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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나의 정원 - 개정판
타샤 튜더 지음, 김향 옮김, 리처드 W. 브라운 사진 / 윌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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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스킬자수를 하고 있었는데, 하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번엔 고양이, 이번에 장미 모양을 만들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벌써 장미가 필 시기가 다가오고 있구나! 매일 매일 공원에 가던 시기에는 개나리를 시작으로 그 다음엔 어떤 꽃이 피는지, 하는 순서들을 직접 보면서 익히곤 하였는데, 그것도 한동안은 조금 무관심해져버렸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다시 꽃을 보기 시작했다. 엄청 좋아하던 시절에 비하면 반 정도의 관심이긴 하지만.

[타샤 튜더 나의 정원] 책 사진을 찍기 위해 찾은 곳은 동네 공원으로 산으로 이어져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등산하러 가기 전에 나오는 작은 정원으로 만들어진지는 별로되지 않았다, 아마도 작년인 것 같은데- 작년에 발견하고선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이렇게 예쁘게 꽃 심어놓은 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자주 닿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도로쪽에 위치해 있어서 조금 시끄럽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사람들이 찾는 곳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런 작은 정원에 피어있는 식물들은 사람들이 자기를 보러 오지 않는 것에 서운해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꽃의 마음은 어떨까? 물론 꽃은 남을 위해 피는 것이 아니니까 별로 신경쓰지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타샤 튜더 할머니는 꽃의 마음을 잘 아는 분이셨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꽃이 서운하지 않을까요?˝ 하는 궁금증에 ˝응, 전혀- 꽃은 자신을 위해 피어 있어요.˝ 하고 대답하실 것만 같다. 내가 타샤 튜더 할머니를 롤모델로 삼았던 시절에 딱 이렇게 생각했었으니까, 모든 생명은 자신을 위해 핀다고-

내가 타샤 튜더 할머니를 롤모델로 삼았던 이유는, 물론 이런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니까 그때 당시에는 왜 롤모델로 삼았는지 딱히 정의내리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야 지났으니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음, 일단, 나는 타샤 할머니가 마이웨이인 것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 말에 휘둘리지 않고 원하는 삶을 추구하고 실행해나가고 이루어낸 것에 감동했고, 그것을 존경했던 것 같다. 어릴 땐 본받을 것이 있는 훌륭한 사람을 존경하지 않나? 나 역시 그랬고, 지금은 조금 더 사람의 다양한 삶에 숭고함을 느끼는 편이 되어서 어떤 삶, 어떤 사람이 더 훌륭하다고 비교하거나 나누거나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한 인물이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간 것에 더 존경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래도 30대 시절 내내 나의 롤모델이었던 타샤 할머니를 다시 꺼내게 된 것은 한동안 내가 너무 세상의 뜻에 휘둘려버려서? 내 중심을 잃을 뻔 하여서? 다시 찾고 싶은 마음에 그때를 불러들인 것 같기도 하다. 역시나 이것도 무의식적으로.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의 내가 소환이 되어버린다.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왜 행복했지? 했던 이유들 말이다. 내가 얼마나 타샤 할머니를 좋아했냐면, ‘자존감 노트‘라고 이름붙인 스크랩북에 타샤 할머니의 사진과 그때의 소망, 다짐 같은 것들이 적혀있다. 그리고 당시에 좋아하고 즐겨입었던 옷 스타일도 비슷하다. 일명 할미룩, 그래니룩이라고 불리우는 시골 소녀 스타일의 옷을 좋아했다. 이런 옷차림이 뜨개 소품이랑도 너무 잘 어울렸으니까! 그리고 타샤 할머니에게 영감을 받아 만들었던 뜨개 숄이 있다. 그 정도로 나의 30대 시절에 영향을 준 인물이 바로 타샤 할머니였다.

타샤 할머니의 매력적인 면이 드러나는 일화가 하나 떠오르는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고 했을 때, 일단 ˝네˝ 라고 답한 후에 맘대로 한다는 것이었는데, 당시에 내가 싫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기 어려운 상대들이 많았으니까, 어렸고. 그래서 타샤 할머니의 ‘I‘ 스럽게 단단한 내면에 공감하고 끌렸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마이웨이, 고집스러운 면이 없다면 18세기 풍의 삶이나 정원 등은 절대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로 신기한 것은 내가 보아온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아닌 삶을 경험한 후에 나인 삶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타샤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나는 이런 삶을 살 거야!˝ 하는 느낌이었다는 것!! 어릴 때부터 살고 싶은 삶이 확고하셨고 그대로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꽃과 나무, 자연, 동물엔 다정하고, 무엇이든 손으로 만들기 좋아하는 면에선 섬세한 여성적인 면모를 느끼게 된다.

타샤의 정원을 읽었을 땐 실감하지 못했는데, [타샤 튜더 나의 정원]으로 다시 접하면서 실감하게 된 것은 정원이 너무 크다는 것, 이 정도면 타샤 튜더 나의 공원이 아닌가! 아니면 나의 식물원?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간을 오랜 시간 사랑으로 가꾸셨다는 것에 새삼 놀랍기도 하였다. 게다가 성격을 보면 ‘P‘에 가까우신데, 정원에 피어날 꽃의 순서나 그러한 것들을 보면 또 ‘계획파‘의 느낌도 들었다. 예전엔 책을 보며 단지 정원과 꽃을 감상하고 ˝아름다워~˝ 했었다면, 이번 책을 보면서는 ‘원대한 계획‘의 실현을 보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책에 나오는 꽃들 중엔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꽃들이 많았기 때문에 산책을 하거나 공원에 가거나 또는 식물원에 가서 보면 배로 반가울 것 같기도 했다. 그런 것 있지 않나, 타샤 할머니와의 연결고리 느낌으로 더 친근해지는 것.

작약, 라일락, 디기탈리스, 꽃잔디, 붓꽃, 원추리, 금낭화, 패랭이꽃, 팬지, 튤립, 수선화, 장미, 접시꽃...

이번 여름은 봄보다 더 꽃을 깊게 관찰해보고 싶다. 올봄엔 벚꽃을 많이 즐길 수 있었는데, 너무 좋았던 것은 벚꽃 나무 아래에 앉아 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벚꽃 나무에 기대어 책을 읽을 수 있는 동화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올봄이 좋았다. 진달래는 너무 오래 피니까 관심이 덜 가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벚꽃이 진 다음에 향기를 퍼뜨리는 건 조팝나무일지도 모른다는 걸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준 것도 없이 펼쳐져있는 주변의 풍요로운 선물들을 잘 받을 수 있는 봄이어서 그러한 것을 즐길 수 있어서 행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타샤 할머니와 함께 했던 나의 과거의 시간들 덕분일 것이다.






[ 이 글은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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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일기
서윤후 지음 / 샘터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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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인의 일기장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첫 번째, 시집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의 시인이었기 때문에
두 번째, [일기]이기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만들기, 구체적으론 [코바늘]을 아주 사랑했는데(자주 말하지만 지금은 친구고, 베프), 베프가 나에게 연인이던 시절에 자주 하게 되었던 것 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나의 연인을 소개해주기 위해서, 또 남들이 몰라주는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랬던 것이 어느 새부턴가는 ‘만들지는 않아도 써야는 하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린 것 같고, 좀 더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고, 그래서 책도 다양하게 읽어보고, 많이 써보게 되었던 것 같다.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을 때 만나게 된 것이 [시집]이었고, 오랜만에 접한 시집을 읽으며 그 사이에 내 감수성이 이렇게나 풍부해져서 이 글들을 마음에 담을 수 있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렁임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니! 하고 나만 몰래 느끼는 성취감 같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다.

수공예와 시는 닮은 구석이 있는데, 바로 [맑은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래하면 할수록 마음이 맑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졌기에, 함께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수행하는 마음으로 살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서윤후 시인의 일기장에서는 그때의 단련하며 살고 있었던 내가 떠올랐던 것 같다. 또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진 감정은 오로지 당시의 내가 느꼈던 감정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쓰기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언제부터 일기를 쓰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어릴 때 학교에서 억지로 쓰게 만들었던 것을 제외하면, 나는 마음 치유라는 의도가 가장 컸던 것 같다. 마음 치유로 다시 접한 일기장은 수행하듯 살던 시기에는 정화의 도구였고, 책과 글이 좋아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연습 또는 둔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였던 것도 같다. 나도 가끔 블로그에 내가 쓴 일기의 일부를 보여주기도 하고 블로그에 쓰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이어서 진짜 일기라기 보다는 일상을 나누는 것에 가깝다.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적는 것엔 욕도 안들어가고 누군가에 대한 험담도 없고 나의 망상도 적혀있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해볼 때 내가 생각하는 일기는 누군가에게 터놓기 껄끄러운 속을 마음껏 검열하지 않고 손으로 말하는 공간인 것 같다.


반면 서윤후 시인의 [쓰기 일기]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물론 사적인 이야기나 남에 대한 불만도 적혀있지만 그것보다 더 마음에 닿았던 것은 시에 대한 ‘진심‘이었고, 시가 만들어진 ‘과정‘을 나누어 읽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이 날 내가 쓴 일기는 이렇게 시가 되었습니다.˝ 하는. 그리고 분명 일기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내가 읽었을 땐 이미 ‘시‘인 것 같기도 했는데, 그래서 다른 장르의 책을 읽었을 때와 다르게 느리게, 천천히 읽어야 했다. 꼭꼭 씹어먹어야 하는 현미밥이랄까?, 아니면 동네 산에 오르면 보이는 돌멩이들이 쌓여있는 돌탑에 나도 돌멩이 하나 올리고 싶어서 돌을 고를 때, 엄청 신중하게 골라서 흙을 털어내고 돌탑이 무너지지 않게 빈틈에 조심히 올려놓을 때, 그런 장면이 떠오르는 글!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마음에 소원을 빌고 있으니까, 그래서 읽으면서도 신중함이나 조심스러움, 가장 자신의 마음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을 고르고 골랐다는 섬세함 그런 것들이 전해졌던 것 같다.

그래서 ‘평범하게‘ 시를 좋아하는 소시민으로써의 시에 대한 마음가짐을 점검해보는 시간도 되었던 것 같다. 나도 가끔 시를 쓰고 블로그에도 올리지만 내가 쓰는 시는 대체로 즐거움이 묻어나 있다고 말할 수 있다(아니면 좀 미칠 것 같을 때? 갑자기 변형되는 감정이나 감각이 있었다, 그게 즐거웠고-). 힘든 시기에 썼던 시 역시 써짐과 동시에 그 아픔이 말로 표현하기엔 어려운, 갑자기 상승되는 기쁨? 그러한 것으로 승화가 되어서 사실 너무 짜릿한 기억으로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에 시를 꾸준히 접하게 되었던 것 같고. 지금은 시 감성이 많이 떨어진 시기인데, 그래도 여유가 생기면 되찾고 싶다고 자주 마음속으로 되뇌일 정도로 그 승화되는 순간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음, 그래서 결론은 나는 시가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 감성이 떨어질 때마다 찾게 되는 것은 역시나 시집이다, 또는 정말 잘 써진 가사의 노래를 듣는 것. 나는 어제 산을 올랐는데, 산을 오르면서 자연이 너무 좋고 역시 사람은 자연 속에 머물러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러고 집에 와서 밤에 듣게 된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에 빨려들어가듯 홀려서 ‘이것이 바로 악마다‘ 라는 생각을 했다. 자연은 신이 만들고 감성은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사람은 어찌할 수 없게 사람이 만드는 것에 홀리기 마련인 것 같다. 자연은 평화롭고 너그럽고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사람은 그렇지가 않아서 그렇지 않음에서 오는 특유의 따뜻함과 위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란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될까? 내가 하는 생각과 느낌이 잘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마음이 진지해진다. 시도 그런 것일까? 아, 그래서 내가 수공예할 때 그렇게 진지했었구나, 싶었다. 사실 읽으면서 조금 거울치료 받는 기분도 들었는데,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걸 지금 깨달아버렸다.

암튼 서윤후 시인의 이름에서 ‘아빠 어디가‘의 윤후가 먼저 떠올랐었는데, [무민]을 읽을 때 윤후가 무민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아야~˝ 하던 어린 윤후, 서윤후 시인도 조금 그 윤후 어린이를 떠올리게 한다. 서윤후 시인은 무민을 떠오르게 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시는, 어쩌면 인공지능의 범주에서 가능한 영역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믿고 싶지 않은 쪽에 더 가깝다. 눈빛, 온기, 손그늘, 어깨동무, 뺨, 비스듬히, 부드러움, 솜털, 보조개. 그런 것들은 인간이기에 켤 수 있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p55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있는가. 일상을 겪어내고 있는 나 자신으로부터 어떤 결핍이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따라오는지를 스스로 진찰하는 일로써 이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p79

은연중에 생각나는 것들에 먹이를 줘서는 안 될 것이다. 내 옆에서, 내 안에서 계속 재잘거리는 것들의 노래에 맞춰 풍경을 간직하는 것. 그것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는 발이 빠지기 좋은 작은 웅덩이 하나를 꼭 그려 넣어야 한다.
p97

나의 어린 양들을 세어 꿈결로 가기 직전에 만나는 시, 나는 이런 시들을 종종 놓쳤다.
p113

제목은 ‘나나너너‘. 나를 두 번 말하고 너를 두 번 말하는 사이에 나와 내가 많아졌으나 사라지는 느낌, 발음했을 때 서로가 집착하는 느낌을 주었다가도 입속에서 금방 사라지는 질감이 좋아서 제목만 정해둔 것이었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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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하나 옮김 / 코너스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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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소시민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거나 읽어본 적이 있을 것 같은 [인간 실격], 나는 이 작품을 제목으로는 일찍이 접해보았지만 내용을 읽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예상 밖의 소재와 전개에 조금 놀랍기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게다가 거리를 두기 어려운 주인공 요조의 삶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도 힘들어서, 서평을 많이 안해봐서 어려웠던 것도 있지만 이 작품이 나와 접점이 있었기 때문에 더 쓰기가 어려웠던 것도 있다.

일단 배경이 1930년대 일본의 이야기이고,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 요조가 어린 시절 머슴과 하녀들에게 어린아이가 겪어서는 안될 일을 겪게 되면서 인간에 대한 공포심이 너무나 커졌고, 그로인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 남이 원하는 것을 자꾸 선택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책은 주인공 요조의 수기가 우연히 작가에게 닿게 되면서 세상에 나온 느낌으로 써져 있다.




요즘과 같은 현대사회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고, 진실을 꺼내게 하고 말하게 하면서 치유하는 방식이 너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또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런 상처가 있더라도 건강한 방식으로 삶이 흘러가는 경우가 더 많지만, (상처를 치유해서 더 단단한 멘탈을 갖게 되고, 나다운 삶을 살게 되고, 남을 돕는 치유자가 되는 경우가 많지-) 요조는 과거의 인물이고 자신이 겪은 것을 남에게 호소할 수도 없었고, 요조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사람들도 없었을 거란 생각이 우선 들었다. 게다가 남자고- 요즘과 같은 세상에서도 남자의 경우 더 치유의 기회가 적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요조의 삶은 더 부정적인 방식으로 흘러가게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허구의 인물인데도 감정이입을 하게되고 안타깝다는 생각도 너무 많이 들면서 책에 완전 몰입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요조가 마치 진짜 인물인 것처럼 대하게 되는 것도 이 이야기가 과거에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도 이 성폭력을 다룬 이야기라는 점이었는데, (정확히는 그로인해 망가져버린 삶?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옛날에 이런 숨기고 싶은 일을 소재로 삼아서 그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에 작가님이 엄청 앞서있는 사람이었구나, 남들 다 아무렇지 않게 외면하는 (특히 여자들이 많이 겪는 일인데-) 일을 소설로 다뤘다는 것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주인공 요조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광대짓‘이라는 가면을 써야했던 이유나 진짜 원하는 화가의 일보다 생계였던 만화가를 선택해야했던 것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했던 것 등의 삶의 여러가지 잘못된 선택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면서, 그와 비슷한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길잡이 역할을 해준 것이 아닐까, 하고 읽히기도 했다.

음, 이렇게 하면 삶이 잘못 흘러가,
절대 그러지 말고,
니가 원하는 걸 선택하는 용기를 가져야 해.
남이 원하는 것 말고
니가 원하는 걸 하고,
너의 진실을 말하고,
너무 남에게 맞춰주지 마,
니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둬야 해.
그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여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사람, 그 사람들과 함께하면 되는 거야.

나는 책 속에서 이런 메세지를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다자이 오사무 작가님은 마흔이 되기 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셨는데, 나는 딱 이 시기즈음에 성격적인 변화가 커지게 되었다(이것도 너무 의미부여일 수 있는데-). 나는 잔소리도 못하고 남에게 화도 못내고 항상 차분하게 내 입장 설명하는 그런 침착한 스타일이었는데, 그게 변해버려서 나도 화내고, 싸우고, 무례하게 굴면 한 마디하고, 나보다 나이 많아도 할 말하고, 사과도 받아내고, 보통 사람들 같으면 너무 당연한 것인데 나는 그런 평범함을 되찾아야 했던 것이다. 책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이번엔 그게 잘 되지 않고 자꾸만 나의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동시에 나의 그런 면을 끌어내게 해준 사람들도 떠오른다. 사실 자주 생각함. 고마워서- 내 성질 꺼낼 수 있게 해주고, 받아주고, 사과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나도 정말 사람 무서워하고 세상도 무서워하는데,

˝화내도 괜찮아.˝
˝아무렇지 않지?˝
˝니가 화내도 나쁜 일 안생겨,
오히려 널 이해해주지-˝

하는 에피소드들이어서 화났던 일들이었는데도 동시에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화 못내던 사람이 화낼 수 있게 되는 것도 성장이고, 실수가 너무 싫은 사람이 실수해도 괜찮아지는 것도 성장이다. 사람은 서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고 확 기대어버리는 것도 성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잘 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는 것도 어쩌면 성장이고, 나의 부끄러운 부분, 약점 같은 거 보여도 아무렇지 않구나, 아무 일 안생기네? 하고 알게 되는 것도 성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성장을 누가 만들어주는 걸까? 바로 주변 사람들, 시절 인연들이 만들어 준다.

˝너답게 살아도 괜찮아˝
˝자꾸 가면 쓰면 진짜 소중한 사람 못 만들어˝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말이다, 이 글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이번엔 서평이 엉망이다, 어쩔 수 없다.
책은 너무 거대하고 나는 너무 작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 책을 멋들어지게 서평하기엔 내가 문학적인 감수성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책을 통해 작가님의 메세지를 잘 알아들었으니 그거면 됐지, ‘순진무구한 신뢰는 죄가 됩니까?‘ ‘무저항은 죄가 됩니까?‘ 이것만으로도 내 안의 어딘가는 치유되는 것만 같았다. 그 옛날 나도 모르는 아저씨가 이런 표현으로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니, 그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슬프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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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녹취록 스토리콜렉터 112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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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써야하나 엄청 고민이 된다, 책은 이미 한 번 읽은 후에 또 한 번 살펴본 상태, 괴담,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아니면 공포를 불러오는 이야기? 이 책 또는 이 글을 읽게 되는 사람들에게 괴담은 어떻게 작용이 될까? 정말로 이상한 것은 이 책을 읽는 중엔 무섭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저는, 이 책을 둘러싼 괴이에 닿은 독자에게도 어떤 앙화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요.˝
*앙화 : 어떤 일로 인하여 생기는 재난

⁠목차에 들어가기도 전에 나오는 이 문구를 처음엔 그냥 재밌는 장치라고 여기며 가볍게 넘겼지만 마지막 종장 그리고 역자 후기까지 읽고나선 재밌기만 하기가 어려워졌다. 위의 문구는 책에 등장하는 편집자 도키토의 대사로 작가가 책을 집필할 수 있도록 괴담 테이프를 듣고 텍스트로 정리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책에 참여하는 편집자이다, 그리고 괴담을 정말로 좋아해서 테이프를 그만 들으라는 작가의 말에도 좀처럼 테이프 듣는 것을 멈추기 어려워 한다. 그리고 도키토는 테이프를 텍스트하는 과정에서 공포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면서 독자들에게도 앙화가 닿게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하게 된다.



책의 독특한 점은 서장을 포함한 이야기의 시작 또는 끝에 등장하는 작가와 편집자와의 만남 에피소드가 진짜인지 단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은 미쓰다 신조라는 작가가 표지의 이름만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도 작가로 등장한다. 누군가의 괴이한 체험담에 작가가 상상력을 더해서 만든 이야기라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괴담이 시작된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실제 이야기이고 허구의 이야기인지 알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이 책이 에세이와 같은 형식으로 써있기 때문에 괴담과 괴담의 체험자 역시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야기가 한층 현실적이 되어버림과 동시에 멀리있는 나에게까지도 가까워져버리는 것이다.

누군가의 괴담 체험에 상상력을 더한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자살하기 직전의 실황을 녹음한 테이프, 빈집을 지켜야하는 고액의 아르바이트,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수상한 산행과 미스터리한 인물, 늘 같은 모습으로 어딘가에 서 있는 도시전설과도 같은 존재의 여자, 심부름 중에 만난 이상한 말을 하는 할아버지 등, 이야기를 읽어보면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친숙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 친숙함 때문에 이야기 자체에 공포감이 가득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그런데....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작가의 주변인들의 에피소드, 그러니까 이 괴담을 듣고 앙화를 겪는 주변인들의 이야기 때문에 이 책이 더 무서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서평을 써야했기 때문에 괴담을 연달아 읽어야 했고, 한 번 다 읽은 후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했는데,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르게 공포감이 배로 커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른바 공포감 적립으로 공포가 쌓여버린 것이다. (사실 무의식 속에 있던 공포감을 이야기를 통해 의식화해서 끌어올린 것이지만)



특히 나에게 공포감이 커지게 된 에피소드는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 이야기로 이 책을 읽는 날 비가 오고 있었다. 바로 어제, 4월 20일 토요일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그때 마침 내가 읽게 된 부분!!!

[하지만 말이죠, 비 오는 날에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그야말로 지금 막 숨이 끊어지려고 하거나 혹은 방금 숨을 거둔 시신과 만나게 돼요. 네, 이 이야기를 들은 뒤에.....]

괴담 읽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이 완벽한 타이밍, 사실 이전까진 ˝아, 한 편 한 편씩 재밌게 읽기 좋네~˝ 하며 편안해하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무려 괴담을 공원에서, 나무 등에 기대어! 햇살을 받으며!! 햄버거를 먹으면서!!! ˝다음엔 도시락 싸와서 책 보면서 먹어야지~˝ 하고 행복해하며, 책을 읽었었다. 하지만 더이상 그런 여유를 부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마치 내가 그런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나타난 저 문장.... 이 책을 빨리 읽고 치워버려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져버린 것이다. 서평을 써야하므로 책에서 말하는 냉각기 따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궁금해졌던 건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참여해야하는 사람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무서울까? 였다. 일단 역자 후기를 보면 옮김이 현정수님도 번역하면서 공포감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렇게 많은 미쓰다 신조 작가님의 책을 번역하시다니!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은 티타늄 멘탈을 가진 것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암튼 나는 비가 내리는 어제 기우메 부분을 읽으면서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뭐든 공포 필터가 씌워져서 평소에 보던 것들이 모두 무섭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화장실 같이 혼자 있어야 하는 공간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세수를 하려고 몸을 기울여 눈을 감았다가 뜨는 순간에 머리 위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간 것처럼 검은 그림자가 생기는 일이 발생, 순간 공포감이 확! 하고 올라와 버렸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역시나 글을 읽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건 다르다는 말을 하고싶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은 마치 ‘행운의 편지‘ 같네-)

암튼 무서운데 그 무서움은 안느끼려고 애쓰며(사실 느껴줘야 하는데, 감정 정화), 어떨 때 무서운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살짝 열린 문틈, 밤에 비치는 유리창, 생각보다 집안의 물건들 중 거울처럼 비춰주는 도구가 굉장히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구와 가구 사이의 깊고 좁은 틈, 와이파이가 순간 잘 터지지 않아서 생기는 인터넷 멈춤 현상도 무섭게 느껴졌다, 이때 유튜브를 잠깐 보고 있었는데 멈춰버려서 자동재생(클릭은 하지않아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영상만 나오는)이 된 영상이 무려 자살과 관련된 영상이었다.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와 관련된 소재였다.

게다가 내가 목마를 때 마시려고 미리 떠놓은 물컵의 물마저도 무섭게 느껴졌다. 당장에 마실 것도 아닌데 마치 그 자리에 누군가가 있다는 듯이 물을 떠다준 느낌이 들어서, 게다가 내가 나중에 그 물을 마신다고 생각하면 몹시 찝찝해지는 것이다, 나는 결국 그 물을 마시지 않았고, 다른 긴 아이스용 컵에 발포비타민을 넣어서 빨대로 마셨다, 전혀 다른 마시기 방법으로 공포를 덮은 것이다. 이렇게 나는 공포감을 관찰하는 동시에 공포감을 떨쳐내기 위한, 평화롭고 따뜻한 책 보기 등의 방법을 찾아내기도 하면서 이 책을 한 번 더 살펴보았다.

에세이처럼 느껴지는 이 책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추리소설 같다는 점이다. 작가가 탐정처럼 이야기의 해석을 해준다. 그래서 여러 장르가 MIX된 느낌이 들었다. 소개에 왜 대체불가라는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되었다, 정말로 독특하게 재밌다는 말을 하고싶은 책이다. 안그래도 책을 받고 펼쳤을 때 수분감이 느껴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에 ‘물‘이라는 요소가 있다고 설명해주는 부분에서 ‘내 느낌이 맞았구나, 이 책은 물이 가득해‘ 했던 것이 떠올랐다. 정말로 내용 중에 물이나 물기 등과 관련된 것들이 많이 나온다. 안그래도 나는 물이 필요했는데 말이다. 한동안 햇빛을 많이 받아 너무 바삭바삭 건조된 게 아닐까 싶은 마음에 물 에너지가 가득한 책을 읽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무섭지만 즐거웠다.

그 외에도 책을 읽으면서 괴담에 어울리는 상황이나 환경 같은 것들도 살펴보게 되었다. 대체로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풍요롭지 않은 사람들, 사업에 실패하거나 대학생이거나 사회초년생이 겪는 일들이거나, 인적이 드문 등산로, 한 때 번성했으나 쇠락해버린 상점가에 있는 병원이 그것인데, 경제적 불안과 결핍이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괴담에 어울리는 설정이 된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반대로 부자인 경우 가해하는 입장으로 등장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건 갑자기 생각난 것인데 공포감을 느껴주면 성공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 중 하나인 ‘빈 집을 지키던 밤‘을 보면 ‘도리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성공한 사람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이 ‘도리이‘라는 것을 기부한다는 걸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이야기에 왜 도리이가 등장하는지 정확히는 아니어도 조금 알 것 같았다.(아닐 수도 있음) ‘무섭지만 즐거웠다‘ 까지 쓸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 부분까지 쓰게 되었다.


암튼 오랜만에 괴담집을 읽어 보았는데, 무서운 영화 보고 한동안 오들오들 무서워하던 어릴 때가 떠올라서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되거나 이 포스팅을 읽게 되는 사람들은 또 어떤 경험을 하게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이 글은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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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완성 니팅쌤 코바늘 - 손뜨개가 처음인 당신을 위한
신은영 지음 / 시원북스 / 202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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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작성하기 전에 하고 싶은 말>

1. 나는 코바늘을 할 줄 안다.
2. 나는 코바늘을 독학으로 익혔다.
3. 나는 코바늘 등의 공예를 10년 이상 해왔다.
4. 나는 코바늘 등의 공예를 직업으로 삼고 오래 일을 했었다(과거형)
5. 나는 코바늘 수업을 수년 했었다(과거형)
6. 나는 코바늘을 내 동반자처럼 여기고 사랑했다.
7. 나는 코바늘을 여전히 좋은 친구처럼 여기고 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신청했던 이유는 이 책을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왠지 모를 수퍼 이끌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코바늘 고인물이 전하는 코바늘 기초 입문서 서평!



먼저 책을 전반적으로 살펴본 후의 느낌은 이 책이 코바늘을 배워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친절한 책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나는 코바늘을 독학으로 익혔고, 초심자분들 위주의 기초 수업을 주로 진행했었기 때문에, 코바늘 입문을 원하는 초보자분들이 어느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잘 알고 있는데, 그 어려워서 막히기 쉬운 부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소가 되어 있다는 것이 눈에 잘 들어왔다.

내가 코바늘을 익힌 건 2011년으로 꽤 오래전인데, 당시에는 코바늘 기초책도 드물었고, 과정이 담긴 영상 등을 찾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도안을 반드시 알아야만 했었다. 도안을 볼 줄 알고 기초를 모두 익혀놓으면 나머지는 응용으로 스스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수업을 할 때 ‘도안을 볼 줄 아는 것‘과 ‘기초를 꼼꼼히 익히게 하여 코바늘 자립을 하는 것‘을 목표로 했었는데, [5일 완성 니팅쌤 코바늘]도 이 두 가지의 목표가 잘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책의 초반에는 도안을 익혀야 하는 이유와 코바늘 입문을 위해 필요한 실과 코바늘 등의 재료에 대한 설명이 아주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코바늘 입문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책에 기초용으로 추천되어 있는 바늘과(실제로 제일 많이 사용되는 호수) 코튼실을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실과 재료의 경우는 전문 뜨개실 쇼핑몰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하고, 실을 구입할 땐 브랜드실마다 어떤 사이즈의 코바늘을 써야하는지 적혀있기 때문에 확인을 해보면서 마음에 드는 실을 선택하면 된다. 요즘은 코바늘 입문 재료를 다이소에서 구입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은데, 전문 뜨개실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재료와는 질이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내가 실을 구입할 때 그러한 후기를 읽은 적이 있어서 여기에 적어본다.



<내가 책을 보면서 감탄을 했던 부분>

1. 도안에 떠지는 방향이 화살표와 줄 등으로 표현이 되어있다. -> 도안을 볼 때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어느 단을 뜨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좋다.
2. 사슬뜨기의 사슬코를 직접 세어볼 수 있도록 표시가 되어 있다. -> 이 부분도 초보자가 알아보기 어려운 부분이다, 처음엔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3. 도안이 큼직하다 -> 초보자가 알아보기 쉬운 친절한 도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 글 설명 역시 자세하다. -> 코바늘 독학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책에 적혀있는 설명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읽었으면 좋겠다.
5. 기호 도안과 설명 도안이 함께 있다. -> 여기서 ‘라떼는 말이야‘가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예전에는 기호 도안과 설명 도안이 분리된 책이 많았다, 저자가 어느 나라사람인지에 따라, 누구인지에 따라, 각각 익혀야 했던 시절-
6. 기초를 끝낸 후 나오는 [Part 2]에는 기초를 바탕으로 만들 수 있는 응용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 만들기 어렵지 않고 일상에서 꾸미고 쓸 수 있는 예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세미의 경우 실의 특성상 코를 보는 게 어려울 수 있다, 코바늘을 충분히 익힌 후 도전하시는 걸 추천!)

결론 - 역시 현직 선생님이 쓰신 책이라 초보자가 어느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잘 알고 계셔서 그런 부분들이 잘 배려되어 있었다. 게다가 처음엔 예쁘게 떠지지 않는다는, 초보자를 안심시키는 상냥한 코멘트들도 좋았던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코바늘을 떠보고 잘 되지 않아서 심적으로 좌절하기도 하는데 역시나 그런 마음까지도 잘 받아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책만으로 어려운 경우 영상도 볼 수 있으니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QR코드로 영상을 확인하면서 익히면 될 것 같다.



서평을 위해 책을 보면서 처음에 씨름하며 코바늘을 익혔던 시간들도 생각나고 수업할 때의 기억, 그리고 나머지 딸려올 수 밖에 없는 여러 다양한 추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코바늘과 함께 엄청난 심리적, 감정적, 영적 성장을 함께 해서 코바늘이라는 도구가 나에겐 의미가 깊고 특별하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정신적인 영역에 이 코바늘이라는 도구와 경험이 놓여있다, 코바늘을 접하게 될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경험들을 하게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냥 행복한 경험만 가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신과 함께했던 코바늘과의 추억은 이제 과거로 흘려보내고 새로운 내일과 미래를 만나고 싶다. 한층 서로를 존중하며 다정하게 친구처럼 걷고, 함께 있음에 감사하는, 그리고 다른 꿈을 꾸는 나를 응원해주는 든든한 지지자로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의 과거를 자랑스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부족했지만)나도 참 잘했다, 열심히, 진심으로! 그래서 좋은 선생님을 나 역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코바늘을 하던 하지않던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는 말로 서평을 마무리하고 싶다, 요즘은 정말로 ‘행복‘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암튼 수퍼 이끌림으로 끌려온 [5일 완성 니팅쌤 코바늘], 코바늘 입문서로 강추하고 싶다.





[이 글은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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