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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 ㅣ 앤드 산문집 시리즈
강혜빈 지음 / &(앤드) / 2024년 3월
평점 :
강혜빈
시인
사진가 파란피paranpee
뉴노멀이 될 양손잡이
1.
나는 나를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나를 정의내릴 수 있는 말들이 많았고 무척 쉬웠는데, 어느덧 나는 뚜렷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는 흐리고 경계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좋게 생각한다면 나는 무엇이든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고, 무언가를 이미 품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작가님은 10년 전에 시에 반해 시인이 되셨다고 했다. 10년 전에 열심히 도서관을 다니셨던 부분에서 나도 열심히 도서관을 다니던 시절(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깝고, 여전히 진행중인-)이 생각났다.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
2.
‘마음은 울퉁불퉁한 사탕. 아무런 색도 맛도 없다. 그렇지만 녹여먹거나, 씹어먹을 수 있다. 그 중에서는 절대 녹지 않는 마음이 있다.‘
나에게 절대 녹지 않는 마음은 무엇일까? 나는 이 책에 쓰여진 다정한 관찰력과 감성이 좋았다. 글을 읽는데 자꾸만 말이 하고 싶어졌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나도 그랬어, 하는 공감력이 높아지는 내용들이 많았다. ‘마음은 울퉁불퉁한 사탕‘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알사탕이 떠올랐다, 혹시 입 안에서 알사탕을 오물오물하다가 마음은 알사탕 같구나!하고 떠올리셨던 건 아닐까, 하고, 가까운 누군가로부터 퍼지는 물 먹은 나뭇잎 향은 또 어떤 향일까, 하고 상상을 하게 되었다. 다가오는 봄에 공원에 가면 이 글을 기억해두었다가, ˝그 향은 이랬을 거야.˝ 하고 짐작해보고 싶어졌다.
3.
작가님의 커밍아웃에는 조금 놀라서 책에 더 빨려들어가 버렸다. 역시 책엔 이런 한 방이 들어가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밤양갱을 좋아하지 않지만 밤양갱이란 노래는 좋아한다. 그리고 누가 밤양갱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건 잘못되었다거나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 않나? 밤양갱을 좋아하는 사람은 싫습니다, 이런 말 굉장히 웃기지 않냐고-
하지만 누군가 갑자기 커밍아웃을 한다면 놀라울 수는 있지, 모두 ‘있어도 없는 척‘하는 일이니까, 나 역시 ‘있어도 없는 척‘하는 걸 가지고 있다. 블로그에선 종종 해왔던 말이지만, ‘아동 성폭력 생존자‘라는 커밍아웃도 누군가의 눈엔 조금 놀라운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그리고 갑자기 내가 조금 달라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리고 초반에 작가님이 ‘엄마가 되고 싶다‘고 하셨던 말에 ˝아직 젊으니까 충분히 될 수 있지, 엄마하면 되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 조금 무거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10년만 지나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50년만 지나도 아마 로봇도 인간과 같은 권리를 가질 것 같고 말이지, 지금 우리는 현재의 걱정을 하고 있지만 미래엔 ˝왜 이런 걸 커밍아웃하고 조심스러워 해야 했나?˝하고 생각하게 될 것만 같아서 말이지, 누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인데, 누군가 그걸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이 나는 더 자연스럽지 못하게 보인다.
4.
느지막히 일어나서 책상 앞에서 밥을 먹고 밀크티를 마시면서 조금 책을 읽다가 산책을 가려고 했는데, 조금 책을 읽는다는 것이 조금 더 연장이 되었고, 또 조금 더 연장이 되어버려서, 벌써 3시가 되었다. 나는 오늘 햇빛을 받을 수 있을까?, 책을 조금 더 읽고 나가고 싶다.(지금은 3월 10일 일요일, 나도 현장감을 담아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나도 이것저것 말이 하고 싶어져서 그때 그때 노트에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두었다.)
5.
‘꽃이 없기 때문에 [안갖춘꽃]이라는 무화과는 처음부터 꽃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안으로 피는 것이랍니다.‘
무화과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어릴 때 할머니 댁에 흔하게 열려있던 무화과가 생각났다. 할머니 집에 가면 자주 쟁반에 무화과가 가득 담겨 있었는데, 당시에는 무화과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모양도 이상하고, 달기만 한 과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비싸고, 귀하고, 다양한 음식에 토핑으로 쓰이고 있으니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는 위상을 느낀다. 나는 빵에 들은 무화과를 정말 좋아한다, 살짝 구운 듯 익혀져 있고, 씹으면 바삭하니 알갱이 같은 것이 씹히는 무화과가 정말로 맛있다. 옛날에도 내가 무화과를 귀하게 볼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하지만 어린애가 무화과를 귀한 눈으로 본다면 그건 어린애가 아닐 것이다, 어린애 몸 속에 할머니가 들은 것이겠지!
6.
‘딱딱한 복숭아는 어떤 근육으로 이루어진 걸까?‘
나는 이런 생각들을 정말로 좋아한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는 뇌가 굳어질 때마다, 마비가 올 때마다, 시집을 읽거나 재밌는 아이디어가 담긴 책을 읽는다, 그들의 에너지를 나에게도 흐르게 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에, 물건에도 생명 에너지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도 한 번도 과육을 근육으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럴 수가! 만약에 복숭아를 보면서 과육을 근육, 껍질을 피부로 본다면 내가 복숭아를 먹을 수 있을까, 문득 그러한 냉정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조금 장난을 치는 것이다, 복숭아는 내 입으로 들어가면서도 조금 즐거울지도 모르지, 복숭아의 마음을 내가 알 수 없으니, 단지 복숭아의 순수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것뿐, 나도 이 글을 보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물복이 좋아요? 딱복이 좋아요?˝ 저는 임플란트를 하기 전까진 딱복을 좋아했습니다, 천도 복숭아를 말하는 거예요, 아주 오랫동안 좋아하는 과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면 좋아하는 것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지금은 먹기 부드러운 물복이 좋습니다, 그리고 나도 손에서 단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보여도 괜찮은 사람과 물 많은 복숭아를 먹고 싶습니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7.
책방의 이야기는 무척 신선했다, 책의 등뼈가 글 곳곳에 들어가 있다, 처음엔 왜 여기에만 파란 글씨로 적혀있을까?, 궁금했는데, 그리고 마지막엔 내가 좋아하는 시집의 제목이 써있는 것이 아닌가?!!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딱 1년 전 이맘때가 또 떠올랐다, 그때 이 시집을 읽으면서 노란 장미 블랭킷을 뜨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할미같았는데 지금의 나는 사춘기 소녀같아졌다. 그리고 코로나가 오기 전 보았던 유튜브에서 가수 이진아가 헌책방에서 책의 등뼈들로 노래를 만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그 영상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글을 써보고 싶다, 너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 생각났다. 혹시 그때 그 영상, 작가님도 보고계셨던 걸까?, 궁금해지면서(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에 그렇다면 같은 걸 시청한 사람으로써 사소하게 반가운 마음이 든다.
‘여자는 길을 몰랐고, 그의 연인은 우연을 가장한 계획 속에서 그를 인도하고 있었다.‘
8.
‘영혼, 그리고 마음은 울퉁불퉁한 사탕. 아무런 색도 맛도 없다. 그렇지만 녹여 먹거나, 씩어 먹을 수 있다. 그 중에서는 절대 녹지 않는 마음도 있다. 그런 마음을 많이 가질수록 좋다.‘
초반의 이야기가 다른 형태로 한 번 더 등장한다, 그래서 이 책은 시 같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잠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도 잠을 잘 들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잠이 잘 오려면 감정이 억눌려 있지 않아야 한다고 이성 100%로 말하게 되지만, 내가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예쁜 말들을 더 알았다면 다른 것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이 안오는 대신에 쓸 수 있는 것들, 그릴 수 있는 것들, 만들 수 있는 것들, 행동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 편이 더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이 되고 활력이 되고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현실의 모든 걸 온몸으로 받아내고 승화하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이고 부럽다, 그건 정말로 어려운 것이기에.
리뷰를 써야해서 조금 빠르게 책을 읽게 되었지만 이 책을 가까이에 두고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마음에 수분이 부족할 때마다 꺼내 읽고 싶다. (직업적인 분야에서)미래엔 AI나 로봇으로 대체되는 것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 중 대체불가능에 가까운 사람들이 바로 다정한 사람들일 거라고 한다, 다정한 사람들은 미래에 보상을 받을 것이다, 다정한 사람들이 계속 남아있기를 바라며, 다정한 사람들이 계속 다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죽지 말고 잘 살아요.
더 귀여워진 당신을 기대하며.
지루한 미래에서 꼭 만나요.
총총.‘
[ 이 글은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