, 단지 '대세'를 따르기 위해 가족이 희생하는게 맞느냐고 묻기 시작한다. (솔직히 너무 열받음. 하고 싶은 말만 한 솥이 나와서 다 못씀)



심지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자신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지 않는 여성, 사회 구조를 저격하는 여성에게 문란하다는 프레임을 씌워버리는 것도 얼마나 저열한가. 그리고 이 사회는 저 때와 얼마나 다른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의 외모와 성적으로 공격하는건 지금도 너무 흔해서 예시를 들기도 입 아픈데 아주 유구한 역사였구나^^



서양식 담배 역시 새로운 기호품이었고, 아직 그 기호품 애용에 남녀 구별이 정착하기 이전이라 여성의 흡연에 대한 비난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사실 무거운 이야기가 많은 것 같지만 그 시대의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사회 설명이 재미있다. 호떡을 먹는 남학생들, 옹기종기 모여 같은 하숙집에 사는 친구들끼리 군고구마를 까먹는 여학생들의 모습도 절로 그려진다. 맥주도 그 시절에는 음료로 여겨져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삐루 5잔'(!!!)을 권고했던 시대라니.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담배가 막 들어왔을 그 시절에 오히려 담배를 피우는 여성에 대한 비난 어린 시선이 적었다는 것이었다. 사적으로야 담배를 피우는 것이 흠이 아니라지만 미디어에서 공연히 금연을 다짐하고 흡연을 당당히 밝히는 남성 연예인들과 달리 여성들이 그랬다가는 당장에 '흡연 논란'이라는 헤드라인이 달린다. 예능에서는 여전히 "너 담배 피워?"가 개그라는 껍질을 쓴 비난으로 사용된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대로인지 퇴보한건지 물어봐야만 아는 문제는 아닌거 같다.


 


채 100년도 지나지 않았다. 짧으면 짧다지만 길면 긴 시간인데 계속 현 시대로 읽힌다. 주어는 여성이지만 남성과 사회 전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는 그 때에 비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온함'에 대해서 너그러워졌는가. 여성만의 역사가 아니기에 혼자서는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리를 맴돈다. 역사는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교차이기에 널리 읽히고 같이 답을 찾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 여성 교육이 시작되고 진행될 수록 여성들의 가정 복귀 비율이 줄어든다. 지금까지 가정에 묵묵히 힘을 다해왔던 여성들이 많았던 것은 그저 배움의 기회와 선택지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흔히들 '요즘 여자들은 옛날과 달라 이기적이야' 이러지만 예전에는 그럴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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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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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는 피해자인 사람이 다른 면에서는 가해자인 경우도 적지 않다.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형식상으론 자원하여 간 것이었지만 실질은 강제 동원된 것에 가까웠다. 그들은 일본군에게 맞고 학대받았다. 잘 때리라고 맞았다. 그리고 포로들을 때리고 학대했다.

서문에서 저자는 말한다. '재미를 위해 썼다고'. 의도에 매우 충실하다. 역사에 고개를 들지 못할 기사가 쏟아지는 현재 읽어야 할 시대적 이유와 고민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일단 재밌다. 19세기 말~20세기 중반 식민제국주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데도. 거시적인 관점보다 한 인물의 드라마로 시대가 펼쳐진다. 무겁고 피상적인 담론이 아니라 입체적인 사람의 이야기다. 심지어 그 재미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뼈 아프다.

얼마전에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 (창비, 2024) 을 읽고 나니 저 문장이 다르게 다가온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게 죽는 것 보다 어려운 시대라도, 분명히 사람으로 온전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고 구조와 시대에 무책임하게 손 놓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읽어내었다.  구조적 악이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은 무결하지 않다. 모든 역사과 사건의 공범이며 방조범이다. 과거와 미래에 부끄러운 기사들이 쏟아지는 현 상황에서 나는 떳떳할 수 있을까. 


역사에 질문하지 않는 국가가 어떻게 되는지 바로 옆나라 일본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아니 일본까지 넘어가야 하나, 역사가 후퇴하는 현 정권은 어떤지. 즐겁게 몰입해서 읽다가도 챕터 마지막의 질문을 볼 때마다 기분이 참담하다. 


이렇게 일본에서 위안부의 ‘효능’을 체험한 미국이 한국전쟁이 터지자 한국 정부에 위안부 공급을 요구했던 것이다. 일본-미국-한국으로 이어지는 성 착취 제도의 삼각 고리다. 

양공주는 팡팡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전시 위안부 제도의 유산으로 탄생했다. 미국, 일본, 한국의 수직적 삼각동맹을 뒷받침하는 허리 아래의 토대가 됐다. 그 덕에 주린 배 채우고 편히 잠들던 이들이 이들을 비곗덩어리 취급하며 가두고 내쫓았다. 일본의 위안부는 성노예 제도라고 비판하면서 제 나라의 양공주는 기억에서 지웠다.

소설 속 대학생은 약간의 선의와 죄책감을 겸비한 흔하디 흔한 지식인 남성 역을 맡았을 뿐이다. 자기의 상상 속에서 양공주를 역사의 ‘불가피한‘ 희생양이라고 멋대로 규정하고, 새 삶을 살라고 권한다. 있는 그대로의 상처투성이 그녀를 사랑할 자신도 의사도 없다. 무엇보다 책임에 대한 인식이 없다. 새 삶을 살아야 할 자는 누구인가? 

소설 속 남학생과 양공주의 관계를 넘어, 한국이 역사적 피해자인 여성을 보는 시선과 일치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위안부는 일본이 끌고갔다. 양공주는 한국이 만들어내었다. 자신들이 내몰아 놓고, 멋대로 불쌍해 하고 감히 새 삶을 살라고 권한다.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주홍글씨를 붙였다. 그리고 발을 뺐다. 기억에서 지웠다. 모든 일에 책임이 없다는 듯, '시절이 그랬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지금 와서 따져 무엇하냐는 듯. 



한국은 '잊지 않겠다'고 했다. 멀리갈 것도 없이 세월호 사건때도 그랬다. 온 사회가 애도했고 해당 사건은 선량한 국민들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내었다. 너무 아파서 그랬을까. 정치권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사건을 덮었고, 일반인들은 고통스러워서 그걸로 끝냈다. '착한 마음을 넘어 구조의 문제들을 얼마나 직시했을까(p.44)' 잊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거기에서 첫 걸음이 시작되는거니까. 그러나 그 시간에서 사회는 어느 정도까지 걸어나갔는가. 아직도 모든 게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게 아닐까. 



'상처 입은 채 서로 연루될'(p.302) 사람들. 이분법으로 나는 선, 너는 악. 나는 피해자, 너는 가해자 이렇게 나뉘지 않는 세계에서 서로가 연결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마주해야 한다. 단순 '알고 있음'은 '잊지 않는다'와 다르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있었을까. 필사적으로 가려왔던 달의 뒷면같은 이야기가 마음을 찔렀다.


대부분의 독일인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 이런 식으로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획득하고 방어했다. 그런 무지가 나치즘에 동조하는 자신에 대한 충분한 변명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 나는 바로 이런 고의적인 태만함 때문에 그들이 유죄라고 생각한다. 


+ 잭 런던 짜증나. 집에 있는 『야성의 부름』 어떻게 읽으라고 이녀석아.

 ...아니 근데 한국인 죽이고 싶다 너무하지 않냐고 넌 지옥에서 다시 만나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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