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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 1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2년 10월
평점 : 
히가시노 게이고의 SF소설.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SF소설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니죠. <도키오>나 <변신>도 SF소설이라고 볼 수 있고, 무엇보다 호러, 감동, 액션, 스릴러, SF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작하는 작가라서 말이죠. 이번 <패러독스 13>은 SF 소설 중에서도 생존소설(종말문학)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P-13 현상’으로 지구의 시공간이 뒤틀리면서 딱 13초가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겨우 13초. 그런데 그 13초가 엄청난 결과를 불러일으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에게는 첫 시도이겠지만, 사실 종말문학(생존소설)은 이미 많이 나와 있죠. 개인적으로는 스티븐 킹의 <스탠드>,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 뜬 자들의 도시> 등 걸작들도 많고요. 따라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번 작품 <패러독스 13>은 그리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런 주제를 어떻게 다를 것인가 하는 궁금함은 있더군요. 그래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공계 출신의 추리소설 작가답게 사라진 13초 현상에 대한 원인을 물리학적으로 풀어냅니다. 블랙홀과 평행이론으로 그것을 설명하는데, 사실 이것도 SF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조금 식상한 거죠. 이 작품은 미스터리적인 요소는 별로 없습니다(물론 소수의 사람이 살아남은 이유나 이 공간이 생기게 된 원인 등의 미스터리는 있지만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생존(살아남아야 하는) 소설입니다. 시공간이 뒤틀리면서 지구(자연환경)가 파괴되기 시작하거든요. 지진과 해일, 우박, 폭우 등 자연재해로 인해 점점 대피할 장소가 사라집니다. 과연 이들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그리고 이런 생존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 역시 있습니다. 선과 악의 개념에 대한 재정의 역시 있고요. 평소에 우리가 가졌던 신념이나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것도 역시나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가독성이죠. 누구나, 심지어 미스터리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도, 쉽게 읽을 수 있죠. 사실 추리소설이 등장인물들도 많고, 복선이나 트릭, 추리 등이 복잡해서 사실 어렵잖아요(본격 미스터리에 한해서).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쉽습니다. 600페이지 분량의 소설임에도 몇 시간 만에 읽힙니다. 잘 읽힙니다. 나름 재미도 있습니다(역시나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장점이죠. 기본 이상의 재미는 보장한다는 것). 그러나 SF소설이나 영화를 조금이라도 읽거나 보신 분들에게는 그다지 새롭지는 않습니다. 소재 자체가 식상하고, 기존 생존소설에 비해 새롭거나 특별한 점도 딱히 없고요. 그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정도. 사실 살벌한 생존소설들도 많아서 이 작품은 조금 애교 수준이었습니다(나름 리더에 말에 잘 따르고, 큰 마찰도 없거든요. 이 소설에서 가장 아쉬운 점입니다. 너무 착하게 스토리가 흘러간다는 것). 사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기대에는 살짝 못 미치네요. 그래도 액션/스릴러 소설(<아름다운 흉기>는 제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 최악으로 꼽는 작품이거든요)보다는 SF소설이 그나마 히가시노 게이고가 미스터리소설 다음으로 잘하는 장르 같아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는다면 소소한 재미는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나 극한 환경에서 소수의 인간들이 살아남아야 하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신 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