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 동백꽃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14
김유정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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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때  김유정의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국어시험에 지문으로 나온다고 선생님이 어찌나 강조하시던지, 저처럼 국어를 싫어하고 더구나 고전 명작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고생스러운 시간이었지요. 1920년대, 1930년대 소설과 시를 중점적으로 읽고 공부했던 기억은 그다지 즐거운 느낌으로 남아있지 않아요. 책읽기로 접근했다기 보다는 예상 시험문제 대상으로 만났기에 큰 감흥을 느낄 여유가 없었어요. 그 이야기가 그것 같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시대적인 배경과 작가의 이력을 달달 외웠던 생각이 떠올라요. 그런데 가끔 해학과 유머가 넘치는 글을 만났을 때는 정말 반가웠어요.

 

<봄봄>과 <동백꽃>은 내용 자체가 재미있고 간결해서 오래 기억에 남아요. 특히 <동백꽃>은 시험에서도 자주 봤던 것 같아요. 철부지 아이들의 풋사랑에 마음이 설레고, 그 안에 담겨진 무거운 시대적인 상황에 가슴이 아프고... 하지만 유쾌하고 발랄한 문체 덕분에 슬쩍 미소짓게 되는 건 어쩔 수 없고요. 예전에 읽었던 책은 현대 맞춤법에 맞게 고쳐놓은 글들이 나왔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당시 사용했던 한글의 문법과 단어들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어서 색다른 느낌이 드네요.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있어요. <봄봄> 이나 <동백꽃> 처럼 이미 읽어본 작품도 있었지만, <두포전> <만무방> 같은 새로운 단편도 만나볼 수 있었어요. 특히 <두포전>은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처럼 두근두근, 뒷 내용이 궁금해서 어쩔 줄 몰라 책장을 넘기게 되는 친근한 느낌의 옛이야기였어요. <이런 음악회>처럼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작품도 있었고, 당시 어려운 상황이 전해져 마음이 씁쓸해지는 소설도 있었어요.

 

아내의 뱃속에 죽은 아기가 있는데도 혹시나 희귀병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고 대학병원에 들른 사내의 이야기를 담은 <땡볕>이  제일 충격적이었어요. 무식한 건지, 아니면 순진한 건지, 그의 무지에 화가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면 아내를 팔아 살 궁리를 했을까..마음먹은 대로 안되자 아내를 포기하고 그냥 죽게 내버려두려는 심보가 밉기도 했고요. 1930년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다 싶다가도 남편의 행태와 심성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금따는 콩밭>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다가 마지막 말을 보는 순간..휴우~ 한숨이 나오네요. 서로 속고 속이는 세상, 누군가의 음모로 왕창 망하고도 그것을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어리숙함, 꾸준히 노력하는 미련한 삶을 버리고 한 방에 성공하려는 무모한 욕심의 끝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이기에 더욱 처절하고 비참한 장면들을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지요. 왜 세상은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인지,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자조하기에는 너무 씁쓸하고 속상하네요.

 

김유정의 문장은 단순하지만 굉장한 유머와 해학을 담고 있어요. 당시에 사용했던 단어와 표현들이 그대로 나오고 있어서 처음에는 어리둥절 했지만, 책 뒤에 있는 주석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았어요. 우리말 표현의 다양함에 놀라게 되었고요. 같은 말인데도 다채롭게 표현하는 작가가 대단해 보였어요. 어려운 시절을 겪어내면서 글로 사람들의 힘든 삶을 나타내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였고요.고단하고, 눈치보면서 하루 하루 견뎌내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었지만, 김유정을 통해 글로 표현된 그들의 세상은 좀 더 가볍고 경쾌했어요. 스물 아홉에 생을 마감한 작가에게 비춰진 세상은 녹록치 않았겠지만, 그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당시의  삶은  유쾌했어요. 그래서 자꾸 피실피실 웃게 되고요. 진심과 해학의 경계를 구분하는 건 독자의 몫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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