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최진영 지음 / 핀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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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의 복귀는 설레면서도 힘겹다.
작년의 시간들이 귀하고 귀하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도록 나를 비켜세우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노력이 독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나는나를 볼 수 없다. 나는 나를 들을 수 없다. 어떤 사물을 이용해야만, 거울이나 카메라, 녹음 기계를거쳐야만 나를 보고 들을 수 있다. 그것이 과연 나일까? 나로 살면서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내가어떤 사람인지 주변 사람에게 물어본다면 아무도진실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또는 각자의 진실이 다를 것이다. 해줄 말이 없을 수도 있다. 나라는인간에 대해 어떤 정의도 내려본 적 없을 테니까.
일단 나는 그렇다. 주변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정의하지 않는다. 그냥 같이 산다. 다투고 오해하고착각하고 아끼면서.
"작가님은 어떤 어린이였나요?"라는 질문에 횡설수설 대답한 적이 있다. 나는 어떤 어린이였을까? 좋은 기억보다는 부끄럽거나 지우고 싶은 기억이 많다. 잊고 살던 옛일이 느닷없이 떠오를 때가 있고 나는 뒤늦게 그 시절을 이해한다. 내가 왜 - P-1

그런 사람을 만났는지, 왜 그런 말을 했고 그렇게행동했는지, 그 시절 나의 진심을 뒤늦게 알아챈다. 당시에는 앞모습만 볼 수 있었다면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옆모습과 뒷모습까지 볼 수 있는 것처럼. 현재를 결과로 두어야만 과거의 일이 설명가능할 때가 있다. 과거는 언제나 나를 기다린다.
돌아보고 조립하고 해석해서 제대로 정리하고 의미를 채워주길 바라고 있다. 현재를 실시간으로이해할 수는 없다. 기다려야 한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보기를…………. 그런데 나는 어떤 어린이였을까? - P-1

여전히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지만 이십 대처럼불안하지만은 않다. 그때보다는 한결 부드러워진것 같다. 나이 들고 짐은 늘고 책임도 더해졌지만마음은 가벼워졌다. 어쩌면 이십 대 때는 더 큰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버리고 줄이고 포기했는지도모른다. 더 값진 것으로 채우기 위해 비웠을 수도있다. 지금의 내가 그때보다 가벼워졌다면 그때의 - P-1

내가 충분히 무거운 존재로 살았기 때문이다. 싸우고 포기하고 방황했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편과 불안을 자기 몫만큼 떠안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 생각은 그만하고 오늘을 살자. 오늘의 몫을 하자. - P-1

내 삶을 사는 사람은 나뿐이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태어난 이상 이 삶은 내 것이다. 삶을 책장이라고 생각하자. 무슨 책으로 채울 것인가. 삶을 편집숍이라고 생각하자.
무엇을 모을 것인가. 삶을 유서라고 생각하자. 어떤 문장으로 종이를 채울 것인가. - P-1

기억했다. 내가 이야기하는 뜬금없는 ‘그때‘를 진영이는 다 기억했다. 그때 우리를 못살게 굴던 고민들은 모두 지나갔고 지금은 또 지금의 고민이있지만 우리는 이제 ‘고민의 프로‘가 되었기 때문에 프로페셔널하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 진짜 어려운 고민은 판단을 유보하고 두고 볼 수도있다. 우리는 십 대보다는 이십 대가, 이십 대보다는 삼십 대가, 삼십 대보다는 사십 대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십 대를 기대한다. 흰머리를 걱정하면서도 어서 백발이 되길 기대하듯. 십 년 뒤에도 나는 진영이 말을 잘 들을 것이고 평소에는하지 않을 일도 함께 있으니까 할 것이고 바람이거세게 불면 헤엄치듯 두 팔을 휘저으며 걸어갈것이다. 흰머리를 휘날리며 나아갈 것이다. 이미겪은 미래처럼 무리 없이. - P-1

무언가를 집요하게 강박적으로 좋아하던 나는 흐르고 흘러 머나먼 바다로 가버렸다.
이제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들킬까 두려워하는사람.
당신은 모르겠지만 좋아하고 있어요.
잔잔하고 고요하게 홀로 좋아합니다.
이 마음에는 아쉬움이 없고, 이 마음은 시간과함께 사라질 테니.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P-1

어떤 글쓰기는 방 청소 같다. 잃어버린무언가를 찾기 위해 곳곳을 탈탈 털어보는 일처럼느껴질 때가 있다. 무언가를 찾으려고 서랍을 열었는데, 목적은 까맣게 잊고 서랍의 내용물 하나하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그것에 깃든 기억을 새삼스레 되짚어본다. 그렇게 길을 잃고 문장을 이어가다보면 때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글로 쓰지 않았다면,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다면 결코 닿지 못했을 사유에 닿기도 한다. 지름길을 찾으려면 글을 쓸 필요가 없다. 돌고 돌아 가장 먼 길로가면서 다양한 풍경과 존재를 만나고 싶다면 글을쓰는 게 좋다. 자, 글쓰기의 좋은 점에 대해서 충분히 정리했으니 이제 진짜 글을 쓰자. 새로움으로나아가자. - P-1

장편소설은 최근에 흐름을 탄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소설의 3분의 1을 쓸 때까지도 나는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경우인데, 장편소설에는 그 소설만의 분위기가 있다. 분위기를잡아야 흐름이 만들어지고 나는 그것을 따라가며쓸 수 있다. 그 분위기를 먼저 만들어야 하는데, 아니, ‘만든다‘보다는 ‘찾는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것 같은데, 그걸 찾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나는 우왕좌왕하면서 생각한다. ‘이전 장편소설은 어떻게 썼더라?‘ 부질없는 생각이다. 똑같은 소설을 쓰는 게 아니니까. 새로운 소설을 써야 하니까. 이전 글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우왕좌왕했지만 결국 썼다‘라는 경험뿐이다. ‘이번에도 우왕좌왕하다보면 결국 쓰게 될 것이다‘라는 낙관이필요하다. - P-1

요즘은 주문처럼 ‘한번 사는 인생‘이라는 혼잣말을 자주 한다. 나에게 뭔가 당부하고 싶은 것 같다. 한 번 사는 인생,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지금 하고 싶은걸 하자. 지금 먹고 싶은 걸 먹자. 지금 쓰고 싶은걸 쓰자. 하지만 말은 아끼자. 세 번 삼키고 말하자. 실없는 말은 하고 중요한 말이라면 넣어두자. - P-1

당시 선생님은 학생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못본 척, 모르는 척, 기억나지 않는 척하는 어른이었다. 그러다가도 중요한 순간에는 필요한 것을 먼저 헤아렸고 적절한 기회를 마련해줬다. 아주 무심하게, 사무적으로, 그것이 자기의 당연한 일이라는 듯. - P-1

그때의 난 그것들이 선생님의 배려라는걸 전혀 몰랐다. 때로는 걷어찼다. 늦게나마 깨닫는 마음들. 이럴 때 나이 드는 것이 좋다. 당신의나이가 될 수 있어서, 당신의 편에서 그때의 나를바라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 P-1

이기려는 마음이 있어야 이길 수 있다. 그 마음을 품기가 쉽지 않다. 이기려면 오랜 시간 최선을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지면 더욱괴로우니까 그저 적당히 하고 싶다. 잘하고 싶은마음이 힘에 겨워서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 P-1

땅속 깊이 파묻었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나를 너무 괴롭혀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나를 불행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만 같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발로 짓이겨버렸다. 사랑하는 마음이 나를 잡아먹을까봐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적이 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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