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할수 없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깨달은 터였고, 심지어 오늘은 두렵기까지 했다. 그는 이러한 일상이 이제 곧 깨어지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직 그 형체가 뚜렷이드러나진 않았지만, 윌헬름은 오래전부터 예감했던 커다란불행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음을 느꼈다. 오늘 저녁이 되기전에 그 정체를 알게 될 것이다. - P11
고민거리가 잔뜩 쌓여 있는데도, 윌헬름은 거의 웃음을터뜨릴 뻔했다. 아, 저 허풍선이 위선자 노인네 같으니. 아버지는 아들이 더 이상 영업 이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사도 아니고, 판매 실적도 없고, 수입이 끊기게 된 것도 벌써 몇 주 전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세상 사람들 눈에 잘 보이고 싶어 하는가. 노인네들이둘러대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윌헬름은 생각했다. 진짜 세일즈맨은 바로 아버지라고, 그는 나를 팔고 있다. 그야말로 영업 사원이 되었어야 했는데. - P26
윌헬름은 성공한 사람들의 냉소주의를 보면 특히 가슴이 서늘해지곤 했다. 냉소주의는 모든 사람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빈정거림도마찬가지다. 어쩌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 심지어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윌헬름은 그런 것들이 정말로 무서웠다. 하루 일과가 끝난 후 유달리 피곤이 느껴질때면, 그는 냉소주의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 P31
턱의 군살도 지금보다 적었고, 눈도 훨씬 크고 맑았다. 다리는 그때도 못생겼었지만, 그래도 그는 눈에 띄는 미남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막 일생일대의 실수를 범하려 하고 있었다. 가끔 그때 일을 생각할 때면, 그는 지금도 무기가 될 만한 것이면 아무거나 집어 들어 자신에게 한 방을 날리고 싶었다. (ㅋㅋㅋ나도 이런것들이 있다ㅠ) - P33
하지만 그가 성공하지 못한 건 분명했다. 지금 윌헬름의 눈앞에꼴쳐진 풍경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너무나 초라한 사무실, 신경쇠약에 걸린 환자처럼 자기 자랑을 떠벌리는 모습,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행동 등이그를 처량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는 하나같이 출세하고잘나가는 인물만 있는 집안의 유일한 실패작이었다. 윌헬름은 그에게 강한 동정심을 느꼈다. - P37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헬름은 삼 개월 동안 캘리포니아로떠나는 것을 지체했다. 그는 가족의 축복을 받으면서 배우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코 그런 축복을 받지못했다. 그는 부모님과 누이와 다투었다. 그러다가 캘리포니아로 가려는 일이 위험한 시도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되었을 때, 그리고 그곳으로 떠나서는 안 될 이유가 백여개나 있음을 뻔히 알게 되었을 때, 또 불안감으로 병이 날지경이 되었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그는 집을 떠났다. (맙소사) - P41
이일은 윌헬름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 많이 생각하고 망설이고또 다시 한 번 숙고하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행동해야할 시기가 닥치면 하지 않기로 수없이 마음먹었던 바로 그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열 번이나이런 결정을 내렸다. 그는 할리우드행이 큰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도 그곳으로 갔다. 그는 자기 부인과 결혼하지않기로 결심하고도 도망까지 가서 결혼했다. - P41
돌이켜 생각해 볼 때 그가 좋은 추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과연 있던가? 거의, 정말 거의 없다. 남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제일 먼저자신을 용서한 다음에, 일반적으로 다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라. 그의 잘못으로 인해 그 자신이 아버지보다 훨씬 더고통받지 않았던가? - P46
그들은 얼굴을 마주 보고 서서, 각자의 방식으로 무언중에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있었다. 뭔가 끝장이 나기 시작했다니까요. 끝장은 무슨 끝장, 그건 아니지. - P50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할 때면 자기 통제력을 쉽게 잃었다. 애들러 박사와 대화를 나누고 나면 그는대개 불만족스러웠다. 그런 느낌은 가족 문제로 토의할 때 가장 심했다. 겉으로는 아버지로 하여금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을 기억해 내도록 도와주는 체했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는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해방되셨죠. 어머니를 잊고 싶었던 거예요. 캐서린도 저도 떼 내고 싶으셨겠죠. 아무도 못속이십니다." 윌헬름은 그의 속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일절 모른 체했다. 결국 그는 계속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끙끙거렸지만, 반대로 아버지는 전혀 동요되지 않는듯했다. - P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