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러겠다고 같이 읽는 친구에게 말 해놓고 ‘읽은 곳 다시 읽기‘를 반복하고 있다. 훑기로 했는데...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사르트르에게 휘둘리는 기분이다. 강한 필력 혹은 원심력으로 소인배들은 읽다 나가떨어지도록 의도된 배척?

그래도 어쩌다 보니 비슷한 관점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몇 년 전 읽었던 피에르 바야르의 기발한 책 속의 구절. 다행히 날 돕기 위해 이 문장이 내게 와 주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바야르의 글은 다시 읽어도 재밌다.



푸앵카레'는 하나의 물리적인 실재(예컨대 전류)를 그것이 다양하게 드러나는 표출들의 총합 (somme)으로 정의하는 명목론을 제시했다. 뒤앙이 그 표출들의 종합적인 통일(lunitésynthétique)이라는 개념을 활용한 자기 나름의 이론을 정립해 이를푸앵카레의 명목론에 대립시킨 것은 옳았다. 그리고 분명 현상학은결코 명목론이 아니다. 하지만 결국 연쇄의 근거로 작동하는 본질은바로 현출들을 연결하는 끈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본질 자체가 하나의 현출이다. 이를 통해 본질들에 대한 직관 (예컨대 후설의 본질직관[Wesenschau])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이렇게 해서 현상적 존재 (1être phénoménal)는 자신을 나타낸다. 현상적 존재는 자기의 본질(essence)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existence)''를 나타낸다.
그리고 현상적 존재는 이렇게 나타난 것들이 잘 연결된 연쇄 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사르트르, 존재와 무



교양을 쌓은 사람들은 안다. 불행하게도 교양을 쌓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나 교양인들은 교양이란 무엇보다 우선 '오리엔테이션'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교양을 쌓았다는 것은 이런 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 즉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내부는 외부보다 덜 중요하다. 혹은, 책의 내부는 바로 책의 외부요, 각각의 책에서 중요한 것은 나란히 있는 책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31, 피에르 바야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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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10-20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로 들어와보니 태그가 ㅋㅋㅋ ˝완독할수있을지아직도무섭다‘ ㄷㄷㄷ

청아 2024-10-20 21:08   좋아요 1 | URL
제 댓글 알람이 뜨다 말다 하네요. 아웅...
너무 두꺼워서 매번 떨면서 읽고 있어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