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녹취록 스토리콜렉터 112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뭐라고 써야하나 엄청 고민이 된다, 책은 이미 한 번 읽은 후에 또 한 번 살펴본 상태, 괴담,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아니면 공포를 불러오는 이야기? 이 책 또는 이 글을 읽게 되는 사람들에게 괴담은 어떻게 작용이 될까? 정말로 이상한 것은 이 책을 읽는 중엔 무섭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저는, 이 책을 둘러싼 괴이에 닿은 독자에게도 어떤 앙화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요.˝
*앙화 : 어떤 일로 인하여 생기는 재난

⁠목차에 들어가기도 전에 나오는 이 문구를 처음엔 그냥 재밌는 장치라고 여기며 가볍게 넘겼지만 마지막 종장 그리고 역자 후기까지 읽고나선 재밌기만 하기가 어려워졌다. 위의 문구는 책에 등장하는 편집자 도키토의 대사로 작가가 책을 집필할 수 있도록 괴담 테이프를 듣고 텍스트로 정리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책에 참여하는 편집자이다, 그리고 괴담을 정말로 좋아해서 테이프를 그만 들으라는 작가의 말에도 좀처럼 테이프 듣는 것을 멈추기 어려워 한다. 그리고 도키토는 테이프를 텍스트하는 과정에서 공포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면서 독자들에게도 앙화가 닿게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하게 된다.



책의 독특한 점은 서장을 포함한 이야기의 시작 또는 끝에 등장하는 작가와 편집자와의 만남 에피소드가 진짜인지 단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은 미쓰다 신조라는 작가가 표지의 이름만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도 작가로 등장한다. 누군가의 괴이한 체험담에 작가가 상상력을 더해서 만든 이야기라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괴담이 시작된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실제 이야기이고 허구의 이야기인지 알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이 책이 에세이와 같은 형식으로 써있기 때문에 괴담과 괴담의 체험자 역시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야기가 한층 현실적이 되어버림과 동시에 멀리있는 나에게까지도 가까워져버리는 것이다.

누군가의 괴담 체험에 상상력을 더한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자살하기 직전의 실황을 녹음한 테이프, 빈집을 지켜야하는 고액의 아르바이트,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수상한 산행과 미스터리한 인물, 늘 같은 모습으로 어딘가에 서 있는 도시전설과도 같은 존재의 여자, 심부름 중에 만난 이상한 말을 하는 할아버지 등, 이야기를 읽어보면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친숙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 친숙함 때문에 이야기 자체에 공포감이 가득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그런데....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작가의 주변인들의 에피소드, 그러니까 이 괴담을 듣고 앙화를 겪는 주변인들의 이야기 때문에 이 책이 더 무서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서평을 써야했기 때문에 괴담을 연달아 읽어야 했고, 한 번 다 읽은 후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했는데,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르게 공포감이 배로 커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른바 공포감 적립으로 공포가 쌓여버린 것이다. (사실 무의식 속에 있던 공포감을 이야기를 통해 의식화해서 끌어올린 것이지만)



특히 나에게 공포감이 커지게 된 에피소드는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 이야기로 이 책을 읽는 날 비가 오고 있었다. 바로 어제, 4월 20일 토요일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그때 마침 내가 읽게 된 부분!!!

[하지만 말이죠, 비 오는 날에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그야말로 지금 막 숨이 끊어지려고 하거나 혹은 방금 숨을 거둔 시신과 만나게 돼요. 네, 이 이야기를 들은 뒤에.....]

괴담 읽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이 완벽한 타이밍, 사실 이전까진 ˝아, 한 편 한 편씩 재밌게 읽기 좋네~˝ 하며 편안해하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무려 괴담을 공원에서, 나무 등에 기대어! 햇살을 받으며!! 햄버거를 먹으면서!!! ˝다음엔 도시락 싸와서 책 보면서 먹어야지~˝ 하고 행복해하며, 책을 읽었었다. 하지만 더이상 그런 여유를 부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마치 내가 그런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나타난 저 문장.... 이 책을 빨리 읽고 치워버려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져버린 것이다. 서평을 써야하므로 책에서 말하는 냉각기 따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궁금해졌던 건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참여해야하는 사람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무서울까? 였다. 일단 역자 후기를 보면 옮김이 현정수님도 번역하면서 공포감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렇게 많은 미쓰다 신조 작가님의 책을 번역하시다니!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은 티타늄 멘탈을 가진 것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암튼 나는 비가 내리는 어제 기우메 부분을 읽으면서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뭐든 공포 필터가 씌워져서 평소에 보던 것들이 모두 무섭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화장실 같이 혼자 있어야 하는 공간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세수를 하려고 몸을 기울여 눈을 감았다가 뜨는 순간에 머리 위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간 것처럼 검은 그림자가 생기는 일이 발생, 순간 공포감이 확! 하고 올라와 버렸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역시나 글을 읽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건 다르다는 말을 하고싶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은 마치 ‘행운의 편지‘ 같네-)

암튼 무서운데 그 무서움은 안느끼려고 애쓰며(사실 느껴줘야 하는데, 감정 정화), 어떨 때 무서운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살짝 열린 문틈, 밤에 비치는 유리창, 생각보다 집안의 물건들 중 거울처럼 비춰주는 도구가 굉장히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구와 가구 사이의 깊고 좁은 틈, 와이파이가 순간 잘 터지지 않아서 생기는 인터넷 멈춤 현상도 무섭게 느껴졌다, 이때 유튜브를 잠깐 보고 있었는데 멈춰버려서 자동재생(클릭은 하지않아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영상만 나오는)이 된 영상이 무려 자살과 관련된 영상이었다.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와 관련된 소재였다.

게다가 내가 목마를 때 마시려고 미리 떠놓은 물컵의 물마저도 무섭게 느껴졌다. 당장에 마실 것도 아닌데 마치 그 자리에 누군가가 있다는 듯이 물을 떠다준 느낌이 들어서, 게다가 내가 나중에 그 물을 마신다고 생각하면 몹시 찝찝해지는 것이다, 나는 결국 그 물을 마시지 않았고, 다른 긴 아이스용 컵에 발포비타민을 넣어서 빨대로 마셨다, 전혀 다른 마시기 방법으로 공포를 덮은 것이다. 이렇게 나는 공포감을 관찰하는 동시에 공포감을 떨쳐내기 위한, 평화롭고 따뜻한 책 보기 등의 방법을 찾아내기도 하면서 이 책을 한 번 더 살펴보았다.

에세이처럼 느껴지는 이 책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추리소설 같다는 점이다. 작가가 탐정처럼 이야기의 해석을 해준다. 그래서 여러 장르가 MIX된 느낌이 들었다. 소개에 왜 대체불가라는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되었다, 정말로 독특하게 재밌다는 말을 하고싶은 책이다. 안그래도 책을 받고 펼쳤을 때 수분감이 느껴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에 ‘물‘이라는 요소가 있다고 설명해주는 부분에서 ‘내 느낌이 맞았구나, 이 책은 물이 가득해‘ 했던 것이 떠올랐다. 정말로 내용 중에 물이나 물기 등과 관련된 것들이 많이 나온다. 안그래도 나는 물이 필요했는데 말이다. 한동안 햇빛을 많이 받아 너무 바삭바삭 건조된 게 아닐까 싶은 마음에 물 에너지가 가득한 책을 읽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무섭지만 즐거웠다.

그 외에도 책을 읽으면서 괴담에 어울리는 상황이나 환경 같은 것들도 살펴보게 되었다. 대체로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풍요롭지 않은 사람들, 사업에 실패하거나 대학생이거나 사회초년생이 겪는 일들이거나, 인적이 드문 등산로, 한 때 번성했으나 쇠락해버린 상점가에 있는 병원이 그것인데, 경제적 불안과 결핍이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괴담에 어울리는 설정이 된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반대로 부자인 경우 가해하는 입장으로 등장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건 갑자기 생각난 것인데 공포감을 느껴주면 성공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 중 하나인 ‘빈 집을 지키던 밤‘을 보면 ‘도리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성공한 사람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이 ‘도리이‘라는 것을 기부한다는 걸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이야기에 왜 도리이가 등장하는지 정확히는 아니어도 조금 알 것 같았다.(아닐 수도 있음) ‘무섭지만 즐거웠다‘ 까지 쓸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 부분까지 쓰게 되었다.


암튼 오랜만에 괴담집을 읽어 보았는데, 무서운 영화 보고 한동안 오들오들 무서워하던 어릴 때가 떠올라서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되거나 이 포스팅을 읽게 되는 사람들은 또 어떤 경험을 하게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이 글은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