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죽은사람처럼 입을 벌린 채 거기 드러누워, 얼음처럼 차갑고 검은 산물이 흐르는 개울 꿈을 꾸었다.
- P25

숲을 가로질러 저 너머에 지붕, 그리고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그는 도로 양편에 뒤집힌 차 두 대가 만신창이가 된 보초처럼 누워있는 빈터에 이르자 폐물과 쓰레기의 거대한 제방을 지나 쓰레기장 가장자리의 판잣집으로 향했다. 각양각색의 고양이가 허약한 해를 받으며 그가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밸러드는 라이플로얼룩덜룩한 커다란 수고양이를 겨누고 입으로 빵 소리를 냈다.
고양이는 무심하게 그를 보았다. 그가 별로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밸러드는 고양이에게 침을 뱉었고 고양이는즉시 묵직한 앞발로 머리에서 침을 닦아내고 그 자리를 씻기 시작했다. 밸러드는 쓰레기와 자동차 부품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따라 올라갔다.
- P36

밸러드가 트레일러를 지나가는데 바로 이 딸이 빨래를 널고있었다. 그녀 옆 오십 갤런들이 드럼통에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는데 그가 고개를 돌려 눈을 가늘게 뜨고 밸러드를 보며 말을 걸었다. 딸은 그를 향해 입을 오므리고 윙크를 하더니 고개를 젖히고 미친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밸러드는 싱긋 웃으며 라이플 총열로 자기 다리 옆쪽을 툭툭 쳤다.
어떻게 지내, *젤리빈 , 그녀가 말했다.

*무기력하고 꼴 보기 싫은 남자를 가리킨다 - P39

잘 지내나 다퍼즐, 밸러드가 말했다.
잘 지내나 레스터.
그는 입에 구슬을 잔뜩 문 사람처럼 말하며 염소뼈 아래턱 관절을 힘겹게 움직였다. 원래 턱은 총에 맞아 떨어져나갔다.
밸러드는 마당에서 손님 맞은편으로 가 뒤꿈치에 엉덩이를 대고 쭈그리고 앉았다. 변비에 걸린 *가고일‘들 같았다.

*유럽 기독교 사원의 벽에 붙어 있던 괴물을 본뜬 석상. 날개 달린 용이나 인간과 새를 합성한 모습 등 여러 형상이 있다 - P59

서비어 카운티 보안관이 법원 문으로 나와 포르티코 에 서서밑의 회색 잔디를 살폈다. 그곳에는 벤치들이 놓여 있고 집회를연 서비어 카운티 주머니칼 협회 사람들이 깎고 중얼대고 침을뱉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말고 나서 담배 봉투를 맞춤 셔츠의가슴주머니에 도로 넣고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층계를 내려와주인이나 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이 작은 고지대 군청소재지의 아침 상황을 살폈다.
- P61

내가 문제가 생긴 건 모두 위스키나 여자나 그 둘 다 때문이었어. 밸러드가 말했다. 그는 남자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자주들었다.
내가 문제가 생긴 건 모두 붙잡혔기 때문이었어, 흑인이 말했다.
일주일 뒤 어느 날 보안관이 복도를 따라 걸어오더니 깜둥이를 데려갔다. 집으로 날아가네, 깜둥이가 노래를 불렀다.
날아가고말고, 보안관이 말했다. 네 창조주에게로 날아가지.
니미씨발놈처럼 날아, 깜둥이가 노래했다.
걱정하지 마, 밸러드가 말했다.
깜둥이는 그러겠다 그러지 않겠다 말이 없었다.
- P69

어쨌거나 나는 나와서 거기 링에 올라갔어. 정말이지 바보가된 느낌이더군, 내 친구들이 다 거기서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말이야. 나는 나와 함께 있던 귀여운 아가씨를 내려다보고 크게 윙크를 한 번 해주었는데 그때쯤 그 늙은 유인원을 데리고 나오더라고, 유인원한테는 재갈을 씌웠어. 그 자식이 다정한 눈으로 나를 건너다보더라고, 자, 사람들이 우리 이름을 부르고 난리였는데 그놈의 유인원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 어쨌든 어떤 아이가 커다란 저녁식사 종을 흔들었고 나는 걸어나가 그놈의 유인원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어. 거기 그놈한테 풋워크를 좀 보여준 거야. 놈은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팔을 뻗어 한 방을 세게 먹였지. 놈은 그냥 다정하게 나를 보기만 하더라고. 뭐, 나야 그냥 자세를 취하고 다시 쳤을 뿐이고, 머리 옆쪽에 정통으로 먹였지. 그러니까 놈의 머리가 뒤로 확 젖혀지면서 눈이 다정하게 야릇해지더라고, 그래서 내가 말했지.
자, 자, 이놈 아주 착하구나. 오십 달러는 이미 번 거나 다름없었지. 나는 몸을 흔들며 돌다가 다시 치러 갔는데 바로 그때 놈이내 머리 위로 뛰어올라 내 입에 발을 쑤셔넣고 내 턱을 찢으려고하는 거야.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지. 사람들이 그걸나한테서 절대 떼어내지도 못할 것 같았고.
- P76

들에서 빛 하나가 타닥타닥하며 떠오르더니 파란 꼬리가 달린 로켓이 큰개자리를 향해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로켓은 하늘을 향해 젖혀진 그들의 얼굴 위 높은 곳에서 터졌고, 불이 붙은글리세린 비말들이 밤을 가로질러 확 퍼지다가 느슨하게 풀리는 뜨거운 빛 띠들이 되어 하늘을 따라 자취를 남기면서 내려오다 곧 타버리고 무無로 돌아갔다.  - P82

사냥개들이 산마루의 비탈에서 눈을 가로지르며 가늘고 어두운 선을 한 줄 남겼다. 한참 아래 그들이 추격하는 멧돼지는 뻣뻣한 다리로 성큼성큼 묘하게 달리며 사선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등이 우뚝했고 아주 검었다. 그 옅은푸른색 광활한 공허에서 사냥개들의 목소리가 악마 요들 가수의외침처럼 메아리쳤다.
멧돼지는 강을 건너고 싶지 않았다. 정작 건넜을 때는 너무 늦었다. 멧돼지는 만질만질하게 변한 모습으로 김을 뿜으며 강가버드나무에서 나와 평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뒤에서 개들이히스테리에 사로잡혀 곤두박질치듯 산비탈을 내려왔고, 그들 주위에서 눈이 폭발했다.  - P82

밸러드는 기울고 회전하고 눈을 파고들어 진흙을 휘젓는 이발레를 지켜보았고, 매혹적인 피가 넘실거리며 그 자리에 전투를 기록하고 파열된 허파에서 터져나와 흩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시커먼 심장의 피,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고 피루엣을 하다가마침내 총소리들이 울려퍼지면서 다 끝났다. 어린 사냥개 한 마리는 멧돼지의 귀를 물고 당겼고 다른 한 마리는 밝은색 밧줄 같은 내장을 눈 위에 포개놓은 채 죽어 쓰러졌고 또 한 마리는 낑낑거리며 자기 몸을 질질 끌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 P87

그거하고 어울릴 것들도 몇 가지 필요해.
필요한 게 전부 뭔데요? 여자가 말했다.
속바지가 몇 벌 필요해, 밸러드가 불쑥 내뱉었다.
여자는 주먹에 대고 기침을 하더니 몸을 돌려 통로를 거슬러올라갔고 밸러드는 불이 붙은 얼굴로 뒤따랐다.
- P123

이제얼어붙어라, 이 개자식아, 그는 창문 너머 밤에게 말했다.
- P128

아침이 되기 한참 전에 밸러드를 눈비에서 지켜주었던 집은발치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판자 더미를 거느린 시커먼 굴뚝만남았다. 밸러드는 질척한 땅을 가로질러 노에 올라서서 올빼미처럼 그 위에 앉았다. 그 온기를 찾아서. 그는 혼잣말하는 버릇이 든 지 오래였으나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P131

정말이지 무시무시하게 추운 겨울이었다. 그는 겨울이 끝나기전에 자신이 가파른 산등성이의 이끼 낀 이판암에서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자란 스산한 가문비나무들 중 하나처럼보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겨울의 파란 어스름을 뚫고 커다란숲에 엎드린 거대한 나무들의 잔해와 바위 사이를 올라가다가그는 그런 격변에 놀랐다. 숲의 무질서, 나무는 쓰러지고 새길이필요했다. 책임이 주어졌다면 밸러드는 숲과 사람의 영혼에 더질서 잡힌 것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 P167

봄에 혹은 따뜻해진 날씨에 숲의 눈이 녹으면 겨울의 발자국들이 가느다란 발판들 위에 다시 나타나고, 눈은 예전에 묻힌 어슬렁거림, 다툼, 죽음의 현장을 겹쳐 쓴 글씨처럼 드러낸다. 다시 빛을 본 겨울 이야기들은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선 시간과같다. 밸러드는 발길질을 해가며 전에 다니던 좁은 길을 따라 숲을 통과해 내려가, 길이 언덕을 넘어 자신의 예전 집으로 방향을트는 곳에 이르렀다. 오래전에 오고간 것들, 작은 버섯들처럼 눈에서 음각 무늬로 솟아오른 여우의 발자국들과 새들이 눈 위에피 같은 선홍색 똥을 싸놓은 곳의 산딸기 자국들.
- P170

그는 오래전부터 그에게 당한 여자들의 속옷을 입고 있었으나이제는 여자들의 겉옷도 입고 나타나는 버릇이 들었다. 잘 맞지않는 옷을 입은 고딕 인형, 하얀 풍경 속에서 동떨어져 밝게 등둥 떠다니는 그 암적색 입, 저 아래 골짜기에는 녹이 슨 듯한 지붕 몇 개와 아주 흐릿한 연기. - P173

어느 날 저녁 불 옆의 요에 누워 있던 밸러드는 작은 굴의 어둠으로부터 박쥐들이 나와 하데스에서솟아오르는 영혼들처럼 재와 연기 속에서 날개를 거칠게 퍼덕이며 머리 위의 구멍을 통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박쥐들이 사라진 곳에는 차가운 별무리가 연기 구멍을 가로질러 제멋대로 뻗어 있었고 그는 그것을 살피며 저것들은, 또 자신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생각했다.
- P173

그는 라이플을 잡은 팔을 그 위에 걸쳤다. 상자가 뒤집히더니 둥둥 떠내려갔다.
밸러드와 통나무는 계속 여울 아래 급류로 밀려내려갔고 밸러드는 소리들의 대혼란 속에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제 어떤정신 나간 영웅처럼 또는 늪지로 떠밀려온 애국적 포스터의 지저분하게 젖은 패러디처럼 한쪽 팔로 허공에 쳐들고 있는 라이플. - P190

그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위로 올라와 물을 뱉어냈고, 두팔을 휘저으며 가라앉은 개울둑을 표시하는 줄지은 버드나무들을 향해 나아갔다. 그는 헤엄을 칠 줄 몰랐지만, 그를 어떻게 익사시키겠는가? 분노가 그를 물위로 띄우고 있는 것 같았다. 사물의 이치가 여기에서는 정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를 보라. 그는같은 인간들, 당신 같은 인간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는 그들과 함께 기슭에 이르렀고 그들은 그에게 외치고 있었다. 불구자와 미친 자들에게 젖을 먹이고, 자신들의 역사에서 잘못된 피를 원하고 또 그런 피를 늘 가지기 마련인 종족.
하지만 그들은 이 남자의 목숨을 원한다. 그는 그들이 밤에 랜턴을 들고 저주의 외침을 내지르며 자신을 찾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밀어올려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 왜 이 물은 그를 데려가지 않을까?
- P190

그는 구덩이에서 걸어나와 밝아진 날을 보면서너무 지쳐 흐느낄 뻔했다. 죽어 전설이 된 그 광야에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고 숲은 서리꽃 화환을 두르고 있었으며 잡초가 하얀 수정 환상들로부터 동굴 바닥의 돌 레이스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그는 욕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는 악마가 아니라 가끔 제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오래전에 벗어던진 자아였다.  - P192

그건 우연이었는데 좁은 장소라 양쪽무리 모두 달아날 수가 없었거든, 아니, 그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안타까운 인간들이었어. 죄다 삼백육십 도 개자식들이었다.
고, 이건 우리 아버지가 쓰던 말인데 어디에서 보나 개자식이란뜻이야.
- P202

그의 뼈는 달걀 껍데기처럼 깨끗하게 닦여 광택이 나고, 골수가 흐르던세로 홈에서는 지네가 잠을 자고, 갈비뼈들은 거무스름한 돌 사발에 담긴 뼈 꽃처럼 늘씬하게 흰빛으로 구부러져 있고, 그는 어떤 야수 같은 산파가 그를 이 바위 감옥으로부터 쪼개서 떼어내주기를 바랄 만한 이유가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바랐다.
- P233

그는 어떤 범죄로도 기소되지 않았다. 녹스빌 주립병원으로옮겨져 사람들 두개골을 열고 숟가락으로 뇌를 퍼먹던 미친 신사의 옆 감방에 들어갔다. 밸러드는 바람을 쐬라고 밖에 내보내줄 때 그를 가끔 보았지만 미친 사람에게 할 말은 없었고 그 미친 사람은 자기 범죄의 극악무도함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말을잃어버렸다. 그의 금속 문 걸쇠에 구부러진 숟가락이 꽂혀 있어서 밸러드는 그게 미친 사람이 뇌를 퍼먹던 숟가락이냐고 한 번물었지만 답은 얻지 못했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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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04 1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미미님
맥카시옹의 묵시록의 세계로!!

미미 2021-11-04 17:52   좋아요 2 | URL
♡.♡ 묵시록 딱입니다. 아찔했어요! 😭

2021-11-05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05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