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 질서를 일반적인 계층화의 문제로 보지 않고 남녀 사이의 계층화 문제로만 치환해서 생각하여, 양성평등을 실현하면 가부장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길을 막아버리는 일이다. 가부장 질서를 논하면서 한사회의 위계질서 형성이라는 틀을 함께 논하지 않는다면 가부장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 P20
위계질서는 이원론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요소에 토대를 두고 분류하는 것이다. "합리적 불합리적, 능동적/수동적, 사고 감정, 이성/감성, 문명/자연, 힘 섬세함, 객관적주관적, 추상적 구체적, 원리 원칙에 의하여 규율화됨/개별화 개인화됨이라는 이원론이다." "불합리는 이성의 결여이고, 수동성은 행동성(능동성)의 결여를 의미한다. 사고는 감정보다 중요하고, 이성은 감정보다 우수한 것이다." 6 어떤 것을 결여한 것‘ ‘덜 중요한 것‘ ‘열등한 것‘으로 여긴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이원론은계층화 질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20
이러한 이원론을 통한 계층화가 법 체계에 반영될 때 어떤 일이발생하게 되는가? 마사 누스바움 Martha C. Nussbaum은 낙인을 찍는등 수치심을 주는 처벌을 형벌체계에 도입할 수 있는지를 논하면서,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문제인 것은 ‘사회 구성원을 서열화 하기때문이라고 지적한다.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집단을 형성하며, 보다 힘이 약한 일부 집단과 비교하면서 자신들을 ‘정상인‘으로 정의한다." "수치심은 정상에서 벗어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 또는 이런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을 대상화함으로써 지배적인 집단은 자신들을 정의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정상인‘들에게 자신이 지닌 나약함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른바 희생양이 될 수 있고, 공동체에서 배척당할 수 있는 것이다." 누스바움은 이런 관점에서 "수치심 처벌이 진보적인 개혁효과를 보기보다는 사회적 동질성과 통제를 높이는 수단으로 기능하게 될 것" 10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수치심을 주는 처벌을내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자유주의 사회의 핵심 가치를 위협하게 된다고 한다. - P21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남녀 사이의 계층화도 다르지 않다. 성적性的으로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 특수할 뿐이다. 성적으로 구축된 이원론은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상하관계로 배열한다. "남성적이라고 생각되는 요소는 바람직하고 우수한 것으로 인식되는 데반하여, 그 상대적인 요소는 열등하고, 좋지 않은 요소로서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남자들은 이 이원론 구조의 일방, 즉 ‘합리적, 능동적, 사고, 이성, 문명, 힘, 객관적, 추상적, 원리 원칙화된 쪽에 자신들을 동일화하여 왔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한쪽, 즉 ‘불합리한, 수동적, 감정, 감성, 자연, 섬세함, 주관적, 구체적, 개별화, 개인화‘ 쪽을 여성들에게 투영하여왔다. - P22
대법원은 ‘자신의 성희롱 피해 진술에 소극적이었다‘거나 성희롱 사실 발생 후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등의 사정이 피해자 진술을 가볍게 배척할 사유가 아니며, 특히 고등법원이 피해자1의 권유 또는 부탁이 없었더라면 과연 피해자2에게한참 전의 원고 행위를 비난하거나 신고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의심스럽다고 한 부분은 성희롱 사실 발생 자체를 배척하는 근거로 삼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보았다. - P45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 사실을 즉시 신고하지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 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성희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 P46
감수성‘의 정의는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이다. 즉 감수성이라는 용어는 ‘감성‘이나 ‘감정‘과는 달리 ‘예민함이나 ‘감도‘라고 할 수 있다. 성인지 감수성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는 성폭력, 성희롱, 성차별 등의 사건에서 지배적인 성적고정관념에 빠지지 않으면서 피해를 당하는 순간 또는 그 전후 상황을 인지하는 능력을 갖추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문제이다. - P47
체스터튼G. K. Chesterton의 글
체스터튼은 글에서 브론테C. Bronte의 소설 『제인 에어」를 소개하며 "밖으로 나가서 도시를한번 보시오. (…) 보다시피 당신은 19세기 말의 집들을 보고 있지만, 이 모든 집들은 마치 다 똑같이 생겼소, 그리고 저 모든 사람들은 일을 하러 가고 있고 그들 또한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오. 하지만 브론테가 당신에게 말해주는 것은 바로 그들이 결코 똑같지않다는 것이오."라고 했다고 한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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