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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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여기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원할 마지막 기회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종말에 직면한 문명에서 도덕적이며 의미 있는 방책이 딱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인류라는 가족과 우리의 동료 생물들과 아름다운 지구에게 지금까지 저질러온 파괴적인 해악에 대해 어떻게 용서를 구하고 아주 작은 차원에서나마 그 보상을 할지 배우는 것입니다. 최선을다해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할지 배우는 겁니다. - P-1

이웃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어떻게 지내요?" 하고 물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시몬 베유 - P-1

어떤 유명한 극작가의 말이, 정말로 멍청한 인간, 재미없는 인생이란 없고, 기꺼이 마주앉아 듣고자 하면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될 거라 했는데 대체로 맞는 말이라고 본다.  - P-1

‘말하지 않은/말할 수 없는untold‘은 그런 면에서 좋은 단어이다. 물론 이야기하거나 서술되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또한 너무버거워서 말로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하지 않은/말할수 없는 젊은 시절의 이야기. 말하지 않은 말할 수 없는 고통. - P-1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 - P-1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적어도 둘이 있지만, 떠날 때는 오로지 혼자라고 누군가 말한 적이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모든 인간 경험을 통틀어 가장 고독한경험으로, 우리를 결속하기보다는 떼어놓는다. - P-1

아무도 듣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는 형식적인말. 하지만 그의 탓이 아니다. 우리 언어가 거칠고, 속 비고, 말라비틀어져서, 감정 앞에서 언제나 어리석어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것이니까. 고등학교 시절 어떤 선생님이 헨리 제임스가 슬픔에 잠긴 친구 그레이스 노턴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라고 한 적이 있다. 출간된 이래로 공감과 이해를 보여주는 지고한 사례로꼽히는 편지인데, 그조차 이런 말로 편지를 시작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 P-1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헨리 제임스일 수도아닐 수도 있는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 P-1

인간의 재생산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신념이 새로운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사실 고대부터 있었다. 삶은 고행이고,
탄생함으로써 죽음이 생겨나고, 결정권이 전혀 없는 존재를 이세상에 내놓는 일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반출생주의 철학의 주장이다. 그 삶이 한 개인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줄 수 있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한다. 아예 태어나지 않으면 삶의 즐거움을 놓칠 일도 없으니. - P-1

현대의 주요한 반출생주의자에 따르면 어쨌든 더 행복한미래란 환상일 뿐이다. 인간 본성이 주된 문제였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모든 것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인간 종이 아예 달라져야 한다. 인간이란 배울 줄을 모른다. 같은 실수를 거듭거듭 저지른다. "용인할 수 없는 것을 용인하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인간과다른 존재들이 지금 겪는 바를 굳이 겪으라고 하는 건 용인할수 없는 일이죠. 그들 편에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도 거의 없고요."
본인은 자식이 있느냐는 질문에 반출생주의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 P-1

난 학교에서 대체로 사랑받는다고 느꼈어. 정확히 표현할 수는없을지라도 그 감정이 아주 생생해 누군가 내게 이런저런 것을가르쳐주고 싶어하고, 내가 쓰는 글씨나 동그라미와 막대기를이어 그린 그림이나 내가 지은 시의 운율에 관심을 보이는 것.
그게 사랑이었어. 그거야말로 확실히 사랑이었지. 가르치는 일은 사랑이야. 그리고 어떤 면에서 내게 그 사랑이 부모님의 사 - P-1

랑보다 의미가 있었어.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전혀 비판적인적이 없어서 내가 하는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과장하고, 내가들이는 노력은 다 똑같이 칭찬하셨거든. 그리고 성적이 나쁘면시험이나 과제가 너무 어려워서 그렇다고 하셨지. 선생님들과는 달리 부모님들은 노력과 성취를 구분하지 않았어. 하지만 난거기에 속지 않았어. 부모님 말씀은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걸알았기 때문에 선생님들 의견이야말로 중요했지. 어쨌든 우리부모님은 자식의 교육에 일일이 발 벗고 나서는 유형이 아니었어. 그건 선생님들이 할 일이라고 보셨지. 일찍 집에서 글을 깨치는 아이들이 많잖아. 하지만 나는 그 중대한 순간 내 삶의가장 중요한 단계을 학교에 들어가서야 맞이했어.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선생님 이름을 다 댈 수도 있어.
친구가 말했다. 길링스 선생님, 매스 선생님, 로페즈 선생님,
뱅크스 선생님, 골든샐 선생님, 허시 선생님, 코크 선생님, 모두사랑했어. 어릴 때는 선생님들을 모두 사랑했어. 생각했던 만큼좋은 분이 아니었다는 걸 - 사실 꽤 형편없는 선생님이었다는걸- 나중에 깨달은 그런 선생님도, 그분들에 대해서도 여전히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 - P-1

어린아이들만이 맛볼 수 있는 종류의 행복이 있지. 친구가 말했다. 내 말은, 어릴 때는 딱 한 가지에 오롯이 정신을 집중할수 있잖아. 내 생일에 자전거나 강아지나 스케이트를 사달라고 했다고 쳐. 그럼 생일이 다가올 때까지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이잖아. 그리고 그 일이 실제 이루어져 소망을 이루고 꿈이 실현되고 그 무엇도 그것을 망칠 수 없지. 하나만 가져도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잖아. 하지만 어떤 나이에 이르면 그런 느낌-그 순전한 행복감은 오지도 않고, 올 수도 없어. 이제는단 한 가지만 원하지 않으니까. 일단 사춘기에 접어들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아. - P-1

딸애는 왜 그렇지 않았을까 궁금해. 어째서 내가 누린 그런어린 시절을 그애에게 주지 못했을까? 게다가 부모님이 딸애의양육에 큰 역할을 하셨는데, 특히 엄마가 그런데 왜 우리 둘은 이렇게 딴판으로 자라게 됐을까? 내 기억에 난 어릴 때 아량이 있었고 편견이 없었어. 모든 사람을 좋아했고, 비열하게군 적이라고는 없었고,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렸고, 나눌 줄도 알았고, 남의 말을 들을 줄도 알았어. 그런데 왜 이렇게 참을성 없는 인간이 됐을까?  - P-1

하지만 지금 과거를 돌아보고, 선생님들을 떠올려보고, 내 모든행복과 사랑을 떠올려보니, 어째서 난 성인이 된 후 평생 가르치는 일을 멸시했던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 P-1

친구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절대 씻어낼 수 없는삶의 얼룩이라고 표현했다. 어느 때건 예기치 않게 불쑥 밀려드는 슬픔, 특히 행복하고 평온한 순간이면 그렇게 찾아들어 그순간들을 망쳐놓는 슬픔이라고.
할 일을 하면서 어딜 보나 만족스러운 날을 보내다가 별 까닭도 없이 불현듯 그 기억이 찾아들어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돼. 일에 파묻혀 지내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건 체득했지만, 그 때문에 며칠이고 우울에 빠져 있던 때도 있었어. - P-1

모든 걸 용서하고 싶고, 모든 걸 용서해야만 해. 친구가 말했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거야. 살날이얼마 안 남았음을 아는데도. 그러고 나면 그대로 벌어진 상처가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 P-1

금빛 시간, 마법의 시간, 뢰르 블뢰*. 변화하는 하늘의 아름다움을 보며 우리 둘 다 가만히 몽롱함에 잠기는 저녁 시간. 비스듬히 떨어지는 해의 빛이 잔디를 가로질러 올려놓은 우리 발에닿는가 싶더니, 느리고 긴 축복처럼 우리 몸을 타고 올라오면,
만사가 아무 문제 없다고 당장이라도 믿을 수 있을 심정이었다.
달을 보라. 별을 세어보라. 거기 당신은 없는 모든 시간이 그리고영원히 존재할, 세상이 한없이. (조이스) 한없이 풍요롭고 한없이아름다운. 다 괜찮을 거야. - P-1

그게 사는 거야. 그런 거야. 무슨 일이 있건 삶은 이어진다. 영망의 삶. 부당한 삶.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삶. 내가 처리해야하는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 P-1

작가가 쓰는 모든 것이 쉽게다른 식이 될 수는 있겠지만그건 일단 쓰고 나서야 그러하다.
삶이 다른 식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살고 나서야 그러하듯이.
-잉에르 크리스텐센 - P-1

우리가 지금껏 바벨탑 이야기를 잘못 이해해왔다면? 전 애인이 그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보라, 인간들이 한 무리라 하나의 말을 쓰는구나. 이것은 안 될 일이다. 신이 말했다. 저렇게하나라면, 인간들이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도시를 만들고 하늘에 닿는 탑을 짓는 데 성공할 수도 있다. 정말이지, 전지전능한그분은 공통된 언어가 있으면 인간이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알았다. 이 끔찍한 일을 막는 방법은 하나의 언어 대신 여러 언어가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셨다.
그런데 실은 신이 거기서 더 나아간 거라면 서로 다른 언어가 단지 서로 다른 종족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마치 지문처럼, 개별 인간들에게도 주어진 거라면. 그런 다음, 인간의 삶에 훨씬 더한 분쟁과 혼란을 초래하여 인간들이 그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하게 만들고,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많은 민족이 있다는 점은 납득할 수 있지만, 한민족 내에서는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 P-1

당신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가족."
"사랑"
"옳은 일을 하는 것."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긍정적인 마음으로 꿈을 좇는 것."
삶의 의미는 삶이 끝난다는 것이죠. 물론 그 답을 생각해낸건 작가일 거예요. 당연히 그 작가는 카프카겠죠.
아니, 당신 자신에게는 무엇이냐고요. 사회복지사가 말한다.
그게 내 생각이에요. 카프카와 같아요.
하지만 질문은 당신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거예요.
끝난다는 것이라고요. 친구가 말한다. 카프카가 말했듯이요.
(나직하고 새된 웃음소리.)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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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정원 -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주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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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새로운 단편을 읽어 좋았다. 계속해서 시간을 탐구하여 독자로 하여금 미래는 힘들지만 바꿔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주란 작가의 겨울 정원을 읽으며 엄마가 많이 생각났다. 슬픔을 안고서 담담히 걸어가는 삶. 텅 비어있지 않은 겨울 정원을 멍하니 바라보기 좋은 계절이다.

"이 사진은 제 인생의 보물이에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기억하려고 해요. 아기는 울고 있지만, 울고만 있지는않는다는 사실을. 그 시절, 저는 나뭇잎을 잡아당겼지만,
잡아당기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게 조금씩바뀌기 시작해 저의 세계 전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어떠세요? 아기가 울고만 있지는 않다는 게 보이세요?" - P-1

"네, 달라지셨죠. 하지만 갑자기는 아니에요. 인생은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만은 아니에요. 나뭇잎을 잡아당기는 일도 마찬가지였어요. 거기에는 잡아당기는 일만 있지는 않았거든요. 저는조금 뒤의 세계를 스스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뒤로는 나뭇잎을 잡아당길 때 힘을 주지 않았어요." - P-1

스티글리츠는 사진만의 독창적인 예술성을 인정받기 위해 평생을 바친 미국의 사진작가야. 그때까지 사진은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어. 그저 어떤 장면이나 사람을그림처럼 예쁘게 찍으면 된다고 여겼지, 스티글리츠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어. 사진작가가 어떻게 찍느냐에 따 - P-1

라 사진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은 거야. 하지만사람들의 편견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그는 점점 나이가들어갔지. 그리고 말년의 스티글리츠는 그날그날의 구름을 찍기 시작했어. 예쁘지도 않고, 제멋대로인 하늘 사진들이었지. 사람들은 근대 사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가왜 그런 무의미한 사진을 찍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하지만 그는 계속 구름을 찍어.
매일매일의 구름 앞에서 우리 인간은 말이야, 무기력한 존재야. 구름의 모양은 제멋대로 펼쳐지지. 우리는 구름의 모양을 만들거나 옮길 수 없어. 언뜻 보면 스티글리츠의 구름 사진은 그런 인간의 삶을 은유하는 것 같아. 매일 우리 앞에 펼쳐지는 불규칙하고 우연적인 인생의 풍경을 찍은 것처럼 말이지. 그런데 그거 아니? 계속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구름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 스티글리츠가 매일매일 찍은 건 구름만 있는 건 아닌 풍경인 거야.
모든 사람이 구름만 보고 있을 때, 스티글리츠는 포기하지 않고 거기에는 구름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찍었어. 그 사진들 이후로 사진은 하나의 예술로 자리를 잡았지.
모두가 끔찍하다고 말해도 끔찍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다른 걸 보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이하는 일이야. 이 현실에는 현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알고 그 다른 것에 집중할 때, 너는 네 인생을 바꿀 수 있어. 그 다른 것이 바로 꿈이야. 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꿈의 내용을 바꿀 수 있어. 알겠니?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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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의 작품은 웃겨서 슬프다. 웃길 때도 있으면서 슬픈게 아니라 웃긴 그 자체가 슬프다. 때로 체호프의 작품은슬퍼서 웃기다. 슬프니까 웃기다.
체호프를 읽다가 이렇게 논리를 뒤집는 역설을 만나게되는 것은 그가 우리의 현실을 정직하게 직시했기때문이다. 슬퍼서 웃긴, 웃겨서 슬픈 인생을 - P-1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은 없으며,
우리가 내딛는 아주 작은 발걸음 하나하나가현재와 미래의 삶에 중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견뎌온 일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 P-1

3 "어디 가는 길이냐?" 노인이 마차를 따라 걸으며물었다.
"공부하러 가요." 예고루시카가 대답했다.
"공부하러 간다고...... 그렇구나, 지혜란 좋은 거지.
그래, 지혜가 두 개 있으면 더 좋을 거야. 신이 어떤사람에게는 지혜를 하나만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두 개를 주신단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세 개를주시지…………. 그렇지, 세 개를………... 첫 번째 지혜는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 받는 머리고, 두 번째지혜는 공부를 하다 보면 받게 되고, 세 번째 지혜는인생을 좋게 살면 얻을 수 있단다. 꼬마야, 그러니까말이다. 지혜가 세 개 있으면 참 좋지 않겠냐. 그런사람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힘들지 않아, 죽는것도...... 누구나 죽기 마련인데 말이다."
「대초원」 - P-1

"그 여자는 생계 때문에 교사가 되었다. 소명감 같은것은 없었다. 그녀는 교사의 소명에 대해서도 교육의필요성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해본 적 없었고, 자신의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이나 교육이 아니라늘 시험인 것 같았다. 사실 언제 그녀에게 소명에 - P-1

대해서,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유가있었겠는가? 교사, 가난한 의사, 구급대원들은끔찍하게 힘든 노동을 하기에 이상이나 국민을 위해봉사한다는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다. 머릿속은 항상빵 한 조각, 장작, 험한 도로, 질병에 대한 생각으로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힘겹고 고단하고따분해서, 마리야 바실리예브나 같이 묵묵히 무거운짐마차를 끄는 말처럼 살아야 진득하게 견뎌낼수 있는 법이다. 소명을 들먹이고 이상을 위해봉사한다고 떠드는 기운 넘치고 흥분 잘하고 예민한사람들은 금방 지쳐 포기한다.
「마차에서」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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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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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실패하고 다시 도전한 책.
단번에 읽었다. 그만큼 책에 빠져들었다. 토니에게 베로니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에 대해. 그들이 겪은 젊은 시절에 대한 진실에 대해 알고 싶었다.
재밌었고, 후반부에서는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처럼 주인공은 묵직한 삶에 대한 진리를 깨닫는다.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만큼 좋았는데 이 책이 맨부커상에서 하나의 이견없이 선정되었을만큼 좋은가에 대한 답은 명확히 할 수 없었다. 나의 언어의 한계로 인해.
그렇지만 친절하게도 책은 옮긴이 최세희 번역가님의 언어로 왜 이 책이 대단한지를 짚어준다. 아직 스스로 사유할 힘은 부족한 독자를 위한 가이드. 감사했다.

해설 중

우리의 기억은, 아니 우리가 기억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얼마나 자주 우리를 기만하고 농락하는가. 그런 기억에 의존해 진리를 만들어가는 우리의 이성이란 얼마나 얄팍하고 안이한가.

성이었다. 어느새 나는 내 인생과 에이드리언의 인생을 비교하고 있었다. 윤리적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에 대해, 자살을 감행한 정신적, 육체적 용기에 대해 한 구절로 표현하자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에이드리언은 자신의 삶을 책임졌고, 그것을 지휘했으며, 온전히 포착했다. 그리고 놓아주었다. 우리─살아남은 우리중에 그와같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는 살면서 좌충우돌하고, 대책없이 삶과 맞닥뜨리면서 서서히 기억의 창고를 지어간다. 축적의 문제가 있지만, 에이드리언이 의미한 것과는 무관하게 다만 인생의 토대에 더하고또 더할 뿐이다. 그리고 한 시인이 지적했듯, 더하는 것과 늘어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나의 삶엔 늘어남이 있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더하기만 있었을까. 그것이 에이드리언의 글이 내 안에서 촉발시킨 의문이었다. 나의 삶에 더해진 것-과 뺀 것-은 있었지만 곱해진 것은? 그 생각에 이르자 나는 심란하고 불안해졌다. - P-1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 P-1

누구나 그렇게 간단히 짐작하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예를들면, 기억이란 사건과 시간을 합친 것과 동등하다고. 그러나그것은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다. 기억은 우리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또한 시간이 정착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용해제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백히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렇게 믿는다 한들 뭔가가 편리해지지도 않고, 뭔가에 소용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을 순탄하게 살아가는 데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실을 무시해버린다. - P-1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 P-1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를 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한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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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작가 등단 4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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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화 작가를 대단하게 부르는지 알았다. 아주 오래전에 나온 소설인데 나는 왜 이제서야 읽었을까.

작가가 쓴 작품도 좋았지만, 작가가 작품 서두에 쓴 서문이 더 인상깊다. 작가의 사명?을 쓴 글인데 멋지다.

진정한 작가는 언제까지나 마음을 향해 글을 쓴다. 마음의 소리만이 그의 이기심과 고상함이 얼마나 두드러지는지를 그에게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다. 마음의 소리는 작가가 진실로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자신을 이해하면, 곧 세계를 이해한 것이다.˝
...
작가의 사명은 발설이나 고발 혹은 폭로가 아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고상함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상함이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초연함, 선과 악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동정의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그 마음으로 쓴 책이 <인생>이다.
...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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