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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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새벽
방금까지 이 책을 읽고 있었고, 정확히 328페이지 ‘자각‘ 부분까지는 꼼꼼히 읽을 수 있었다. 서평을 내일까지 써야하므로 뒷부분은 넘기듯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내용이 워낙 쉽게 넘겨지지 않아서 ‘공판‘ 과 ‘마지막 길‘ 부분은 또 빨려들어가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기분 : ........ 무겁다, 안타깝다, 슬프다, 속상하다, 허무하다....... 그 외의 더 많은 여러 감정들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안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국민학생이었던 어린시절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거 아니야˝ 이런 말을 했다고 알려진 사치스럽고 허영심이 가득한 악녀였다. 철없는 악녀, 그렇게 멀리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어린 아이마저 그런 이미지를 가질 정도로 나쁜 투사의 대상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 후에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오해가 풀어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만큼 그녀가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그 당시에도 이 책이 읽고 싶었고 궁금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대신 영화를 봤었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읽어보면서 영화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랑스러운 성격이나 열정, 후에 영혼적 성숙 같은 부분들이 잘 담기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전기소설이고 저자이신 슈테판 츠바이크 작가님이 상당히 주인공 편파적으로 글을 쓰시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들어서 그런 것들도 유념하며 읽게 되었는데, (나는 사실 더 편파적임으로 더 편파적으로 읽으려고 했다) 마리의 마지막이 너무 가혹했고, 사후에 너무 오랫동안 오해받아왔다고 느껴져서, 그 억울함 같은 걸 누군가는 풀어주고 싶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평소보다 시원하게 글을 쓰기가 어려운데, 표지에 그려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눈을 계속 마주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계속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녀의 영혼은 나에게 무얼 말하고 싶을까? 해서, 핑크빛의 발그레한 볼에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리의 눈을 계속 보게 된다. 그래, 마리, 마리라고 부르고 싶어!

MBTI의 앞자리는 E이고 중간엔 F가 반드시 들어갈 거라고 추측이 되는 마리는 외향적이고 생각을 깊게 하기 싫어하는 말괄량이 소녀였다. 다정하고 따스하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로 공부하기를 싫어하고 외로워서 누군가를 늘 찾고 있었던 것 같았다. 너무나 훌륭한 여제였던 어머니의 그늘이 갑갑했고, 남편은 자신을 외롭게 할 뿐만이 아니라 너무도 무능해서 자신을 욕먹게 했으며,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아름다운 외모와 정 많고 사랑스러운 성격은 질투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을 것 같다. 마리의 솔직함은 왕궁 내 정치질과 맞지 않았고, 자유로운 기질은 왕비라는 직책과 어울리지 않았다. 마리도 왕비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책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나도 읽으면서 왕실이 아니라 평범한(?) 귀족에게로 시집을 갔으면 이런 고생 안하고 타고난 ‘경쾌한‘ 성격대로 즐겁게 살고 편안하게 죽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침묵)

사실 책의 중간까지 읽었을 때 이 책의 감상의 방향을 어느 정도 잡아놓았었다, 하지만 더 읽을수록 그때의 내 감상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녀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남편‘과 왕비라는 ‘일‘을 통해 ‘사랑의 자유‘와 ‘일의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가 떠올라서 그걸 적고 싶었었는데, 유명한 목걸이 사건이 시작되고, 기요틴에 처형당하게 되는 마지막에 와서는 그런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녀의 운명책에 써있는 운명이고 그녀는 자신의 운명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니까, 우리도 우리가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과연 그럴까?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는 책이 굉장히 두껍기도 하고 역사 이야기라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쉽게 읽혀지는 글이었고, 작가님이 의외로 감정적인 표현을 많이 하시는 분이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얄짤없는 비판도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행동들에 대해서 심리적인 접근을 하는 책이기도 했는데 마리가 너무 안타까웠다, 이런 느낌을 받았다. 마리아 테레지아를 생각한다면 마리 역시 좋은 묘목인데 안타깝게 여겨서 화가 나는 그런 마음이 느껴졌던 것 같다. 마리의 경우 엄마에게 물려받은 좋은 요소들을 왕관을 벗게 되면서 사용하게 되는 것 같았다. 공판 장면에서 현명하게 말하고 정신을 온전하게 붙잡으려는 모습에서 자신의 뿌리가 무엇이었는지 자각하게 되는 것 같았다.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마리 앙투아네트와 왕실의 사람들을 가까이 지켜보았던 사람이 쓴 느낌이 들기도 해서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이 정말로 사실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초중반까지는 무척 재미나게 읽었고 마리나 루이 16세, 뒤바리까지도 소설책 캐릭터처럼 느껴져서 친근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후반부로 들어가면서는 마리도 어른이 되고 고통을 통해 성숙해졌는데, 이때부터는 책을 읽기가 힘들 정도였다. 너무 안쓰러워서, 그 운명에 놓이기로 선택이 된 사람은 모두 마리처럼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았고, 마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놓였더라도 역사는 똑같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정말로 사랑했던 페르센에 대해서 나는 처음 알게 되어서 그 부분이 너무 신선했는데, 너무도 찐사랑이라 이 둘의 이야기가 따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둘의 사랑을 다시 한번 이어주고 싶다는, 방해받는 않는 시대배경에서 다시 태어나서, 마음껏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책에서도 ‘모든 걸 빼앗겨도 사랑만은 빼앗을 수 없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페르센이 등장하는 중후반 내용까지 읽어보면 작가님도 이 부분이 많이 안타까우셨던 것이 느껴진다(페르센이 너무 괜찮은 남자여서-). 그래서 초반에 루이 16세에 대한 엄청난 비난이 이해가 될 정도였다. 만약에 루이 16세가 아니라 페르센 같은 남자를 만났다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렇게까지 방황을 하지 않았을 것 같고, 안정된 결혼생활을 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나도 주인공이 마리이기 때문에 이렇게 쓰는 것이지, 루이 16세도 사실 너무 안쓰러운 인물이다. 둘 다 정말로 왕과 왕비에 맞지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살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왕과 왕비였기 때문에 비판의 여론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고, 이들이 무능하고 무관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들에게 왕관을 내려놓으라는 요구 역시 당연하다. 그래도 운명이 너무나 가혹했다. 잔인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나쁜 투사를 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맘에 들지 않는 여자를 성적인 망상으로 망가뜨리기 좋아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정말로 너무 지나쳤기에-)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형시키는 계획에 루이 16세의 동생이 연루되어 있는 것도, 마리가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동생을 구하기 위해 프란츠 황제가 편지 한 장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도 끔찍했다. 오로지 페르센만이 진심으로 마리를 걱정하고 구하고 싶어했다. 마리가 처형당한 뒤로 성격이 변할 정도로- 페르센도 나중엔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다. 공판 부분에서 아들에게 엄마를 모욕하게 만드는 부분은 정말로 역겹고 혐오스러울 정도라 마리가 너무 불쌍하게 느꼈다, 후반부에 이런 사건들 때문에 오히려 젊은 시절 철없이 마냥 즐겁고 어리석게 굴던 모습들이 별 거 아닌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의 어리석음이 이렇게까지 잔인한 결말로 이어져야 했는지, 오히려 운명이 너무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암튼! 이것을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사치와 향락으로 자신이 느끼는 바를 억누르며 도망치고 싶어했던 마리가 인생 후반부에 그것들을 모두 마주하고 해소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굴욕감, 수치심, 비참함, 남편에 대한 원망, 비난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고마움,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느낌과 죽음의 공포 등. 사실 배경만 다를 뿐 사람의 인생엔 이런 무대들이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마리였다면 그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 책이 1932년도에 쓰여진 책이라 책에서 마리나 루이 16세의 성격을 표현하는 내용 중에 생각을 하기 싫어한다던가, 감정을 못 느낀다던가, 하는 부분을 한층 더 깊은 부분에서 이해되어서 새롭게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사람에 대해 이해하는 의식이 더 높아지기도 했고, 성격에 대한 여러가지 부분에서 더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 보였기 때문에, 특히 루이 16세의 경우 자폐증처럼 보이는 부분이 많아서 읽는데 좀 안쓰러웠다. 그리고 (대학생 시절의)괴테라던지(괴테가 폼페이에 이어 여기서 또 등장!), (만화책 때문에 친숙해진)베르탱이 잠깐 언급되는 것도 읽을 때 즐거운 요소였다. 역사적 지식부터 심리적인 부분의 이해, 인간적인 공감까지 책이 두꺼운 만큼 풍부하게 담겨있는 책이란 인상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감정을 따르고 싶어했고 너무나도 자신답게 살고 싶어했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른 생에선 정말로 자신답게 살았으면 좋겠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했으면, 평범한 여자로, 또 사람으로 정말로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을 적어본다. 다음 생에서도 옷 좋아하고 꾸미는 것이 좋다면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좋다면 그러한 삶을 마음껏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 안쓰러운 마리 앙투아네트의 영혼이 편안히 쉬길, 반드시 치유되어 행복한 생으로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이 글을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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