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좀 두려워. 그가 말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ㅡ물론 그렇겠지요. 진심으로 이해하는 목소리였다. 정말이에요, 알 것 같아요.
ㅡ커피 식어. 그가 말했다.
ㅡ아무튼, 그냥 당신이 사는 곳을 보고 싶었어요. 그녀가말했다. 목소리가 갑자기 달랐다. 더 이상 얘기를 지속할 의사가 없어진 듯.
그는 그때 깨달았다. 저기 앉은 그녀가, 밤에 자기 아파트를 찾아온 이 여자가, 그가 사랑한 이 여자가 자신에게 정말로 마지막 기회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ㅡ아, 노린, 그가 말했다.
그날 밤 이후로 그녀는 사라졌다.  - P146

ㅡ내가 우스운 얘기 하나 할까? 홀리스가 말했다. 언젠가
들은 얘기. 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말이지, 행성하고 은하수 모든 거, 전 우주가 쌀알만 한 것이 폭발해서 만들어졌다.
고 하더라. 지금 여기 있는 거, 태양과 별과 지구와 바다와 모든 거, 내가 당신에게 품은 감정을 포함해서 말이야. 그날 아침 허드슨 스트리트에서, 창가에서 다리를 올리고 햇빛 속에앉아 얘기를 했고, 행복했어. 난 그걸 알고 있었어. 우린 사랑에 빠져 있었어. 그 순간 나는 삶에서 바라는 모든 걸 갖고있었어.
- P165

물이 찬 방에서 수영을 하는 기분이었다. 생각을 종잡을수 없었다. 갑작스런 밀물처럼 과거가 그의 몸을 떠밀고 지나갔다. 예전처럼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 기억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때는 일에 몰두하는 게 최고였다. 그녀의 피부가 어땠는지, 실크 같은 그 피부가 생각났다. 아예 얘기조차 말았어야 했다.
- P166

월터 서치는 번역가였다. 그는 초록색 만년필로 글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펜 끝을 공기 중으로들어 올리는 버릇이 있었다. 손이 거의 자동 장치처럼 움직였다. 그는 러시아어로 블로크 러시아 상징주의 시인이자 극작가 알렉산드르 블로크, 1880~1921. 대표 시집에 서정시」이 있다를 암송했고, 릴케가 한 독일어 번역본까지 외웠다. 어디가 왜 아름다운지 코멘트까지할 수 있었다. 그는 사교적인 사람이었지만 때론 까탈스러웠다.  - P183

타이트하게 전개되다가 깜짝 놀라게 하는 반전이 머리를 치는 이 작품은 단편소설사에남을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설터는 언젠가 이 책에 대한인터뷰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 기억하는 것들이다"라는 장 르누아르 감독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 P210

설터와 함께 영화 다운힐 레이서를 작업했던 로버트레드포드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그때 설터가 나에게 이런말을 했어요. 나뭇잎을 들어 올려 햇빛에 비추어 보면 잎맥이보이는데, 그는 다른 건 다 버리고 그 잎맥 같은 글을 쓰고싶다고." 어쩌면 이 말이 설터의 스타일을 가장 시적으로 잘요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P21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1-12-11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이 찬 방에서 수영을 하는 기분이었다. - 이런 문장을 좋아합니다.

아주 옛날엔 타자기 없이 펜으로 썼는데 작가들이 어떻게 장편을 썼는지 감탄스러워요.
만년필로 쓸 땐 잘못 쓰면 지우기 귀찮았을 것 같아요. 노트북이야 글자 지우기가 편하잖아요.
그 옛날에 태어났다면 저는 글쓰기를 포기했을 꼬예요. 완전 육체 노동이니까요.

청아 2021-12-11 15:54   좋아요 1 | URL
그러네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막연히 타자기로 치는건 인쇄따로 할 필요가없어서 더 좋은점도 있구나 정도 생각해봤어요ㅋㅋ페크님도 같은 문장 좋아하시니 저는 그런 페크님이 더 좋아집니다😆 요즘은 글쓰기 아주 편한 환경이라서 어쩌면 쓰기에 대한 간절함은 덜 할수도 있겠고 그래서 더 짧은글을 선호할수도 있겠구나 싶어요. 저는 그렇기도하고 아니기도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