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눌 수 있어 행복한 사람, 이태석 ㅣ 햇살 담은 아이 1
서영경 그림, 정희재 글 / 주니어중앙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너희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
장맛비가 오락 가락 ...중부지방엔 물 폭탄 맞은 것 마냥.. 물난리로 매스컴이 떠들석 하지만
대한민국이 어찌나 땅 덩어리가 큰지.. 내가 사는 이곳 구미에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서 어젯밤에도
열대야에 시달려야만 했다. 조금만 무얼하려고 해도 땀이 주루룩 주루룩 흘러내려서 짜증이 어찌나 나던지
어제 오후는 정말 아이들의 땀 냄새와 후덥 지근한 열기 때문에 모든 짜증을 아이들에게 죄다 쏟아냈던 것 같다.
그 온도가 33도였댄다.. 내게는 엄청난 숫자 33도.. 내 자신을 컨트롤하기 힘든 온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 마을의 온도는 55도를 훌쩍 넘는댄다.
사람이 과연 쉼 쉴 수 있을까? 싶은 것이 나로써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온도다.. 55도??
사람이 살 수 있나? 정말 몇 번이나 고개를 갸우뚱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곳에 그와 원주민들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니...
처음엔 이 태석 신부에 대해서 얼핏 다큐멘터리 예고 했을 때.. 음... 신앙심 깊은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자비? 자선? 을 베풀었구나... 감동스러운 이야기이겠군... 하면서
같은 시간대 좀 더 웃을수 있고 유쾌함으로 잠시 때울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 리모콘을 이리 저리
돌려댔었던 것 같다.. 그때 잠깐 잠깐 보았던 이 태석 신부의 얼굴이 있었던 지라... 왠지 낯설진 않았다.
하지만...이 책을 덮을 무렵.. 나는 그때 그 방송에 왜 리모콘을 멈추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왜 이런 분을 좀 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멘토니 롤모델이라는 이름으로 참 많은 세상의 위인를 접하게 해준다.
그에게도 그런 롤모델이 여럿 있었으니.. 그 중 한 사람은 한센병(나병)환자를 위해 집을 지어주고
고름도 짜주면서 돌보아준 다미안 신부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서른살까지 학문과 예술을 위해 살고
그 뒤로 아프리카로 돌아가 가난하고 아픈 원주민을 돌보고 살았던 슈바이처박사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맘속에 잔잔히 녹아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크게 작용한건 내가 생각하기에는 수녀가 된 셋째 누나와
신부가 된 태영이 형... 그리고 그 누구보다 신앙심이 깊었고 없이 살면서도 늘 베품과 선행을
몸소 실천해 보이시면서 성실히 10남매를 키워오신 어머님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없이 산다고 해서 다 그늘지고 베풀지 못하는게 아니라는 걸 그 어머님이 먼저 보여주신듯 하다.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서 성당에서 풍금을 치는 걸 허락받아 미사때 반주도 하고.. 중학교때는
음악선생님의 지도로 작곡도 배우면서 악기연주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작곡집까지 내기도 한 그는
의과대에 진학해서 외과 공부를 마치게 되지만 군의관시절 전의 성당이란 곳에서 황용연 신부님과 연을 맺으면서
사제가 되려는 마음을 굳히고 만다.. 그는 몸속에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정을 나누고 살 수 밖에 없는 피가 흘렀던것 같다.
어머님마저 그의 뜻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사제가 된 그가 선택한 나라... 외과 의사이면서 사제가 되었으니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았지만..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려고 맘을 먹고 슈바이처 박사가 봉사했던 그곳... 아프리카 수단으로 떠난다.
그렇게 시작된 수단의 한 마을 톤즈와 그와의 인연 ..
처음엔 그를 멀뚱멀뚱 .. 달갑게 보지 않던 아이들도 나중엔...John Lee 를 쫄리로 발음하며
이태석 신부를 쫓아다니게 되는 아이들
전쟁과 서로간의 생계싸움으로 얼룩 진 톤즈 마을에 과연 어떤 것이 진정으로 필요할까를 먼저 생각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던 그는 처음엔 진료소 다음엔 학교
그리고 전기불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성당의 전기불을 사용토록 하고
나중엔 악기를 하나 하나 가르치기 시작한다... 서로간의 적개심으로 가득했던 아이들도 어느 순간 음악으로
늘 어둡고 그늘진 마음이 부드럽게 바뀌기 시작하는데.. 그때서야. 이태석신부는 왜 자기가 음악을 배웠는지..
왜 자기가 바로 사제의 길로 들지 않고 의사공부를 하게 되었는지 .. 자신의 모든 지난 날들이
바로 지금을 이곳 수단의 톤즈마을에서 행하고... 베풀어라... 라는 그분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의 신앙심이 이토록 힘들고 고된 일을 웃으면서 행할수 있게 했을까?
종교가 없는 나로써는 정말 대단하는 말로 밖에 표현할수 없는 그의 베품.... 사랑... 끝없는 사랑..
조건 없는 사랑.... 나누고 또 나누면서 그 사랑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길 진정으로 바라지 않았을까 싶다.
진심으로 환자를 대했던 그는 맥가이버처럼 만능이여야만 했다.
사제였다가..선생님이였다가 음악가였다가 전기공까지... 아프리카에서 그는 못하는게 없었다.
한푼이라도 아껴서 그 돈으로 주사한방이면 살릴수 있는 아이들의 백신을 사려고 노력했고
벌레들의 방해없이 진료할수 있는 진료소를 손수 만들었고 아이들이 좀 더 늦은 시간동안 공부할수 있도록
그리고 백신을 보관할 냉장고를 가동시킬수 있도록 축전지까지 직접 만들었다.
학교도 만들고...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마음속에 있는 숨은 사랑을 음악을 통해서
스스로 꺼낼수 있게 도와줬다.
나병환자들의 손을 손수잡아주며... 돌봐주고 그들의 몸에 생채기가 더 생기까 염려하여
직접 신발도 제작해서 신겨준다.. 슈바이처 박사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마다하지 않고.. 직접 고름까지 짜주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나누었다. 그는 그렇게 아프리카와 함께 숨쉬며 살았다..
그에게 무서운 대장암이란 병이 찾아오기 전까지 말이다.
늘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사람이 저 사람일까봐 쉽게 정을 주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또 다시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될까봐 병명을 알았을때 자신의 치료보다는 아이들에게 먼저 달려가려고 했던 그는
다시 돌아올거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맘속에 늘 남아 있던 것 같다.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돈 보스코라고 말하며 십자가를 그었고
자신은 괜찮으니 걱정말라는 뜻으로..
모든 것이 다 좋다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셨으니 말이다... 떠나는 순간까지 남은 사람들을 염려하고 걱정했든 그분..
모든 것이 다 좋다.. 48살이라는 나이에 생을 마감하면서 그렇게 초연하게 죽음을 맞을수 있을까?
모든 것이 다 좋다.... 모든 것이 다 좋다...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가 그 전에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수상소감에서 한 말은 의사로써의 그의 진정성이
여과없이 드라는 말들이였다... 복받쳐오르는 울음은 그 순간 부터였다..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그 말...
이 자리에는 저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데 부족한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에요.
여기 계신 의사 선생님들께 감히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환자가 처음 진료실에 들어오면 5초 정도는 환자들이 걷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10초 정도는 아무 말 없이 환자의 눈을 들여다봅니다. 그러면서 환자와 눈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어디가 아픈지,어떤 고통이 있는지 느끼려 애씁니다.
요즘 의사 선생님은 너무 바빠서 환자를 만나도 컴퓨터 모니터부터 먼저 보는 분이 많습니다.
많이 힘들고 바쁘시더라도 환자의 마음을 먼저 느끼려 애써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이 어찌 그토록 나의 맘을 울렸을까? 그가 그전에 아프리카에서 치료했던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눈을 맞추고 그들의 맘을 먼저 읽어주며 상처를 치료해주기 이전에 병을 치료해주기 이전에
그렇게 맘을 나누려고 애를 썼다고 생각하니 그는 정말 하늘에서 내려보내준
천사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가 이제 더 이상 이세상 없다고 생각하니.. 톤즈 마을 아이들에게 다시는 돌아갈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마치 내가 톤즈 마을에게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한센마을 사람인 것 처럼
함께 공부할 욕심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 아이들이 된 것처럼..오늘도 전염병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아이를 안고서
200키로가 넘는 길을 며칠을 먹지도 않고 달려온 아이엄마인것처럼 그렇게 애가 타고 숨이 넘어갈것처럼 서럽다..
한참을 복받쳐서 눈물과 콧물이 번벅이 되어서 나머지 책장을 넘기고 있을 무렵 이제 1학년인 딸아이가
엄마 그 책 그렇게 슬퍼? 장기려선생님 이야기 만큼 슬프냐고 물어온다
얼마전 권장도서로 장기려 선생님 이야기를 읽고 소윤이가 이렇게 착한 선생님이 이제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맘이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어서... 어쩜 그 분보다..더 훌륭한 분이실지도 모른다고 말했더니
곧 책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한다... 내가 느낀 그 분의 사랑이 내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래본다..
이 태석 신부님은 지금도 우리의 귓가에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먼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일,
내가 할 줄 아는 것을 다른 사람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
내가 먼저 얻은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일 ! 그것을 바로 행동에 옮기라고 말이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옷이나 돈을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바로 사랑임을 몸소 보여준 그가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 마을에 나눠준것은...
바로 다름 아닌 사랑이였던 것이다... 그가 그토록 동경했던 슈바이처 ..
그가 바로 아프리카의 슈바이처가 아닌가 싶다.
부디 그의 바람대루.. 한국에서 공부중인 톤즈마을 아이들 세 명이 훌륭하게 공부를 마쳐서
그 분이 톤즈마을에 뿌리내리게 했던 사랑을 이어가길 바래본다.
하늘에서 이태석 신부가 지금도 행복한 미소로 내려다보고 계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