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눈을 뜨고 있었다. 가냘픈 얼굴은 베개 위에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두 볼에 열이 있어 보였다. 소녀는 강아지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 강아지의 검은 콧등이 시트 밖으로나와 있는 것이 우스꽝스러웠다. - P27
소녀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바로 그 순간에 소녀의 눈빛에서 읽은 것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속에는 온갖 격려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이미 강인해진 내면의 생활, 그리고그러한 고독 속에서의 비탄, 이런 것들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동요를 느껴 시선을 떨구었다. - P30
나의 마음은 너의 마음을 껴안고 있어, 페트로니우스가 천사 같은 위니스를 껴안듯이!
(자크가 다니엘에게 쓴 편지 끝부분) - P71
나는 너를 존경해, 너의 너그러움과 너의 꽃 같은 감수성과 너의 모든 생각과 모든 행동, 그리고 사랑의 열정속에서까지 엿볼 수 있는 그 진지함을 존경해. 너의 모든 애정과 모든 감동을 너와 똑같이 느끼고 있어!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고, 고독으로 황폐해진 우리의 마음이 다시는 떨어질 수 없는 굳은 결합으로 하나가 될수 있었음을 하느님께 감사하자! 절대로 나를 버리지 말아! 그리고 우리는 서로 서로가우리의 사랑의 열정적인 대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영원히 기억하자!
(꽃 같은 감수성!) - P75
졸라의 《패주》를 다 읽었어. 이제 네게 빌려줄 수 있겠네. 아직도 그 감격이 사라지지 않은 채 나의 마음은 떨리고 있어, 힘차고 심오함이 아름다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기 시작했어. 아, 벗이여, 이것이야말로 모든 책 중의 책이라는 생각이들어! - P77
너는 나의 진지함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 그러나 반대로 그것이야말로 나의 비참함이고 나의 저주받은 운명이야! 나는 이 꽃에서 저 꽃으로 꿀을 찾아다니는 꿀벌은 아니야. 나는 마치 단 한 송이의 장미꽃 속에 틀어박힌 검은 풍뎅이 같아. 풍뎅이는 장미꽃 속에서 살다가, 마침내 장미꽃이 꽃잎을 아물어 버리면, 이 마지막 포옹 속에서 질식하여, 스스로 선택한 꽃에 안겨 죽잖아.
오, 벗이여, 너에 대한 나의 애정도 그처럼 충실해! 너는 이 황량한 세상에서 나를 위해 피어난 다정한 장미꽃이고, 너의 정다운 가슴속 깊이 나의 어두운 슬픔을 파묻어 줘! - P77
내 벗의 열네 살을 맞이하여 세상에는 낮이면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하고,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는 관능의 만족으로도 채우지 못한 무서운 공허를 느끼고, 머릿속에서는 모든 능력이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환락의 좌석에서 즐거워하고 있는 모든 친구들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갑자기 시커먼 날개를 펼친 고독이 자기의 마음을 뒤덮는 것을 느끼는 그런 사람이 있어.
또한 세상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증오하면서도 그것을 버릴 용기가 없는 사람이 있어. 이 사람이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인 거야!!! - P78
자신은왜 유혹에 지고 말았을까? 그는 자기 자신을 두고 마치 무슨수수께끼라도 대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P104
"저걸 좀 봐." 다니엘이 말했다. 몇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하얀 배 한 척이 놀라울 만큼반짝이며 쪽빛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선체는 싹트는 나뭇잎 같은 싱싱한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노를 저을 때마다 배는 연속적인 빠른 동요에 의해서 앞으로 전진해 나가고 있었다. 뱃머리가 물 위로 떠올라 그것이 뛰어오를 때마다 물에 젖은 초록빛 선체가 광채를 띠어 마치 불꽃처럼 빛났다. - P115
"난 시만큼 좋은 게 없어."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를 위해서라면 난 뭐든지 다 버릴 수 있어. 퐁타냉은나한테 책을 빌려 줘. 이런 이야긴 아무한테도 하지 마, 응? 내가 라프라드니, 쉴리프뤼돔이니, 라마르틴이니, 위고니, 세등을 읽을 수 있게 해 준 건 그 애야……. 아, 뮈세! 형, 이런 시알고 있어?
저녁의 창백한 별, 서쪽 장막으로부터찬란한 그 이마 반짝이며 먼 곳에서 오는 사자(使者)여...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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