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일기
서윤후 지음 / 샘터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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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인의 일기장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첫 번째, 시집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의 시인이었기 때문에
두 번째, [일기]이기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만들기, 구체적으론 [코바늘]을 아주 사랑했는데(자주 말하지만 지금은 친구고, 베프), 베프가 나에게 연인이던 시절에 자주 하게 되었던 것 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나의 연인을 소개해주기 위해서, 또 남들이 몰라주는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랬던 것이 어느 새부턴가는 ‘만들지는 않아도 써야는 하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린 것 같고, 좀 더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고, 그래서 책도 다양하게 읽어보고, 많이 써보게 되었던 것 같다.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을 때 만나게 된 것이 [시집]이었고, 오랜만에 접한 시집을 읽으며 그 사이에 내 감수성이 이렇게나 풍부해져서 이 글들을 마음에 담을 수 있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렁임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니! 하고 나만 몰래 느끼는 성취감 같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다.

수공예와 시는 닮은 구석이 있는데, 바로 [맑은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래하면 할수록 마음이 맑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졌기에, 함께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수행하는 마음으로 살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서윤후 시인의 일기장에서는 그때의 단련하며 살고 있었던 내가 떠올랐던 것 같다. 또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진 감정은 오로지 당시의 내가 느꼈던 감정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쓰기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언제부터 일기를 쓰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어릴 때 학교에서 억지로 쓰게 만들었던 것을 제외하면, 나는 마음 치유라는 의도가 가장 컸던 것 같다. 마음 치유로 다시 접한 일기장은 수행하듯 살던 시기에는 정화의 도구였고, 책과 글이 좋아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연습 또는 둔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였던 것도 같다. 나도 가끔 블로그에 내가 쓴 일기의 일부를 보여주기도 하고 블로그에 쓰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이어서 진짜 일기라기 보다는 일상을 나누는 것에 가깝다.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적는 것엔 욕도 안들어가고 누군가에 대한 험담도 없고 나의 망상도 적혀있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해볼 때 내가 생각하는 일기는 누군가에게 터놓기 껄끄러운 속을 마음껏 검열하지 않고 손으로 말하는 공간인 것 같다.


반면 서윤후 시인의 [쓰기 일기]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물론 사적인 이야기나 남에 대한 불만도 적혀있지만 그것보다 더 마음에 닿았던 것은 시에 대한 ‘진심‘이었고, 시가 만들어진 ‘과정‘을 나누어 읽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이 날 내가 쓴 일기는 이렇게 시가 되었습니다.˝ 하는. 그리고 분명 일기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내가 읽었을 땐 이미 ‘시‘인 것 같기도 했는데, 그래서 다른 장르의 책을 읽었을 때와 다르게 느리게, 천천히 읽어야 했다. 꼭꼭 씹어먹어야 하는 현미밥이랄까?, 아니면 동네 산에 오르면 보이는 돌멩이들이 쌓여있는 돌탑에 나도 돌멩이 하나 올리고 싶어서 돌을 고를 때, 엄청 신중하게 골라서 흙을 털어내고 돌탑이 무너지지 않게 빈틈에 조심히 올려놓을 때, 그런 장면이 떠오르는 글!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마음에 소원을 빌고 있으니까, 그래서 읽으면서도 신중함이나 조심스러움, 가장 자신의 마음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을 고르고 골랐다는 섬세함 그런 것들이 전해졌던 것 같다.

그래서 ‘평범하게‘ 시를 좋아하는 소시민으로써의 시에 대한 마음가짐을 점검해보는 시간도 되었던 것 같다. 나도 가끔 시를 쓰고 블로그에도 올리지만 내가 쓰는 시는 대체로 즐거움이 묻어나 있다고 말할 수 있다(아니면 좀 미칠 것 같을 때? 갑자기 변형되는 감정이나 감각이 있었다, 그게 즐거웠고-). 힘든 시기에 썼던 시 역시 써짐과 동시에 그 아픔이 말로 표현하기엔 어려운, 갑자기 상승되는 기쁨? 그러한 것으로 승화가 되어서 사실 너무 짜릿한 기억으로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에 시를 꾸준히 접하게 되었던 것 같고. 지금은 시 감성이 많이 떨어진 시기인데, 그래도 여유가 생기면 되찾고 싶다고 자주 마음속으로 되뇌일 정도로 그 승화되는 순간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음, 그래서 결론은 나는 시가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 감성이 떨어질 때마다 찾게 되는 것은 역시나 시집이다, 또는 정말 잘 써진 가사의 노래를 듣는 것. 나는 어제 산을 올랐는데, 산을 오르면서 자연이 너무 좋고 역시 사람은 자연 속에 머물러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러고 집에 와서 밤에 듣게 된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에 빨려들어가듯 홀려서 ‘이것이 바로 악마다‘ 라는 생각을 했다. 자연은 신이 만들고 감성은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사람은 어찌할 수 없게 사람이 만드는 것에 홀리기 마련인 것 같다. 자연은 평화롭고 너그럽고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사람은 그렇지가 않아서 그렇지 않음에서 오는 특유의 따뜻함과 위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란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될까? 내가 하는 생각과 느낌이 잘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마음이 진지해진다. 시도 그런 것일까? 아, 그래서 내가 수공예할 때 그렇게 진지했었구나, 싶었다. 사실 읽으면서 조금 거울치료 받는 기분도 들었는데,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걸 지금 깨달아버렸다.

암튼 서윤후 시인의 이름에서 ‘아빠 어디가‘의 윤후가 먼저 떠올랐었는데, [무민]을 읽을 때 윤후가 무민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아야~˝ 하던 어린 윤후, 서윤후 시인도 조금 그 윤후 어린이를 떠올리게 한다. 서윤후 시인은 무민을 떠오르게 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시는, 어쩌면 인공지능의 범주에서 가능한 영역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믿고 싶지 않은 쪽에 더 가깝다. 눈빛, 온기, 손그늘, 어깨동무, 뺨, 비스듬히, 부드러움, 솜털, 보조개. 그런 것들은 인간이기에 켤 수 있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p55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있는가. 일상을 겪어내고 있는 나 자신으로부터 어떤 결핍이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따라오는지를 스스로 진찰하는 일로써 이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p79

은연중에 생각나는 것들에 먹이를 줘서는 안 될 것이다. 내 옆에서, 내 안에서 계속 재잘거리는 것들의 노래에 맞춰 풍경을 간직하는 것. 그것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는 발이 빠지기 좋은 작은 웅덩이 하나를 꼭 그려 넣어야 한다.
p97

나의 어린 양들을 세어 꿈결로 가기 직전에 만나는 시, 나는 이런 시들을 종종 놓쳤다.
p113

제목은 ‘나나너너‘. 나를 두 번 말하고 너를 두 번 말하는 사이에 나와 내가 많아졌으나 사라지는 느낌, 발음했을 때 서로가 집착하는 느낌을 주었다가도 입속에서 금방 사라지는 질감이 좋아서 제목만 정해둔 것이었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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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하나 옮김 / 코너스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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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소시민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거나 읽어본 적이 있을 것 같은 [인간 실격], 나는 이 작품을 제목으로는 일찍이 접해보았지만 내용을 읽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예상 밖의 소재와 전개에 조금 놀랍기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게다가 거리를 두기 어려운 주인공 요조의 삶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도 힘들어서, 서평을 많이 안해봐서 어려웠던 것도 있지만 이 작품이 나와 접점이 있었기 때문에 더 쓰기가 어려웠던 것도 있다.

일단 배경이 1930년대 일본의 이야기이고,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 요조가 어린 시절 머슴과 하녀들에게 어린아이가 겪어서는 안될 일을 겪게 되면서 인간에 대한 공포심이 너무나 커졌고, 그로인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 남이 원하는 것을 자꾸 선택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책은 주인공 요조의 수기가 우연히 작가에게 닿게 되면서 세상에 나온 느낌으로 써져 있다.




요즘과 같은 현대사회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고, 진실을 꺼내게 하고 말하게 하면서 치유하는 방식이 너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또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런 상처가 있더라도 건강한 방식으로 삶이 흘러가는 경우가 더 많지만, (상처를 치유해서 더 단단한 멘탈을 갖게 되고, 나다운 삶을 살게 되고, 남을 돕는 치유자가 되는 경우가 많지-) 요조는 과거의 인물이고 자신이 겪은 것을 남에게 호소할 수도 없었고, 요조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사람들도 없었을 거란 생각이 우선 들었다. 게다가 남자고- 요즘과 같은 세상에서도 남자의 경우 더 치유의 기회가 적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요조의 삶은 더 부정적인 방식으로 흘러가게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허구의 인물인데도 감정이입을 하게되고 안타깝다는 생각도 너무 많이 들면서 책에 완전 몰입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요조가 마치 진짜 인물인 것처럼 대하게 되는 것도 이 이야기가 과거에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도 이 성폭력을 다룬 이야기라는 점이었는데, (정확히는 그로인해 망가져버린 삶?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옛날에 이런 숨기고 싶은 일을 소재로 삼아서 그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에 작가님이 엄청 앞서있는 사람이었구나, 남들 다 아무렇지 않게 외면하는 (특히 여자들이 많이 겪는 일인데-) 일을 소설로 다뤘다는 것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주인공 요조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광대짓‘이라는 가면을 써야했던 이유나 진짜 원하는 화가의 일보다 생계였던 만화가를 선택해야했던 것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했던 것 등의 삶의 여러가지 잘못된 선택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면서, 그와 비슷한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길잡이 역할을 해준 것이 아닐까, 하고 읽히기도 했다.

음, 이렇게 하면 삶이 잘못 흘러가,
절대 그러지 말고,
니가 원하는 걸 선택하는 용기를 가져야 해.
남이 원하는 것 말고
니가 원하는 걸 하고,
너의 진실을 말하고,
너무 남에게 맞춰주지 마,
니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둬야 해.
그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여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사람, 그 사람들과 함께하면 되는 거야.

나는 책 속에서 이런 메세지를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다자이 오사무 작가님은 마흔이 되기 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셨는데, 나는 딱 이 시기즈음에 성격적인 변화가 커지게 되었다(이것도 너무 의미부여일 수 있는데-). 나는 잔소리도 못하고 남에게 화도 못내고 항상 차분하게 내 입장 설명하는 그런 침착한 스타일이었는데, 그게 변해버려서 나도 화내고, 싸우고, 무례하게 굴면 한 마디하고, 나보다 나이 많아도 할 말하고, 사과도 받아내고, 보통 사람들 같으면 너무 당연한 것인데 나는 그런 평범함을 되찾아야 했던 것이다. 책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이번엔 그게 잘 되지 않고 자꾸만 나의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동시에 나의 그런 면을 끌어내게 해준 사람들도 떠오른다. 사실 자주 생각함. 고마워서- 내 성질 꺼낼 수 있게 해주고, 받아주고, 사과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나도 정말 사람 무서워하고 세상도 무서워하는데,

˝화내도 괜찮아.˝
˝아무렇지 않지?˝
˝니가 화내도 나쁜 일 안생겨,
오히려 널 이해해주지-˝

하는 에피소드들이어서 화났던 일들이었는데도 동시에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화 못내던 사람이 화낼 수 있게 되는 것도 성장이고, 실수가 너무 싫은 사람이 실수해도 괜찮아지는 것도 성장이다. 사람은 서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고 확 기대어버리는 것도 성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잘 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는 것도 어쩌면 성장이고, 나의 부끄러운 부분, 약점 같은 거 보여도 아무렇지 않구나, 아무 일 안생기네? 하고 알게 되는 것도 성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성장을 누가 만들어주는 걸까? 바로 주변 사람들, 시절 인연들이 만들어 준다.

˝너답게 살아도 괜찮아˝
˝자꾸 가면 쓰면 진짜 소중한 사람 못 만들어˝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말이다, 이 글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이번엔 서평이 엉망이다, 어쩔 수 없다.
책은 너무 거대하고 나는 너무 작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 책을 멋들어지게 서평하기엔 내가 문학적인 감수성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책을 통해 작가님의 메세지를 잘 알아들었으니 그거면 됐지, ‘순진무구한 신뢰는 죄가 됩니까?‘ ‘무저항은 죄가 됩니까?‘ 이것만으로도 내 안의 어딘가는 치유되는 것만 같았다. 그 옛날 나도 모르는 아저씨가 이런 표현으로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니, 그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슬프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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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녹취록 스토리콜렉터 112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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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써야하나 엄청 고민이 된다, 책은 이미 한 번 읽은 후에 또 한 번 살펴본 상태, 괴담,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아니면 공포를 불러오는 이야기? 이 책 또는 이 글을 읽게 되는 사람들에게 괴담은 어떻게 작용이 될까? 정말로 이상한 것은 이 책을 읽는 중엔 무섭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저는, 이 책을 둘러싼 괴이에 닿은 독자에게도 어떤 앙화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요.˝
*앙화 : 어떤 일로 인하여 생기는 재난

⁠목차에 들어가기도 전에 나오는 이 문구를 처음엔 그냥 재밌는 장치라고 여기며 가볍게 넘겼지만 마지막 종장 그리고 역자 후기까지 읽고나선 재밌기만 하기가 어려워졌다. 위의 문구는 책에 등장하는 편집자 도키토의 대사로 작가가 책을 집필할 수 있도록 괴담 테이프를 듣고 텍스트로 정리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책에 참여하는 편집자이다, 그리고 괴담을 정말로 좋아해서 테이프를 그만 들으라는 작가의 말에도 좀처럼 테이프 듣는 것을 멈추기 어려워 한다. 그리고 도키토는 테이프를 텍스트하는 과정에서 공포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면서 독자들에게도 앙화가 닿게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하게 된다.



책의 독특한 점은 서장을 포함한 이야기의 시작 또는 끝에 등장하는 작가와 편집자와의 만남 에피소드가 진짜인지 단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은 미쓰다 신조라는 작가가 표지의 이름만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도 작가로 등장한다. 누군가의 괴이한 체험담에 작가가 상상력을 더해서 만든 이야기라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괴담이 시작된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실제 이야기이고 허구의 이야기인지 알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이 책이 에세이와 같은 형식으로 써있기 때문에 괴담과 괴담의 체험자 역시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야기가 한층 현실적이 되어버림과 동시에 멀리있는 나에게까지도 가까워져버리는 것이다.

누군가의 괴담 체험에 상상력을 더한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자살하기 직전의 실황을 녹음한 테이프, 빈집을 지켜야하는 고액의 아르바이트,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수상한 산행과 미스터리한 인물, 늘 같은 모습으로 어딘가에 서 있는 도시전설과도 같은 존재의 여자, 심부름 중에 만난 이상한 말을 하는 할아버지 등, 이야기를 읽어보면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친숙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 친숙함 때문에 이야기 자체에 공포감이 가득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그런데....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작가의 주변인들의 에피소드, 그러니까 이 괴담을 듣고 앙화를 겪는 주변인들의 이야기 때문에 이 책이 더 무서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서평을 써야했기 때문에 괴담을 연달아 읽어야 했고, 한 번 다 읽은 후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했는데,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르게 공포감이 배로 커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른바 공포감 적립으로 공포가 쌓여버린 것이다. (사실 무의식 속에 있던 공포감을 이야기를 통해 의식화해서 끌어올린 것이지만)



특히 나에게 공포감이 커지게 된 에피소드는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 이야기로 이 책을 읽는 날 비가 오고 있었다. 바로 어제, 4월 20일 토요일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그때 마침 내가 읽게 된 부분!!!

[하지만 말이죠, 비 오는 날에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그야말로 지금 막 숨이 끊어지려고 하거나 혹은 방금 숨을 거둔 시신과 만나게 돼요. 네, 이 이야기를 들은 뒤에.....]

괴담 읽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이 완벽한 타이밍, 사실 이전까진 ˝아, 한 편 한 편씩 재밌게 읽기 좋네~˝ 하며 편안해하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무려 괴담을 공원에서, 나무 등에 기대어! 햇살을 받으며!! 햄버거를 먹으면서!!! ˝다음엔 도시락 싸와서 책 보면서 먹어야지~˝ 하고 행복해하며, 책을 읽었었다. 하지만 더이상 그런 여유를 부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마치 내가 그런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나타난 저 문장.... 이 책을 빨리 읽고 치워버려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져버린 것이다. 서평을 써야하므로 책에서 말하는 냉각기 따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궁금해졌던 건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참여해야하는 사람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무서울까? 였다. 일단 역자 후기를 보면 옮김이 현정수님도 번역하면서 공포감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렇게 많은 미쓰다 신조 작가님의 책을 번역하시다니!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은 티타늄 멘탈을 가진 것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암튼 나는 비가 내리는 어제 기우메 부분을 읽으면서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뭐든 공포 필터가 씌워져서 평소에 보던 것들이 모두 무섭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화장실 같이 혼자 있어야 하는 공간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세수를 하려고 몸을 기울여 눈을 감았다가 뜨는 순간에 머리 위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간 것처럼 검은 그림자가 생기는 일이 발생, 순간 공포감이 확! 하고 올라와 버렸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역시나 글을 읽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건 다르다는 말을 하고싶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은 마치 ‘행운의 편지‘ 같네-)

암튼 무서운데 그 무서움은 안느끼려고 애쓰며(사실 느껴줘야 하는데, 감정 정화), 어떨 때 무서운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살짝 열린 문틈, 밤에 비치는 유리창, 생각보다 집안의 물건들 중 거울처럼 비춰주는 도구가 굉장히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구와 가구 사이의 깊고 좁은 틈, 와이파이가 순간 잘 터지지 않아서 생기는 인터넷 멈춤 현상도 무섭게 느껴졌다, 이때 유튜브를 잠깐 보고 있었는데 멈춰버려서 자동재생(클릭은 하지않아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영상만 나오는)이 된 영상이 무려 자살과 관련된 영상이었다.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와 관련된 소재였다.

게다가 내가 목마를 때 마시려고 미리 떠놓은 물컵의 물마저도 무섭게 느껴졌다. 당장에 마실 것도 아닌데 마치 그 자리에 누군가가 있다는 듯이 물을 떠다준 느낌이 들어서, 게다가 내가 나중에 그 물을 마신다고 생각하면 몹시 찝찝해지는 것이다, 나는 결국 그 물을 마시지 않았고, 다른 긴 아이스용 컵에 발포비타민을 넣어서 빨대로 마셨다, 전혀 다른 마시기 방법으로 공포를 덮은 것이다. 이렇게 나는 공포감을 관찰하는 동시에 공포감을 떨쳐내기 위한, 평화롭고 따뜻한 책 보기 등의 방법을 찾아내기도 하면서 이 책을 한 번 더 살펴보았다.

에세이처럼 느껴지는 이 책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추리소설 같다는 점이다. 작가가 탐정처럼 이야기의 해석을 해준다. 그래서 여러 장르가 MIX된 느낌이 들었다. 소개에 왜 대체불가라는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되었다, 정말로 독특하게 재밌다는 말을 하고싶은 책이다. 안그래도 책을 받고 펼쳤을 때 수분감이 느껴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에 ‘물‘이라는 요소가 있다고 설명해주는 부분에서 ‘내 느낌이 맞았구나, 이 책은 물이 가득해‘ 했던 것이 떠올랐다. 정말로 내용 중에 물이나 물기 등과 관련된 것들이 많이 나온다. 안그래도 나는 물이 필요했는데 말이다. 한동안 햇빛을 많이 받아 너무 바삭바삭 건조된 게 아닐까 싶은 마음에 물 에너지가 가득한 책을 읽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무섭지만 즐거웠다.

그 외에도 책을 읽으면서 괴담에 어울리는 상황이나 환경 같은 것들도 살펴보게 되었다. 대체로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풍요롭지 않은 사람들, 사업에 실패하거나 대학생이거나 사회초년생이 겪는 일들이거나, 인적이 드문 등산로, 한 때 번성했으나 쇠락해버린 상점가에 있는 병원이 그것인데, 경제적 불안과 결핍이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괴담에 어울리는 설정이 된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반대로 부자인 경우 가해하는 입장으로 등장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건 갑자기 생각난 것인데 공포감을 느껴주면 성공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 중 하나인 ‘빈 집을 지키던 밤‘을 보면 ‘도리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성공한 사람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이 ‘도리이‘라는 것을 기부한다는 걸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이야기에 왜 도리이가 등장하는지 정확히는 아니어도 조금 알 것 같았다.(아닐 수도 있음) ‘무섭지만 즐거웠다‘ 까지 쓸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 부분까지 쓰게 되었다.


암튼 오랜만에 괴담집을 읽어 보았는데, 무서운 영화 보고 한동안 오들오들 무서워하던 어릴 때가 떠올라서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되거나 이 포스팅을 읽게 되는 사람들은 또 어떤 경험을 하게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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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완성 니팅쌤 코바늘 - 손뜨개가 처음인 당신을 위한
신은영 지음 / 시원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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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작성하기 전에 하고 싶은 말>

1. 나는 코바늘을 할 줄 안다.
2. 나는 코바늘을 독학으로 익혔다.
3. 나는 코바늘 등의 공예를 10년 이상 해왔다.
4. 나는 코바늘 등의 공예를 직업으로 삼고 오래 일을 했었다(과거형)
5. 나는 코바늘 수업을 수년 했었다(과거형)
6. 나는 코바늘을 내 동반자처럼 여기고 사랑했다.
7. 나는 코바늘을 여전히 좋은 친구처럼 여기고 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신청했던 이유는 이 책을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왠지 모를 수퍼 이끌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코바늘 고인물이 전하는 코바늘 기초 입문서 서평!



먼저 책을 전반적으로 살펴본 후의 느낌은 이 책이 코바늘을 배워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친절한 책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나는 코바늘을 독학으로 익혔고, 초심자분들 위주의 기초 수업을 주로 진행했었기 때문에, 코바늘 입문을 원하는 초보자분들이 어느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잘 알고 있는데, 그 어려워서 막히기 쉬운 부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소가 되어 있다는 것이 눈에 잘 들어왔다.

내가 코바늘을 익힌 건 2011년으로 꽤 오래전인데, 당시에는 코바늘 기초책도 드물었고, 과정이 담긴 영상 등을 찾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도안을 반드시 알아야만 했었다. 도안을 볼 줄 알고 기초를 모두 익혀놓으면 나머지는 응용으로 스스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수업을 할 때 ‘도안을 볼 줄 아는 것‘과 ‘기초를 꼼꼼히 익히게 하여 코바늘 자립을 하는 것‘을 목표로 했었는데, [5일 완성 니팅쌤 코바늘]도 이 두 가지의 목표가 잘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책의 초반에는 도안을 익혀야 하는 이유와 코바늘 입문을 위해 필요한 실과 코바늘 등의 재료에 대한 설명이 아주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코바늘 입문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책에 기초용으로 추천되어 있는 바늘과(실제로 제일 많이 사용되는 호수) 코튼실을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실과 재료의 경우는 전문 뜨개실 쇼핑몰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하고, 실을 구입할 땐 브랜드실마다 어떤 사이즈의 코바늘을 써야하는지 적혀있기 때문에 확인을 해보면서 마음에 드는 실을 선택하면 된다. 요즘은 코바늘 입문 재료를 다이소에서 구입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은데, 전문 뜨개실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재료와는 질이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내가 실을 구입할 때 그러한 후기를 읽은 적이 있어서 여기에 적어본다.



<내가 책을 보면서 감탄을 했던 부분>

1. 도안에 떠지는 방향이 화살표와 줄 등으로 표현이 되어있다. -> 도안을 볼 때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어느 단을 뜨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좋다.
2. 사슬뜨기의 사슬코를 직접 세어볼 수 있도록 표시가 되어 있다. -> 이 부분도 초보자가 알아보기 어려운 부분이다, 처음엔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3. 도안이 큼직하다 -> 초보자가 알아보기 쉬운 친절한 도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 글 설명 역시 자세하다. -> 코바늘 독학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책에 적혀있는 설명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읽었으면 좋겠다.
5. 기호 도안과 설명 도안이 함께 있다. -> 여기서 ‘라떼는 말이야‘가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예전에는 기호 도안과 설명 도안이 분리된 책이 많았다, 저자가 어느 나라사람인지에 따라, 누구인지에 따라, 각각 익혀야 했던 시절-
6. 기초를 끝낸 후 나오는 [Part 2]에는 기초를 바탕으로 만들 수 있는 응용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 만들기 어렵지 않고 일상에서 꾸미고 쓸 수 있는 예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세미의 경우 실의 특성상 코를 보는 게 어려울 수 있다, 코바늘을 충분히 익힌 후 도전하시는 걸 추천!)

결론 - 역시 현직 선생님이 쓰신 책이라 초보자가 어느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잘 알고 계셔서 그런 부분들이 잘 배려되어 있었다. 게다가 처음엔 예쁘게 떠지지 않는다는, 초보자를 안심시키는 상냥한 코멘트들도 좋았던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코바늘을 떠보고 잘 되지 않아서 심적으로 좌절하기도 하는데 역시나 그런 마음까지도 잘 받아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책만으로 어려운 경우 영상도 볼 수 있으니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QR코드로 영상을 확인하면서 익히면 될 것 같다.



서평을 위해 책을 보면서 처음에 씨름하며 코바늘을 익혔던 시간들도 생각나고 수업할 때의 기억, 그리고 나머지 딸려올 수 밖에 없는 여러 다양한 추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코바늘과 함께 엄청난 심리적, 감정적, 영적 성장을 함께 해서 코바늘이라는 도구가 나에겐 의미가 깊고 특별하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정신적인 영역에 이 코바늘이라는 도구와 경험이 놓여있다, 코바늘을 접하게 될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경험들을 하게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냥 행복한 경험만 가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신과 함께했던 코바늘과의 추억은 이제 과거로 흘려보내고 새로운 내일과 미래를 만나고 싶다. 한층 서로를 존중하며 다정하게 친구처럼 걷고, 함께 있음에 감사하는, 그리고 다른 꿈을 꾸는 나를 응원해주는 든든한 지지자로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의 과거를 자랑스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부족했지만)나도 참 잘했다, 열심히, 진심으로! 그래서 좋은 선생님을 나 역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코바늘을 하던 하지않던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는 말로 서평을 마무리하고 싶다, 요즘은 정말로 ‘행복‘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암튼 수퍼 이끌림으로 끌려온 [5일 완성 니팅쌤 코바늘], 코바늘 입문서로 강추하고 싶다.





[이 글은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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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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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새벽
방금까지 이 책을 읽고 있었고, 정확히 328페이지 ‘자각‘ 부분까지는 꼼꼼히 읽을 수 있었다. 서평을 내일까지 써야하므로 뒷부분은 넘기듯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내용이 워낙 쉽게 넘겨지지 않아서 ‘공판‘ 과 ‘마지막 길‘ 부분은 또 빨려들어가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기분 : ........ 무겁다, 안타깝다, 슬프다, 속상하다, 허무하다....... 그 외의 더 많은 여러 감정들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안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국민학생이었던 어린시절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거 아니야˝ 이런 말을 했다고 알려진 사치스럽고 허영심이 가득한 악녀였다. 철없는 악녀, 그렇게 멀리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어린 아이마저 그런 이미지를 가질 정도로 나쁜 투사의 대상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 후에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오해가 풀어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만큼 그녀가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그 당시에도 이 책이 읽고 싶었고 궁금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대신 영화를 봤었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읽어보면서 영화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랑스러운 성격이나 열정, 후에 영혼적 성숙 같은 부분들이 잘 담기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전기소설이고 저자이신 슈테판 츠바이크 작가님이 상당히 주인공 편파적으로 글을 쓰시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들어서 그런 것들도 유념하며 읽게 되었는데, (나는 사실 더 편파적임으로 더 편파적으로 읽으려고 했다) 마리의 마지막이 너무 가혹했고, 사후에 너무 오랫동안 오해받아왔다고 느껴져서, 그 억울함 같은 걸 누군가는 풀어주고 싶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평소보다 시원하게 글을 쓰기가 어려운데, 표지에 그려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눈을 계속 마주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계속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녀의 영혼은 나에게 무얼 말하고 싶을까? 해서, 핑크빛의 발그레한 볼에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리의 눈을 계속 보게 된다. 그래, 마리, 마리라고 부르고 싶어!

MBTI의 앞자리는 E이고 중간엔 F가 반드시 들어갈 거라고 추측이 되는 마리는 외향적이고 생각을 깊게 하기 싫어하는 말괄량이 소녀였다. 다정하고 따스하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로 공부하기를 싫어하고 외로워서 누군가를 늘 찾고 있었던 것 같았다. 너무나 훌륭한 여제였던 어머니의 그늘이 갑갑했고, 남편은 자신을 외롭게 할 뿐만이 아니라 너무도 무능해서 자신을 욕먹게 했으며,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아름다운 외모와 정 많고 사랑스러운 성격은 질투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을 것 같다. 마리의 솔직함은 왕궁 내 정치질과 맞지 않았고, 자유로운 기질은 왕비라는 직책과 어울리지 않았다. 마리도 왕비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책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나도 읽으면서 왕실이 아니라 평범한(?) 귀족에게로 시집을 갔으면 이런 고생 안하고 타고난 ‘경쾌한‘ 성격대로 즐겁게 살고 편안하게 죽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침묵)

사실 책의 중간까지 읽었을 때 이 책의 감상의 방향을 어느 정도 잡아놓았었다, 하지만 더 읽을수록 그때의 내 감상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녀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남편‘과 왕비라는 ‘일‘을 통해 ‘사랑의 자유‘와 ‘일의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가 떠올라서 그걸 적고 싶었었는데, 유명한 목걸이 사건이 시작되고, 기요틴에 처형당하게 되는 마지막에 와서는 그런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녀의 운명책에 써있는 운명이고 그녀는 자신의 운명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니까, 우리도 우리가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과연 그럴까?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는 책이 굉장히 두껍기도 하고 역사 이야기라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쉽게 읽혀지는 글이었고, 작가님이 의외로 감정적인 표현을 많이 하시는 분이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얄짤없는 비판도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행동들에 대해서 심리적인 접근을 하는 책이기도 했는데 마리가 너무 안타까웠다, 이런 느낌을 받았다. 마리아 테레지아를 생각한다면 마리 역시 좋은 묘목인데 안타깝게 여겨서 화가 나는 그런 마음이 느껴졌던 것 같다. 마리의 경우 엄마에게 물려받은 좋은 요소들을 왕관을 벗게 되면서 사용하게 되는 것 같았다. 공판 장면에서 현명하게 말하고 정신을 온전하게 붙잡으려는 모습에서 자신의 뿌리가 무엇이었는지 자각하게 되는 것 같았다.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마리 앙투아네트와 왕실의 사람들을 가까이 지켜보았던 사람이 쓴 느낌이 들기도 해서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이 정말로 사실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초중반까지는 무척 재미나게 읽었고 마리나 루이 16세, 뒤바리까지도 소설책 캐릭터처럼 느껴져서 친근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후반부로 들어가면서는 마리도 어른이 되고 고통을 통해 성숙해졌는데, 이때부터는 책을 읽기가 힘들 정도였다. 너무 안쓰러워서, 그 운명에 놓이기로 선택이 된 사람은 모두 마리처럼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았고, 마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놓였더라도 역사는 똑같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정말로 사랑했던 페르센에 대해서 나는 처음 알게 되어서 그 부분이 너무 신선했는데, 너무도 찐사랑이라 이 둘의 이야기가 따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둘의 사랑을 다시 한번 이어주고 싶다는, 방해받는 않는 시대배경에서 다시 태어나서, 마음껏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책에서도 ‘모든 걸 빼앗겨도 사랑만은 빼앗을 수 없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페르센이 등장하는 중후반 내용까지 읽어보면 작가님도 이 부분이 많이 안타까우셨던 것이 느껴진다(페르센이 너무 괜찮은 남자여서-). 그래서 초반에 루이 16세에 대한 엄청난 비난이 이해가 될 정도였다. 만약에 루이 16세가 아니라 페르센 같은 남자를 만났다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렇게까지 방황을 하지 않았을 것 같고, 안정된 결혼생활을 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나도 주인공이 마리이기 때문에 이렇게 쓰는 것이지, 루이 16세도 사실 너무 안쓰러운 인물이다. 둘 다 정말로 왕과 왕비에 맞지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살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왕과 왕비였기 때문에 비판의 여론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고, 이들이 무능하고 무관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들에게 왕관을 내려놓으라는 요구 역시 당연하다. 그래도 운명이 너무나 가혹했다. 잔인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나쁜 투사를 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맘에 들지 않는 여자를 성적인 망상으로 망가뜨리기 좋아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정말로 너무 지나쳤기에-)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형시키는 계획에 루이 16세의 동생이 연루되어 있는 것도, 마리가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동생을 구하기 위해 프란츠 황제가 편지 한 장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도 끔찍했다. 오로지 페르센만이 진심으로 마리를 걱정하고 구하고 싶어했다. 마리가 처형당한 뒤로 성격이 변할 정도로- 페르센도 나중엔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다. 공판 부분에서 아들에게 엄마를 모욕하게 만드는 부분은 정말로 역겹고 혐오스러울 정도라 마리가 너무 불쌍하게 느꼈다, 후반부에 이런 사건들 때문에 오히려 젊은 시절 철없이 마냥 즐겁고 어리석게 굴던 모습들이 별 거 아닌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의 어리석음이 이렇게까지 잔인한 결말로 이어져야 했는지, 오히려 운명이 너무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암튼! 이것을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사치와 향락으로 자신이 느끼는 바를 억누르며 도망치고 싶어했던 마리가 인생 후반부에 그것들을 모두 마주하고 해소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굴욕감, 수치심, 비참함, 남편에 대한 원망, 비난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고마움,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느낌과 죽음의 공포 등. 사실 배경만 다를 뿐 사람의 인생엔 이런 무대들이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마리였다면 그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 책이 1932년도에 쓰여진 책이라 책에서 마리나 루이 16세의 성격을 표현하는 내용 중에 생각을 하기 싫어한다던가, 감정을 못 느낀다던가, 하는 부분을 한층 더 깊은 부분에서 이해되어서 새롭게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사람에 대해 이해하는 의식이 더 높아지기도 했고, 성격에 대한 여러가지 부분에서 더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 보였기 때문에, 특히 루이 16세의 경우 자폐증처럼 보이는 부분이 많아서 읽는데 좀 안쓰러웠다. 그리고 (대학생 시절의)괴테라던지(괴테가 폼페이에 이어 여기서 또 등장!), (만화책 때문에 친숙해진)베르탱이 잠깐 언급되는 것도 읽을 때 즐거운 요소였다. 역사적 지식부터 심리적인 부분의 이해, 인간적인 공감까지 책이 두꺼운 만큼 풍부하게 담겨있는 책이란 인상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감정을 따르고 싶어했고 너무나도 자신답게 살고 싶어했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른 생에선 정말로 자신답게 살았으면 좋겠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했으면, 평범한 여자로, 또 사람으로 정말로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을 적어본다. 다음 생에서도 옷 좋아하고 꾸미는 것이 좋다면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좋다면 그러한 삶을 마음껏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 안쓰러운 마리 앙투아네트의 영혼이 편안히 쉬길, 반드시 치유되어 행복한 생으로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이 글을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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