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싫을 때 읽는 책 - 마감과 고갈 사이에서 건진 스물네 개의 문장들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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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가 쓰기 싫지만 끝끝내 써주어서 고맙다. 작가가 쓴 이런 글들이 꽤 크게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흔히 야구를 확률 게임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떤 팀은 전체팀 가운데 절반이 진출하는 50퍼센트 확률의 포스트시즌에 10년 연속 진출하지 못했고, 반대로 한국시리즈 1차전에뼈아픈 역전패를 당한 뒤 25퍼센트의 확률을 뚫고 우승하기도 한다. 오해하면 안 된다. 우승은 물론 기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승이 절대적인 건 아니다. 인생을 바꾸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고, 절망에서 구원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닌 것처럼.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우승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있다. 심지어 29년 동안 우승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우리는 계속해서 응원한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마음 졸이고,
간절히 바라고,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다시 안 볼 것처럼 돌아섰다가도 끝내 돌아보면서 글을 쓰는 일도, 인생을 살아가는 일도 결국 비슷한 게 아닐까? - P-1

우리는 의미 없는 데서 의미를 찾는다. 모든 것에는깔끔하고 질서정연한 계획이 있다는 미신에서위로를 얻고 도움도 받을 수 있으나, 이 말은 사실이아니다. 그저 유용하고 우리를 안심시켜 주는 허구일뿐이다. 아무리 중요하거나 부아가 치밀거나 끔찍한일이 있더라도,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질 뿐이다.
이것이 상호 연결된 혼돈스러운 세계에서 맞이할필연적인 결과다. 사고와 실수, 그리고 무엇보다임의적이고 중성적인 변화가 생물종을 창조해내고, 사회를 형성하며, 우리의 삶을 바꾼다.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 2024, 브라이어인 클라스


어차피 다 의미 없으니 아무래도 좋다는 게 아니다. "우리는 그 무엇도 통제할 수 없지만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라•는 클라스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고 깊이 얽혀 있기에 역설적으로 순간순간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과 행위는중요하다. 다만 그것이 우리가 기대한 방식대로 의미 있는 게아닐 뿐이다. - P-1

누군가 사랑하는 대상에 관해 열정적로 털어놓는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 P-1

하지만 정말 좋은 책을 읽었는데 마침 그 책을 쓴 작가가친한 친구라서 전화를 걸고 싶을 때 언제나 걸 수 있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내게는 그런 친구들이 있고 그래서 좋다.
그러니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 주변에 혹시라도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들의 글을 읽고 응원해 주는 것이다. 세상엔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칭찬보다는 정확한 비판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에 그 말은 틀렸다. 일단 정확히 비판할 수 있는사람 자체가 많지 않을뿐더러, 아무리 정확한 비판이라도 따뜻한 격려만큼 힘을 주진 않기 때문이다. 칭찬이 필요할 때와비판이 필요할 때는 따로 있는데, 비판이 필요한 건 훨씬 나중의 일이다. - P-1

그러다가 "우리의 예술 여정 전체는 우리가 사실은 충분히가지고 있다고 믿고, 무엇을 가졌는지 파악하고, 그런 다음에그것을 다듬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라는 미국 작가조지 손더스의 문장 앞에서 눈길을 멈췄다. 곧이어 어떤 생각이나를 찾아왔다.
우리가 사실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믿어야 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자꾸 더 채우려고 들기 때문이다. 집 안을잠식한 책 때문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계속해서 책을 사는 내가 그렇듯. 일단 믿은 다음에야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파악할수 있다는 뜻으로 그 문장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일단 믿고, 그런 다음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헤아려 보았다.
결국 다음이 내가 가진 것이었다 엑셀 파일 속 문장들,
글쓰기와 맺어 온 오랜 관계, 글쓰기를 어려워하지만 그럼에도 좋아하고 계속 쓰고자 하는 마음 같은 것들. 그렇다면 이제내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다듬는 작업이다. 다른 것을 가질수도 있었을 텐데, 더 많이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은 아무 소용이 없다. - P-1

30년이 넘은 배우인데, 공백을 갖고 새 작품을 딱 들어가기 전에
‘잠깐만, 연기를 어떻게 하는 거였지?‘ 하는 순간이 있어요. 완전 막막해지는 백지의 상황이 되는 순간이 있어요"
실제로 그는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을 앞두고 박찬욱감독을 만나 못하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로부터 별써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여전히 새로운 작품 앞에서막막해진다는 고백이 묘하게 반가웠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잠깐만, 글을 어떻게 쓰는 거였지?" 괴로워하는 16년차 전업작가가 여기에 있다며 손을 흔들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조금 덜괴로울 수는 있다. 내게는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확인이 필요했다. 내가 좋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각해 보면, 시작은 늘 백지다. 덧쓰기는 가능해도 첫 문장은 언제나 새로 나온다. 그러니 백지가 되는 건 결함이 아니라 조건이고, 매번 새로운 글을 쓰려면 매번 백지로 돌아가야!
한다.
"다만 시간이 쌓이며 두려움에 대처하는 일에 조금 능숙해지기는 한다. 두려움이 스물스물 올라오면, 이제 나는 진짜로 도망친다. - P-1

하지만 이 모든 일에도 교훈은 있다. 이 경험을 통해 언제부턴가 늘 나를 괴롭히던 ‘시간‘이라는 것을 조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라는 말이 대부분 사람에게 통용되는 인생의 보편적인 단계 같은 게 있어서, 그때그때 시기마다 적합한 일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다시 하기는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안다. 그건 우리가 모두 다르듯 우리의 시간도 서로 달라서, 똑같은 일이라도 개인마다 적합한 시기가 다르다는 의미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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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독서 - 보는 인간에서 읽는 인간으로
유광수 지음 / 북플랫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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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앞에서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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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용기를 엿보았다. 언젠가는... 나도

어려서부터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솔직하기를 바랐고 그래서 내 존재가 조금 더 가벼워지기를,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랐다. 돌아보니 그소망은 정확하게 내 결여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신이 결여한부분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일까. 누군가를 진짜로 사랑하며 사는 사람은 사랑이라는 관념을 습관적으로 입에올리지 않고 용기 있는 사람은 그게 용기인 줄도 모른다.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인생이니 삶이니 같은 말에 관심이 없다.
내가 용기나 자유 같은 가치에 끌렸던 건 내가 비겁하고 부자유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 P-1

언제쯤 삶은 결코 통제할 수 없으며 삶의 사건들은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제쯤 모든 규칙을 깨고 펼쳐지는 삶의 불규칙성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연약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제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일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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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에게 말 걸기 - 옆 사람과 대화하면서 세계를 바꾸는 방법
박동수 지음 / 민음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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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대화는 동료를 만든다는 사실.
그들도 우리처럼이 아니라 우리도 그들처럼

말의 계보를 추적하는 일은 상대를 더 깊이 이해하게해 준다. 이때 대화란 현재 순간에 일어나는 일로만 축소되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타자의 것이며, 그것을 자기 방식대로 사용할 때조차 여전히 타자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매여있다. 순간의 말 속에 긴 역사와 감정의 연쇄가 들어 있다.
그 연쇄를 따라갈 수 있을 때, 대화 상대자와 더불어 더 나은 대화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 P-1

가까운 사이인 두 청년 남성 사이에서도 말은 끊임없이 어긋나고 질문은 공회전한다. 책도 뚜렷한 결론을 내놓진 못한다. 변명 들어주기로 끝난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한 말 걸기의 기록은 거듭된 실패를 통해서만 다시 말하는 법을 간신히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한다. 좋은 대화란 서로의 몰이해를 붙들고 끝내 상대를 포기하지 않는 지난한 노력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우진은 다시 살아 보기로 했다고 한다. 대화는 어긋났지만 끝나지는 않았다. - P-1

타인의 인생을 나의 언어로 다시 말하는일은 그 책임과 약속에 내가 얼마나 부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끝없는 시험이다. 그렇게 말의 어긋남과 오해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실패의 자리에 조용히 멈춰 서서 다시 말을 걸수 있는 길을 천천히 찾아 나가는 것이다. - P-1

한번 생각해 보자. 누군가 나에게 고함치고, 여러 사람앞에서 지적하며, 오류의 꼬리표를 붙였을 때 과연 내 생각이 바뀐 적이 있었을까? 아니면 나를 따로 불러 이야기하고, 나와의 관계를 존중하며, 자신도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있다고 고백할 때 비로소 내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올바른 비판을 위해서라도 지지와 돌봄이라는 기본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비판은 공통된 지반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가능하다. 서로 다른 행성에 사는 것 같은사람들 사이에서는 먼저 관심사의 공유가 필요하다. 전면적 거부도 완전한 동조도 아닌, 들쑥날쑥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서 중간 지대에서 타협과 비판의 전선을 함께그려 가야 한다. 그럴 때 지지자인 동시에 비판자가 될 수있다. - P-1

대화란 꼭 그 자리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대화는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좋은 대화가 되기도 한다. - P-1

동료들 덕분에 최근 깨닫게 된 한 가지 답은 이렇다. 우리는 사실보다 먼저 감정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논리와 증거가 아무리 견고하더라도, 그것이 내면 깊은 곳의 감정과공명하지 않으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려면 이 감정의 지층으로 내려가 보아야 한다. 사실과 논리 이전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를 더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P-1

분명한 것은 ‘내가 맞고 너는 틀렸다‘, ‘내가 가르쳐 주겠다‘ 같은 태도로는 상대의 감정이나 존재양식을 바꿀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여러 척도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우리가 지닌 깊은이야기가 현실을 단순화하는 편리한 거대서사임을 직시할수 있다면 타협과 협상은 언제든 가능하다. 결국 라투르가제시하는 탐구의 길은 대화 상대방에게 잘 말하는 기술을습득하는 일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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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라는 세계 -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이해하는 심리학의 지혜
홍순범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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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때에 적절한 책.
오늘의 나를 구한 책.

물론 당신의 세계는 당신 안에 있다. 나에게는 나의 세계가 있다. 모든 것은 항상 각자의 마음 안에 존재한다.
따라서 한 인간의 죽음은 한 세계의 소멸이다. 한 생명을살리는 일은 온 우주를 살리는 일이고, 한 생명을 죽이는 일은 온 우주를 죽이는 일이다.
세상은 광활한 물질의 바다인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런 유물론의 바다 끝에서 만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르니 데카르트의 명제에 다시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내가 하는 경험이라면, 철학적 사유도 그곳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경험한다. 고로 존재한다." - P-1

이 모든 경험을 겪는 자, 즉 ‘나‘는 존재하지만 그 경험하는 자가 대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경험하는 모든것은 경험의 내용일 뿐, 경험하는 주체를 엿볼 순 없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그 어떤 주장이나 이론을 떠올리더라도 그것은 내 머릿속 표상에 불과하다. 즉 경험의 일종이지, 경험하는 자는 아니다. 경험하는 주체를 경험할 순 없을 것이다.
경험하는 주체는 항상 비어 있다. 채워지는 것은 오로지형형색색의 경험일 뿐이다. 하지만 그 경험을 하고 있다는말은, 그 경험을 가능케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비어있지만 존재하는 무엇, 자신은 비어 있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하는, 그래서 형형색색으로 이 세상을 채우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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