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 피가 되고 대지가 되고 비명 소리가 되기에 지쳤노라. 이야기꾼과, 그 이야기를 전하고 받아 적고 암송하여 결국그 이야기를 믿게 되는 다른 이들에게 묻노니, 그것이 전부인가? 이야기꾼에게 묻노라. 그리하면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카인이 되고 싶지 않다면 아벨이 되어야만 하는가? 다른 길은없는가?
ㅡ도로테 절레Dorothee Sölle, 『평화에는 여성이 필요하다』(1982) - P5
왜 세계가 점점 파괴를향해 치달아가면서 인구의 절반이 다른 절반을 계속 굴종적 위치에 두려고 하는지에 대해 좀더 나은 이해를 구하려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탐구해볼 만한 지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P7
해제. 정희진
생물학,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의 관계를 비교해보면, 국제정치학은 근대 학문 분과에서 페미니즘의 개입이가장 늦은 영역으로 악명이 높다. 전쟁, 국가 안보, 국제 관계는핵물리학이나 영장류학 등 자연과학 분야보다도 페미니즘의 도전을 허락지 않았다. 이 분야는 ‘팩트‘가 아니라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 언어의 가치가 결정되는, 인간의 지성이 가장 작동하지않는 영역이다. 일단, 여성이 말하면 진위를 의심받는다.
내 경험에서 보면, 시민사회에서조차 그러하다. 여기에 한국 사회는분단 체제까지 겹쳐, ‘평화 연구는 곧 국가 전략이나 국방 연구를 의미하였다. 우리는 분단 이후 ‘(국가주의적) 통일‘이나 ‘평화‘, 심지어 ‘인도주의‘조차 친북 공산주의로 간주되는 사회에 살고있다. - P9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는 전쟁의 작동원리가 인간의 특성을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분리하고 위계화하는 성차별주의 sexism 에 있다고 논증한다. ‘남성‘ 정치학자들은 대개 사회적 모순으로서의 젠더에 무지하거나 이를 사소한 이슈라고 여긴다. 리어든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젠더는 전쟁의 가장 강력한 작동 원리이며, 남성성에 대한 이해 없이 국제정치(세계질서, 전쟁 등)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9
이처럼 국가 안보와 국방 정책을 다루는 기존의 국제정치학은소수 ‘엘리트‘ 남성들이 독점해온 분야로서 사적인 것, 감정적인것, 일상적인 것과 대립하는 의미로서 소위 ‘상급 정치‘high politics를 다루어왔다. 그동안 이 분야에서 ‘여성의 부재‘는 완벽한 듯보여서, 담론의 남성 중심성은 거의 인식되지 못했다. 그 결과, "남성 = 보편적 인간" 이라는 전제가 가장 오래 남아 있는 분과였다. 이는 근대 체제가 공사, 국내/국제의 분리와 그 성별화라는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을확장해 국제정치학에 적용해보면, 노동시장이나 시민사회조차 ‘국내 영역이어서‘ 사적私的 영역으로 취급된다. 국내에서의 사적영역이든, 국제 관계에서의 국내 문제든 모두 사소한 이슈라는것이다. 이러한 분할에서 가정, 여성, 재생산과 관련된 삶은 국내 영역에 할당되고, 국내적인 것(‘집‘)과 상징적으로 가장 먼 최극단에 전쟁과 외교를 다루는 ‘국제‘라는 가상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 P10
국민은 동질적인 존재 같지만, 실상 사회는 성원권 개념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성원권은 군사화된 보호 개념으로 정의된다.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구별과 위계화가 그것이다. 공동체를 지킨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보호해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을 구별하는 권력을 갖게 된다.
그것이 배제, 타자화, 혐오이다. 성차별과 젠더 정치의 핵심은, ‘정상 남성‘인 보호자가 남성 문화가 규정한 남성 이외의 사람들을 타자 the others로, 피보호자로, 비非국민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에서 평화는 외부로부터 "지키는 것"이 된다. 이처럼 평화가 성취의 목표가 되면, 전쟁은 불가피하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일상은통제된다. "나라를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국가주의와 안보 이데올로기의 결합이다. 🤔🤔🤔🤔🤔 - P11
공동체의 평화는 ‘지키는 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호 돌봄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리어든의 주장이다. - P11
공동체의 평화는 ‘지키는 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호 돌봄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리어든의 주장이다. 국제정치학이만들어내는 국제정치 영역은 젠더가 만들어지는 방식과 유사한이원적 대립에 근거한다. 전쟁/평화, 국외/국내, 질서/혼란, 현실/이상과 같은 이분법에서, 어느 한편은 성별화性別化된다. 이를테면 질서가 남성적 가치라면, 혼란은 예측할 수 없는 여성의 심리와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국제정치학이 별도의 학문 분과로제도화된 시기가 여성들이 선거권을 획득함으로써 국내 정치에진출하게 된 이후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 P11
리어든은 발상의 전환을 제안한다. "평화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페미니즘의 주장은 평화를 대상화하거나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존의 전쟁과 평화는 반대말이 아니라 같은 말이다. 침략과 정복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전쟁은 없다. 모든 전쟁은 정의justice에서 출발한다. 텔레반으로부터 이슬람 여성 같은약자를 보호하고, ‘악의 축인 북한과 같은 깡패 국가로부터‘ 평화를 지킨다는 설득력 있는 명분이 따른다.
미국의 (우익) 페미니스트들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지지한 것은 전혀 놀라운일이 아니다. 2018년 한국의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난민 수용을거부한 명분 역시 한국 여성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여성주의‘였다. 🤔🤔🤔🤔🤔 - P12
(2) 군사력은 인간 심리까지 포함한 총체적 개념이어서 근본적으로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하지만, 그중 참고할 만한 지표인 ‘글로벌파이어파워 GFP 세계 군사력 랭킹‘에서 2020년 남한의 군사력 순위는 6위를 기록했다(북한은 25위), 군사비 지출과 국민의삶의 질은 연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인간의 조건을 둘러싼 근본적인 질문이다. - P13
페미니즘은 권력관계를다루지만, 이익집단 운동‘이 아니다. 젠더를 사회구조적 모순으로 보는 페미니스트에게 여성학, 평화학, 생태학은 분리할 수 없는 인식론이다.
👈👈👈👈👈 - P14
학습된 행동은 변화할 수 있고, 변화는 선택의 문제이다. - P21
이후에 설명할 나의 결론에 이르는 데 영향을 준 네 명의 주요인물이 있다. 내 생각과 추론의 시발점은 이르마 가르시아 차파르데트 Irma Garcia Chafarder 가 1975년에 제출한 논문의 연구 계획서였다. 여기에는 "진정한"authentic 남성성 · 여성성으로 성별화된 공격성이 어떻게 엄격한 성 역할의 사회화로 이어지는지, 그리고이러한 왜곡이 육아와 인간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대한 연구가 제안되어 있었다.
차파르데트가 초기에 고안했던 진정한(그리고 왜곡된) 남성성·여성성 개념은 지금 내가 남성적 · 여성적 가치라고 부르는것을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구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긍정적 가치는 진정한 속성에서 유래하고, 개인적 · 사회적 측면에서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부정적 가치는 왜곡된 속성에서 유래하고, 인간과 사회의발전을 억누르며 짓밟는 것들이다. 이 가치는 고정관념의 기저를 이루고, 차별과 억압을 합리화한다.
👈👈👈👈👈 - P25
성차별주의와 전쟁 체제의 뿌리가 하나라는 사유는, 이탈리아의 정신과 의사 프랑코 포르나리Franco Fornari의 이론이 보강해주었다. 전쟁의 기원이 인간 정신에 있고, 모든 이들에게 전쟁에대한 일정한 개별적 책임이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는 당연한 귀결적 주장(1974)은 나의 기본적 추측을 학술적으로 정당화해주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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