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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져도 살아갈 우리는 - 응급실 의사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깨달은 치유의 힘
미셸 하퍼 지음, 안기순 옮김 / 디플롯 / 2023년 9월
평점 :
이 책은 응급실 의사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깨달은 치유의 힘이다. 저자는 남성과 백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응급실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의사로 근무 중이다. 내면의 크고 작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새로운 도시와 직장에서 낯선 삶을 마주한다. 하퍼는 환자들에게서 수많은 위로와 통찰을 발견한다.
아수라장인 병원 응급실에서 하루 버티며 노예가 됐다가 구원자가 되고 저승사자가 된다. 대개 죽음을 막기 위해 일한다. 흑인 여성으로서 인종차별 시대가 끝났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정반대의 면모를 드러내는 미국 사회를 살아간다고 한다.
저자는 부유층 지역에서 가정폭력을 겪으며 자랐다. 엄마 아빠가 싸우고 오빠가 싸움을 말리는 것은 일곱 살 아이에게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아빠의 폭력을 경찰에 신고를 해도 도와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싸움을 말리던 오빠의 손가락이 물어뜯긴 사건으로 응급실을 가게 되었고 폭력 너머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면, 겹겹이 쌓인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면, 응급실 의사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정치 성향을 가진 백인 남편은 독립 영화 제작자이고, 흑인 아내는 의사다. 하버드대학교 재학 시절 연인이 되고, 결혼을 하였다. 저자가 레지던트 과정을 졸업하기 몇 달 남겨두고 “이제 나 자신을 찾아야겠어”라는 말과 함께 이혼을 통보받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빠와 가족으로 이어진 끈을 끊었다. 삶에서 아빠가 사라진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의사 하퍼는 응급실에서 온갖 종류의 참혹한 고통 속에 놓인 환자들을 마주한다. 생후 12일 신생아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전화가 걸려왔고 이송되어 온다는 소식은 반갑지 않았다. 아기가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 소생술은 잔인할 수 있었다. 아기 엄마는 어렵게 임신했고, 너무 행복해했는데 견디기 힘든 밤이었다. 저자는 아기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목이 메었다. 의료진이 환자를 도와주려다 오히려 공격받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고 그런 환자 차트에 황색경보라고 쓰여 있었다.
마약을 사용한 혐의로 체포된 남자가 수갑을 차고 끌려와서 검사 받는 것을 꺼린다면 검사를 강요할 수 없고 환자에게 인간답게 대우해야 한다. 게다가 경찰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외상을 당한 환자가 들어오면 치료를 하고 상담이 필요하면 사회복지사를 연결해주기도 한다.
어린 시절 폭력에 노출되었을 때 자신에게 안전하냐고 물어봤다면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을 보호해줄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을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누구나 ‘망가진 존재’라는 사실, 하퍼의 삶처럼 누구든 특별한 이유 없이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학대당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머리에 부상을 입은 응급환자를 대할 때는 마음이 복잡하다. 죽는 거냐고 눈물로 호소할 때 약물보다 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환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던 순간을 기억하며 탄식했다. 타국에서 상사와 동료에게 강간을 당하고 임신중절을 하고 정신과 치료 중인 군인 비키는 유색 인종 의사 선생님을 뵙다니 반갑다고 했다. 속속들이 털어놓으니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했다.
저자는 바쁜 나날에도 경찰관 콜린과 사귀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어서 헤어졌다. 콜린의 무너진 모습에서 엄마를 보았고 이처럼 깊이 사랑하는 관계를 다시는 맺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마약 주사를 맞아 감염이 되어 응급 치료를 하고 정형외과 수술팀을 호출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근처 대학 병원의 교수진이 있는 것은 축복이지만 호출 받은 그들은 십중팔구 화를 내고 무례한 말을 뱉는다. 지역 사회 개업의들은 환자 치료 요청에 협조해주는데 말이다. 약 처방전도 받지 않고 가버렸고 다른 환자는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은 화학 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거부했다.
저자는 환자들을 치료하고 인정 많은 의료 활동을 한 공로상을 수상했다. 자신이 저지른 모든 일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편지를 읽고 아빠를 용서했다. 명상과 요가를 하면서 상처를 치유한다. 자신을 향한 각종 폭력과 차별 앞에서도 묵묵히 환자를 돌본다. 타인의 상처, 고통, 질병, 죽음을 직면하며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며 이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