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현재 페미니즘 이론은 정치 이론에서 분리된 채 분과 학문으로 남아 있으며, 페미니즘에 기반을 둔 정치 이론가들은 보편 범주와 보편 문제보다 (여성의 평등, 돌봄 노동 등) 특수한 데만관심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유, 평등, 정의, 주권, 권력, 통치, 시민권, 민주주의, 국가 등은 모두 형식과 내용 면에서, 심지어 평등처럼 페미니즘의 관심사와 관련한 문제조차 젠더화되지않은 것으로 이론화되고 있다. 이 책이 이런 가정과 실천에 대한일종의 도전이자 비판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에서 과연 젠더화되지 않은것이 있기는 할까?) - P20

여기부터 정희진의 해제ㅡ

‘노동자= 계급(마르크스주의)‘, ‘흑인= 인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드물다. 반면에 많은 사람들은 여성 =젠더‘ 라고 생각한다.  - P21

계급, 인종, 젠더는 사회구조의 피해를 받는 이들을 대상으로하는 연구가 아니다. 이는 사회적 모순이자 인간, 사회, 자연을 연구하는 관점이다. 방법론이며 가치관이다. 

계급, 인종, 젠더는 서로 얽혀 있어서 노동자, 흑인, 여성 등만을 따로 떼어 사유할 수없다 (노동자 중에는 여성이 없는가? 흑인 중에는 경영자가 없는가? 여성 중에는 백인이 없는가?), ‘여성 젠더‘라는 인식은 일반 대중은물론 스스로를 여성학자 혹은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이들에게도 뿌리가 깊다. 

남성성 연구나 젠더를 사회의 주된 작동 원리로 분석한 연구가 적은 이유이고,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그렇다.
- P22

한국 사회에서 젠더는 여전히 잔여적 · 부가적 · 부차적 도구로여겨진다.  - P22

서구 페미니즘 이론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정치학, 정치철의학, 국제정치학은 페미니즘의 개입이 가장 늦은 남성들만의 영역으로 악명이 높다.  - P23

브라운은 페미니즘 연구가 여성에 대한 배제와 거부,비하를 비판하고 여성의 비가시화를 드러내는 ‘그 이상‘이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즉 사유의 분석 도구로서 젠더가 특정 시대와로컬(지역)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의 역사성을 밝혀야 한다고 본다. 이는 남성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성차별 구조를 통해과학과 철학의 기준이 되었는가에 대한 정확한 질문이자 이 책을 읽기 위한 전제, 즉 일상적 통념인 "남성성과 여성성은 대립한다"라는 자유주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의미이다.
⭐⭐⭐
- P23

이 책은 대개의 페미니즘 ‘이론‘ 책이 "어렵다" 라는 오해를 받는 이유를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젠더 더 트러블 Gender Trouble」(1990)은 어떤 독자에게 익숙하지만, 다른독자에겐 그렇지 않다. 텍스트 자체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기존 가부장적 · 이성애주의적 관점으로 텍스트를 바라볼때 도무지 독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독자의 위치성에따라 난이도‘는 달라진다.
- P24

남성성과 여성성은 반대 개념이 아니다. 

생물학적 남성과 사회적 남성성 사이에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는 건 더욱 아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특정 사회의 규범으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변주된다. 

어떤 사회에서 남성성으로 간주되는 특성이 다른 사회에서는 여성성이 될 수 있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식민지배를 받는 국가의 하층계급 여성은 대부분 생계 부양자다. 남성이 ‘보호자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물론, 원래 보호자 담론은 신화다)

⭐⭐⭐ - P24

국제정치처럼 성별 은유gender metaphor 가 난무하는 분과학문도 드물 것이다. 국가가 주권(영혼)을 의미할 때는 ‘남성‘으로 재현되지만,
영토(육체)를 의미할 때는 ‘여성‘에 비유된다.
⭐⭐⭐ - P24

일반적으로 서양사에서는 시대마다 지배적 남성 모델을 다음의 네 가지로 분류한다. 

1.그리스 시민 전사, 
2.가부장적 유대 기독교인, 
3.영주/후원자 honor
patronage, 
4.프로테스탄트 부르주아 이성理 性주의자가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유형의 이상적 남성성은 각기다른 시대의 유산이며 서양 문명사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그러나 이 유형들은 패권적 남성성을 분석한 것으로, 그에 따른 주변적 혹은 종속적 남성성과의 대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 P25

웬디 브라운의 접근 방식은 이와 구분된다. 그는 남성성의 의미를 정의하기보다는, 이 책에 등장하는 남성들 자신이 스스로어떤 존재가 되고 싶었는지를 중심으로 접근한다. 

브라운이 선택한 사상가들은 스스로 남성성의 규범을 만들고, 그럼으로써초월적 자아로 자신을 구성해 낸다. 남성됨이란 이런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이 책은 ‘누가 더 남성적이었던가‘를 가늠하거나남성 문화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사상가들이 세계를 만들어 가려는 making the world 의지와 그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 P25

그는 ‘남성‘을 둘러싼 기존 개념(폭력, 용감함, 이성 등)을 미리 전제하지 않는다. 이 지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 P25

브라운은 아리스토텔레스(고대 그리스), 마키아벨리(르네상스 이탈리아), 베버(근대성)를 선택하고 이들에 집중한다. 

이 사상가들이 저마다 생각하는 세계에 대한 관심의 중심에 ‘정치‘를 놓은 것은 이들의 개인적 가치관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특정 시대와 로컬에서 남성이 만든 정치 개념을 해부하고 있으며, 남성성과 정치 이론의 관계를 일반을 화하지 않는다. ‘내재적·질적 방법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들이 스스로 ‘그들 자신을 위해 만들어 온 정치학‘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정치 이론의 특성을 이렇게 이해할때, 정치학과 남성됨을 동일시하던 역사와 결별하고 새로운 정치학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
- P26

초월성을 추구하는 남성됨은 인류사의 근본적인 문제다. - P27

특히 근대 이전의 서구 사상에서 초월성은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초월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젠더는 물론 공간, 자연, 생명 등 수많은 개념들을 식민화해야 했다.

초월성은 자유 개념처럼 ‘~로부터의 초월을 전제한다. 초월성을 얻으려면 ‘인간(남성)‘의 바로 옆에 있는 여성과 노예 등
‘비非인간‘이 극복, 정복해야 할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이것이문명사가 그토록 성별 은유로 점철된 이유다. 

존재하지 않는 것,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관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은유가 필수적이고, 은유가 반복되면 결국 물질성을 갖게 된다. ⭐⭐⭐⭐⭐

영웅도 없고폴리스도 사라진 시대, 현대에도 초월성과 비슷한 개념들이 있다. 베버의 ‘영웅적 정치가, 아렌트의 ‘용감한 정치 행위자‘, 프2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초인Übermensch‘대중문화에서 넘쳐 나는 ‘진짜 사나이‘, 한국 사회운동의 수많은 ‘민족의 지도자‘와 ‘민중의 아들‘ 등이 그것이다.

브라운이 선택한 고대, 근대 초기, 현대를 대표하는 세 명의사상가들은 공히 지금 우리가 정치라고 간주하는 것, 그렇게 간주된 정치에서 배제되는 것, 정치와 위협의 관계성을 만든 이들이다.
⭐⭐⭐⭐ - P27

그는 실천적 학문 분야인 프락시스 Praxis와 의식적 제작 활동인포이에시스 poiesis를 구분하고 위계를 나눈 것으로도 유명하다. 윤리학과 정치학(국가 이론)이 대표적인 프락시스인데, 문제는 프락시스는 그 자체가 목적인 행위지만 포이에시스는 행위에 의해창조되는 새로운 것이라는 사고이다. 

그냥 놀고 있는 아이들은은프락시스 개념을 구현하지만,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거리를활보하는 후보는 포이에시스를 구현하고 있다는 식이다. 

즉 포이에시스는 목적의식적인 것으로 프락시스보다 우월하다.
⭐⭐⭐ - P29

마키아벨리의 작업이 남성 우월주의 정치 이론이 보여 주는자기 전복(모순)의 극단적 형태라면, 막스 베버(1864~1920)는 확실히 가장 위대한 파토스(열정)를 보여 준다. 주지하다시피 베버는 이성, 가치중립성, 합리성,
목적성, 관료화, 노동의 윤리 등 유럽 근대화의 핵심 개념을 제공했다.  - P30

즉각성이 정치를 감염할 것이라는 베버의 두려움은 인구의 다수에게서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식화와 공명한다. 

이러한 베버의 두려움에는 인간의 욕구와 감정을 자유, 합리성과 대립 관계로 보는 남성됨의 특성,분업적 사고가 반복된다. 

정치가 적절하게 운용되려면 자신을오염시키는 생존 행위와 충분한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 P31

아렌트,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와 마찬가지로 베버에게도 정치가 차지하는 공간은고상하고 소중하다. 그곳에서는 평범한 관심사가 환영받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도 어울리지 않는다.(중략)

만일 정치가 인간의 삶과 집단의안녕 · 정의 · 참여 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정치는 무어에 대한것인가? 이렇게 정치를 초월적으로 개념화하면 정치 조직의 적절한 배치나 안전 같은 실질적 사안은 정치와 결부되지 않는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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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1-18 1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님의 기획이군요.
남성성, 여성성, 그리고 정치에 대해 재정립할 수 있는 책 같아요.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

청아 2022-01-18 12:02   좋아요 1 | URL
네! 정희진님이 참여한 책은 항상 좋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