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이보다 흉한 벽지는 본 적이 없다. 제 멋대로 뻗어 나가는 조악한 무늬는 예술에 있어 죄란 죄는모두 저지르고 있는 듯 했다. - P21
죄 sin: 물론 예술의 법칙에 따르지 않는 벽지의 무늬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지만, 정상 vs 비정상, 선 vs 악 그리고 죄와 벌은 권력에 따라 자의적으로 정해지는 면이 있다. - P21
벽지 안에는 나 밖에 모르는 것들이 있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테지만, 겉에 도드라진 문양 뒤로 희미한형체가 나날이 또렷해지고 있다는 사실. 늘 똑같은 형체인데, 수가 점점 늘어난다. - P53
옮긴이 주석
31 낮과 밤 그리고 해와 달이 이루는 대조는 이 작품을 이해함에 있어서 핵심적인 이항대립의 개념으로 볼 필요가 있다. 남성 vs 여성, 이성 vs 광기 등의 이항대립은 앞에 나오는 개념들(낮, 해, 남성, 이성, 백인, 선)이 뒤에 나오는 개념들(밤, 달, 여성, 광기, 흑인, 악)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각인시키며 서구의 이성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백인중심주의의 뼈대를 구성한다. 어쩌면소설 속 여성인물이 갇힌 공간은 이러한 이항대립이 만들어낸 억압과 공포를가시화하고 공간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 P55
최악으로 기묘한 누런색이야, 저 벽지! 내가 지금까지봤던 온갖 누런 물건들을 연상시킨단 말이지. 미나리아재비 같은 예쁜 노랑 말고, 낡고 더럽고 정말 별로인 그런누런 것들. - P73
여성학의 선구자인 메리 울스톤크래프트는 "이세계는 거대한 감옥이 아닌가! 그리고 여성들이노예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곳이 아닌가!"라고 말한 바 있다. 소설 「누런 벽지는 바로 이러한 감옥속에 감금된 채 자유 의지를 포박당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 P109
표면에 나타나는 메인 텍스트 이면에 숨겨진 하부 텍스트를 읽어내는 것은, 마치 사회 속에서 힘을 쥔 지배계층의 목소리에 가려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하층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과도일맥상통한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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