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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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저는 초능력을 가진 남편과 함께 늙어갈 겁니다. 아주 지겨워 죽겠어요.

p.120


'초단편'에 가까운 15가지의 이야기.

말을 하다가 말아버리는 듯한 제목과 이야기가 비슷하다. 내내 어떤 기분이냐면 나와 같은 현대인을 비추는 듯한 이야기. 말을 하다가 입을 닫아버리거나, 그냥 내가 속으로 감정을 욱여넣고 끝내버리는 듯한 모습이 단편들에 반사되어 비춰진다. 뭔가 말을 해야할 필요가 있는데, 분명히 한 번 집어내어야 할 거 같은데 그렇다고 콕 집어 말하기에는 애매하고 기분이 이상한 그런 것들.


개인적으로는 사회 문제에 대한 유머러스한 시선들에서 이기호 작가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2016)과 이진하 작가의 <설명충 박멸기> (열린책들, 2025) 가 동시에 떠올랐는데, 이기호 작가의 것보다는 훨씬 동화적인 요소가 강하고, 이진하 작가의 것보다는 더 현실에 뿌리를 두고 조금 더 문제를 모호하게 지적해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택시 안에서 미래를 볼 수 있다고 고백하는 사원의 이야기, 수영을 배우며 점차 물 그 자체가 되어가듯 동화되는 기묘하고 어딘가 위화감을 건드리는 이야기들. 예상치 못한 전개와 아리송하게 남겨둔 결말 속에서 독자를 미묘하게 뒤흔드는 이야기로, 찝찝하게 남은 의문들을 곱씹으며 결국 독자인 나는 '아뇨, 아무것도'라는 답 외에는 적합한 말이 잘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어찌보면 정말 기가 막힌 표제를 선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한 일상을 다루는데 과하지 않고, 적당한 위화감을 조성하는 선에서 정도를 지키며 다양한 방향으로 사고 실험을 하는 듯한 매우 짧은 단편들이라 생활 속 틈틈히 가볍게 읽으며 적당히 색다른 활력을 받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 가장 재밌었던 포인트는 기묘한 분위기를 부러 내기 위해서 이상한 수식어들을 덕지덕지 붙이지 않았다는 점. 간결하고 짧게 썼는데 이상하게 기분 묘함.

++ 도파민 중독이고 집중력 조져버려서 긴 소설 못 읽겠다 하면 이제 이런 초단편 소설들 추천. 나는 요즘 너무 더워서 집중력이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에 매우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개인적인 취향은 사실 <설명충 박멸기>처럼 노골적으로 배잡고 뒹굴게 만드는 블랙 코미디이긴 하지만, <아뇨, 아무것도>는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이든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었던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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