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 - 불안과 고통에 대처하는 철학의 지혜
존 셀라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복복서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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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사는 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인간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그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해야 할 일과 해선 안 될 일은 무엇인지 숙고했다. 에피쿠로스가 찾아낸 대답은 단순했다. '즐거움,' 인간이 진정으로 바라는 건 즐거움뿐이다.

 

에피쿠로스는 레스보스섬의 미틸레네에서 철학 강의를 시작했고 평생지기 헤르마르코스도 만났다. 현지 주민들이 아테네식의 철학 방식에 반감을 드러내자 몇 사람을 데리고 소아시아 본토로 떠나지만 철저한 은둔생활을 한다. 결국 아테네로 옮겨가기로 결정하면서 성벽 외곽에 땅 한 뙈기를 구입한다. 사십 년간 이 철학 공동체를 영위했다. 친구들끼리는 모든 재산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도 있었지만,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사유재산을 유지했다. 에피쿠로스가 세상을 떠나고 두 번째 수장이 된 오랜 벗 헤르마르코스가 물려받았다.

 

에피쿠로스의 분류에 따른 네 가지 쾌락의 유형은 먹는 행위와 같은 동적인 육체적 쾌락, 배고프지 않은 상태와 같은 정적인 육체적 쾌락, 친구들과의 즐거운 대화와 같은 동적인 정신적 쾌락,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상태와 같은 정적인 쾌락. 이 네 가지는 모두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유형, 즉 불안도 걱정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정적인 정신적 쾌락이다. 이 상태를 아타락시아라는 용어로 표현했는데, 직역하면 '근심 없음'이지만 대체로 '평정'이라고 번역한다.

 

(쾌락은) 오히려 맑은 정신으로 심사숙고한 결과라네. 모든 선택과 거부 행위의 동기를 분석하고, 정신적 동요의 주된 원인인 신과 죽음에 관한 거짓 관념을 버리는 것이지.p43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철학은 타인의 존재와 역할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깨어지기 쉬운 우정의 속성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우정을 그토록 중시하는 이유에 관한 흥미로운 이론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가 정말로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은 드물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지만, 위기에 처했을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인식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친구를 오로지 자신의 지원망 정도로 여기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으리라. 일단 도움은 쌍방향이어야 하며, 친구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즉시 도우러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도움이 가장 절실한 순간에 도와주는 친구가 있기를 바랄 테니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균형이다.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거나 기대한다면 합리적으로 친구에게 바랄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필로데모스가 에피쿠로스 철학의 정수를 요약 정리한 [테트라파르마코스] '네 가지 처방'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글이다

신을 두려워마라.

죽음을 염려하지 마라.

좋은 것은 구하기 어렵지 않으며,

끔찍한 일은 견디기 어렵지 않다.

 

 죽음은 우리를 유한한 존재로 정의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제한하여 우리의 계획과 과업에 절박함을 부여한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불안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고 묻는 사람은 죽고 나면 ''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셈이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만약 사후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는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실제로는 죽음이 아니라 의식을 지닌 우리의 현존재가 다른 것으로 변형되는 순간임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는 단 한 번 태어난다. 두 번 태어날 수 없으며 영원히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우리는 내일을 통제할 수 없는데도 내일을 위해 오늘의 기쁨을 미룬다. 인생은 그런 유예 속에 낭비되며, 결국 모두가 그렇게 일만 하다 죽고 만다.p99

 

진정한 철학을 길잡이 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소박한 생활에서도 충만함을 발견할 것이며 평온한 마음으로 그런 생활을 즐길 것이다. 이 구절은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 사상인 '단순한 생활과 마음의 평화'를 떠올리게 한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세상의 작동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루크레티우스가 주는 교훈이다.

 

이 책은 부제목처럼 불안과 고통에 대처하는 철학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다. 허구한 날 마음을 괴롭히는 비이상적인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지금 이 삶을 즐기는 데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책을 읽고 나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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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게
늘리혜 지음 / 늘꿈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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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리혜저자는 늘꿈이란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인스타그램 등에서 이야기가 담긴 시, 시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어지는 [일곱 색깔 나라와 꿈]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하늘에게]는 그 두 번째 이야기다.

 

날아오르는 줄 알았다.

그만큼 간절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몸도 가벼워 보여 바람만 제대로 잘 불면 정말 날아오를 것 같았다.p293

 

3의 끝자락, 항상 주변에 무관심하게 하루를 살고 있는 소년 제운은 하굣길에서 우연히 간절하게 하늘을 올려보며 두 팔을 벌리고 있는 하늘을 발견한다. 그날 이후 하늘이 신경 쓰인다. 친구들은 하늘이 독특하다는 이유로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Ni renkontigos. 이상한 말을 하는 아이였는데 성이 하, 이름이 늘,이라고 먼저 소개하였다.

 

하늘은 예전 꿈속에 플로로라는 소녀를 만났고 이 세상에는 일곱 색깔의 나라가 있다고 말했다. 빨주노파보흰검. 제운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하늘이 봤다는 꿈속의 소녀를 알고 있었고 플로로라고 했다. ‘바라기꽃이란 뜻이라고 말하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며 하늘은 놀랐다.

 

6살 동네 유치원 다닐 때 부터 친하게 지내던 삼총사, 도진과 시연이 있다. 제운의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꿈을 이어 변호사가 되겠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시연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S대에 들어가 로스쿨까지 가는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하늘과 한강을 따라 걸으며 하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지낸다고 했다.

 

제운은 늘에게 동화를 써 보자고 제안했다. 상상하는 것들을 동화로 만들기로 했다. 제목은 <일곱 색깔 나라와 꿈>으로 정했다. 자신도 깨닫지 못한 모습을 알아봐 준 소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고, 온기를 느끼고 싶었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궁금했다. 하늘은 꿈인 건 싫다고 매일 제운을 되도록 자주, 오래 보고 싶다고 했다. 제운은 소중한 동지라고 말했고 하늘은 현실에서 처음 만난 소중한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두려움도 생겨났다. 하늘과 시연, 제운 삼각관계가 되려는 순간이었다.

 

수능이 다가오던 어느 날 시연의 고백을 받아버렸다. 하늘이도 좋아하지만 13년 우정을 생각해서 사귀자고 했다. 우도진은 시연이 울리지 마라고 한다. 도진이도 시연이를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민아라는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한다.

 

제운은 그린 그림을 하늘에게 보여주었고 수채화가 어울릴 것 같다고 한다. 하늘이 쓴 <일곱 색깔 나라와 꿈>을 읽고 읽고 수없이 되풀이하여 읽었다. 하늘이 쓴 글에 그린 그림들이, 하늘과 함께 만들려 했던 동화의 삽화들이, 채색을 하지 않은 미완성인 채 무차별적으로 찢겨 흩어져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한 채 제운은 하늘을 피했다.

 

엄마가 비밀이라고 내놓은 책은 <일곱 색깔 나라와 꿈>이란 제목과 무지개 공주 일러스트가 보였다. 엄마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라고 했다. 저자를 확인했다. 정소연, 엄마의 이름이었다. 이 책이 나만의 비밀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비밀이 아니었다.

 

미소 너머로 주홍빛 노을이 진 하늘 아래 빨주노파보흰검의 무지개가 뜬 것이 보였다.

나의 색은 늘, 너였어.” 이토록 아름다운 말이 있을까.

 

에필로그에 궁금했던 말의 뜻이 담겼다. Ni renkontigos(니 렌콘티고스). 그 말은 가장 널리 쓰이는 인공어인 에스페란토어로 다시 만나요란 뜻이었다. 그말은 내게 있어 간절한 기도문이 되었다. 그 말을 동화 마지막에 넣은 건 동화책 <하늘에게>는 오직 단 한 사람, 하늘만을 위한 동화였기 때문이었다.

 

[하늘에게] 청춘감성 로맨스를 읽으면 누구나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의 나는 어떤 색이었을까? 하얀 눈송이처럼 하얀색일까, 희망을 품은 노란색일까. 저자는 세계관을 알지 못해도 내용 이해에는 무관하다고 했다. 이 소설은 애틋한 로맨스이면서 성장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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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걷힌 자리엔
홍우림(젤리빈)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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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웹툰 누적 조회수 1억 뷰의 문제작 [묘진전]의 젤리빈 작가의 신작 웹툰[어둠이 걷힌 자리엔]은 누적 2천만 뷰 화제로 전격 소설화 되었다. 원작에는 없는 감기지 않는 눈을 새롭게 써넣었다. 1900년대의 경성, 안국정 골목 상점가 모퉁이에 위치한 미술품과 골동품 중개상점인 오월중개소에 골동품 중개인 최두겸은 보통 사람들은 보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덕분에 기이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두겸을 찾아 오월중개소의 문을 두드린다.

 

티 하우스1에 한 번 온 손님은 다시 찾지 않거나 오래 머물지 않았던 이유는 그림 때문이었다. 세화(歲畫)는 돈복을 부른다고 하였지만 그림 자체는 좋은데 만들어진 의도가 너무 고약해 손님을 쫓아내는 것이다. 토지신이 들고 온 나무토막을 갖다 대니 혼령이 나왔다. 뒷목에 반골로 태어나 억울하게 죽은 고오는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농성을 시작했던 것, 토지신의 잠을 방해할 정도로. 결국 그 토지신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간 최두겸을 찾아 경성까지 오게 만들었다. 토지신은 고오의 사정을 알고 나니 내 잠을 방해했던 소란이 이해가 됐다.

 

여관에 묵게 된 기묘한 손님과 대철이 사라져버렸다는 편지를 보내온 은자, 그런데 사라졌던 그가 돌아왔고 상태가 이상하였다. 염원하는 마음이 모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인간이 아닌 것이 개입한 사건이다. 범인은 영원히 잡히지 않을 것이고 사건의 내용 또한 기괴하다.

 

두겸이 어린 시절 살던 마을에 귀신 잡아먹는 우물이 있었다. 그 우물은 마을의 문젯거리들을 집어삼켰다. 이 씨 부자네 말더듬이 시종이 죽었을 때 심하게 구박하고 괴롭혀서 죽였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위해 저주 받은 식칼 운운하였다. 남편에게 맞고 살던 이웃 누이가 도망친 것이 꽃신에 신이 들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겸의 병든 동생도 우물을 부수려던 두겸도 발작을 하자 사람들에 의해 우물에 던져졌다. 두겸을 살리고 특별한 능력을 준 것은 우물에 봉인되어 있던 영물 뱀 치조였다. 인간을 살리기 위해 귀신 잡아먹는 우물이 만들어진 배경이 나온다. 치조는 인간의 원혼으로 부정탄 것을 씻어버리려 벼락에 뛰어 들었다 산산조각이 났고 인간이 되어 있었다. 두겸을 만나서 자신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을 때까지 신세 좀 진다고 하였다.

 

얼어 죽기 일보직전에 구해준 보살님들이 좋아서 절에 머물었다가 자기도 모르게 불상의 목을 날려버린 담비 동자는 두겸을 찾아왔다가 치조를 만나 티격태격 하는 중이었다. 담비는 치조님과 저는 운 좋게도 아주 좋은 인간들을 만난 것 같다고 하였다. ‘귀님은 삼십 년 동안 묵혀왔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무녀로서의 운명을 거부하기 위해 섬에서 도망친 온내는 과거로부터 헤어나는 순간 엉엉 울었다. 인간을 사랑하게 된 샘물은 여자를 위해 물건을 사러 가자고 하였다. 샘은 덕재의 몸에 들어갔고 그의 연인이었던 명희가 주는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치조는 다정한 인간을 조심하라고 했다. 붉은 눈썹을 가진 사람들이 태어나는 개갈촌에 마을의 금기를 깼다 죽은 여인 어정은 가해자들이 저지른 짓이 밝혀지길 원했고 원한을 풀고 저승길을 갈 것이다.

 

치조의 썩은 조각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원귀들의 집합체다. 두겸은 만약 썩은 조각 안에 동생의 영혼도 있다면 어떻게든 저승에 보내주고 싶었다. 본체가 영물 뱀의 조각을 모으는 이유는 더 많은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다. 치조의 조각이 썩게 된 원인이며 본체의 구심점인 원혼을 알고 믿기지 않았다. 두겸은 귀신 잡아먹는 우물을 만든 자가 있었을 줄이야. 다른 사람들을 구하고자 생긴 우물이 그토록 오랜 시간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잡아먹는 수단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어지러웠다.

 

치조는 두겸을 보며 웃음이 절로 났고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에 떠나왔다. 고향산에서 식물학을 공부하는 여자를 만나 보고 두겸이 사는 세상을 더 알고 싶어졌고 다시 세상으로 오게 되었다. 경사장의 친구인 장영주와 두겸은 어정이 겪은 일을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겨우 영화로 그간의 원한이 풀릴 리 있겠느냐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정이 이제는 괜찮아라고 할 수 있기까지 마침표를 찍어줄 마지막 물 한 방울이다.

 

[어둠이 걷힌 자리엔]은 치조와 두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과 기묘한 존재들의 사연들은 매력이 있다. 두겸은 아픔이 있었고 인간이나 영물들의 사연들을 잘 헤아려 자신의 아픔을 치유 해가며 치조와 함께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간다. 기담이지만 따뜻한 이야기로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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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별밤 에디션)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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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은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증조모, 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지는 100년의 시간에 걸친 4대 모녀 이야기다. 소설을 읽으며 팔순을 바라보는 나의 엄마, 기억이 나지 않는 외할머니를 떠올려봤다.

 

소설의 배경인 희령을 검색해보니 강원도 회양지역의 옛 지명이라고 나온다. 주인공 서른두 살의 지연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희령으로 이사왔다. 천문대의 연구원 채용공고를 본 건, 바람을 피운 남편과 이혼한 후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남편의 배신에 힘들어하는 딸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지 아빠와 엄마는 혼자 남을 사위가 불쌍하다고 했다. 마음 둘 곳이 없어 이곳으로 왔을 수도 있었다. 지연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친구 지우 뿐이었다. 바닷가 작은 도시인 희령은 엄마의 친정이기도 하고 열 살때 열흘 정도 지내는 동안 할머니는 이곳 저곳을 구경시켜주었던 추억이 있는 곳, 아직도 잊지 못하는 건 할머니와 함께 본 희령의 밤하늘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가 소원해져 이십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할머니와 재회한다.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다 두 여인이 찍은 사진을 보며 한 사람은 할머니의 엄마라고 했다. 지연이와 많이 닮은 증조할머니다. 할머니는 지명으로 증조모는 삼천’ ‘새비아주머니로 불리며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해, 증조모가 어떻게 희령에 오게 되었는지를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증조모는 백정의 딸로 태어나 핍박받으며 살다 열일곱 살에 증조부를 만나 개성으로 떠났다. 증조모가 떠나올 때 아픈 어머니를 두고 나왔다. 증조부 친구인 새비 아저씨가 돌봐주었지만 열흘이 지나 돌아가셨다. 증조부는 증조모를 알게 되면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를 했다. 너를 구하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새비 아저씨가 땅을 빼앗기고 개성으로 오면서 새비 아주머니와 증조모는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새비 아주머니는 아저씨 건강 때문에 고향으로 갔고, 친정 오빠가 사상범으로 죽음을 당하자 시댁에서 쫓겨났다. 개성에 잠시 머물다 새비 아주머니는 고모가 사는 대구에서 머물게 된다. 훗날 증조모 식구들도 대구 명숙 할머니 집에서 머물며 할머니는 바느질을 배우게 된다. 증조부가 군대에서 고향 동무를 만났고, 부모님과 형님을 만났는데 피난길에 오르셨는데 황해도 사람들이 희령이라는 곳으로 갔다는 것이다. 대구를 떠나 희령으로 왔지만 증조부 부모님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정착한 곳에서 할머니는 같은 고향 출신인 길남선과 결혼을 하게 된다. 지연의 엄마 미선을 낳고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p14

 

소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할머니의 이야기가 지연의 재구성을 통해 되살아난다. 증조모는 할머니를 중혼 시킨 것에 증조부를 원망하고, 할머니는 우리 눈에 띄지 말고 죽어버리라고 했다. 지연이 희령으로 온 건 분명 이혼 후에 상처를 줬던 엄마에게서 멀어지기 위한 것이었다. 지연은 원가족으로부터,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처로부터, 상처받을 가능성으로부터, 무엇보다도 진정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연은 엄마와 앨범을 정리하며 엄마가 얼마나 증조할머니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이해하였다. 그러면서 상처 받았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새비 아주머니는 딸 희자에게 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가라고 했다. 작가의 할머니도 손녀에게 앞으로 멀리 다니라고 지구본을 사줬던 할머니의 마음이 이 소설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얼마 전에 봤던 다큐멘터리 [미싱 타는 여자들]에서 처럼 우리 세대는 여자가 공부해서 뭐하나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만 잘 가면 되지 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밝은 밤]을 읽으며 삼천과 새비의 우정이 너무 따뜻해서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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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식당 3 : 약속 식당 특서 청소년문학 25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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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베스트셀러 [구미호 식당] 박현숙 작가의 또 다른 이야기다. [구미호 식당],[저세상 오디션]에 이어 [약속 식당]은 청소년 문학으로 시간에 대한 저자의 철학이 담겨 있다. [약속 식당]은 이 세상에서 못다 이룬 약속을 다음 생에서 지킬 수 있을까? 이런 의문으로 시작되었다.

 

보육원에서 같이 지낸 설이를 지키려 싸우다가 맞아서 죽게 된 채우는 망각의 강에서 천 년 묵은 여우 만호에게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새로운 생을 거래하고 세상으로 돌아온다. 설이는 열여섯 살이고, 채우는 열일곱 살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100일 정도였다. 만호는 손바닥에 도장을 찍어주며 하루가 지날수록 조금씩 지워지다가 소멸 되기 전날 딱 한줄이 남으면 사라진다고 했다.

 

파와 감자가 만난 음식은 불행을 몰고 온다고 믿는 설이에게 미완성 파감로맨스를 만들어주기 위해,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죽어서라도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 설이를 찾을 수 있는 단서는 단 하나, 게 알레르기 뿐이었다. 이층집 일가족이 연기처럼 사라진 건물 일층에 약속 식당을 열게 된다. 채우의 모습은 42세 아줌마로 변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설이도 죽었는데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너와의 시간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참고하라고 만호가 말했다.

 

채우는 식당을 열고 손님을 기다렸다. 약속 식당을 찾은 황 부장, 왕 원장, 구주미와 구동찬, 고동미 이 중 설이가 있을까? 구주미와 고동미가 게가 들어간 비밀병기 음식을 먹고 알레르기를 일으켰다. 경찰이 찾아오기도 하였고 엄마와 지내고 있는 고동미가 설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채우는 고동미가 흉가로 변해 있는 이층에 살던 황우찬이라는 아이를 좋아했다는 것을 동찬에게 듣고 황우찬을 질투했다. 두 여학생의 중간 역할을 구동찬이 귀여운 캐릭터로 기억된다.

 

예쁘다 미용실왕 원장도 채우와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 원장이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실망을 한다. 그 사람과의 시간은 그 세상에서 끝났던 것이고. 다음 생에도 나는 너를 만날 것이고 그때는 더 잘해줄 거다. 늘 최선을 다했음에도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부질없는 약속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주미와 고동미는 왜 싸운 걸까? 화해를 시켜주고 떠나고 싶었다. 황우찬이 잘못된 것이 자기들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채우는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부질없는 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왕 원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며 두 사람이 절친이었던 예전으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구주미가 말했다. 아줌마. 저번에 파감로맨스를 먹어봤는데 뭔가 좋은 생각이 날 듯 말 듯 했는데 오늘 해보겠다고 한다. 구주미는 자기는 똥손이지만 영감을 믿으라고 했다. 저 말은 설이가 잘 하던 말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파감로맨스가 완성되는 순간에 가슴 중간이 찌릿했다. 채우 손바닥의 도장 자국이 거의 사라졌다. 소멸하는 앞에 만호가 나타났다. 채우는 후회하지 않지만 다른 이에게 새로운 생을 달라고 제안할 때 살았던 그 세상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되었다고그런 말은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지키기 위해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이 아닌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해야 한다.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라더라도 내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된 거다.p244

 

저자는 다음 생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고 만호가 있을지 없을지 그것도 모른다. 뜻하지 않게 채우와 같은, 왕 원장과 같은 기회를 얻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기회가 찾아온다면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키려 전전긍긍하기보다는 마주한 기억 속 그 사람과 새로운 추억 하나를 만들어봐도 괜찮겠다고 말한다. [약속 식당]은 세상을 살면서 꼭 지키고 싶은 소중한 약속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면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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