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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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은 미성년자 출입금지인 유해시설이 되고

육식은 부끄러운 일이 된 세계

채식주의자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한 남자의 조서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스키니진이 끝나고 와이드 팬츠가 유행했듯 채식은 온 사회를 휩쓰는 유행이 되었다. 여기에 "동물권·환경 보호" 같은 숭고한 목적을 이유로서 댈 수 있으니 그 유행은 들불처럼 번져 막을 수 없으며, 이 흐름에 거스르는 자는 마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채식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자들이 이끄는 유행은 '채식' 자체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만들고 따를 마음이 없는 자에게 폭력과도 같은 사회적 압박을 가한다.

억지로 유행을 따라가고자 하는 주인공도 이런 폭력의 희생자 중 하나이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매일같이 상실을 경험한다. 자연스레 채식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족을 잃고 직장을 잃고 거세된 몸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저 황당한 설정은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에서 '환경을 보호하려면 마땅히 이래야 해', 혹은 젠더, PC의 문제 등 생각보다 도덕적 우월함을 바탕에 두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를 제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강요되는 순간의 숨 막힘, 자기결정권을 건드리는 압력이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입을 틀어막는 순간이 있다.


취향은 강요할 수 없다. 특히 그게 사람을 이루는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하면 할수록. 취향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의 문제이며, 내가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관련되어 있는가의 문제이지만 이것이 자신의 도덕적 우월함을 강조하는 수단이 될 때 유행은 단지 시대의 어떤 사건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심지어 그 폭력은 '유행'이라는 탈을 썼기에 그 강압적 설득은 더더욱 은밀하고 눈치채기 어려운 형태로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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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이라는 이름을 가장한 강요가 극단까지 치달았을 때, 거길 따라가지 못하는 개인에게 가해지는 광기 어린 폭력의 이야기. 흠결 없고 때로는 마냥 옳은 행동 같아 보이는 '채식'을 가지고 과감하게 찌르는 이야기는 익살스러움 속에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있다. 개개인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시선으로 가득 찬 시대이기에 나는 생각보다 자주 『소시지와 광기』 이야기를 떠올릴 것 같다.




+ 채식주의자의 지도자와 육식주의자의 후원자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며 시대를 이끌어가는 유행이란 어디서 오는걸까 생각했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사회적인 약속인가 혹은 그로 인해 이익을 챙기는 어떤 이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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