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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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온다는 것은 정말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방금 누군가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가, 한 ‘개’의 일생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 p.31


식물조차 키우지 못하고, 더더군다나 개와 함께 사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인간의 삶에 어린 개가 들어오면서 시작하는 이야기.


사실 작은 동물이 주는 체온이 인간에게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흔해서 굳이 새롭게 들여다볼 필요성도 없어 보이는 이야기이다. 하다못해 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도 공원에 앉아있을 때 곁을 내준 길고양이의 따뜻함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그 정도의 에세이라면 굳이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어린 개가 '왔다'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데려온 것이 아니라 개가 스스로 왔다고 표현하는 것. 단순히 목적어를 달리 사용했을 뿐인데, 중심축이 인간에서 개로 옮겨간다. 나의 세계에 개를 편입시킨 것이 아니라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가 동시에 만나 확장되는 느낌. 


무엇보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깨우침은 모든 개가 개별적 존재임을 알게 한 게 아닌가 싶다. 하나의 인간은 이 세상 어떤 인간들과도 다른 개별개체인 것처럼 루돌이 역시 이 세상의 어떤 개들과도 다른 개별 개체였다. 우리는 틀림없이 '인류의 일원 : 개의 일원'이지만 '개별 개체1 : 개별 개체 1'로 치환되는 순간 무언가 조금쯤 달라졌다. 우주 아래 동등하게, 너 하나 나 하나.

그렇게 우리는 균등하게 일대일. / p.95


특징적이라고 느꼈던 점은 개를 키우는 다른 사람들의 글보다 어쩐지 대상과의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새롭게 들어온 낯선 개체와 거리를 두고 관찰하며 서로에게 시간을 주는 느낌. 저자에게는 개가 낯선 존재였기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개를 원래부터 좋아하고 익숙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면 벌써 손을 뻗었거나 모든 신경이 개에게 집중되어 이만큼의 객관적인 관찰이 힘들지 않았을까. 그렇게 저자는 본인에게도, 그리고 낯선 환경이 두려울 어린 개에게도 고요한 시간을 주었고 그 결과로 강아지의 보드라운 분홍색 배를 만질 수 있게 되었다.


'개를 키우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개를 키워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졌다 이런 흔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에필로그에서 그게 아님을 알았다. '당신의 어린 개'는 무엇인지 묻는 말에서. 

누구에게나 '어린 개'를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나를 사랑해 주는 것, 곁을 내주는 것, 내일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하루를 더 살게 하는 것, 그렇게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것을 만나는 순간. 그리고 그 존재를 위해 조금 더 주변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지는 것. 예기치 못하게 내 세계에 오는 그런 터닝 포인트. 저자에게는 그게 작고 어린 개였는데 나에게는 무엇일까. 출발은 분명 저자의 세계였는데, 도착지가 내 사랑의 바운더리이다. 언젠가 만날 경이를 위해 조금 더 용기를 가지고 다정하게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 알라딘 이벤트 배변봉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늠름하게 걸어가는 루돌이가 "돌봄의 시작은 뒤처리에서부터"라고 말하는 그림이 너무 귀엽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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