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여러 사람들의 추천이 있어 관심을 가지던 차에 어머니집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발견하고 집에 가져왔다. 오후에 아이들이 학원에 가고 집에 홀로 남아 있는 시간에 읽게 된 책.
작가는 아주 천천히 읽길 바랐지만, 주인공에게 몰입하여 빠르게 읽히는 책.

새삼스런 강조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못한 풍요가 숨어 있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모를 죽인 겨울이 지나고 봄은 무르익어 사방에 꽃향기가 난만했다. 겨울이 있어서 봄도 있을 수 있다.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 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죽기 전에는 아무도 인생의 별볼일 없는 삽화들을 멈추게 하지못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액자들 안에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을걸어 놓으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가 요조의 이름의 기원에 대해 듣다 알게 된 책
전도연과 류준열이 찍은 드라마 인간 실격을 보며 다시 한 번 내 마음에 와닿은 책
소설을 잘 읽지 않지만, 전주에서 읽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인상 깊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도 읽게 되었다.(두껍지 않아 손이 가기 쉬웠다고나 할까?)
세상에 무슨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지극히 공감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인간은 모두 제각각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어떤 부분에서 유사한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다자이 오사무의 자서전같기도 한 책. 그래서인지 지어낸 이야기라기보단 자신의 경험을 일대기로 써내려 간 것 같아 더 몰입하게 되었다.
자기 파멸, 멸망

비합법. 저는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즐겼던 것입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합법이라는 것이 오히려 두려웠고(그것에서는 한없는 강인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구조가 불가해해서, 도저히 창문도 없고 뼛속까지냉기가 스며드는 그 방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바깥이비합법의 바다라 해도 거기에 뛰어들어 헤엄치다 죽음에이르는 편이 저한테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 같습니다.
‘음지의 사람‘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는비참한 패자,또는 악덕한 자를 지칭하는 말 같습니다만,
저는 태어날 때부터 음지의 존재였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 세상에서 떳떳하지 못한 놈으로 손가락질당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다정한 마음이 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 ‘다정한 마음‘은 저 자신도 황홀해질 정도로정다운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늘 인간에 대한 공포에 떨고 전율하고 또 인간으로서의제 언동에 전혀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고뇌는 가슴속깊은 곳에 있는 작은 상자에 담아두고 그 우울함과 긴장감을 숨기고 또 숨긴 채 그저 천진난만한 낙천가인 척 가장하면서, 저는 익살스럽고 약간은 별난 아이로 점차 완성되어 갔습니다.
뭐든 상관없으니까 웃게만 만들면 된다. 그러면 인간들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삶‘이라는 것 밖에 내가 있어도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몰라. 어쨌든 인간들의 눈에거슬려서는 안 돼. 나는 무(無)야.바람이야. 텅 비었어.
그런 생각만이 강해져서 저는 익살로 가족을 웃겼고, 또가족보다 더 불가사의하고 무시무시한 머슴이랑 하녀들한테까지도 필사적으로 익살 서비스를 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 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다자이가 자기 자신을 직설ET적으로 드러내기에는 너무 부끄럼을 타는 작가였다는 사실, 그의 소설이 늘 자전적 사실의 변형이었다는 점에서지나치게 자전에 결부시킨 접근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이 작품에 접근하는 데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벌」을 유의어가 아니라 반의어로 수용하거나 ‘여자‘의 반의어는 ‘꽃’이고 유의어는 ‘내장‘으로 생각하는 작중의 반대말 맞히기 놀이를 해독하는 것이 더 유효할 것이다. 와타나베 요시키, 도고 가쓰미 등의 다자이 연구가는 세상을합법적 세계에 속하는 남성 세계와 비합법적 세계에 속하는 여성 세계로 나누어, 사회의 실세를 형성하고 있는 남성 지배 세계에서 소외된 주인공 요조가 결국은 어느 세계에도 귀속하지 못하고 인간 실격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증명해 보이고 있다. (『작품론 다자이 오사무』,
1976) 한편 오쿠노 다케오는「인간 실격」한 편 때문에「다자이 오사무론」을 쓴 것이라고 전제한 후, "나는 ‘서문’ 을읽고 나서 이 작가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깊은 고뇌에찬 인생을 경험한, 통상적인 인생과는 완전히 다른 심각한정신 생활을 영위한 인간임을 느끼고(중략)그 확신하에이 평론을 썼다."라고 하고 있다. 타산과 체면으로 영위되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세상과 확고하게 틀 잡힌 듯한 사회 질서의 허위성, 잔혹성을 「인간 실격」만큼 명확하게 드러낸 작품도 드물 것이다. 어떻게든 사회에 융화하고자 애

쓰고 순수한 것, 더럽혀지지 않은 것에 꿈을 의탁하고 인간에 대한 구애를 시도하던 주인공이 결국 모든 것에 배반당하고 인간 실격자가 되어가는 패배의 기록인 이 작품은그런 뜻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예리한 고발 문학이라 할수 있다. 넙치와 호리키가 드러내는 상식적인 인간상의 (적어도 그들은 이 사회에서 당당히 존재 가능하다.) 추악함은,
그 틀에 젖어 무감각하게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성을 촉구한다. 인간성이 상실된 현대 사회가 멸망해 가는 도정에있음을 이 작품만큼 명백하게 제시해 보인 작품은 없다고할 수 있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성 없는 사회는 결국 소돔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조의 고뇌를 인정할지하지 않을지가 다자이를 받아들일지 부정할지를 가름하는기준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어 실력은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어휘도, 문법도, 발음도 한참 부족하지만 나의 피드백은 나 ‘이길보라‘만이 줄 수 있었다. 아시아, 한국에서 자라 작업 경험을 쌓아온 나만이 줄 수 있는 의견과 코멘트. 그것이 유용한지 아닌지는상대방이 결정할 몫이었다. 물론 나의 의견이 토론을 유용하고 효과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는지 역시 고민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러자 교수가 말했다.
"습관을 바꾸는 건 쉽지 않죠. 그런데 꼭 습관을 버리고 뜯어고쳐야만 할까요? 훌륭한 습관이 있다면 그걸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자신이 기존에 해왔던 방식과 방법론에는 분명히 장점이존재해요. 그걸 취해서 관점을 바꿔 다르게 접근하면 또다른 방법론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방법론을그냥 버리려고 하는 거죠?"
그는 내가 해온 이전 작업을 잘 들여다보라고 했다. 나는 그작업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미 책으로 출간되고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그건 ‘성과물‘과 ‘결과물‘이 되어 마침표를 찍은 거라고,
그러니 새로운 프로젝트와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교수는 예술적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했다. 당신이 제일 관심 있는 건 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걸 어떤고민으로부터 시작했고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었는지에 대한과정이라고 말이다.
나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들여다보기. 그는 어쩌면 그 주제가 나에게는 ‘침묵‘일 수 있다고 했다.

영과 관련한 홍보 글을 올려야 하는데 죄책감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 사건으로 희생자 및 생존자 유가족들을 비롯해 모든 국민들이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영화 만들었다고, 영화관에서 상영하니 보러 오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이야기 역시 중요했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장애 문제 역시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세월호 참사 사건과 관련하여 어떤 일도 하지 못했다는생각은 역시 나를 괴롭게했다. 광화문 부근에서 일이 생길 때면버스가 아닌 지하철을 탔다.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월호 추모 부스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국가가 구하지 못한 혹은 구하지 않은이들을 위해 슬픔과 아픔을 딛고 그곳에서 진상 규명을 위한 농성과 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이 대단하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국가‘란무엇인지에 대한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그곳에 갈 용기조차 쉽게 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럽고 죄송했다.
몇 달 후 내게 그곳은 영화 <기억의 전쟁>을 계속해서 제작해야할 이유가 생긴 장소가 되었다. 영화 <기억의 전쟁>은 1960년대 미국의 동맹군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둘러싼 기억을 다룬다. 한국은 이 전쟁을 통해 막대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정부가 부인하고 있는 학살 사건들이 존

재한다.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오빠와 단둘이 살아남았던 응우옌티 탄은 그때의 기억을 증언하고 한국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 영화는 그의 용기 있는 여정을 좇으며 학살을 둘러싼 이들의서로 다른 기억과 태도를 보여준다. 그렇게 전쟁은 50년의 세월을지나, 기억의 전쟁이 된다.

"이 영화는 한국군이 참전한 베트남전쟁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 세계의 모든 인간들은 계속다른 형태의 ‘전쟁‘을 일으키고 그 기억 속에서 살아가죠. 그럼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궁극적으로 ‘기억‘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직 그 질문이 안 보여요. 그러나 희망은 이 영화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거죠."

그후 내가 한국에서 습득한 몸의 동작들을 돌아보았다. 늘 주변을 신경쓸 것, 겉모습을 단정히 할 것, 다리를 벌리지 않고 앉을것,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할 것, 화장할 것, 치마를 입을 것, 긴 머리 스타일을 고수할 것, 성별에 맞게 행동할 것. 이른바 정상성의몸 되기. 내 몸이 체화하고 있는 동작들은 결국 시스템을 유지할수 있는 몸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나 혹은 우리의 몸은 그걸

지속하며 이 시스템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묻어야만 했던기억들을 떠올렸다. 그건 여성의 몸에 대한 질문이었고,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와 연결되었다. 나는 나와 엄마, 할머니의 임신중지 경험을 소재로 영화를 통해 우리 몸의 기억을 드러내기로 했다.
작업은 쉽지 않았다. 마지막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촬영을 하러 한국에 갔다. 스튜디오에 엄마와 할머니를 불러 인터뷰를 했다.
꼭 하고 싶은 작업이었지만 동시에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이었다. 감독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딸이자 손녀로서는 하고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할머니에게 몸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그들의 임신중지 경험에 대해 물었다. 할머니는 "박정희 정권 때는 실제로 인구 조절을 하기 위해 낙태 수술이 빈번하게 이루어졌고 당시에는 쉬쉬하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했지만 엄마는 말하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나는 그럼에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엄마를 설득했지만 사실 그러고 싶지 않기도 했다. 나는 나의 임신중지 경험을 공유했다. 할머니는 놀랐고 엄마는 듣고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질문했다.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태어난 여성들이고 나는 엄마의 몸으로부터, 할머니의 몸으로부터 나왔는데왜 우리는 각자의 임신중지 경험을 공유할 수 없는지. 여태껏 발화되지 않고 몸 어딘가에 묻어둔 기억들은 이상적인 몸을 갖추기를요구하는 국가·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는 인터뷰 영상

연결되었다. ‘몸‘의 서사를 통해 국적과 문화를 뛰어넘어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우리의 몸은 나와 엄마, 할머니의 기억에서 출발해 개인의 몸을 통제해온 한국 사회의 역사, 더 나아가 제1세계가 제3세계 국민의 신체를 어떻게 통제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영화가 될 것이다. 이 작업은 기존의 관념과 통속을 벗어나야 하기에,
한국과 네덜란드가 공동으로 제작하는 방식으로 프로덕션을 꾸리고 있다. 내후년 정도에는 <우리의 몸이 또다른 ‘우리의 몸‘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영화를 통해 나와 엄마의 몸, 할머니의 몸,
우리의 몸에 대한 여정을 계속 해나가면서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에 대해 질문해가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도 금속 피로가 생기고 나서 진정한 인간이 된다

이건 내가 최근에 만든 아포리즘인데, 나 자신도 이 문장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인간도‘의 ‘도‘에 대해서 설명하기가어렵다. ‘인간은‘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 일률적으로 단정해 버리는 꼴이 된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일도양단해서는 안 된다.

‘금속피로‘는 예전에는 들어 본 적 없는 말인데, 지금은 사전에제대로 실려 있다. 사전에 의하면, "진동의 반복으로 인한 금속의열화 현상으로, 표면에 난 흠집이 진동의 증가로 약해져서 결국파괴되는 것을 말한다.
참으로 친절하고 공손한 설명이다.
나 같은 사람이 금속이라는 말을 듣고 떠올리는 이미지라면, 더할 나위 없이 강한 것 혹은 금강불괴 같은 말이다. 그런데 금속에도 흠집이 날 수 있고 균열이 커지면 끝내 파괴될 수도 있다니.
인간도 긴 세월 살다 보면 온갖 고난과 고생이 켜켜이 쌓인다.
몸이 상해서 마음이 약해지는 건지 마음이 상해서 몸이 약해지는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게 말하자면 ‘열화 현상‘이다. 쉽게 말해서,
몸과 마음이 엉망이 된다는 의미다. 어린 시절 분별없이 치솟았던콧대가낮아지기 시작한다.(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그러다 보면 어미에 ‘・・・・‘ 혹은 ‘?‘가 붙는다.
또 섣불리 단언하거나 확언하지 않는다.
하물며 호언장담 따위는 가당치 않은 일이다. 허풍 떨며 큰소리치다니,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싶다.

옛날에는 사리분별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럴듯하게 꾸며서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인간을 보면 배알이 뒤틀렸고 철저하게 따져물어서 흑이냐 백이나 결착을 지어 찍소리 못하게 만들려고 했다.(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적당히, 정도껏 하면 되잖아.‘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속으로는 ‘거짓말 하지 마‘라고 생각하지만 이내
‘적당히 상대해 주지 뭐.
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저 인간의 실체를 까발리겠다는 되바라진 행동은 하지 않는다.
‘모나면 정 맞게 돼 있다고 하잖아.‘
라며 앞날이 읽히기 시작한다. 바로 이것이다.
금속피로는 열화 현상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앞날이 읽힌다‘는장점도 가져온다.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이 어느 정도 식견을 넓혀준다.
그 식견이 무엇인가 하면 ‘눈감아주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 ‘모르는 체하다‘라는 생활 방식의 발견이다. 세상은 복잡하게얽혀 있고 끌고 끌리다 보면 누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교만해서도 안된다. 그 중간에서 균형을 잘 잡는 것도 어른의 수행이다.

그렇다면 열화세대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어른 아닐까.
이제는 앞서 말한 ‘인간도 금속피로가 생기고 나서 진정한 인간이 된다‘라는 아포리즘의 의미를 이해하셨을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나는 진짜와 가짜를 ‘어른‘이냐 ‘어른이아니냐‘로 구분해 생각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딱히어른이 아니어도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의견또한 좋다. 하지만 역시나 어른이 아닌 쪽보다 어른인 쪽을 대하는 게 훨씬 편하다.
지금까지 한 말을 전부 실행하지는 않더라도 피부로 느끼고 있고, 꿈이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으며, 모든일을 좋게좋게 정도껏 해결하고 적당히 응대하면서 동쪽에 가서는 "그냥 눈감아 주자"고 말하고, 서쪽에 가서는 "그냥 모르는 척해 줘"라고 말하며, 남쪽에 가서는 "고생은 피해"라고 말하고, 북쪽에 가서는 "옛날에 당한 억울한 일 있으면 어디 가서 얘기해 봐.
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있어 하는지 몰라"라고 말한다.
어른의 꿈 중 최고는 "무덤에 가까워진 늘그막의 사랑은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라고 노래한 가와다 준의 <늘그막의 사랑老5<2>이다. 너무 이상적이지만 뭐 꿈은 꿈이니까. 젊었을 때처럼

이 핑계 저 핑계 대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고 기를 쓰지도 않는다. 그건 인간의 한계를 알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게 뭐가 재미있냐며 미심쩍은 눈으로 보지만, 내심 빙그레 웃으며 의외로 인생을 즐기며 산다. 그렇다면 금속피로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 하며 계산기를 두들겨도 숫자가 맞지 않을 때, 암담한 기분으로모두가 의욕을 잃은 바로 그때, 베테랑 선배가 내뱉는 한마디.
"나머지는 내일 하자. 이정도면 됐어."
그야말로 절대 권위의 한마디다. 지금까지의 노력을 인정하고높이 평가하면서도 그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고 앞날에 대한 희망까지 어렴풋이 드러내는 말이다.
오사카에서는 의사도 그런 말을 자주 한다. 우리 같은 비전문가는 실제 의료 분야를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수술은 진인사대천명과 같은 상황에 놓일 때가 많을 것이다. 오사카에 사는 어느 명의는 수술이 끝날 즈음 입버릇처럼
"이 정도면 됐어."
라고 말씀하신다고 한다. 그 말은 아마도 ‘인간의 지혜와 손으로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하간 ‘이 정도면 됐어‘에는 나 자신을 객관화하고 그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 ‘하느님‘은 짓궂기 때문에 이해심이 부족하다. ‘우는 아이와 하느님은 당해 낼 수가 없다‘고 말할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써 보고 어느 지점까지 왔을 때
"이 정도면 됐어."
라며 단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 선생님은 모두가 잊어버린 누군가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입니다.가까운 과거나 먼 과거를 지키는 사람, 과거의 수호자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옜날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 다시 말해 학생들이 옛날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지나간 일을 최대한 자세하게 묘사하여 옛날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또록 돕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 공부의 기본은 관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관찰하는 법을 배우고 나면 현재로 돌아와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전화나 영화, 텔레비전 등은 예전에는 없었는데 이런 물건들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역사에는 긴 시간과 짧은 시간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전혀 변하지 않거나 무척 느리게 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래된 관습은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면서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이나 사고도 있습니다. 역사는 쉽게 변하지 않는 매우 긴 시간과 놀라운 변화가 계소되는 매우 짧은 시간이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이 긴 시간과 짧은 시간 중 어느 시간을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는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 수십 개의 이유 찾기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알려면 하나의 이유가 아니라 수십 개의 이유를 연결 지어서 설명해야 합니다.
바람직한 역사 수업은 모든 학생들이 어떤 사건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되는 수업을 말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적 사건을 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 역사를 배웁니다. 따라서 역사 교사는 아이들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학생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없거나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역사 교사는 사건의 진실을 가르칠까요?
선생님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을 가르칩니다. 이 진실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나라에 따라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역사를 가르치는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하기
역사학자의 사고 과정 탐구 추론?
나를 알아가는 하나의 밑바탕으로서의 역사.
그렇다면 어떻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