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독서

그림자가
먼저 달려드는
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
불을 끄지 못하는
여자가 살고

여자의 눈 밑에 난
작고 새카만 점에서
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
울 수도 있을
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 P42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 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 P55

비가 쏟고 오방(五方)이 다 캄캄해지고 신들이 떠난 봄밤이 흔들렸다 저녁에 밥을 한 주걱 더 먹은 것이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새벽이 지나도록 지지 않았다 가슴에 얹혀 있는 일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 P57

기침은 내가 억울해하고
불안해하는 방식이었다.

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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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01 1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오월의 꽃 미미님 서재방에 뿌리고 감~~
゚゚・*:.。..。.:*゚:*:✼✿ ❁ཻུ۪۪⸙͎ ✿✼:*゚:.。..。.:*・❀‿‿‿‿((🌸 ))‿‿‿‿❀°

청아 2021-05-01 11:25   좋아요 2 | URL
향기 넘 좋아요~♡
🌸( ´╹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