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기름
단요 지음 / 래빗홀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니까, 교주를 죽여라. / p.48


주인공 우혁은 중학생 시절 계곡에 빠졌다가 신비한 소년으로 인해 치유받은 특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그때의 경험으로 인해 '평범' 그 너머를 엿보았고 이후 비일상적인 스릴을 좇아 도박중독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이제 마음을 잡고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서른넷의 우혁 앞에 그 소년이 예전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나타난다. 


소년은 과거 서른두 명의 신도가 집단 자살한 사이비 종교 '새천년파'의 교주이며, 그는 1999년 12월 31일을 종말일로 예언한 '재림 예수'였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누군가는 그를 아직 재림 예수로 믿으며 추적 중이고, 소년은 우혁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진심은 맹목적인 매혹과 결부되었으며 고결한 순교자는 광신도의 다른 명칭이었다. / p.240


신학을 기틀로 삼아 그 위에 현대적 상상력을 덧씌운 소설. 성경 구절과 어느 정도의 신학적 이론이 나오긴 하지만, "만약 네가 세상을 끝장낼 수 있으면, 그러고 싶으냐?"에 대한 각 인물들의 답을 이끈 나침반 역할 정도이다. 해석은 다양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각자의 문제이므로. 그러나 이 정도로 신학적인 정보값 위에서 인간의 윤리를 집요하게 묻고 파헤치는 소설이 있었나 하면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국 문단의 유행이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다정한 속성의 SF(Science Fiction)라 하면, 이 책은 신학을 바탕으로 윤리를 묻고 추측하여 건조하게 탐색해 나가는 SF(Speculative Fiction)이므로 확실하게 이질적이며 독특한 맛이 있다.



개념을 물질에 앞세움으로써만 파악될 수 있는 도시의 결절들. 만질 수 없거니와 상상의 대상조차 아니므로 실체와 정신을 동시에 압도하고 마는, 추상화된 객체들. 강남과 남양주의 차이를 궁금해하는 사람에게는 도시의 풍경이 아니라 부동산 시세가 병기된 지도를 보여줘야만 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내비게이션 화면에 나타난 아이보리색, 회색, 초록색 구획의 조화는 실존 이상의 실재였다. / p.90


이 책의 많은 것들이 긍정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도박중독자인 주인공도 그렇고, 집단 자살을 일으킨 사이비 종교, 대기업 회장이지만 명품보다는 카시오 시계를 차며 도망친 '재림 예수'를 추격하는 인물. 인물상만이 그런 것도 아니다. 도시의 풍경과 세계의 구조에 대한 서술 역시 차갑고 건조하다. 대기업 상표로 도배된 도시, 우혁이 일하는 서울 대치동의 학원가, 학생 유치를 위한 경쟁과 강사들 사이의 견제 등 자본주의와 사교육 시장에 대한 시선이 날카롭다. 나는 이전에 단요 작가가 <수능 해킹>(창비, 2024)을 공동 저술한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사교육 관련 이야기가 중점은 아니지만 이 장편소설에서 인상적일 만큼 차갑고 이 부분만큼은 현실을 잘라낸 것과 같아 기억에 남는다.



“그 양반은 교리를 소망이 아니라 실체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신학교에 적응하질 못했던 셈이지. 세상 사람 모두가 공평히 소중하다는 말에 ‘빌 게이츠 딸은 소말리아 아동보다 훨씬 잘사는데 불평등한 거 아닌가요’ 하는 어린애들처럼. 어른이라면 주어진 현실과 믿고 싶은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면서 이 순간에 할 일을 정하지만 어린이는 곧이곧대로 보고 움직이거든.” / p.264


사실 완벽히 모든 말을 이해하기에는 살짝 어려웠다. 종교적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과 별개로 내가 가진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연못에 발 끝 조금 담근 정도일 것이므로. 이 소설의 무서운 점은 인물들이 늘어놓는 궤변에 가까운 장황설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독자를 이 소설에 빠져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의 어느 인물에게도 정을 주지 못했고, 크게 공감하지도 못했으며(근데 애초에 평범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공감할 인물상들이...아닌 것 같음) 어떤 부분은 어렵게 느끼기까지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400p 가량의 장편소설을 끝까지 붙잡아 낼 수 있었다. 힘이 강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작가가 던져주는 다음 대사만을 애타게 기다리다 머리채가 잡혀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끌려가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피와 기름>에서 정확히 그런 느낌을 받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어나가는 천 명의 사람들과 내 눈앞에서 죽는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눈앞에서 죽어가는 백 명 쪽이 더 괴롭지 않을까. 대의는 멀고 내 품에 안을 수 있는 사람은 적다. 삶의 의미를 '지구 반대편 이름 모를 천 명이 살아가니까 나도 살아가야지'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보통은 곁에 있는 사람 때문에, 건네진 손 하나 덕분에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의 마침표가 충분히 납득 가고 마음에 들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