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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수단 - 성도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
폴 워셔 지음, 황영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20년 12월
평점 :
코로나로 너무도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교회들.
전염병이라는 이름으로 마스크 속 침묵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어린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마스크가 일상이 되고 타인을 만나는 것에도 규제와 벌금이 부여되는 세상.
유난히 기독교 관련하여 확진자가 나오면 엄청나게 부각되고 반복적으로 전해지는 언론플레이.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비대면 예배가 마치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인양 받아들이며 진통하며 지낸 한국교회의 지난 1년간의 시간을 떠올리며 늘 곧고 강력한 음성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폴 워셔 목사님은 이런 시대적인 어려움 가운데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 냈을지가 궁금했다.
제목도 목차도 별로 신경쓰지 않은 채 폴 워셔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이 책을 보게 되었고 책의 크기도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고 다루는 내용도 어쩌면 새롭지 않은 원론적인 부분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예배, 유튜브를 이용한 예배가 익숙해져가고 있을지도 모를 성도들에게 성도인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들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도 많은 신실한 성도들이 인터넷 설교와 블로그, 트위터 등에 의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주님께서 친히 그분의 백성들의 성장을 위해 주신, 단순하지만 효력있는 수단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발을 돌이켜 오래된 성경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 시대는 우리가 유튜브 예배만으로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라는 무늬만 남은 종교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살아계신 하나님과 참된 교제 가운데 성장하고 말씀이 성육신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써 말씀을 살아내는 자들로 살 것인가를 선택하도록 더욱 요구하는 듯하다.
이 책에서 제시해 주고 있는 은혜의 수단들은 성경, 기도, 지역교회의 사역, 직분들이다.
저자는 강단에서 목회자들을 향한 성도들의 가장 일반적인 불평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기도 한다.
“ 바로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은밀히 기도하는 것보다, 경건한 삶을 세우는 것보다, 그리고 성경을 강해하는 것보다 프로그램이나 전략이나 성도의 수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러한 불평을 할 만큼 지역교회라는 곳에 가서 어떤 프로그램이나 전략 가운데 노출되어 분주히 살아가는 것이 허락되는 시기도 아니다. 이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우면서도 참 씁쓸하다. 그래서 이제 성도들은 이런 불평들을 늘어놓기보다 교회에 가서 자유롭게 예배드리고 나눔을 가졌던 시간들에 대한 사모함과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것인가 수동적으로 TV를 시청하듯 온라인 예배만을 드리며 여기 저기를 헤매며 영상만으로도 그리스도인으로써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을 만족시키며 살아갈 것인가 선택해야하는 시간에 이른 것만 같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 지역 교회의 회중과 생명을 나누는 구성원이 되는 것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특정 설교자의 설교가 아무리 유익하다 해도 성경에 신실하고 경건한 자신의 목회자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설령 그에게 학위가 많지 않고 특별한 은사가 없다 해도, 신실한 목회자라면 그는 당신의 성화에 모든 인터넷 설교자를 합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코로나 이전의 사회에서는 저자가 이야기한 은혜의 수단들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으나 특별히 지역교회의 사역 부분에 있어서는 큰 이상 현상이 발생해 버렸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이 사회에서 만나고 교제하고 예배드림이 여전히 자유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지난 2020년 여름쯤 내 마음에 강하게 온 감동들 중 하나는 앞으로 지역교회로 모여서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지는 세상이 올 수 있으며 유튜브를 통한 비대면 예배나 찬양, 메세지 선포 등이 현재는 자유로우나 점차적으로 제한되거나 불가능해지는 시간이 올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것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기대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 지역이 아닌 전 세계적인 전염병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큰 소리는 무엇일까?
지난 1세기에 그리스도인들이 핍박받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숨기도 하면서도 참된 그리스도인들로 구별되어지고 복음은 퍼져나갔듯이
지금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이전의 지역교회의 차원이 아닌 더 작은 각각의 가정공동체로써 부르시며 각 가정이 소규모로 연결되며 더 굳건히 세워져 가도록 참 그리스도인과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시는 그 모든 것들을 허락하시는 시기 같기도 하다.
지방에 계신 나이 많으신 아버지는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렵고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하셨다. 저자인 폴 워셔 목사님의 말씀처럼 소속된 지역교회로 가고 싶으시지만 정부의 지침으로 예배를 준비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계속 비대면 예배 상황에 노출되어져 오셨다.
최근의 전화 통화에서 아버지께 모교회가 아니더라도 주변 교회 중 이단이 아니라면 규모가 작아도 직접 가서 예배드리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가셔서 예배를 드리며 성도의 교제도 나누실 것을 권해드렸다.
교회의 규모가 컸던 대형교회들은 더 이상 그 만큼의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대면하여 감당할 수 없는 시기에 와 버렸다. 이제는 성령님이 우리의 좋은 스승이 되심을 신뢰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먼저 최소 규모인 가정공동체에서 그리스도인으로써의 매 순간의 삶을 더욱 살아내야 하며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소규모로 전략적으로 모이기를 힘써야할 듯하다.
지역교회에 속하여 건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은혜의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조금 다른 시기의 시간을 주신 것도 같다.
교회에 겨냥된 부정적인 여론몰이나 규제가 몇 개월이면 달라질까?
언제쯤 교회의 예배는 온전히 자유로워질까?
앞으로 몇 년은 더 심화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환경과 상황이 어떠하든 우리는 저자의 말대로 말씀에서 그 답을 찾게 된다.
“대체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경륜 안에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이미 주신 일반적인 수단들을 그들이 다 소진하기 전까지는 비범한 일들을 잘 일으키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일의 날“을 무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슥4: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6:16)
이제 떠먹여주던 죽을 멍하니 받아먹기만 하던 수동적인 신앙생활을 해왔던 이들은 선택해야만 한다.
요셉이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형통함을 누렸듯이 이 모든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성도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들을 받아 누릴 것인지를.
선물은 포장을 뜯고 열어서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즉, 매일의 삶에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적용하고 개인 골방에서의 구별된 기도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가정에서부터 믿음의 공동체로써의 유기적인 연결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며,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모든 것에 순종하자. 이미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의 수단들을 낭비하지 않는다면 이 시기가 진정한 은혜의 시기, 위대한 무장의 시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