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는 도서관과 12레인짜리 수영장이 있었다. 수영장의 푸른색 페인트는 희끗희끗벗겨지고 있었다. 나는 그 무렵 외로웠다. 외롭고 마음 붙일 곳도없었는데, 갈색 낙엽이 구석에 쌓여 있는 이 유령 같은 푸른색 공간이 번번이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 P25
고독하다는 건은 어떤 기분인가? 그건 배고픔 같은 기분이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잔칫상에 앉아 있는데 자기만 굶고 있는 것같은 기분이다. 창피하고, 경계심이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기분이 밖으로도 드러나, 고독한 사람은 점점 더 고립되고 점점더 소외된다. 그것은 감정적인 측면에서 상처를 입히며, 신체라는 폐쇄된 공간 내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발생하는 물리적인 결과마저 낳는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간다. 무슨 말이냐 하면, 고독은얼음처럼 차갑고 유리처럼 맑으며 사람을 집어삼킨다는 뜻이다. - P26
다이빙하듯 사랑에 빠져든 나는 조급하게 그도시에 갔는데, 뛰어들고 보니 예상과 달리 붙잡을 곳이 없었다. 착각 속의 욕망이 꽃피던 봄날, 그 남자와 나는 영국을 떠나 뉴욕에서 만나 정착한다는 경솔한 계획을 짠 것이다. 그런데 그는 몇통의 호텔 전화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망설임이 점점 심해지더니 급작스럽게 마음을 바꾸었고, 나는 연고 없는 떠돌이가 되었다. 내게 결여되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빠르게 왔다가 그보다 더 빠르게 사라져버리는 데 나는 경악했다. - P27
나는 내가 있던 곳에 있지 않기를 간절하게 원했다. 사실 내 문제 가운데 일부는 내가 있는 곳이 전혀 특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내 삶은 공허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으며, 그 얄팍함을 나는 부끄러워했다. 마치 얼룩진 옷이나 실오라기가 삐져나온 옷을 입고 있을 때처럼 부끄러웠다. 사라져버릴 위험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동시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너무나 생생하게 날것이고 압도적이어서, 그런 강렬한 느낌이 줄어들 때까지 두어 달쯤 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많았다. - P29
내게 뭔가가 결핍되었다는, 사람들에게는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것이 내게는 없다는느낌. 그리고 이것이 착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서도 나 개인의 어떤 중대한 결점 탓이라는 생각, 이런 모든 것이 전반적으로무시당하게 되는 반갑잖은 결과를 재촉했다. 나는 그것이 내가30대 중반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혼자 있는 여성이 더는 사회적으로 허가받지 못하는 나이이며, 낯섦 · 일탈 · 실패의 냄새를 끊임없이 풍기는 연령대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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