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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 - 딥페이크 성범죄부터 온라인 담론 투쟁까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언어들
한국여성학회 기획, 허윤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성차별은 그것을 공정한 것으로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와 언제나 함께해왔다. / p.259
범죄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특히 요즘의 범죄는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더욱 가혹하게 벌어진다. 성범죄는 디지털 세계로 넘어가며 더욱 교묘하고 가혹해졌으며 이미 거대 산업이 되었다. 그러나 사법부의 관점과 디지털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철저하게 분리된 세계로 보며 과거와 동일한 기준으로 처벌이 내려진다. 피해자의 고통은 온라인이라 하여 실제로 당하는 것보다 더 가벼울까.
해당 책은 현재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 정의하고 그 산업을 집어주며 현행법상이 얼마나 미흡한지 꼬집는 1장, 페미니스트 인공지능의 가능성과 IT업계의 윤리 편향 등을 말하는 2장, 신자유주의 하에서 능력주의가 젠더가 만나 빚어지는 갈등과 공정이라는 환상에 대해 말하는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어 자본주의'라는 개념으로 먼저 시작한다. 폭력과 살인, 신체 훼손과 시신을 자본 축적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말인데, 여기서 특히 여성의 신체는 좋은 자본 축적의 수단이 되고, 남성들은 여성을 그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이 개념에서 파생되는 말이 '고어 남성성'인데 현재 한국의 남성들이 지키려는 남성성을 정의하는데 쓰인다.
어렵지 않게 N번방을 생각하면 된다. 또 많은 유튜브 렉카들이 해당된다. 여성 신체를 훼손하고, 뒤에서 여성을 협박하여 이중으로 돈을 챙기는 시스템. 그러면서 '페미는 비정상'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마녀사냥처럼 여성들의 sns를 뒤져 밥줄 뺏기를 하는 놀이.
이 파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성, 특히 그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를 범죄자로 만드는 놀이를 하면서 자신들을 "선량한 일반 남성"이라고 정의내린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범죄자와 페미니스트를 같은 선상에 놓기 때문에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부를 때 크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선량한데, 페미랑 동급인 범죄자에 놓는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3장이 가장 재미있었다. 나는 능력주의를 표방하면서 공정한척 하며 차별 구조를 공고히 하는 신자유주의에 관심이 많은데, 능력주의와 젠더가 만나 어떤 현상을 낳는지, 그 능력주의 마저 여성을 차별하는 사실에 공감이 가면서도 가장 이입이 많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 이래 성별 임금 격차부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과연 여성이 남성보다 못하기 때문에? 내가 고등학교를 나온 지역에는 남고가 있었는데, 학부모들은 "성적에서는 여자애들을 이길 수 없으니 남고를 보내서 내신을 확보해야한다." 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했다. 실제로도 여성이 남성보다 성적이 높다.
학교를 떠나 사회로 나와 블라인드 채용으로 넘어가면 2017 공공기관 채용 기준 1차 서류 통과율은 남성보다 여성이 근소하게 높다. 그러나 면접을 거치면 여성 합격자 비율은 큰 폭으로 낮아졌다. 이 일은 어떻게 설명 되는가. 여성 지원자들의 사회성 부족? 그러나 무슨 일만 생기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소프트 스킬은 여성들한테 있지' 하면서 분위기 메이커로 여성을 앞세우지 않나? 너무 옛날 일인가. 그럼 2023년부터 2021년까지 공무원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로 추가 합격한 인원은 남성이 여성보다 천 명 가량 많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될까. 책에서도 말하듯 "능력주의는 남성과 여성에게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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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놀랍게도 전혀 어렵지 않다. 들불처럼 번지는 딥페이크 범죄와 다른 형태로 여전 존재하는 N번방들, 여성의 신체를 팔아 돈을 버는 BJ들 등 어렵지 않게 관련 사례가 떠오르고, 그 사례들이 이 책의 문장들을 만나면서 시야가 확대된다. 심지어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되기까지 한다. 현 시점에 충분히 고민이 되는 문제들과 그 기반이 되는 그들의 생각, 해결하지 못한 이유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방향성 제시까지 너무나 좋은 저서였다. 2024년의 한국 사회에 발을 딛고 있는 페미니스트라면 반드시 생각해야하는 의제들이 많아 여성학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경험을 말하자면 일할때 남성들은 두세시간에 한번씩 담타가지면서 서로 밀어주자고 온갖 기회를 주는데, 여자들은 그 시간에 일했다. 그들이 30분씩 자리를 비운 동안 밀린 일거리까지 처리했다. 실적이 우수한 사람도 여성이었다. 그리고 승진은 남성들이 먼저 했다.
++ 여성의 몸이 지켜줘야만 하는 보잘것없는 남성성따위....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