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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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이 땅에 주인으로 태어나 잡초라는 이름으로 짓밟히고, 뽑혀도 그 질긴 생명력으로 생채기 난 흙을 품고 보듬어 생명에 터전을 치유하는 위대함을 기리고자 이 비를 세운다.


p.27, <잡초공적비 비문>


너무나 유명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임을 떠나, 유홍준 교수에게는 개인적으로 친근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 우리 과 교수가 그렇게 좋아하고 그렇게 틈만 나면 칭찬을 하며 꼭 읽어보라고 권하였기에 하도 많이 들어 영문 모르게 마음속으로 친근함이 느껴진다. (실제로 친분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거짓말 같다는 게 우리 과 동기들의 정설이다.)



많은 부분을 떠나 그의 인생만사를 따라 책을 읽던 도중 계엄이 터졌다. 병렬독서 중이던 대다수의 책을 읽지 못하고 뉴스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던 때에 이 책만은 계속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이상하게 시의성이 느껴지는 부분과 제4장 <예술가와 함께>, 제5장 <스승과 벗>이 강렬하게 나를 잡아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실 계엄 전까지 '잡초'의 이야기와 중국의 프로 여성 바둑 기사인 루이의 이야기를 가장 인상 깊게 읽은 터라 그 부분에 메모를 가장 많이 남기며 읽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이 책의 의미를 순식간에 뒤바꿨다. 물론 저자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겠으나 독자와 현시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므로 사회의 분노에 따라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의 반복에 분노하기도 하고 고양되기도 하고 유쾌한 글맛에 잠시 한시름 놓기도 했다.


게다가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그 벗들의 이야기를 보며 사람의 관계의 소중함과 서로를 보살피는 방법, 저자의 스승이자 벗인 사람들을 보며 내가 지나온 인연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니 이런 부분에서도 시기가 적절하긴 했다.



타인의 인생 궤적이 혼란한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삶은 쉬지 않고 한국의 역사를 따라 걸은 길이었으므로 그 인생만사에 한국의 미가 있고, 유신독재의 역사 민주화 운동의 정신까지 있었다. 잡문집이라 하여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난이도가 있는 책은 아니었는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장을 넘기는 손을 늦추었다. 좋은 책은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그 의미를 잃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저자의 잡문집도 그렇게 남을 것 같다. 시간이 흘러도 한국인이 우리의 문화유산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리 없고,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이라면 분명 이 글 곳곳에 담긴 정신을 잊지 않을 테니까.



하늘을 바라보고 부끄럽지 않은 삶이 자신과 집안에 얼마나 큰 피해가 오는가를 생각할 때도 사회가 저를 부르는 소리는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고 먼 훗날 저의 후손에게 물려줄 영광스러운 세계만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 p.345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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