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오해도 나쁘지만 나에 대한 오해는 더 나쁘고 아프다.


어릴 때 집에서 내 별명은 '방안 퉁수'였다. 찾아보면 퉁소(악기)의 방언이라고 한다. 즉 방안에 있는 퉁소니까 히키코모리 같은것. 특히 중학교땐 코앞에 (5분거리. 달리면 1분도 가능.아마?)학교가 있어서 퇴근하고 나면 집콕이 내 생활의 전부다시피했다. 친한 친구를 집에 부르거나 자고가게 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혼자 멍때리길 좋아해서 엄마(나와 달리 마당발)가 늘 나를 그렇게 부르곤 했다. 자꾸 놀림받으니 멍때리는게 나쁘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그래서 점점 강박적으로 나를 다그치며 살았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지는 못하면서 멍 때리기를 자제하고 쫒기듯 '알차게'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 예를들면 한 가지 일을 앞두면 그것만 하는게 아니라 다른 것들도 함께 처리하는 식이다. 직장 다닐때는 그런내가 돌쇠처럼 일을 즐기는 인간으로 보였던것 같다. 멀티 플레이어가 좋은 건줄 알았다. 내가 지치는 줄도 모르고... 나중에서야 빌게이츠를 통해 알았다. 멍 때리는게 뇌 발달에 좋다고. -물론 빌게이츠와 나 사이엔 아득한 간극이 있다는걸 안다.- 그는 일부러 일년에 며칠씩 멍때리는 휴가를 보낸다고 한다.(이른바 '생각주간') 영감과 창의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인걸 우리 엄마도 몰랐겠지만 그걸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가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과연 몇이나 될까 싶기는 하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경우에서 보듯 기술적 인공물은 인간이 쓴 시나리오대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p.15 (하물며 하찮은 인간인 나는 어떻겠나...)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임소연


그렇게 쓸데없이 바쁜척하면서 방황했는데 대충 방황했다. 차라리 제대로 방황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끔 후회가된다. 난 늘 그런식이었다. 어중간한. 끝장을 보질 못하는. 여기저기 두루 관심은 많은데 조금 시작하다 싫증내고 다시 한눈팔고. 그러다 보니 뭐든 대충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중학교에 다니던 사촌이 갑자기 집을 나가 친구랑 중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걱정도 됐지만 덜컥 겁이났다. 가서 크게 성공하면 어쩌지? 나는 그런 용기가 없었으니까. 물론 그 애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런 무모함이 질투나고 두려웠던것 같다. 그래서 당시 가출청소년을 찾아주는 방송에 제보해 그 애를 찾았다. 한동안 원망을 들으면서. 요즘은 그 애와 통화하면 제발 더 늦기전에 어디로든 떠나라고 한다. 



내 모순을 인정할 때 다른 사람의 모순에 관대해지는 것 같다. 그걸 알게된건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저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다. 그게 수필이던, 시 또는 소설이던 마찬가지다. 책을 읽고 제대로 숨은 뜻을 들으려면 '내 생각'을 멈춰야만 가능하다. 그렇게 책을 통해 '경청'을 하면서 내가 잘못된 '자기애'로 나를 속여왔다는걸 알게되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걸. 나의 모순을 인정하고 한결 편안하다. 나에 대한 이해와 타인에 대한 이해는 결코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나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으면 타인에게도 그렇게 된다. 그러나 정신줄 놓고 그저 사는대로 살다보면 나를 제대로 읽기보다 속이기가 훨 편하다. 이제 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기로 했다. 목표나 목적이 없어도 괜찮아. 하루하루 그저 살아내는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잖아? 기대치를 낮추고 편안해지자. 실수해도 괜찮아. 누군가 실망시켜도 괜찮아. 하루를 망쳐도 괜찮아. 이제 대충 설렁설렁 살아보고 싶다. 너무 욕심내다가 또 지치지 않게. 다시 실컷 멍도 때리면서.말랑말랑해지자. 


과학기술학이 주는 최고의 가르침은 자연이 천재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순간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만큼 반복되는 실험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노동이 필요하다. 외곬수 천재보다는 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과학자가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p.16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임소연







*게으른 완벽주의자 탈출법-by 김노을

(완전 내 얘기.넷플릭스와

헤어스타일,의자,커피까지ㅋ)

https://brunch.co.kr/@b259f84b48cf4ce/10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고, 나의 것이지만 나의 것이 아닌 몸에 순응하기도 했다가 저항하기도 했다가, 서로 설득하기도 하고 도구의 힘을 빌려 제압하기도 하는 엉망진창인 일상의 기록이다. p.165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임소연





이 세상 모든 책들이 

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

하지만 가만히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돌아가는 길


그대에게 필요한 건 모두 거기에 있지

해와 달과 별

그대가 찾던 빛은

그대 자신 속에 깃들어있으니


그대가 오랫동안 책 속에 파묻혀

구하던 지혜

펼치는 곳마다 환히 빛나니

이제는 그대의 것이리


ㅡ헤르만 헤세











댓글(52)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미미 2022-07-11 08:21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 페넬로페님*^^*
더위를 이겨내고 부지런해지고 싶어요!
시카고 타자기 저도 아직이라 보고싶습니다~^^

독서괭 2022-07-11 1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많은 공감을 불러온 이글! 미미님 축하드려요^^

미미 2022-07-11 13:40   좋아요 1 | URL
저는 늘 괭님 글에 공감만땅입니다.ㅎㅎ 감사해요 괭님*^^*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