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의 목적은 그런 식민화가 아니다. 생활권이 더 필요하다는 부르짖음은 가식일 뿐이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건 땅이 아니라 노예다. 그들은 임금을 최소한으로 지급하고도 자신들을 위해 밤낮으로 부릴 수 있는 대규모 인구를 원한다. 독일이 꿈꾸는 유럽의 모습은 100만의유럽인 노예가 아침부터 밤까지 일한 뒤 굶어 죽지 않을 정도만 남기고 모든 생산물을 독일에 바치는 것이다. 일본이그리는 아시아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독일의 구상은어느 정도 이미 현실화됐다. 바로 이 시점에서 사보타주의중요성이 대두된다.
- P143

사보타주가 단 며칠만 이어져도 독일의 군수산업 전체가 정지할 것이다. 큰 망치로 정확한 지점을 몇 번만 후려쳐도 발전기 한 대를 멈춰 세울 수 있다. 신호 레버를 한 번만 잘못 당겨도 기차 한 대를 완파할 수 있다. 약간의 폭약만으로도 배 한 척을 가라앉힐 수 있다. 성냥 한 갑, 아니성냥 한 개비만 있어도 수백 톤의 가축 사료를 불태워버릴수 있다.

이런 행위가 유럽 곳곳에서 점점 잦아지고 있다. 독일이직접 발표하는 사보타주 혐의 총살 건수만 봐도 그렇다. 노르웨이에서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유럽 곳곳에는 독일 통치의 본질을 깨단고 목숨을 바쳐 나치 체제를 무너뜨리겠다.
는 용감한 이들이 존재한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이후 자주 볼 수 있다. 스페인 내전을 예로 들어볼까? 종종 공화군전선 안쪽으로 날아든 포탄이 폭발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포탄을 열어보면 그 안에 화약 대신 모래나 톱밥이 들어 있었다. 독일 또는 이탈리아 군수 공장 어딘가의 이름모를 노동자가 한 일이다. 단 한 발의 포탄이라도 좋으니그의 동지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자기 목숨을 걸었다는 뜻이다.
- P144

전쟁은 원래 야만적이다. 차라리 인정하는 게 낫다. 우리가 야만인이라는 걸 먼저 인정해야 문제를 개선할 엄두라도 낼 것 아닌가.
- P155

전쟁에 임하는 어떤 국가는 자국의 어린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공습에 의한 아동 사망률은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볼 때 낮을 거라 예상한다. 여자들이 아이들만큼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여자 살상을 더 맹렬히 비난하는 건 순전히 감상벽일 뿐이다. 어차피 살인 자체는 인정하지 않는가. 여자를죽이는 게 남자를 죽이는 것보다 왜 더 나쁘다는 건가? 

사람들은 여자를 죽이는 건 번식 개체를 죽이는 거라고 말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희소가치가 높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인간을 짐승과 마찬가지로 교배시킬 수 있다는착각에 기인한다. 종자용 숫양 한 마리가 암양 수천 마리를 수정시키듯 남자 한 명이 수많은 여자를 임신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남자 한 명의 목숨 가치는떨어진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간은 가축이 아니다.  - P160

재앙에 가까운 기근과 1917년의 혁명으로 러시아에서는 수백만 명에 달하는 고아가 생겼다. 떠돌이 생활을 하던 고아들은 강도나 살인을 저지르며 악명을 얻었다.
- P167

최근에 또 다른 신문은 하리코프에서 러시아인에 의해교수형을 당한 독일인의 시신이 밧줄에 매달린 모습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독자들을 위해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처형 광경은 영상으로도 촬영됐으며 독자들은 가까운 시일 내 뉴스 상영관에서 이를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아이들도 입장이 가능했는지 궁금하다). 이쯤에서 예전에인용한 바 있는 니체의 말을 다시 인용해야겠다.

[괴물에 맞서 너무 오래 싸운 이는 
그 자신이 괴물이 되고 만다.

심연을 너무 오래 응시하다 보면 
어느새 심연이 그를 응시할 것이다.]

여기서 ‘너무 오래가 의미하는 바는 아마도 ‘괴물을 물리친 이후까지‘가 아닐까.
- P169

전쟁 전에는 자유형 레슬링의 광적인 애호가, 태형을 금지하면 안 된다며 정치인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는 사람들,
《고문실의 쾌락》 같은 제목의 책을 찾아다니며 중고 서점직원들을 겁먹게 했던 사람들의 경우 주변으로부터 매우불쾌한 의심을 사곤 했다. 당사자들도 자기 내면의 욕구를인지하고 다소 수치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다르다. 이제는 메스꺼울 만큼 고문과 학살을 자세히 묘사한 글을 누구나 탐닉해도 된다. 죄책감 따위 느낄 필요 없다. 나아가 자신이 칭찬받을 만한 정치 행위를 수행하는 걸로 여겨도 문제없다.

지금 전해지고 있는 나치의 잔학 행위가 거짓이라는 게아니다. 난 대부분 실화라고 믿는다. 독일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잔혹 행위들은 전쟁 시작 전부터 있었고, 지금이라고해서 그만두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언론이 이런행위를 일부러 과장 묘사하면서 포르노를 지면에 싣기 위한 구실로 삼는다는 것이다.
- P178

오늘 아침 신문에는 나치의 잔학 행위에 관한 영국군 측보고서가 일제히 보도됐다. 이들은 나체의 여성들이 채찍질을 당했다는 정보를 공유하면서, 때로는 그 세부 정보를헤드라인에 올려 강조했다. 당사자인 언론 기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셀 수 없이 많은 독자가 고문을 떠올리며 사디스트적인 쾌감을 느끼는걸 안다. 특히 여성을 고문한다고 할 때 그렇다.
- P178

한 독자가 집중 폭격 전략에 대한 내 의견에 거세게 반발하면서 자신은 절대 평화주의자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놈들은 혼쭐나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단지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야만적인 전투 방식에 반대하는 거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누군가를 ‘독일놈Huns 이라고부르는 것보다 그들에게 폭탄을 떨어뜨리는 게 덜 해로운행위다. 그 누구도 일부러 사람을 죽이거나 상처입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죽음 그 자체가 마치 이 세상에서가장 심각한 일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데 나는 공감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100년도 채 안 되어 자연사로 죽지 않나.

진정한 악은 상대가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행위다.  - P180

전쟁이 문명의 본질을 파괴한다고 할 때 단순히 물리적 파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 때문도 아니다. 전쟁은 증오와 거짓을 확산시킴으로써 문명의 본질을 파괴한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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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2-02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쉽게 풀어 썼군요.
제가 오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흥미가 생기는 걸요. 흠....

청아 2021-02-02 13:09   좋아요 1 | URL
네! 기자로 일하면서 올린 내용들인데 이해하기 쉽게 쓰곤 했대요. 당시 영국의 분위기와 정세를 느낄 수 있어요. 오웰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니 안타깝지만 뭔가 글의 분위기가 팔스타프님하고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촌철살인 뭐 그런느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