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모니터에는 작가들의 격언이 적힌 포스트잇을 붙였다. "글에서 ‘매우‘, ‘무척‘ 등의 단어만 빼면 좋은 글이 완성된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이나(나는 좀처럼‘ 부사를 포기하지 못했다), "모든 초고는걸레"라는 헤밍웨이의 말을 옮겨 쓴 것이었다(걸레 같은 초고를쓰고 있을 때 위로가 되었다).
- P75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어도 원하는 하나쯤은 성취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혁명가, 모험가, 몽상가, 방랑자, 무정부주의자는 될 수 없어도 문학을 하는 사람은 될 수 있을 거라고생각했다. 

하지만 문학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혁명가,모험가, 몽상가, 방랑자, 무정부주의자를 모두 합친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P93

"서재는 남편의 공간이고 주방은 저의 공간이에요. 그래서 서재는 남편 취향으로, 주방은 제 취향으로 꾸몄어요." 

어떤여성이 주방을 ‘자기만의 공간‘이라고 규정할 때 그녀가 집에서점유하는 자리는 어디일까? 주방이 가족 공동의 공간이 아니라여자만의 공간이라는 것은 가사 노동이 여자만의 일이라는 뜻일까? 

책을 읽고 컴퓨터 작업을 하는 방은 남편의 공간으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은 아내의 공간으로 구분할 때, 부부 중 한 사람만 방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P131

쓰기는 삶의 특정한 순간을 다시 한 번 살아내기이다. - P134

엄마는 ‘읽는 사람‘이었다. 솔제니친과 체호프 같은 러시아작가들을 특히 사랑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거짓말을 읽고 내가 받은 충격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사람도가족 중에서 엄마가 유일했다. 나는 끝까지 읽지 못했고 앞으로도 읽지 못할 것 같은 박경리의 『토지』와 최명희의 『혼불』을 완독하고 재독까지 한 사람도 내 주변에서 엄마뿐이었다. 가세가기운 뒤 엄마는 집 안팎에서 이중노동을 하면서도 잠들기 전까지 시와 소설을 읽었다. 엄마에게 독서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정신적 공간이었으리라.
- P143

많은 작가와 철학자 들은 산책자였다. 그들은 걷기를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로 삼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자신이걸었던 길에 대해 이런 글을 썼다. "두세 시간의 오후 산책은 언제나 나를 낯선 나라로, 내가 평생 가볼 수 있는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낯선 나라로 데려다준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달빛 속을 걷다). 누군가들에게 걷는 행위는 구호고 은유고 통찰이었다. "한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같은 정치적 구호(막심 고리키, 『어머니), "그는 하나의 내면이 되었고 그렇게 내면을산책했다" 같은 문학적 은유(로베르트 발저, 『산책자), "걷는 것은헐벗음의 훈련" 같은 철학적 통찰처럼(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예찬),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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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01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미미님이 올려주신 문구들 전부
|밑줄 쫘악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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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५✍⋆*____|
( )__( ) ||
(•ㅅ•).||
/ . . . .づ

미미님 비오는 3월 월요일 해피하게 ~*

청아 2021-03-01 12:31   좋아요 1 | URL
스콧님 칠판에 필기중인 토끼 짱귀요!ㅋㅋㅋ
스콧님도 3월의 첫날
평온하게 보내세요♡
( ु⁎ᴗ_ᴗ⁎)ु.。oO(명상하는 듯한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