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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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뿌리가 필요하듯, 위의 볕 좋은 세상이 있으려면 그 아래 램프 빛 희미한 세상이 필요한 것이다. / p.48

 

 

조지 오웰의 르포가 읽고 싶었다. 워낙 소설로 유명하지만 그 유명한 <동물농장>이나 <1984> 이전에 그가 이런 소설을 쓸 수 있게끔 한 바탕이 있었으므로. (물론... 읽으려면 이전에도 읽을 수 있었으나 표지 못 생기면 읽기가 싫어요🥲) 와중에 한겨레출판에서 새 옷을 입고 나와 드디어 읽을 때가 되었다 생각했다.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저 아래 누가 석탄을 캐고 있는 곳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곳 얘기는 안 듣는 게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는 지상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이다. / p.46

 

 

33살의 오웰은 탄광 지대의 실업 문제에 대한 르포를 청탁받는다. 그를 위해 싸구려 하숙집에서 묵으며 탄광 노동자들과 함께 지낸 그 생생함을 면밀하게 담아낸 르포르타주. 전체주의나 통제가 당연한 사회를 다루는 <1984>가 조명받는 것 처럼 나는 이 이야기도 같이 조명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탄광 노동자의 실업 문제가 현재와 결이 그렇게 다르지 않았으므로.

 

외면받는 탄광 노동자가 한국 사회 곳곳의 노동자들과 뭐가 그리 다를까. 당장 최근에 또 일어난 spc의 사고도 그렇고, 같은 출판사의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신다은, 2023) 에서 말하듯 한국 사회 어딘가에서는 매일같이 누군가 끼어서 죽고 불에 타 죽고 질식해 죽고, 그렇게 하루에 2명 꼴로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우리의 현실은 조지 오웰이 목격한 현실보다 더 나은가 읽는 내내 곱씹었다.

 

오웰은 물질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방향은 결국 노동자에게 칼이 되어 돌아오는 구조임을 일찍이 눈치채고 경고했다. 나의 안락이 누군가의 피를 바탕으로 서 있다는 것을. 그로 인해 쓰여진 2부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은 정치에 대한 경고문이면서도 상층 부르주아 출신의 본인을 재인식하는 성찰적 성격을 가진다. 자신을 예로 들어 계급 문제와 사회주의자의 문제를 비판하는 시선은 시대를 넘어 현재까지 꿰뚫는다. 솔직하여 통렬하기 까지 한 글은 읽기까지 쉬워서 마음이 너무 쉽게 열린다. 소설보다 직설적으로 와닿는 감정에 읽다보면 목구멍을 뭔가 울컥한 것이 두들기고 있었다.

 

 

사회적 약자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여전히 지금도 풀리지 않아 고민되는 여러 문제들이 이 마음을 지표로 삼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리하여 제2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같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맨체스터의 칙칙한 슬럼가를 걷다 보면, 이런 혐오스러운 동네는 다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번듯한 집을 짓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슬럼을 부수면 다른 것들까지 부숴야 한다는 점이다. / p.94

 

이것도 너무 현실의 재개발 문제ㅠ 당장에 비슷한 재건축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의 지역을 대라면 나는 몇 개쯤은 간단히 말할 수 있을듯.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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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세계의 신과 내일 비가 올 확률
경민선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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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시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쓰레기 매립지와 최대 규모의 카지노가 같이 있다. 지역 경제를 살리고자 하는 목표와 달리 카지노는 지역의 미래를 되려 잡아먹었다. 모든 지역 사업은 도박광을 위한 장사판이 되었고, 어른들은 번 돈을 다시 도박장에 쏟아 넣었다. 쉬운 접근성이 지역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어른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쓰레기를 팔아 근근이 끼니를 해결하던 아이들의 손에 슈퍼컴퓨터가 들어온다. 무작위로 문장을 뽑아내는 듯한 컴퓨터에서 도박과 관련된 문장을 수집한 아이들은 동광 카지노로 향한다. 이 쓰레기판을 벗어나겠다는 목표 하나만 가지고.



경민선 작가답게 이야기는 단숨에 읽을 정도로 흡인력이 좋았고 속도감은 빨랐다. 

인풋한 데이터에서 전혀 관련 없는 문장들을 뽑아내 세계의 구멍을 찾는다는 컴퓨터도 흥미롭긴 했다. '습도가 50에서 49로 떨어진 뒤 5초 내에 던져진 주사위의 눈은 1이다.' 뭐 하나하나 연관 있는 단어가 없다. 말 그대로 신이 실수로 이 세계 어딘가에 구멍을 낸 수준이다. 그래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이상하게 납득 가는 방법으로 출력되는 세상. 나도 좀 저런 컴퓨터 하나 주워다가 인생 다리미질 해보는 것도 좋겠다.


사실 나는 도박을 좋아한다. 강원랜드, 막 불빛이 현란한 그런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면서 하는 사소한 도박. 뽑기 같은 사소한 것들. 진짜 환장한다. 

하지만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한탕 해보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다. 더군다나 아무리 쓰레기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도 그런 곳을 통해 그 곳을 벗어나길 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게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자극적인 도파민과 순간의 선택이 너무나도 큰 것을 좌우하는 곳에 발조차 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이입하며 읽기에 아이들의 생각은 너무 어렸고 좋은 어른들은 하나 없었다는 것도 슬프다. 아이들이 보고 자란 것이 카지노로 향하는 어른들의 등이기에 자연스레 그들을 답습했겠거니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차라리 그럴거면 시원스레 도박에 성공해서 인생 역전해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말 그대로 한 판 승부인 도박과도 같이 자극적인 도파민이 오르내리는 빠른 속도감의 소설이었다.



+ 개인적으로 경민선 작가의 전작인 <지옥의 설계자> 보다는 흥미롭지 않았다. 우연히 무언가를 얻어 큰 판을 벌려 일반인은 꿈꿀 수도 없는 돈을 번다는 것이 흔히 남성들이 좋아하는 양산형 웹소설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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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카베 악바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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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아무 이유 없이 죽었어요. 엄마는 다른 사람 300명과 죽음을 나눠야 했어요. 우리 아빠는 웬 기업형 농장에서 수십 년 동안 닭똥을 치운 끝에 이름 모를 사람으로 죽었고요. 난 내 인생이, 내 죽음이 그보다는 의미가 있었으면 해요. / p.47


"어떤 사람들은 죽은 뒤에 태어난다"

하나뿐인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들고 싶다는 의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 순교란 그런 것이다. 살아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사회에 던진다. 그런데 순교란 그렇게 언제나 숭고한 것인가.



이 책은 이란계 젊은 시인 '사이러스'를 메인 줄기로 잡고 과거와 현재, 그의 가족과 주변의 가지들을 계속 둘러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어머니는 이란 여객기를 적기로 오인한 미군의 격추 사고로 죽은 290명 중 한 명이다. 미국은 일반인의 죽음을 초래한 실수에 대해 "논리적인 판단"이라며 그 죽음에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었다. 아버지는 사이러스를 키우기 위해 미국의 공장에서 일만 하며 살다가 그가 대학생이 되고 얼마 뒤에 숨을 거둔다. 그저 사이러스를 위해 죽지 못해 버틴 삶이었다. 삼촌은 이란 - 이라크 전쟁터에서 '신의 사자'를 연기하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다 정신이 나가 버린다. 사이러스는 가족의 죽음을 생각하며 자살 충동에 시달리면서도 의미 있는 죽음에 집착한다. 

그러던 중 이란 출신의 여성 작가가 죽음을 앞두고 고통을 참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만 갖춘 채 미술관에서 숙식하며 관객들과 만나는 퍼포먼스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순교자!' 의 발견에 사이러스는 그녀를 찾아간다. 사이러스의 '순교자 프로젝트'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경계에 선 사이러스의 위치는 아슬아슬하다. 페르시아계 미국인이면서 미국에게 가족을 잃은 하나의 개인은 '대통령을 죽이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행동은 누군가에게는 '자살 폭탄 테러'이면서도 어느 집단에는 '순교'이다. 순교라는 행위는 이처럼 상대적이다. 작가는 순교라는, 어쩌면 신성불가침적인 단어에서 상대성을 끄집어내어 미국의 가소로운 정의와 국가주의, 종교 그리고 궁극적으로 허무할 수도 있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놀고 있다. 


이 상대적이고 모호한 주인공의 특성은 이 책의 구조로도 형상화된다. 꾸준히 한 목소리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을 배치해 '내'가 계속해서 바뀐다. 주인공마저 어디선가는 자식이고 조카고 친구이며 갑자기 찾아온 조연이다. 자타는 혼재되고 개념은 뒤바뀌는 일이 빠르게 반복되는 과정에서 국적, 성별, 생사 등 여러 방법으로 그어놓았던 경계선이 이상하게도 흐릿해진다. (덧붙여 이 책의 목차가 없다는 특성에서도 경계를 굳이 나누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은 가끔 모순적으로 흘러간다. 유명한 '필사즉생 필생즉사'도 그렇고 죽음에 관련한 문제를 파헤치다 보니 삶이 떠오른다. 의미 있는 죽음에 천착하는 행동이 거꾸로 그를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갖다 놓는다. 그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심지어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무 의미도 없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 죽음 자체는 의미가 없다. 모든 의미는 살아 있는 것에서 나온다. 삶이 죽음을 끌어내고 죽음에서 삶을 깨닫게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발 밑이 생사의 교집합 위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의 의문과 흔들림이 실재하는 나를 덮치는 기묘한 감각이 이어지는, 말 그대로 '아주 멋지게 이상한 소설'이었다.



+ 이 책은 근데 진짜 한 권의 거대한 러브스토리이다. 러브가 없는데 사랑임... 진짜 요상한 소설.


* 은행잎 1기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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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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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온다는 것은 정말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방금 누군가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가, 한 ‘개’의 일생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 p.31


식물조차 키우지 못하고, 더더군다나 개와 함께 사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인간의 삶에 어린 개가 들어오면서 시작하는 이야기.


사실 작은 동물이 주는 체온이 인간에게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흔해서 굳이 새롭게 들여다볼 필요성도 없어 보이는 이야기이다. 하다못해 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도 공원에 앉아있을 때 곁을 내준 길고양이의 따뜻함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그 정도의 에세이라면 굳이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어린 개가 '왔다'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데려온 것이 아니라 개가 스스로 왔다고 표현하는 것. 단순히 목적어를 달리 사용했을 뿐인데, 중심축이 인간에서 개로 옮겨간다. 나의 세계에 개를 편입시킨 것이 아니라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가 동시에 만나 확장되는 느낌. 


무엇보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깨우침은 모든 개가 개별적 존재임을 알게 한 게 아닌가 싶다. 하나의 인간은 이 세상 어떤 인간들과도 다른 개별개체인 것처럼 루돌이 역시 이 세상의 어떤 개들과도 다른 개별 개체였다. 우리는 틀림없이 '인류의 일원 : 개의 일원'이지만 '개별 개체1 : 개별 개체 1'로 치환되는 순간 무언가 조금쯤 달라졌다. 우주 아래 동등하게, 너 하나 나 하나.

그렇게 우리는 균등하게 일대일. / p.95


특징적이라고 느꼈던 점은 개를 키우는 다른 사람들의 글보다 어쩐지 대상과의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새롭게 들어온 낯선 개체와 거리를 두고 관찰하며 서로에게 시간을 주는 느낌. 저자에게는 개가 낯선 존재였기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개를 원래부터 좋아하고 익숙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면 벌써 손을 뻗었거나 모든 신경이 개에게 집중되어 이만큼의 객관적인 관찰이 힘들지 않았을까. 그렇게 저자는 본인에게도, 그리고 낯선 환경이 두려울 어린 개에게도 고요한 시간을 주었고 그 결과로 강아지의 보드라운 분홍색 배를 만질 수 있게 되었다.


'개를 키우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개를 키워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졌다 이런 흔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에필로그에서 그게 아님을 알았다. '당신의 어린 개'는 무엇인지 묻는 말에서. 

누구에게나 '어린 개'를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나를 사랑해 주는 것, 곁을 내주는 것, 내일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하루를 더 살게 하는 것, 그렇게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것을 만나는 순간. 그리고 그 존재를 위해 조금 더 주변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지는 것. 예기치 못하게 내 세계에 오는 그런 터닝 포인트. 저자에게는 그게 작고 어린 개였는데 나에게는 무엇일까. 출발은 분명 저자의 세계였는데, 도착지가 내 사랑의 바운더리이다. 언젠가 만날 경이를 위해 조금 더 용기를 가지고 다정하게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 알라딘 이벤트 배변봉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늠름하게 걸어가는 루돌이가 "돌봄의 시작은 뒤처리에서부터"라고 말하는 그림이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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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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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은 미성년자 출입금지인 유해시설이 되고

육식은 부끄러운 일이 된 세계

채식주의자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한 남자의 조서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스키니진이 끝나고 와이드 팬츠가 유행했듯 채식은 온 사회를 휩쓰는 유행이 되었다. 여기에 "동물권·환경 보호" 같은 숭고한 목적을 이유로서 댈 수 있으니 그 유행은 들불처럼 번져 막을 수 없으며, 이 흐름에 거스르는 자는 마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채식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자들이 이끄는 유행은 '채식' 자체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만들고 따를 마음이 없는 자에게 폭력과도 같은 사회적 압박을 가한다.

억지로 유행을 따라가고자 하는 주인공도 이런 폭력의 희생자 중 하나이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매일같이 상실을 경험한다. 자연스레 채식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족을 잃고 직장을 잃고 거세된 몸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저 황당한 설정은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에서 '환경을 보호하려면 마땅히 이래야 해', 혹은 젠더, PC의 문제 등 생각보다 도덕적 우월함을 바탕에 두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를 제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강요되는 순간의 숨 막힘, 자기결정권을 건드리는 압력이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입을 틀어막는 순간이 있다.


취향은 강요할 수 없다. 특히 그게 사람을 이루는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하면 할수록. 취향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의 문제이며, 내가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관련되어 있는가의 문제이지만 이것이 자신의 도덕적 우월함을 강조하는 수단이 될 때 유행은 단지 시대의 어떤 사건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심지어 그 폭력은 '유행'이라는 탈을 썼기에 그 강압적 설득은 더더욱 은밀하고 눈치채기 어려운 형태로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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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이라는 이름을 가장한 강요가 극단까지 치달았을 때, 거길 따라가지 못하는 개인에게 가해지는 광기 어린 폭력의 이야기. 흠결 없고 때로는 마냥 옳은 행동 같아 보이는 '채식'을 가지고 과감하게 찌르는 이야기는 익살스러움 속에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있다. 개개인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시선으로 가득 찬 시대이기에 나는 생각보다 자주 『소시지와 광기』 이야기를 떠올릴 것 같다.




+ 채식주의자의 지도자와 육식주의자의 후원자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며 시대를 이끌어가는 유행이란 어디서 오는걸까 생각했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사회적인 약속인가 혹은 그로 인해 이익을 챙기는 어떤 이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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