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열아홉 살의 버지니아 울프는 오빠 토비에게 "난 시커멓게 될 때까지 책을 읽고 싶어."라고 말했다. 토비는 당시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버지니아는 집에서 아버지의 서재에 파묻혀 책들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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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의 파리는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으로 몰려가 정치범들을 풀어준 혁명의 도시였을 뿐 아니라, 책 읽는 여자들의 도시였다. 독일의 한 여행자는 이렇게 증언한다. "파리에서는 모두가,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이 주머니에 책을 넣고 다닌다. 사람들은 마차 안에서, 산책길에, 극장에서, 휴식 시간에, 카페에서, 욕실에서 책을 읽는다." 새로 나온 책은 특히나 높은 인기를 누려서 책을 삼등분해서 빌려주어야 할 정도였다. 혁명이 일어난 건 혹시 책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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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는 곧 야누스의 얼굴을 드러내었다. 책 읽는 여자들은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고, 교사나 교육자, 나아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유제니 존도 그랬다. 군주의 성에 고용되어 책 읽어주는 것을 업으로 삼던 유제니 존은 E. 마를리트라는 필명으로 여성잡지 <가르텐라우베>에 소설을 연재하여 엄청난 독자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와동시에 책 읽는 여자를 매도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19세기는 소설을읽는 것이 간통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물론 여성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엠마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 에피 브리스트는 문학에 등장하는 유명한 간통녀이자 이런 남성적 강박관념의 희생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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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은 더 이상 멈추지 않았다. 책 읽는 여성들은 출판업자가 되었고, 책방을 열었으며, 금지된 소설들을 불법으로 인쇄했다. 제임스조이스의 《율리시즈 Ulysses》처럼 문학성은 높지만 음란하다고 치부된책들이었다. 

1950년대, 금발의 멍청한 섹스 심벌의 이미지가 탐탁지않은 마릴린 먼로는 사진작가로 하여금 자신이 <율리시즈>를 읽는장면을 찍게 했다. 두 세계가 합쳐지는 시점이었다. 문학 역시 수영복을 입고 독서를 하는 마릴린의 후광을 누렸다. 바야흐로 책 읽는것은 섹시한 행위가 되었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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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1-27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제가 가진 벽돌책 일인자는 율리시즈 였는데..... 읽지도 않고 팔아버렸지 뭡니까. 올려주신 인용문 읽으니 율리시즈를 다시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청아 2021-01-27 13:31   좋아요 0 | URL
어머 혹시 검정바탕에 제임스 조이스가 우수에 찬 굉장한 미남자로 나온 그 벽돌말씀이신지? 도서관에서 들어보고 살펴보고 많이 놀랐어요!

다락방 2021-01-27 13:39   좋아요 1 | URL
네, 바로 그 책입니다!
저는 그거 회사로 주문했다가 집에 가져가면서 쌍욕을 했더랬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기껏 가져갔다가 팔아버리다니, 저도 참... 에휴-

청아 2021-01-27 13:56   좋아요 0 | URL
앗ㅋㅋㅋㅋㅋ아 그 책 품절이라 지금 가격도 더 높을꺼예요! 저도 그책 갖고싶었는데ㅋㅋㅋ락방님 너무 재밌어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