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식탁 위로 몸을 구부려 턱을 손에 괴었다.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 하 겠 지만,
저녁을 함께 먹고 카드를 몇 번 쳤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은 실제로 아무것도 모른다.
언 제 나놀 라 게 된다.
당신은 아무 것도 모른 다.
- P9

커피 자국으로 얼룩진 식탁 위에 구겨진 냅킨이 뒹굴었다.
와인 잔엔 아직도 어두운 색의 잔재가, 접시 위엔 딱딱하게굳은 브리 치즈 조각이 남아 있었다. 푸른 기가 감도는 창문너머로 여름 아침의 새소리가 들렸고, 그 밑으로 정원이 미동조차 없이 누워 있었다. 날이 밝았다. 한 가지만 제외하면 성공적인 밤이었다. 브레넌만 제외하면.
- P45

내가 늦었군, 이게 다 누구지? 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술에 취한 남자였다. 재킷에 흰 바지를 입었는데, 더러워진바지엔 피가 묻어 있었다. 두 시간 전에 면도를 하다가 입술의 살점을 베었다. 머리는 젖었고, 얼굴엔 오만한 기운이 흘렀다. 섭정기의 공작과도 같은 얼굴이었다. 위협적이고 버릇없는, 이성을 비껴간 광기가 얼굴에서 번득였다.
- P47

자넨 내 친구야, 하지만 내 말 잘 들어, 자넨 결국 내 적이 되고 말 거야. 오스카 와일드 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그가 그랬지. 누구나 친구를 고를 수는 있지만, 현명한 사람만이 자신의 적을 고른다고.
- P47

부엌의 불빛 아래에서 보니 그는 밤새 일한 기자처럼 그냥초췌한 것 같기도 했다. 그에게서, 그 노려보는 눈빛에서 이성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심란했다. 그의 한쪽 콧구멍은 다른 쪽보다 작았다. 그는 자기가 막무가내라는 사실에 익숙했다. 아디스는 그가 자기를 보지 않기를 바랐다. 그의 이마엔유난히 반짝이는 두 부분이 있었다. 뿔이 돋아나려는 듯했다.
남자들은 그들을 무서워하는 여자에게 끌리는가?
- P51

그날 오후를 기억한다. 흐리고 조용한 오후였는데, 그의 시를 읽는 순간, 기존의 나 자신으로부터, 내가 일상적으로 느끼던 방식이나 삶의 깊이(다른 적당한 표현이 없다)에 대한 생각들로부터멀어지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어지는 구절에서느끼던 흥분을 기억하고 있다. 그의 시는 귀에 거슬리는, 끝도없이 계속되는 아리아였다. 특별한 건 그 톤이었다. 마치 그늘속에서 써 내려간 듯했다. 저기 삼각주가 있다. 저기 불타는팔이 있다. 시는 이렇게 시작되었는데, 그게 굽이가 풀어지는 강을 묘사한 게 아니라 욕망에 관한 것임을 바로 알 수있었다. 시는 어떤 꿈처럼 천천히, 종려나무 잎에서 파닥거리는 빛, 이름과 명사를 통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 P95

내가 그를 만난 건 한 파티에서였다. 그때 난 겨우 이렇게말했을 뿐이다. 당신의 아름다운 시를 읽었어요. 그는 예상 외로 생각이 트여 있어 날 놀라게 했다. 그러면서도 주저없이 솔직했다. 대화를 할 때, 내가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는 책이나 화제를 언급했고, 위트가 풍부했다. 그리고 그 이상이었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나를 즐겁게 했고, 나 또한신들이(내가 여기서 복수를 사용한 이유는 그가 유일신에 복종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뜻한 대로 말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무슨 얘기를 시작하면 희한하게도 우리 둘 다 아는내용이었다. 그가 조금 더 많이 알았지만 말이다.  - P96

넷이서 케이크를 먹은 후 나는 아내에게 선물을 주었다. 좋아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로마 숫자가 새겨진 아주 얇고 네모난 손목시계였다. 태엽을 감는 곳에 푸른색 작은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내 생각에 투르말린인 것 같았다. 케이스에 들어있는 새 시계보다 아름다운 건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 P98

우린 취향이 같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취향이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난 항상 취향이야말로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건 아마도 옷을 입는 방식이나 또는, 같은 이유로, 벗는 방식으로 전해지는데, 취향은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학습되고 어느 순간에 도달하면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얘기를 가끔 했다. 무엇을 바꿀수 있고 또 바꿀 수 없는가에 대해서, 사람들은 언제나 뭔가.
말하자면 어떤 경험이나 책이나 어떤 인물이 그들을 완전히바꾸어놨다고들 하지만, 그들이 그전에 어땠는지 알고 있다면사실 별로 바뀐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상대방이 매력적이긴 해도 완벽하지는 않을 때, 사람들은 결혼한 다음에 전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론 잘해야 한 가지 정도를 바꿀 수 있을 뿐이고, 그것마저도 결국은 예전처럼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 P99

난 오랫동안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에게 즐거움을주었을 뿐이다. 내게 특별히 그랬다 해도 그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사진 몇 장을 간직했고, 물론 시도 있었다.
난 먼 곳에서 그를 따라온 것이다. 결혼할 수 없는 남자를 따라가는 여자처럼, 그가 섬에서 섬으로 옮겨갈 때 빛나는 푸른물이 과거로 흘렀다. 호메로스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곳. 안개 속에 이오스 섬(에게 해에 있는 그리스령 섬, 고대 그리스 전설에 따르면 호메로스의 묘지가 이곳에 있다고 한다)이 하얗게 떠 있었다.
- P103

브룰 씨 부부가 사는 아파트에서 보이는 공원 경치는 기가막혔다. 겨울에는 앙상하고 탁 트인 풍경이었고, 여름이면 집은 녹색빛 바다가 되었다.  - P107

그녀는 귀고리를 풀고 있었다. 화난 모습은 처음이었고 갑자기 자길 미워할까 봐 두려워졌다.
-그러지 마, 제발, 화가 나야 하는 건 내 쪽이라고, 그가말했다.
그녀는 그의 손에 귀고리를 밀어 넣었다.
-그래요, 그녀가 말했다. 그가 봤어요. 그러곤 너무나 당당하게 말했다. 걱정 말라고요. 그 사람 아무 말도 하지 않을테니,
- 무슨 뜻이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 그녀의 대답이 갑자기 질병처럼 그를 무너뜨렸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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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12-10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95쪽과 99쪽에 밑줄을 긋겠습니당~~

청아 2021-12-10 15:45   좋아요 1 | URL
네~~ 페크님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