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들어선 로베르는 지붕창 아래 넓은 창문턱에 걸터앉아, 주머니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책장 넘기는 정확도와 속도로 보건대 열심히 읽는 모양이었다.  - P48

「Allez vous-en! Sapristi (가버려! 제기랄)!」 그때 문밖에서앵무새가 소리 질렀다. 이 별장에 머무는 모든 투숙객 중에서이 앵무새가 처음으로, 그해 여름 이 우아한 연주가 듣기 싫다고 솔직히 고백한 것이다.  - P52

에드나는 자신이 말한 대로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었다. 능숙하게 연주되는 음악의 선율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속에 어떤 그림이 떠오르곤 했다. 가끔 라티 부인이 오전에연주를 하거나 연습을 하면, 에드나는 그 방에 가서 음악을듣기도 했다. 에드나는 라티뇰 부인이 연주한 곡에 〈고독>이라는 부제를 붙이기도 했다. 짧은 그 곡은 구슬픈 단조의선율이었다. 원래는 다른 제목이었지만, 에드나는 그 곡을〈고독>이라 불렀다. 그 곡을 들을 때면, 황량한 해변의 바위옆에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 벗은 알몸의 남자였다. 절망적으로 체념한 자세로 날개를 퍼덕이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새 한 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P56

라이즈 양이 피아노 건반을 치는 순간, 날카로운 전율이퐁텔리에 부인의 등골을 타고 내려갔다.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직접 들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연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의 존재가 영원한 진리를 받아들일 자세가 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 P57

 파도가 매일 그녀의 아름다운 몸을 때리듯,
바로 열정 그 자체가 그녀의 영혼에서 깨어나 영혼을 압도하며 뒤흔들었다. 에드나는 전율했고, 숨도 쉴 수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 P57

무슨핑계로든 로베르가 나타나지 않는 날이면 무척 그리웠다. 마치 빛나는 태양이 뜨면 별생각 없다가, 흐린 날이면 태양이 그리운 것처럼 말이다. - P60

사람들은 대부분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듯 물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바다는 고요했다. 잔잔한 파도가 해변에 밀려와크게 부풀었다가 뒤에 밀려온 다른 파도에 스러졌다. 느릿느릿 똬리를 튼 하얀 뱀처럼, 해변에 밀려온 잔잔한 파도는 하얀 거품을 만들어 냈다.
- P60

에드나는 날아갈 듯 즐거운 환희에 사로잡혔다. 마치 영혼이 어떤 강력한 힘을 얻은 것 같았다. 자신의 힘을 과신한그녀는 점점 더 대담하고 무모해졌다. 어떤 여성도 가보지못한 머나먼 곳까지 헤엄쳐 가고 싶었다.
- P61

헤엄쳐 나가는 동안 에드나는 자기 자신을 망각할 만큼 끝없이 무한한 세계로 나아가는 기분이었다
- P61

에드나는 차츰 꿈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기이하고도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자기 영혼을무겁게 짓누르는 현실을 거듭 깨달은 기분이었다. 잠을 자고싶은 욕구가 온몸에 몰려들었다. 정신을 흥분시켰던 열정이그녀를 지치게 했고, 주변 상황에 굴복하게 만들었다.
- P69

에드나는 평생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감추는 데 익숙했고, 이를 입 밖에 낸 적이 결코 없었다. 또한 입 밖에 내려 노력한 적도 없었다. 그모든 감정과 생각은 자신에게 속한, 자신만의 것이었다. 에드나는 혼자서 이를 누릴 권리가 있었으며, 이는 그 누구도아닌 자신과 관련된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 P102

 에드나는 라티 부인에게 일종의 연민을느꼈다. 맹목적인 만족 이상의 더 고상한 것을 추구해 본 적도 없고, 한순간도 영혼의 고뇌라고는 느껴 본 적이 없고, 삶의 희열을 맛본 적도 없는 무미건조한 존재에게 느끼는 그런연민 말이다. 에드나는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희열)의 의미가 무엇일까 막연히 궁금해졌다. 한 번도 추구해 본 적 없는그 단어가 낯선 인상처럼 그녀의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 P120

퐁텔리에 씨는 아내의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 아닐까 가끔 의심스러웠다. 분명 자신이 알던 이전의 아내가 아니었다. 즉 에드나가 세상 밖으로 나설 때 차려입던 옷처럼 자신을 포장하던 거짓 자아를 매일 벗어던지고 자기 자신이 되려한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 P122

뭔지 모를 욕망이 그녀의몸을 꿈틀대며 지나가는 바람에 붓질하는 손에 힘이 빠지고뜨거운 눈빛이 되기도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매우 행복한 시절이었다. 완벽한 어느남쪽 바닷가에서 보낸 날의 호사스러운 따뜻함과 햇볕, 색깔과 향기가 자신의 존재와 온통 하나가 된 듯하자, 에드나는살아 숨 쉬는 것에 감사했다. 그럴 때면 혼자서 알지 못하는낯선 곳을 즐겁게 찾아다녔다. 꿈꾸기 좋은 양지바르고 나른한 구석을 여러 군데 찾아냈다. 그리고 누구한테도 방해받지않고 혼자 꿈을 꾼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 P123

「그래요.」 라이즈 양이 계속 말했다. "부인은 절대로 오지않을 거야. 다른 사교계 부인네들이 그렇듯 별생각 없이 약속한 거지. 오지 않을 거야"라고 가끔 생각했죠. 부인이 정말로 날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퐁텔리에 부인.」「당신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어요.」 몸집이 자그마한 그 여자를 난감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면서 에드나가 대답했다.
라이즈 양은 퐁텔리에 부인의 솔직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 P132

"당신한테 편지를 썼다고요?" 멍하게 커피를 저으며 에드나가 놀라서 되물었다.
"네, 저한테요. 그럼 안 되나요? 너무 휘저어 커피를 식게하지 말고 어서 드세요. 하지만 부인한테 보낸 거나 다름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퐁텔리에 부인 얘기뿐이거든요."「좀 보여 주세요.」 젊은 부인이 간청했다.
「안 돼요, 편지란 발신인과 수신인만의 일이니까요.」 - P133

"요즘 어떻게지내세요?"
「그림을 그려요.」 에드나가 웃었다. "화가가 되려는 중이에요.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아! 화가라고요! 허세를 부리는군요, 부인.」「허세라고요? 제가 화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세요?」「그런 말을 해도 될 만큼 부인을 잘 알진 못해요. 부인의재능이나 기질이 어떤지도 모르고요. 화가가 되려면 여러 가지 많은 자질이 필요하죠, 절대적인 재능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노력으로 얻을 수 없어요. 게다가 화가로 성공하려면용감한 영혼을 지녀야죠. 」「용감한 영혼이라는 게 무슨 뜻이죠?」
「용감한, ma foi (정말) 용감한 영혼요. 거침 없이 저항하는영혼 말이에요.」

💫💫💫💫💫 - P134

라이즈 양은 부드러운 간주곡을 연주했다.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곡이었다. 그녀는 피아노 앞에 구부정하게 앉았다.
몸의 선과 각도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우아하지 못했다.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간주곡은 점차 쇼팽 즉흥 환상곡의 첫 부분인 부드러운 단조로 녹아들어 갔다.
에드나는 즉흥환상곡이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났는지 몰랐다. 소파 구석에 앉아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로베르의 편지를 읽고 있었다. 라이즈 양은 쇼팽에서 시작해 가끔 떨리는 이졸데의 사랑의 노래로 넘어갔다가, 가슴 아픈 영혼이그리워하는 즉흥곡으로 다시 돌아갔다.
- P135

방 안이 음악으로 가득 찼다. 음악이 밤을 뚫고 지붕 위로 올라가 초승달 모양의 강에 흘러 떠돌다가, 더 높은 밤하늘의깊은 침묵 속으로 사라졌다.
- P136

"아내가 머릿속에 여성의 영원한 권리에 대한 무슨 사상을 갖게되었나 봐요. 아시겠지만, 우린 아침 식사 때나 겨우 얼굴을보는 형편이랍니다." - P139

에드나는 라티뇰 부인에게 감탄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는 그런 애교를 부릴 재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Soirée musicale (음악회)에서 에드나가 눈여겨본 남자가한두 명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남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새끼고양이처럼 아양을 떨거나, 그들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고양이나 여자의 간계를 쓸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들의 인격에 호감을 갖는 정도였다. 그녀는 속으로 그 남자들을 골랐고, 음악이 잠시 멈춘 사이 그 남자들이 다가와 이야기 나눌 기회가 생기자 좋아했을 따름이다. 거리에서 가끔 낯선눈길을 받았던 기억이 나기도 했고, 때로는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 P145

대령은 하루에도 토디를 여러 차례 마셨지만, 자세가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독주 제조라면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스스로 독주를 고안해 만들었고, 그 독주에 멋진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에드나에게 독주 제조에 필요한 다양한 재료를사 오라고 하기도 했다.
- P146

에드나는 레옹스와 아이들 생각에 조금 감상적인 기분이들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강아지에게고기를 한두 점 주면서 에티엔과 라울 이야기를 다정하게 해주었다. 강아지는 여주인의 이러한 환대에 놀라고 기뻐 어쩔줄 몰라 하며 재빨리 컹컹 몇 번 짖고 활기차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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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11 0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써 이책을 읽으시는군요 ㅋ 미미님 평을보고 이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 역시 독서광 ~!!

미미 2022-01-11 10:02   좋아요 2 | URL
읽고 싶던 책인데 새파랑님 찜하셨길래 후다닥 도서관에서 빌려왔어요!ㅋ
너무 뒤쳐진 기분이라 경쟁심?발동ㅋㅋ^^;

새파랑 2022-01-11 10:30   좋아요 1 | URL
전 몰랐는데 선구적 페미니즘 작가라고 하더라구요 ㅋ 미미님은 제 스승님(?) 이셔서 전 존경심만 있답니다 ^^

2022-01-11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1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