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노자 지음, 황유원 옮김 / 윌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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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한계
가르침의 한계
언어로 가르쳐야만 하는 나로 하여금 그럼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답이 없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결국은 자유를 말하는데 아무것도 행하지 않음으로 행하라는 말이 알듯 말듯 헷갈린다.

하늘과 땅은 자애롭지 않으니 우리 인간들끼리라도 서로 친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P-1

대답이 값싸고 즉각적인 시대일수록 주의와 겸손은 귀해집니다. 대규모 언어 모델은 우리의 문장을 완성하지만, 『도덕경」은 우리에게 문장을 불완전하게 남겨두는 법을, 이름 붙이기를 거부하는 것과 함께 앉아 있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욕망이 떨어져 나가고 자유가 숨 쉴 공간을 얻을 때까지 말이죠. 발자취가 많을수록 걷기는 더 쉬워집니다. 여러분과 그 길을 함께 걷게 되길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 P-1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도덕경』의 태도는 환각 현상을 일으켜서라도 늘 대답을 내놓고야 마는 현대의 AI가 지닌 전지적 태도와는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노자는 모든 물음에 ‘나는 모른다‘라고 대답하는 반면, 대규모 언어 모델LLM은 모든 것을 안다는 환상을 고집합니다. 이 대조는 그 자체로 환기하는 바가 큰데, 수용과 겸손이 인간성의 출발임을 일깨워주기 때문이죠, - P-1

하늘과 땅은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 우주는 궁극적으로 너무나도 거대하고, 그 규모가 너무나도 비인간적으로 크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하고, 웃고, 울고, 낳고, 스러지면서도 어떻게 인간적인 규모에서 의미를 붙들고, 별들의 운행과 하나 되는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모든 철학에서 던질 가치가 있는 유일한질문은 바로 그것뿐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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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최진영 지음 / 핀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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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의 복귀는 설레면서도 힘겹다.
작년의 시간들이 귀하고 귀하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도록 나를 비켜세우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노력이 독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나는나를 볼 수 없다. 나는 나를 들을 수 없다. 어떤 사물을 이용해야만, 거울이나 카메라, 녹음 기계를거쳐야만 나를 보고 들을 수 있다. 그것이 과연 나일까? 나로 살면서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내가어떤 사람인지 주변 사람에게 물어본다면 아무도진실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또는 각자의 진실이 다를 것이다. 해줄 말이 없을 수도 있다. 나라는인간에 대해 어떤 정의도 내려본 적 없을 테니까.
일단 나는 그렇다. 주변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정의하지 않는다. 그냥 같이 산다. 다투고 오해하고착각하고 아끼면서.
"작가님은 어떤 어린이였나요?"라는 질문에 횡설수설 대답한 적이 있다. 나는 어떤 어린이였을까? 좋은 기억보다는 부끄럽거나 지우고 싶은 기억이 많다. 잊고 살던 옛일이 느닷없이 떠오를 때가 있고 나는 뒤늦게 그 시절을 이해한다. 내가 왜 - P-1

그런 사람을 만났는지, 왜 그런 말을 했고 그렇게행동했는지, 그 시절 나의 진심을 뒤늦게 알아챈다. 당시에는 앞모습만 볼 수 있었다면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옆모습과 뒷모습까지 볼 수 있는 것처럼. 현재를 결과로 두어야만 과거의 일이 설명가능할 때가 있다. 과거는 언제나 나를 기다린다.
돌아보고 조립하고 해석해서 제대로 정리하고 의미를 채워주길 바라고 있다. 현재를 실시간으로이해할 수는 없다. 기다려야 한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보기를…………. 그런데 나는 어떤 어린이였을까? - P-1

여전히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지만 이십 대처럼불안하지만은 않다. 그때보다는 한결 부드러워진것 같다. 나이 들고 짐은 늘고 책임도 더해졌지만마음은 가벼워졌다. 어쩌면 이십 대 때는 더 큰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버리고 줄이고 포기했는지도모른다. 더 값진 것으로 채우기 위해 비웠을 수도있다. 지금의 내가 그때보다 가벼워졌다면 그때의 - P-1

내가 충분히 무거운 존재로 살았기 때문이다. 싸우고 포기하고 방황했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편과 불안을 자기 몫만큼 떠안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 생각은 그만하고 오늘을 살자. 오늘의 몫을 하자. - P-1

내 삶을 사는 사람은 나뿐이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태어난 이상 이 삶은 내 것이다. 삶을 책장이라고 생각하자. 무슨 책으로 채울 것인가. 삶을 편집숍이라고 생각하자.
무엇을 모을 것인가. 삶을 유서라고 생각하자. 어떤 문장으로 종이를 채울 것인가. - P-1

기억했다. 내가 이야기하는 뜬금없는 ‘그때‘를 진영이는 다 기억했다. 그때 우리를 못살게 굴던 고민들은 모두 지나갔고 지금은 또 지금의 고민이있지만 우리는 이제 ‘고민의 프로‘가 되었기 때문에 프로페셔널하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 진짜 어려운 고민은 판단을 유보하고 두고 볼 수도있다. 우리는 십 대보다는 이십 대가, 이십 대보다는 삼십 대가, 삼십 대보다는 사십 대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십 대를 기대한다. 흰머리를 걱정하면서도 어서 백발이 되길 기대하듯. 십 년 뒤에도 나는 진영이 말을 잘 들을 것이고 평소에는하지 않을 일도 함께 있으니까 할 것이고 바람이거세게 불면 헤엄치듯 두 팔을 휘저으며 걸어갈것이다. 흰머리를 휘날리며 나아갈 것이다. 이미겪은 미래처럼 무리 없이. - P-1

무언가를 집요하게 강박적으로 좋아하던 나는 흐르고 흘러 머나먼 바다로 가버렸다.
이제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들킬까 두려워하는사람.
당신은 모르겠지만 좋아하고 있어요.
잔잔하고 고요하게 홀로 좋아합니다.
이 마음에는 아쉬움이 없고, 이 마음은 시간과함께 사라질 테니.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P-1

어떤 글쓰기는 방 청소 같다. 잃어버린무언가를 찾기 위해 곳곳을 탈탈 털어보는 일처럼느껴질 때가 있다. 무언가를 찾으려고 서랍을 열었는데, 목적은 까맣게 잊고 서랍의 내용물 하나하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그것에 깃든 기억을 새삼스레 되짚어본다. 그렇게 길을 잃고 문장을 이어가다보면 때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글로 쓰지 않았다면,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다면 결코 닿지 못했을 사유에 닿기도 한다. 지름길을 찾으려면 글을 쓸 필요가 없다. 돌고 돌아 가장 먼 길로가면서 다양한 풍경과 존재를 만나고 싶다면 글을쓰는 게 좋다. 자, 글쓰기의 좋은 점에 대해서 충분히 정리했으니 이제 진짜 글을 쓰자. 새로움으로나아가자. - P-1

장편소설은 최근에 흐름을 탄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소설의 3분의 1을 쓸 때까지도 나는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경우인데, 장편소설에는 그 소설만의 분위기가 있다. 분위기를잡아야 흐름이 만들어지고 나는 그것을 따라가며쓸 수 있다. 그 분위기를 먼저 만들어야 하는데, 아니, ‘만든다‘보다는 ‘찾는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것 같은데, 그걸 찾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나는 우왕좌왕하면서 생각한다. ‘이전 장편소설은 어떻게 썼더라?‘ 부질없는 생각이다. 똑같은 소설을 쓰는 게 아니니까. 새로운 소설을 써야 하니까. 이전 글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우왕좌왕했지만 결국 썼다‘라는 경험뿐이다. ‘이번에도 우왕좌왕하다보면 결국 쓰게 될 것이다‘라는 낙관이필요하다. - P-1

요즘은 주문처럼 ‘한번 사는 인생‘이라는 혼잣말을 자주 한다. 나에게 뭔가 당부하고 싶은 것 같다. 한 번 사는 인생,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지금 하고 싶은걸 하자. 지금 먹고 싶은 걸 먹자. 지금 쓰고 싶은걸 쓰자. 하지만 말은 아끼자. 세 번 삼키고 말하자. 실없는 말은 하고 중요한 말이라면 넣어두자. - P-1

당시 선생님은 학생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못본 척, 모르는 척, 기억나지 않는 척하는 어른이었다. 그러다가도 중요한 순간에는 필요한 것을 먼저 헤아렸고 적절한 기회를 마련해줬다. 아주 무심하게, 사무적으로, 그것이 자기의 당연한 일이라는 듯. - P-1

그때의 난 그것들이 선생님의 배려라는걸 전혀 몰랐다. 때로는 걷어찼다. 늦게나마 깨닫는 마음들. 이럴 때 나이 드는 것이 좋다. 당신의나이가 될 수 있어서, 당신의 편에서 그때의 나를바라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 P-1

이기려는 마음이 있어야 이길 수 있다. 그 마음을 품기가 쉽지 않다. 이기려면 오랜 시간 최선을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지면 더욱괴로우니까 그저 적당히 하고 싶다. 잘하고 싶은마음이 힘에 겨워서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 P-1

땅속 깊이 파묻었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나를 너무 괴롭혀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나를 불행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만 같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발로 짓이겨버렸다. 사랑하는 마음이 나를 잡아먹을까봐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적이 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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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삶을 열다
정혜윤 지음 / 녹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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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너무도 사랑하는 작가의 말들이 내게 와닿았다. 하지만 책 속의 말들보다 책의 제목 ‘책을 덮고 삶을 열다‘가 더 내 마음에 박혔다.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 그치만 어떻게???

나는 인생에 딱 한 번 일어나는 덧없는 것들을 너무사랑하고 유일무이한 순간을 의미심장하게 여긴다. 나는이탈로 칼비노가 말한 대로 해답이 아니라 경이로움을즐긴다. 세상은 의미는 모르겠지만 경이로운 것으로가득하다. - P-1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 물음이 전부였다. 이단순한 물음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밀려들곤 했었다.
위대한 계시가 밝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마도위대한 계시가 찾아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대신에 사소한 일상의 기적이나 등불, 어둠 속에서뜻밖에 켜진 성냥불이 있을 뿐이었다. 
ㅡ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 P-1

울프는 삶의 의미는 엄청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그러나 강렬하고 빛나는, 어쩌면충격과도 같은 ‘존재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소중히 여기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 P-1

[---]말하자면,
꽃 한 송이가공격 앞에서 믿기 어려운회복력으로 일어서듯이!
그걸 가만 놔두면한 그루 꽃나무로 자라날 거야.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네그것이내가 되어가는 것이니.
[...]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패터슨 - P-1

두 번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응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더라?
꽃인가, 돌인가?

야속한 시간,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두려움을 자아내는가?
너는 존재한다ㅡ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ㅡ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 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 P-1

‘한 사람을 아름다움의 상태로 되돌려놓다.‘ 나는 이 문장을 처음 읽을 때부터 좋아했다. 에이드리언 리치는 우리가 어떤문장에 끌린다면 그것은 그 문장이 "나를 표현해줘서가아니라, 나의 소망과 요구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라고했다. 나에게는 ‘뷰티웨이‘도 그런 단어 중 하나다. 우리의많은 순간이, 시련이, 갈등이, 혼란이, 삶이 아름다움으로되돌아가는 그 여정에 함께하고 싶다.
아름다움으로 끝날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더 이상 할일이 없다는 무력감이 들지 않는다. 덧없다는 느낌이들지 않는다. 뷰티웨이 의식은 복잡한 개념이지만 그것을경험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우리는 바닷가를 걷는것만으로도, 갈매기가 나는 하늘을 열심히 바라보며
"오늘 하늘 참 이쁘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주변과 조화를이루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주위의 것들과 함께아름다워진다. 참 좋은 순간이다. - P-1

독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책을, 마르고 닳도록 읽은 책을,
늘 곁에 두는 책을 닮아간다. 책이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는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책의 마법이다. 프루스트는 "독서는마법의 열쇠"라는 표현을 썼다. 책이 아니었다면 우리가들어갈 수 없었던 우리 내면의 문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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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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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여기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원할 마지막 기회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종말에 직면한 문명에서 도덕적이며 의미 있는 방책이 딱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인류라는 가족과 우리의 동료 생물들과 아름다운 지구에게 지금까지 저질러온 파괴적인 해악에 대해 어떻게 용서를 구하고 아주 작은 차원에서나마 그 보상을 할지 배우는 것입니다. 최선을다해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할지 배우는 겁니다. - P-1

이웃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어떻게 지내요?" 하고 물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시몬 베유 - P-1

어떤 유명한 극작가의 말이, 정말로 멍청한 인간, 재미없는 인생이란 없고, 기꺼이 마주앉아 듣고자 하면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될 거라 했는데 대체로 맞는 말이라고 본다.  - P-1

‘말하지 않은/말할 수 없는untold‘은 그런 면에서 좋은 단어이다. 물론 이야기하거나 서술되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또한 너무버거워서 말로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하지 않은/말할수 없는 젊은 시절의 이야기. 말하지 않은 말할 수 없는 고통. - P-1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 - P-1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적어도 둘이 있지만, 떠날 때는 오로지 혼자라고 누군가 말한 적이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모든 인간 경험을 통틀어 가장 고독한경험으로, 우리를 결속하기보다는 떼어놓는다. - P-1

아무도 듣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는 형식적인말. 하지만 그의 탓이 아니다. 우리 언어가 거칠고, 속 비고, 말라비틀어져서, 감정 앞에서 언제나 어리석어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것이니까. 고등학교 시절 어떤 선생님이 헨리 제임스가 슬픔에 잠긴 친구 그레이스 노턴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라고 한 적이 있다. 출간된 이래로 공감과 이해를 보여주는 지고한 사례로꼽히는 편지인데, 그조차 이런 말로 편지를 시작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 P-1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헨리 제임스일 수도아닐 수도 있는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 P-1

인간의 재생산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신념이 새로운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사실 고대부터 있었다. 삶은 고행이고,
탄생함으로써 죽음이 생겨나고, 결정권이 전혀 없는 존재를 이세상에 내놓는 일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반출생주의 철학의 주장이다. 그 삶이 한 개인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줄 수 있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한다. 아예 태어나지 않으면 삶의 즐거움을 놓칠 일도 없으니. - P-1

현대의 주요한 반출생주의자에 따르면 어쨌든 더 행복한미래란 환상일 뿐이다. 인간 본성이 주된 문제였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모든 것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인간 종이 아예 달라져야 한다. 인간이란 배울 줄을 모른다. 같은 실수를 거듭거듭 저지른다. "용인할 수 없는 것을 용인하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인간과다른 존재들이 지금 겪는 바를 굳이 겪으라고 하는 건 용인할수 없는 일이죠. 그들 편에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도 거의 없고요."
본인은 자식이 있느냐는 질문에 반출생주의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 P-1

난 학교에서 대체로 사랑받는다고 느꼈어. 정확히 표현할 수는없을지라도 그 감정이 아주 생생해 누군가 내게 이런저런 것을가르쳐주고 싶어하고, 내가 쓰는 글씨나 동그라미와 막대기를이어 그린 그림이나 내가 지은 시의 운율에 관심을 보이는 것.
그게 사랑이었어. 그거야말로 확실히 사랑이었지. 가르치는 일은 사랑이야. 그리고 어떤 면에서 내게 그 사랑이 부모님의 사 - P-1

랑보다 의미가 있었어.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전혀 비판적인적이 없어서 내가 하는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과장하고, 내가들이는 노력은 다 똑같이 칭찬하셨거든. 그리고 성적이 나쁘면시험이나 과제가 너무 어려워서 그렇다고 하셨지. 선생님들과는 달리 부모님들은 노력과 성취를 구분하지 않았어. 하지만 난거기에 속지 않았어. 부모님 말씀은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걸알았기 때문에 선생님들 의견이야말로 중요했지. 어쨌든 우리부모님은 자식의 교육에 일일이 발 벗고 나서는 유형이 아니었어. 그건 선생님들이 할 일이라고 보셨지. 일찍 집에서 글을 깨치는 아이들이 많잖아. 하지만 나는 그 중대한 순간 내 삶의가장 중요한 단계을 학교에 들어가서야 맞이했어.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선생님 이름을 다 댈 수도 있어.
친구가 말했다. 길링스 선생님, 매스 선생님, 로페즈 선생님,
뱅크스 선생님, 골든샐 선생님, 허시 선생님, 코크 선생님, 모두사랑했어. 어릴 때는 선생님들을 모두 사랑했어. 생각했던 만큼좋은 분이 아니었다는 걸 - 사실 꽤 형편없는 선생님이었다는걸- 나중에 깨달은 그런 선생님도, 그분들에 대해서도 여전히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 - P-1

어린아이들만이 맛볼 수 있는 종류의 행복이 있지. 친구가 말했다. 내 말은, 어릴 때는 딱 한 가지에 오롯이 정신을 집중할수 있잖아. 내 생일에 자전거나 강아지나 스케이트를 사달라고 했다고 쳐. 그럼 생일이 다가올 때까지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이잖아. 그리고 그 일이 실제 이루어져 소망을 이루고 꿈이 실현되고 그 무엇도 그것을 망칠 수 없지. 하나만 가져도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잖아. 하지만 어떤 나이에 이르면 그런 느낌-그 순전한 행복감은 오지도 않고, 올 수도 없어. 이제는단 한 가지만 원하지 않으니까. 일단 사춘기에 접어들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아. - P-1

딸애는 왜 그렇지 않았을까 궁금해. 어째서 내가 누린 그런어린 시절을 그애에게 주지 못했을까? 게다가 부모님이 딸애의양육에 큰 역할을 하셨는데, 특히 엄마가 그런데 왜 우리 둘은 이렇게 딴판으로 자라게 됐을까? 내 기억에 난 어릴 때 아량이 있었고 편견이 없었어. 모든 사람을 좋아했고, 비열하게군 적이라고는 없었고,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렸고, 나눌 줄도 알았고, 남의 말을 들을 줄도 알았어. 그런데 왜 이렇게 참을성 없는 인간이 됐을까?  - P-1

하지만 지금 과거를 돌아보고, 선생님들을 떠올려보고, 내 모든행복과 사랑을 떠올려보니, 어째서 난 성인이 된 후 평생 가르치는 일을 멸시했던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 P-1

친구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절대 씻어낼 수 없는삶의 얼룩이라고 표현했다. 어느 때건 예기치 않게 불쑥 밀려드는 슬픔, 특히 행복하고 평온한 순간이면 그렇게 찾아들어 그순간들을 망쳐놓는 슬픔이라고.
할 일을 하면서 어딜 보나 만족스러운 날을 보내다가 별 까닭도 없이 불현듯 그 기억이 찾아들어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돼. 일에 파묻혀 지내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건 체득했지만, 그 때문에 며칠이고 우울에 빠져 있던 때도 있었어. - P-1

모든 걸 용서하고 싶고, 모든 걸 용서해야만 해. 친구가 말했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거야. 살날이얼마 안 남았음을 아는데도. 그러고 나면 그대로 벌어진 상처가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 P-1

금빛 시간, 마법의 시간, 뢰르 블뢰*. 변화하는 하늘의 아름다움을 보며 우리 둘 다 가만히 몽롱함에 잠기는 저녁 시간. 비스듬히 떨어지는 해의 빛이 잔디를 가로질러 올려놓은 우리 발에닿는가 싶더니, 느리고 긴 축복처럼 우리 몸을 타고 올라오면,
만사가 아무 문제 없다고 당장이라도 믿을 수 있을 심정이었다.
달을 보라. 별을 세어보라. 거기 당신은 없는 모든 시간이 그리고영원히 존재할, 세상이 한없이. (조이스) 한없이 풍요롭고 한없이아름다운. 다 괜찮을 거야. - P-1

그게 사는 거야. 그런 거야. 무슨 일이 있건 삶은 이어진다. 영망의 삶. 부당한 삶.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삶. 내가 처리해야하는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 P-1

작가가 쓰는 모든 것이 쉽게다른 식이 될 수는 있겠지만그건 일단 쓰고 나서야 그러하다.
삶이 다른 식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살고 나서야 그러하듯이.
-잉에르 크리스텐센 - P-1

우리가 지금껏 바벨탑 이야기를 잘못 이해해왔다면? 전 애인이 그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보라, 인간들이 한 무리라 하나의 말을 쓰는구나. 이것은 안 될 일이다. 신이 말했다. 저렇게하나라면, 인간들이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도시를 만들고 하늘에 닿는 탑을 짓는 데 성공할 수도 있다. 정말이지, 전지전능한그분은 공통된 언어가 있으면 인간이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알았다. 이 끔찍한 일을 막는 방법은 하나의 언어 대신 여러 언어가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셨다.
그런데 실은 신이 거기서 더 나아간 거라면 서로 다른 언어가 단지 서로 다른 종족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마치 지문처럼, 개별 인간들에게도 주어진 거라면. 그런 다음, 인간의 삶에 훨씬 더한 분쟁과 혼란을 초래하여 인간들이 그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하게 만들고,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많은 민족이 있다는 점은 납득할 수 있지만, 한민족 내에서는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 P-1

당신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가족."
"사랑"
"옳은 일을 하는 것."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긍정적인 마음으로 꿈을 좇는 것."
삶의 의미는 삶이 끝난다는 것이죠. 물론 그 답을 생각해낸건 작가일 거예요. 당연히 그 작가는 카프카겠죠.
아니, 당신 자신에게는 무엇이냐고요. 사회복지사가 말한다.
그게 내 생각이에요. 카프카와 같아요.
하지만 질문은 당신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거예요.
끝난다는 것이라고요. 친구가 말한다. 카프카가 말했듯이요.
(나직하고 새된 웃음소리.)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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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정원 -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주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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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새로운 단편을 읽어 좋았다. 계속해서 시간을 탐구하여 독자로 하여금 미래는 힘들지만 바꿔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주란 작가의 겨울 정원을 읽으며 엄마가 많이 생각났다. 슬픔을 안고서 담담히 걸어가는 삶. 텅 비어있지 않은 겨울 정원을 멍하니 바라보기 좋은 계절이다.

"이 사진은 제 인생의 보물이에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기억하려고 해요. 아기는 울고 있지만, 울고만 있지는않는다는 사실을. 그 시절, 저는 나뭇잎을 잡아당겼지만,
잡아당기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게 조금씩바뀌기 시작해 저의 세계 전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어떠세요? 아기가 울고만 있지는 않다는 게 보이세요?" - P-1

"네, 달라지셨죠. 하지만 갑자기는 아니에요. 인생은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만은 아니에요. 나뭇잎을 잡아당기는 일도 마찬가지였어요. 거기에는 잡아당기는 일만 있지는 않았거든요. 저는조금 뒤의 세계를 스스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뒤로는 나뭇잎을 잡아당길 때 힘을 주지 않았어요." - P-1

스티글리츠는 사진만의 독창적인 예술성을 인정받기 위해 평생을 바친 미국의 사진작가야. 그때까지 사진은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어. 그저 어떤 장면이나 사람을그림처럼 예쁘게 찍으면 된다고 여겼지, 스티글리츠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어. 사진작가가 어떻게 찍느냐에 따 - P-1

라 사진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은 거야. 하지만사람들의 편견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그는 점점 나이가들어갔지. 그리고 말년의 스티글리츠는 그날그날의 구름을 찍기 시작했어. 예쁘지도 않고, 제멋대로인 하늘 사진들이었지. 사람들은 근대 사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가왜 그런 무의미한 사진을 찍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하지만 그는 계속 구름을 찍어.
매일매일의 구름 앞에서 우리 인간은 말이야, 무기력한 존재야. 구름의 모양은 제멋대로 펼쳐지지. 우리는 구름의 모양을 만들거나 옮길 수 없어. 언뜻 보면 스티글리츠의 구름 사진은 그런 인간의 삶을 은유하는 것 같아. 매일 우리 앞에 펼쳐지는 불규칙하고 우연적인 인생의 풍경을 찍은 것처럼 말이지. 그런데 그거 아니? 계속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구름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 스티글리츠가 매일매일 찍은 건 구름만 있는 건 아닌 풍경인 거야.
모든 사람이 구름만 보고 있을 때, 스티글리츠는 포기하지 않고 거기에는 구름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찍었어. 그 사진들 이후로 사진은 하나의 예술로 자리를 잡았지.
모두가 끔찍하다고 말해도 끔찍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다른 걸 보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이하는 일이야. 이 현실에는 현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알고 그 다른 것에 집중할 때, 너는 네 인생을 바꿀 수 있어. 그 다른 것이 바로 꿈이야. 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꿈의 내용을 바꿀 수 있어. 알겠니?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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