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다른 두 기적을 행하시는 배경이 되었다. ① 예수는 바다6:21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셨다. 19절 예수가 자신을 지칭할 때 쓰신말 ego eimi("나는 ~이다. 나는 나다‘)는 여호와께서 출애굽 때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일을 인용하는 것 같다. 시77:16, 19  - P148

② 예수가 제자들이 탄 배로 오셨을 때, 그 배는 곧 해안에 도착했다. 요6:21이는 예수가 바다 위를 걸으시고 폭풍을 잠잠케 하셨다는 공관복음 기사를 되새겨 준다. 흥미롭게도 요한은 6:19, 21 이 기록해 놓은 기적 가운데 어느 것도 ‘표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 장면이제시하는 신학적 메시지는 예수가 새 출애굽을 시작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는 1-15절의 주제인 유월절과 잘 들어맞는다. - P148

요한복음에 나오는 일곱 개의 ‘나는 ~이다‘ 문언
● "나는 생명의 빵이다" 6:35, 48, 51
● "나는 세상의 빛이다" 8:12; 9:5
● "나는 문이다" 10:7, 9
● "나는 선한목자다" 10:11, 14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25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6
● "나는 참 포도나무다" 15:1 - P151

60-71절은 사람들이 예수께 보인 반응을 언급한다. 첫번째 반웅은 한때 예수를 따랐던 많은 이가 그분을 거부한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빵이심을 믿지 못했다.  - P154

두 번째 반응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반응이었다. 베드로는 이 그룹을 대표해 예수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요 영생의 유일한 근원이심을 고백했다. 주석가들은 이것이 바로 공관복음에서 제시하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곧 주는 그리스도시라는 고백을 16:16; 막 8:29; 눅 9:20네 번째 복음서가 그 나름대로 기록한 것이라고 옳게 말한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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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용은 히브리 성서에 등장하는혼돈의 괴물들, 특히 때로는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을 가리키는 존재로 그려지지만(욥기 41. 시편 104 등), 때로는 피조물의 가장 큰 적으로하느님과 대립하는 혼돈의 "바다 괴물‘ 레비아단(리워야단을 계승한 존재다. "다만 조아키노는 이 계보를 잘 정리하지 않고 오히려 더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  - P154

이제 붉은용은 사탄의 상징이기만 한 것이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에 교회에게 주어지는 시험과 시련의 역사전체의 상징이다. - P154

"바다 괴물"(탄난)과 레비아단 모두 그리스어 70인역 성서의 구약에서는 ‘옷‘
을 뜻하는 ‘드라콘‘으로 일관되게 번역된다.  - P154

그리고 4세기 말에 신약 정경이 확립된 데에는 교회 당국의 권위못지않게 당시 매체 기술의 발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 로마 그리스도교가 제국의 종교로 확립되자 교회 권력을 공고화하고 통제하려는경향이 생겨났고, 동시에 구약과 신약 정경을 한 권에 모두 담을 만큼 커다란 코덱스라는 매체 기술이 발전했다. 커다란 코덱스라는 새로운 매체와 그리스도교 왕국이라는 새로운 제국 종교는 손을 맞잡고 정경을 확정했다.
- P170

420년에 이르면 히에로니무스는 성서 전체를 당대 라틴어로펴냈는데, 이는 주로 그리스어 성서와 히브리어 성서를 번역한 것이었다. 이 성서는 아타나시우스의 목록과 동일한 스물일곱 권의 책을신약으로 포함했고, 서방 그리스도교 전체의 표준 불가타 성서가 되었다.  - P170

성서 코덱스의 크기와 무게 또한 정경을 확정하는 데 주요 걸림돌이었다. 본문전체가 보존된 가장 오래된 불가타는 8세기의 아미아티누스 사본인데, 이것은높이가 약 49cm, 너비가 약 34cm, 두께가 18cm 이상이며, 2천 쪽이 넘고 무게는34kg 가량이다.  - P171

1522년 9월 21일, 마르틴 루터는 고향인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자신이 번역한 독일어 신약성서를 출판했다. ‘9월 성서‘라고 알려진 이책의 출간은 인쇄의 역사, 독일어의 역사, 그리스도교 성서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 P172

정경에 어떤 책을 포함해야 하느냐는 물음을 다시 던졌다. 이는 9월성서의 목차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목차는 전통적인 가톨릭 정경 스물일곱 권을 나열하기는 하지만, 성인이 썼다고 알려진 앞의 책 스물세 권에만 번호를 매겼다. 뒤의 네 권(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야고보의 편지, 유다의 편지, 계시록)에는 번호를 매기지 않은 채 아래 공간에따로 모아 놓았다. 9 - P173

의 일이 일어났다. 루터는 계시록을 영원히 묻어 버리고 싶어 했지만, 루터의 성서에 실린 크라나흐의 그림은 글로 된 문헌이 아닌 압도적인 시각 체험을 선사하는 매체로서 계시록을 되살렸다. - P176

월 성서를 출판할 무렵에는 마음을 바꾸었다. 9월 성서는 신약 각 책의 첫 글자를 큼지막하게 적은 다음 이 글자를 본문의 이야기에서 뽑은 그림으로 꾸몄다. 본문에 나오는 장면을 묘사한 삽화는 루터가 가장 불쾌해한 책인 계시록에만 있었다. 아마도 그가 서문에서 불평했듯 글만으로는 알 수 없는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보인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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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문과 역사의 대응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조아키노는 ‘창조 역사라는 큰 바퀴‘ 안에 있는 ‘교회사의 일곱 시대‘, 그리고그 일곱 시대 안에 있는 더 특수하고 소우주적인 역사적 사건 일곱가지가 계시록의 심상에 대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 P151

그는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인"(조아키노는 이것이 계시록의 두 번째 부분이라고 여겼다)이 구약 역사의 일곱 시대를 가리키는 동시에 교회의 일곱 시대를가리킨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일곱 가지 안에 있는 일곱 가지가 나오는 계시록 본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부분은 12장(조아키노는 이를 계시록의 세 번째 부분으로 보았다)에 나오는 붉은 용의 일곱 머리였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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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모양은 있어요. 기도도하고, 예배도 드리지요. 그런데 경건의 능력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그러한 사람보다 더 불쌍한 이는 없습니다.  - P112

저는 예배에 늦는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빠듯하게 신앙의 마지노선을 지키고, 나머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려는 성도를 보면 저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 P113

아프리카에 있는 아이에게 돈을 보내야 빛이 되고 소금이 된삶이라고 제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도 귀하고 복된 일이지만자녀 하나를 양육할 때도 세상 사람과 다르게 하고, 남들과 같이직장에 다니지만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성실한 직장 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 P116

팔복의 정신을 지닌 성도가 직장에 들어가서 동료를 섬김으로 그들의 말투가 달라지고 삶이 달라지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빛이 되고 소금이 된 삶이 아니겠습니까? - P116

또한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과도 달랐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르시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면서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대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면서 그분 자신의 권위를 가지고말씀을 전하셨습니다.
- P118

당시 유대 사람들은 토라의 율법에 둘러싸인 구전 전통에 입각한 장로들의 유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주님은 그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과감한 행보를 보이셨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유전에 따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죄인으로 여겨지던 무리와 접촉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당시사회에서 죄인 취급을 받던 세리와 창녀에게 관심을 보이시고, 그들을 벗으로 여기시고, 그들과 식탁 교제를 나누시고, 공동체에서배척받던 가난하고 병든 자, 장애를 입은 자들을 가까이하시고 그들을 하나님 나라에 받아들이셨습니다. 당시로서는 매우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행보였지요. - P119

유대 사람들은 장로들의 유전에 따라 율법의 형식과 절차를 매우 소중히 여겼고, 의식적인 법을 존중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전통적인 의식법의 형식보다는 그 내용과 본질적인 의미를 더 중히 여기시고, 규례들의 참된 의미와 상황을 회복시키시며 은혜와자비와 긍휼을 베풀며 살아갈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 P119

흔히 ‘율법과 선지자‘ 혹은 ‘시편‘이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전체를 가리킵니다. 모세오경으로 상징되는 ‘율법과, 대선지서,
소선지서를 비롯한 ‘선지서‘와, 시가서로 상징되는 ‘시편‘이라고하면 구약성경 전체를 일컫는 것이 되지만, ‘율법과 선지자‘라는표현으로도 구약성경을 일컬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아니요 완전하게하려함이라"(마5:17)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는것입니다.
- P121

여기서 "완전케 하다"라는 말은, 부족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기존의 것에 뭔가 더해 완전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기록되어 있는 구약의 율법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그 말씀을순종함으로 성취하여 완전케 한다는 것입니다. 뭔가 모자라 더하고 보태어 완전케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완전한 율법을 주셨는데 그 율법을 순종하고 행하고 이룸으로써 완전케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성경이 가르치고 요구한 것을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완전케 하는 일을 하기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 P121

‘한미준‘(한국 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에서 저술한 『한국교회 미래리포트』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 교회 성도들은 성경을 거의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주일 동안 성경을 얼마나 읽습니까?"라는 문항에 53퍼센트에 이르는 사람들이 성경을 한 번도 안 읽는다고 답했습니다.  - P124

기독교라는 명찰은 달았지만, 내용은 전부 샤머니즘이거나 세상 종교와 다를 바가 없어요. 기독교의 참된 진리와 영화로움과관계없이 신앙생활을 하며,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만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조국 교회의 실상임을 통계자료가 나타내줍니다. - P125

우리는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율법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고 지킬 수도 없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이 새 마음과 새생명과 새 성품을 주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는 마음으로 율법을 준행하게 하십니다. 성도를 통해 율법을 완성시켜 나가시는 것이지요.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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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5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죽인 까닭은 그들이 로마에 반에서 완 역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은 로마인을 위해 수로를 건설 중이었을 것이다. 바리새인은 로마에 맞선 무력 저항을 반대했는데, 빌라도의 손에 죽은 갈릴리 사람들은 반역을 꾀했으므로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을것이다. 반로마 무장 단체인 열심당Zelots은 수로 건설 노동자들이로마에 협력했으므로 죽어 마땅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예수님은불의의 사고나 잔학 행위가 특별히 악한 죄인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생각을 일축하셨다. 갈릴리 사람들이나 실로암 노동자들이 당한 참사를 그들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 P1941

13:6-9 구약에서 열매가 풍성한 나무는 경건한 삶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되었다(참조. 시 1:3; 렘 17:7-8). 예수님은 열매 없는 나무-귀한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면서도 인내하는 농부에게 아무것도안겨 주지 못하는 나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씀하셨다. 이예화로 예수님은 청중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열매 없음을 언제까지나 참지는 않으시리라고 경고하셨다(눅 3:9은 동일한 메시지의 세례 요한 버전을 기록한다). 당신은 지금껏 하나님의 특별 대우를누리면서 아무것도 돌려드리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농부 하나님의 끈질긴 보살핌에 반응해 그분이 당신을 창조하여 맺게 하신 열죽 매를 맺기 시작하라. - P1941

사람이 비참한 사고로 죽느냐 기적적으로 살아남느냐는 그의 의로움을 가늠하는 척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죽어야 한다. 예수님은 왜 어떤 이는 비참하게 죽는지 설명하지 않으셨다. 대신 모두 회개해야한다고 지적하셨다. 언제 어떻게 찾아오든 죽음이 끝일 필요는 없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리라고 약속하신다(요3:16). - P1941

13:10-17 회당장은 왜 병 고침을 일로 여겼는가? 종교 지도자들은 치료가 의사의 업무라고 보았으며, 안식일에 직업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예수님이 허리 굽은 여인을고쳐 주신 사건에서 회당장은 율법을 넘어 그분의 긍휼을 보지 못했다. 예수님은 회당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위선을 지적해 그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그들은 자기 가축은 외양간에서 풀어내고 물을 먹이며 보살피면서도 한 사람이 사탄의 결박에서 풀려날 때는기뻐하길 거부했다. - P1941

13:33 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집중하셨는가?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민족 전체를 상징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도시였고 민족의 영적·정치적 수도였으며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배척한 역사가 있었다(왕상 19:10; 대하 24:19; 렘 2:30;26:20-23). 예루살렘 주민들은 자기네 조상들처럼 메시아를 배척할 것이다.  - P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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