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뭔가를 소유하는 데 무관심한인간으로 통한다.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다고들웃는다. 나는 뭐든 이름도 잘 모르겠고 가짜와 진짜,
고급스러운 것과 평범한 것도 한눈에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가 고상한 사람이라 그런 것에 무관심하다기보다는그 모든 게 나를 극도의 혼란 속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색감, 질감, 풍요-화려함, 재미, 유쾌함에 대한 촌뜨기같은 불편감은 내 불안의 근원이다. 내가 평생 넉넉함과는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건 ‘물건‘이 나를 불안하고초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P21

우정을 나눌 때 겪는 갖은 난관이 자기자신과 화해할수 없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3세기 로마작가 카이우스는 이렇게 썼다. "자기 자신과 친구가 되지못한 사람은 어떤 타인에게도 우정을 기대할 권리가없다. 자기 자신과 친구가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의으뜸가는 의무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게 적대적일 뿐아니라 자기를 섬기는 타인의 가장 선한 마음조차꺾어버리고 ‘세상에 친구 따윈 없다!‘며 다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불평까지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 P26

오늘날 우리는 서로 최선의 자아를긍정하기는커녕 그것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정이라는결속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의 감정적무능-공포, 분노, 치욕을 인정하는 솔직함이다.
함께 있을 때 자신의 가장 깊숙한 부끄러움까지 터놓고직시하는 일만큼 우리를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것도없다. 콜리지와 워즈워스가 두려워했던 그런 식의자기폭로를 오늘날 우리는 아주 좋아한다. 우리가 원하는건 상대에게 알려졌다는 느낌이다. 결점까지도 전부.
그러니까 결점은 많을수록 좋다. 내가 털어놓는 것이 곧나 자신이라는 생각, 그것은 우리 문화의 대단한 착각이다. - P28

"살면서 말이지." 그가 말한다. "난 내가 뭘 안원하는지밖에 몰랐어. 늘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 하나가있거든, 그래서 항상 생각을 해, 이 가시만 빠지면 나도내가 뭘 원하는지 생각을 해보겠다고 한데 막상 그가시가 빠지고 나면 또 텅 빈 기분이 되더라고. 그러다금세 또 새로운 가시가 옆구리를 파고들지. 그러면 또다시그 가시에서 벗어날 생각밖에 할 수가 없는 거야. 도무지내가 뭘 원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없어." - P31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가장 놀라는 건 다름 아닌자신이다.  - P34

내가 막상 성적으로 무르익은 건 이 결혼들이 다 끝장난뒤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욕망의 대상이 되기보다 욕망의주체가 되는 데 골몰하는 사람이란 걸 자각하게 됐다는얘기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전개에서 배운 점이 있었다.
나는 성욕이 강한 사람이지만 성욕이 제일 중요한 사람은아니며, 오르가슴으로 천국을 맛보기는 했어도 지구가흔들리지는 않았고, 반년 남짓 진이 빠지도록 성적 쾌락에탐닉할 수는 있어도 늘 그 말초적 자극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중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한마디로, 사랑을 나누는 일은 숭고했지만 거긴 내 거처가 아니었다. 그 뒤로 나는 더 많은 걸 깨달았다. - P36

랠프 월도 에머슨이 말했다. "혼자인 사람은 누구나진실하다. 타인이 들어서는 순간 위선도 시작된다. (...)그러니 친구란, 본질적으로 일종의 역설일 수밖에 없다" - P54

인생이란 체호프식이든 셰익스피어식이든 둘 중하나라는 걸 나는 일찌감치 배웠다. 우리 집이 어느이었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엄마는 어둠침침한방 소파에 누워 한 팔은 이마에 걸치고 다른 팔은가슴에 올려놓은 채 "외로워!"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면사방팔방에서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까지 달려와동네에서 잘난 사람 취급을 받던 이 영혼의 괴로움을달래보겠다고 쩔쩔맸다. 하지만 엄마는 정신을 놓아버린듯한 불만 속에서 눈을 질끈 감은 채 등을 돌렸다. 엄마가바란 건 거기 있는 누구도 건네지 못할 영혼의 위로였다.
그 사람들은 임자가 아니었다. 엄마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없었다. 한때 딱 한 사람 있었지만, 이제 그는 죽고 없다. - P63

공주와 완두콩에 관한 동화를 이해하게 된 건 그무렵이었다. 공주가 그동안 찾아다닌 건 왕자가 아니라완두콩이었다. 스무 겹 매트리스 밑에 깔린 완두콩의존재를 느끼는 순간, 바로 그때가 정의를 내리는 순간이다.
지금껏 이 길을 걸어온 이유, 거기서 확인하게 된 사실불경스런 불만이 삶을 끝없이 가로막으리라는 것―그것이바로 이 여정의 의미임을우리 엄마가 그랬다. 엄마는 그런 남자가 없다는 사실에시름하느라 긴 세월을 보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강박적 갈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 모두ㅡ도러시아와 이지벨, 엄마와 나, 동화 속 그 공주-가그랬다. 갈망이야말로 우리를 매혹하고 우리에게서 가장깊은 관심을 끌어내는 힘이었다. 과연 체호프식 삶의정수라고 할 수 있었다.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리도 없는것 때문에 긴긴 막이 세 개나 흐르도록 한숨짓는 그 모든나타샤를 생각해보라. 답도 없는 딜레마를 늘어놓고있으면 엉뚱한 남자들만 우르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 P71

프로이트의 주요 발견들은 무의식에 대한 발견과탐색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우리가 누구나 평생 내적으로 분열된 상태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성장하길 원하는 동시에 성장하지 않길 원하고,
성적 쾌락을 갈구하는 동시에 두려워하며, 우리 자신의공격성 - 분노, 잔혹성, 타인을 모욕하려는 욕구을혐오스러워하면서도 그 원천이 되는 울분은 좀처럼해소하려 들지 않는다. 고통 그 자체는 아픔의 원천인동시에 안도감의 원천이다. 프로이트가 환자들을 대하며가장 치유하기 어렵다고 여긴 것도 치유되길 거부하는마음이었다.
🌈🌈🌈🌈🌈 - P80

마지 피어시의 페미니즘 디스토피아 소설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Womanon the Edge of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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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8-05 14: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시원한 주말 보내고 계신가요.
날씨가 많이 더운 한주일이었습니다.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미미 2023-08-05 16:25   좋아요 2 | URL
네! 오늘도 무척 뜨겁네요. 서니데이님도 더위 조심하시고 건강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