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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카베 악바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5월
평점 :

우리 엄마는 아무 이유 없이 죽었어요. 엄마는 다른 사람 300명과 죽음을 나눠야 했어요. 우리 아빠는 웬 기업형 농장에서 수십 년 동안 닭똥을 치운 끝에 이름 모를 사람으로 죽었고요. 난 내 인생이, 내 죽음이 그보다는 의미가 있었으면 해요. / p.47
"어떤 사람들은 죽은 뒤에 태어난다"
하나뿐인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들고 싶다는 의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 순교란 그런 것이다. 살아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사회에 던진다. 그런데 순교란 그렇게 언제나 숭고한 것인가.
이 책은 이란계 젊은 시인 '사이러스'를 메인 줄기로 잡고 과거와 현재, 그의 가족과 주변의 가지들을 계속 둘러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어머니는 이란 여객기를 적기로 오인한 미군의 격추 사고로 죽은 290명 중 한 명이다. 미국은 일반인의 죽음을 초래한 실수에 대해 "논리적인 판단"이라며 그 죽음에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었다. 아버지는 사이러스를 키우기 위해 미국의 공장에서 일만 하며 살다가 그가 대학생이 되고 얼마 뒤에 숨을 거둔다. 그저 사이러스를 위해 죽지 못해 버틴 삶이었다. 삼촌은 이란 - 이라크 전쟁터에서 '신의 사자'를 연기하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다 정신이 나가 버린다. 사이러스는 가족의 죽음을 생각하며 자살 충동에 시달리면서도 의미 있는 죽음에 집착한다.
그러던 중 이란 출신의 여성 작가가 죽음을 앞두고 고통을 참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만 갖춘 채 미술관에서 숙식하며 관객들과 만나는 퍼포먼스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순교자!' 의 발견에 사이러스는 그녀를 찾아간다. 사이러스의 '순교자 프로젝트'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경계에 선 사이러스의 위치는 아슬아슬하다. 페르시아계 미국인이면서 미국에게 가족을 잃은 하나의 개인은 '대통령을 죽이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행동은 누군가에게는 '자살 폭탄 테러'이면서도 어느 집단에는 '순교'이다. 순교라는 행위는 이처럼 상대적이다. 작가는 순교라는, 어쩌면 신성불가침적인 단어에서 상대성을 끄집어내어 미국의 가소로운 정의와 국가주의, 종교 그리고 궁극적으로 허무할 수도 있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놀고 있다.
이 상대적이고 모호한 주인공의 특성은 이 책의 구조로도 형상화된다. 꾸준히 한 목소리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을 배치해 '내'가 계속해서 바뀐다. 주인공마저 어디선가는 자식이고 조카고 친구이며 갑자기 찾아온 조연이다. 자타는 혼재되고 개념은 뒤바뀌는 일이 빠르게 반복되는 과정에서 국적, 성별, 생사 등 여러 방법으로 그어놓았던 경계선이 이상하게도 흐릿해진다. (덧붙여 이 책의 목차가 없다는 특성에서도 경계를 굳이 나누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은 가끔 모순적으로 흘러간다. 유명한 '필사즉생 필생즉사'도 그렇고 죽음에 관련한 문제를 파헤치다 보니 삶이 떠오른다. 의미 있는 죽음에 천착하는 행동이 거꾸로 그를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갖다 놓는다. 그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심지어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무 의미도 없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 죽음 자체는 의미가 없다. 모든 의미는 살아 있는 것에서 나온다. 삶이 죽음을 끌어내고 죽음에서 삶을 깨닫게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발 밑이 생사의 교집합 위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의 의문과 흔들림이 실재하는 나를 덮치는 기묘한 감각이 이어지는, 말 그대로 '아주 멋지게 이상한 소설'이었다.
+ 이 책은 근데 진짜 한 권의 거대한 러브스토리이다. 러브가 없는데 사랑임... 진짜 요상한 소설.
* 은행잎 1기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