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독서
그림자가 먼저 달려드는 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 불을 끄지 못하는 여자가 살고
여자의 눈 밑에 난 작고 새카만 점에서 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 울 수도 있을 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 P42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 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 P55
비가 쏟고 오방(五方)이 다 캄캄해지고 신들이 떠난 봄밤이 흔들렸다 저녁에 밥을 한 주걱 더 먹은 것이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새벽이 지나도록 지지 않았다 가슴에 얹혀 있는 일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 P57
기침은 내가 억울해하고 불안해하는 방식이었다.
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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