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불면의 가장 큰 이유가 자신의 성격 때문일 것이라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고, 지적인 동시에 겸손하며, 사려깊은 동시에 냉철하고, 일도 잘하지만 옷도 잘 입는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그다지 냉철하지도 지적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항상 거절을두려워하며 오해에 쩔쩔맸다. 그녀는 누군가 화가 나 있으면
‘혹시 나 때문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잘못한 것이 없으면서도 어느새 그 사람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혹은 요구하지도 않은 해명을 하고 다니며 자신을 의아하게 쳐다보는 사람앞에서 "그게 아니고......"라며 더 많은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은 그런 자신의 약점을 누군가 알아차렸으며, 속으로 경멸하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바꿔보려 했다. 그녀는 변명만 하고 사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해를 견디고 사는 일이란 얼마나 더 외로워야만 가능한 것인지. 그녀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뭔가 선택하거나 결정해야 할 때마다 곤혹을 치르곤 했다. - P90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알기 위해 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이름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냉소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허영심이 많은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냉소적이고 허영심도 많지만 어쨌든 나를 좋아한단 말인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알기‘ 전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 하나 가끔은 알 수 없는 쓰다듬에 숨죽이는 사람이다. - P114

나는 나의 첫사랑. 나는 내가 읽지 않은 필독도서, 나는 나의 죄인 적 없으나 벌이 된 사람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인터넷 대화창 앞에서 오줌보를붙든 채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고싶은 사람. 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식으로도 나를 말할 수있을지 모른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당신보다 당신의 절망을 경청하고 있는 나의 예의바름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례한 사람이다. 나는 오만한 사람을 미워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의심하는 사람이다. 나는 모두가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내가 그동안 그것들을 ‘그다지‘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고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자신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모르는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아도 끄덕이는 사람, 나는 불안한 수다쟁이, 나는 나의 이야기.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 나는 나의 각주들이다. - P117

그때 당신과 나는 어렸고, 땡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 위를걸으며 지하철역을 찾고 있었다. 더위 때문에 흔한 우스갯소리조차 하지 않는 나의 눈치를 보고 있던 그는 갑자기 내게 게임을 하자고 했다. 종목은 ‘무엇무엇 했으면 좋겠다‘ 놀이 내가 그게 뭐냐고 묻자, 그는 그냥 하고 싶은 걸 얘기하면 되는거라고 말했다. 아니, 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해도 된다고. 지쳐 있던 내가 그러자고 하자 그는 갑자기 신이 나서 말했다.
"더이상 욕망이 없는 사람이 지는거다?"
그는 우선 담뱃값이 안 올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하루 용돈이 이만원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복권에 당 - P133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사람이다. 하여,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을 베이지 않고도 칼을씻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실천문학』 2004년 가을호 - P138

묵히, 이젠 아버지의 뜻에 따르겠다는 듯 잠자코 있었다. 아버지가 얼굴을 붉히며 당장 자리를 떠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일이었다. 나는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아버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한쪽 손을가만히 흔들어주었다. 아버지가.... 웃고 있었다. 나는 그만울컥해서 입안 가득 물고 있던 호흡기를 놓쳐버릴 뻔했다. 아버지는 나를 잊지 않은 것이다. 저런 미소는 오직 나를 잊지않은 사람만이 지어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것이아버지의 선물이라고 확신했다. 아버지. 그러니까 아버지는나를 만나러 온 것이다. 내게 인사를 하러, 다만 한번의 인사,
사랑의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저 미소를 연습하느라 이토록 늦게 도착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나를 향해 너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가 내게
"그동안 외계인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말한다손 치더라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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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7-20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 오랫만에 알라딘 들어왔더니 닉네임을 바꾸셨네요^^

청아 2024-07-21 20:31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어요 알라님! ^^ 네. 사진까지 바꾸면 다들 못 알아보실까봐 일단 유지하고 있습니다.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