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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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개의 글들을 연결해보니 치유, 사랑, 욕망, 생태라고 하는 네 개의 주제가 나타났다. 여러 상황에서 쓰인,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글들이 이렇게 모이는 게 신기했고, 또 이것이 지금 내가 정원에서 읽고 싶어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p.10


정원이란 인간의 DNA에 새겨진 본능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본 적 있다. '정원'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부터 인류는 자신의 집을 마음에 드는 식물로 꾸미고 가꾸며 바라보았으므로. 대단한 수형을 자랑하는 나무가 아니더라도 꽃 한 포기를 꺾어 꽂아둔 화병이라도 그를 가져온 사람이 그걸 보며 어떤 위안을 얻고 곁에 두고자 했다면 그 소소한 것도 정원의 역할을 해 주지 않을까. 


이 책은 인류가 자연스레 곁에 둔 정원과 인류 문화의 산물인 문학을 동시에 건드린다. 카렐 차페크가 그랬고, 헤르만 헤세도 평생을 정원 가꾸기에 집중했다고 한다. 작가들이 정원을 이토록 사랑하는데 왜 정원과 문학 작품을 동시에 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문학에서 정원을, 정원에서 인간을 읽다'라는 문구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는 건 내게 불가능했다.



문학과 미술사, 조경학을 전공한 저자는 인류 최초의 문학으로 전해지는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까지 다양한 시공을 넘나들며 26편의 문학 작품을 정원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묶어 새로운 관점에서 문학을 풀어낸다.


'왜 우리는 정원을 가꾸는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각종 문학에서 그 의미를 탐색해 나가는데, 개인적으로는 '정원에 선악이라는 윤리적 잣대를 댈 수 있을까'(178)를 고민한 꼭지가 인상적이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편은 성실하고 근면하게 대학살의 임무를 수행한 이와 동시에 그곳에서 가족들과 소박하게 살며 일요일마다 아이들과 정원을 가꾸는 아버지가 동일인이라면, 일터에서는 효율적으로 시체를 소각하고 집에 와서 아이들의 머리맡에서 <헨젤과 그레텔> 중 마녀를 화덕에 산 채로 굽는 이야기를 해주는 아버지, 그리고 수용소에서 나온 재를 정원의 비료로 쓰는 어머니를 말한다. 그 정원이 악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겹쳐지는 인간들의 입체성이 무섭고 정원 조성 과정에서의 윤리적 문제를 그냥 간과해도 되는 것일까. 일본의 유명한 이야기 중 '벚나무 아래에는 시체가 묻혀 있고, 그 피를 양분 삼은 벚꽃은 유독 탐스럽고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죽음과 폭력에 뿌리를 내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갛게 피어오른 아름다운 정원을 보면서 그 내력을 들여다보지 않고 드러난 것에만 시선을 두어 아름답다 감상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지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공간에 대한 관심은 인류의 역사 내내 함께 해왔지만 지금처럼 푸름을 갈망하는 시대가 있었을까 생각되는 요즘이다. 식물에게도 '반려식물'이라는 이름을 붙여 소중히 키우고, 채광이 부족한 공간에서도 어떻게든 초록을 곁에 두려 애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식물' 자체를 키워드로 삼아 만들어진 작품들이 늘어나는 이때 기존의 문학에서 식물을 끌어내는 책을 어떻게 트렌디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장담컨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도, 정원을 아끼는 사람도 모두 만족할 만한 책이었다.



+ 이런 책 읽고 싶은데 없어서 내가 썼다는 말이 너무 웃기고 인상적임. 우리 정원 그렇게 마이너 장르 아닌 줄 알았는데 진짜 없었다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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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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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저는 초능력을 가진 남편과 함께 늙어갈 겁니다. 아주 지겨워 죽겠어요.

p.120


'초단편'에 가까운 15가지의 이야기.

말을 하다가 말아버리는 듯한 제목과 이야기가 비슷하다. 내내 어떤 기분이냐면 나와 같은 현대인을 비추는 듯한 이야기. 말을 하다가 입을 닫아버리거나, 그냥 내가 속으로 감정을 욱여넣고 끝내버리는 듯한 모습이 단편들에 반사되어 비춰진다. 뭔가 말을 해야할 필요가 있는데, 분명히 한 번 집어내어야 할 거 같은데 그렇다고 콕 집어 말하기에는 애매하고 기분이 이상한 그런 것들.


개인적으로는 사회 문제에 대한 유머러스한 시선들에서 이기호 작가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2016)과 이진하 작가의 <설명충 박멸기> (열린책들, 2025) 가 동시에 떠올랐는데, 이기호 작가의 것보다는 훨씬 동화적인 요소가 강하고, 이진하 작가의 것보다는 더 현실에 뿌리를 두고 조금 더 문제를 모호하게 지적해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택시 안에서 미래를 볼 수 있다고 고백하는 사원의 이야기, 수영을 배우며 점차 물 그 자체가 되어가듯 동화되는 기묘하고 어딘가 위화감을 건드리는 이야기들. 예상치 못한 전개와 아리송하게 남겨둔 결말 속에서 독자를 미묘하게 뒤흔드는 이야기로, 찝찝하게 남은 의문들을 곱씹으며 결국 독자인 나는 '아뇨, 아무것도'라는 답 외에는 적합한 말이 잘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어찌보면 정말 기가 막힌 표제를 선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한 일상을 다루는데 과하지 않고, 적당한 위화감을 조성하는 선에서 정도를 지키며 다양한 방향으로 사고 실험을 하는 듯한 매우 짧은 단편들이라 생활 속 틈틈히 가볍게 읽으며 적당히 색다른 활력을 받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 가장 재밌었던 포인트는 기묘한 분위기를 부러 내기 위해서 이상한 수식어들을 덕지덕지 붙이지 않았다는 점. 간결하고 짧게 썼는데 이상하게 기분 묘함.

++ 도파민 중독이고 집중력 조져버려서 긴 소설 못 읽겠다 하면 이제 이런 초단편 소설들 추천. 나는 요즘 너무 더워서 집중력이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에 매우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개인적인 취향은 사실 <설명충 박멸기>처럼 노골적으로 배잡고 뒹굴게 만드는 블랙 코미디이긴 하지만, <아뇨, 아무것도>는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이든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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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 나를 활자에 옮기는 가장 사적인 글방
양다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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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알 수 없는 나에 대한, 나에게 하는, 나를 위한 설명. 그것을 차갑고 건조하고 진솔하게 기록하는 것이 어쩌면 나를 위한 최고의 존중이자 이해가 될지 모릅니다.


p.254


 글을 잘 쓰고 싶다. 자꾸 관련 책을 뒤적이게 되는 심리 기저에는 그러한 근원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목적 없는 글은 매번 흐지부지되고, 있다 한들 마지막까지 힘껏 미루다가 엉엉 울면서 급하게 처리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실력이 늘어도 는 것 같지 않고, 썩 마음에 들게 늘 리도 없는 것이다. 그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자꾸자꾸 연필을 손에서 놓게 된다. 


 확실히 박아두자면 작법서는 아니다. 건조한 실용서를 찾는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그냥 친구가 옆에서 재잘거리며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해 오는 느낌의 편지들이 엮여서 그저 책의 형식을 띄고 있는 것 뿐이며 이 안에 묻은 저자의 철학이나 경험에서 글을 쓰는 원동력을 내게로 옮겨받는 듯한 문장들이 가득하다.

 '글을 쓰는 것보다 써달라고 조르는 일을 더 좋아한다.'는 저자 소개처럼 계속해서 내게 뭐든 하나 써보라며 300페이지 내내 독려하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하지만 진짜임. 신기하게도 그렇게 내내 간단하게라도 써보라는 궁둥이 두들김을 받고 있으면 일기라도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지금 당장 기억나는 오늘의 일이라던가, 매 꼭지마다 저자가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던가 하다못해 딴소리나 푸념이라도. 쓰는 행위란 이토록 별것 아닌 사사로운 것들로부터 가볍게 출발한다.




 자기를 이해하는 일, 감정의 결을 뜯어보고 세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바라보는 일들이 전부 당장 밥도 주지 않고 세계 평화를 주지도 않는 글쓰기라는 행위에서 발현된다. 마치 꼭 먹어야하는 쌀밥 같은 건 아닌데 틈틈히 입을 즐겁게 하는 간식 같은 느낌으로. '쓰기'는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삶을 반짝거리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쓰는 내내 사건을 곱씹고, 감정을 토해내거나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는 식으로 기억을 손에 쥘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가는 동안 쓰는 자는 개인 고유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건 마치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카메라를 손에 쥐는 것과 같아서 누군가에게는 무채색의 밋밋한 이벤트라도 누군가에게는 선명하고 다채롭게 비춰질 수 있다. 그렇게 삶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전자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응원하는 사람의 사랑스러운 책이었다.




+ 삶의 실패와 글의 실패는 다르다고 말해주는 부분이 너무너무너무 좋았슴. 살면서 마음 편하게 실수를 거듭해도 되는 건 그리 많지 않은데 글은 그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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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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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뒤집어졌으면 했다. 헬리콥터가 뜨고 야간 투시경을 쓴 군인들이 의사당에 난입하고 집에서 쉬고 있던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서던 그날, 그 못된 소식의 결말이 변혁이기를 기원했다.


p.26


한겨레문학상 그 30주년을 맞아 매년 찍힌 발자국들의 프롤로그이자 에필로그.



역대 수상 작가들이 본인의 당선작을 모티프로 쓴 단편들의 모음이다. 정이 들어 여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소설 속 세계를 다시 새로이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책을 펼치자마자 반가움이 앞섰다



각 작품들의 설정을 모르더라도 작가들이 작품에 어느 정도의 설명을 넣어두어 이해에 무리는 없었으나, 아무래도 작품을 알고 있는 경우여야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탱크> 같은 작품은 내가 그를 읽지 않았기에 작품 속 '탱크'가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기에 미리 읽어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들 중 <멜라닌>을 가장 인상깊게 읽었기에 첫 단편부터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피부가 파란 사람'이라는 간단한 설정을 하나 세상에 끼워넣었을 뿐인데, 많은 사회적 이슈들을 이렇게나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니. 기존 본편의 프롤도, 에필도 아니었으나 그 세계관을 확장시켜 현재 한국 사회에 겹쳐놓은 점이 너무 좋아서 첫 단편만으로도 이 책이 좋아졌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그 일이 바보 같았다. 그 일을 잘한다고 해서 성취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지 않으면 나사가 빠진 의자처럼 폭삭 주저앉는 일.


p.158


여자가 단순히 엄마가 되었기에 당연하게 생긴다고 여겨지는 모성에 반기를 드는 작품을 좋아한다. 아이를 키워냈대도 여전히 자신은 아이에 머물러있다고 느끼는 부분, '당연함'에 그렇지 않다는 반증을 펼쳐놓는 이야기들. 그런 점에서 한은형 작가의 <빵과 우유> 는 재미있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했다.


한겨레문학상의 역사서이면서 이만큼 완성도 높은 홍보 책자가 있을 수 있을까. '문학상'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예전처럼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은 시대에, 그럼에도 문학상에 도전하고 그를 수상한 작가들의 이야기에는 시대가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단단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는 앤솔로지였다.



+ 강성봉 작가의 <카지노 베이비>, 한은형 작가의 <거짓말> 읽고 싶어져서 담아뒀고, 심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읽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한 채 계속 밀리던거라 미리 읽어둘 걸 하는 후회만 가득했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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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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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명.

그 숫자에 눈살을 찌푸린 검사는, 사형 판결 선고 이후 집행까지 절차가 몇이나 되는지를 세어 보았다. 열세 가지였다.

13계단. / p.40


사형이 확정된 수감자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가석방된 전과자와 교도관이 익명의 후원가의 도움을 받아 재수사를 펼쳐나가는 이야기.



사형제 찬반 논의는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고 이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질리도록 많다. 사형제 관련 형법의 맹점에 대한 토의 역시 질릴만 하면 한 번씩 하게 되는, 그다지 독특한 소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여전히 특별한 위치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앞부분이 재밌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읽는 내내 '이 소설이 왜 이렇게 유명할까' 생각이 들 정도로 큰 감흥이 없었다. <억울한 사형수의 누명을 풀어준다>는 딱히 특이한 소재도 아닐 뿐더러 차라리 이 소설의 시점이 그 사형수의 입장이었다면 몰입을 빠르게 했겠지만 아예 제 3자가 발벗고 나서는 이야기라 독자 입장에서 이 사형수가 왜 억울한지, 어째서 사형을 당하면 안되는 것인지 초반에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교도관인 난고와 상해 치사죄를 지었으나 가석방된 미카미가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모습을 그냥 팔짱끼고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어디서부터 달라지냐면 4장 과거부터. 난고가 교도관의 입장에서 사형수들의 사형을 집행하는 이야기부터 무섭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사형제 관련 이야기를 피해자의 유족이나 가해자의 입장이 아니라 이를 집행하는 교도관의 입장에서 바라본 건 정말로 처음이라 신선했으며(물론 내가 접하지 못한 소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 전혀 타입이 다른 두 명의 사형수를 대비시켜 사형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법의 허점을 맹렬하게 파고드는 이야기가 토론장에서 팽팽하게 다른 의견이 맞부딪힐 때 느껴지는 듯한 지적 쾌감까지 준다. 특히 피해자의 유족이 원하지 않는 사형 집행이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법은 무엇을 위해 사형수의 목숨을 뺏는 것인지 구태여 고민하려 하지 않아도 소설을 읽는 행위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독자를 사형과 관련한 문제에 천착하게끔 만든다.


내일의 처형은 누구를 위해 진행되는가. 난고와 오카자키가 160번을 죽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피해자 유족의 의지와는 달리 범죄자에게 절대 응보를 과하는 것은 더더욱 범죄 피해자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위가 아닐까.

p.204


후반부부터는 숨도 못 쉬고 읽었다. 소설의 앞부분에 작가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던져졌다면 뒤부터는 소설적 재미가 몰아치므로. 3장만으로도 내게 이 책은 어떤 소장용 가치를 갖게 되었는데, 다 읽으면 그냥 소설이 가지고 있는 의미고 뭐고를 떠나 너무 재밌어서 품에 꼭 안게 되어버림... 한치의 어긋남 없는 완벽한 사회파 추리소설 그 자체. 

이런 소설은 한 번 읽어 결론을 알게 되면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기 어려운데, <13계단>은 언젠가 다시 꺼내 읽을 것 같다. 난고가 사형 집행을 하며 끊임없이 고뇌했던 그 질문들은 여전히 사회적 담론이 필요한 일로 남겨져 있고, 인간이 문명 사회를 이루어 집단으로 살고 있는 이상 절대로 정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들일테니. 후에 다시 읽을 나는 어떤 사건을 떠올리면서 어느 입장을 취하게 될까.



+ 일본의 범죄자 신상 완전 공개 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우리는 흔히 악질 범죄자를 왜 보호하냐, 모자이크 치워라 이런 말을 하지만 이게 사건의 진상과는 달리 언론의 입맛에 맞게 짜맞춰 악마화되기 쉬울 수도 있겠다. 그럼 중한 범죄자만 공개하면 되는것 아니냐 하겠지만 경중은 뭘로 나눠야하는가, 피해자의 수? 범죄 방법? 이것도 만약에 피해자나 유족이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걸까. 진심이라면 모르겠으나 가해자와 그 가족이 가서 협박을 해서 그에 못 이겨 불원희망서를 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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