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ro knew that people thought he was responsible. Sohe looked around for a scapegoat and found one inthe Christians. The Christians had often said that thisworld must end so that a better, purer world mighttake its place. Of course, you and I know that theymeant Heaven. But because people tend not to listenvery carefully, soon they were saying: ‘The Christianswant the world to end because they hate mankind. An
extraordinary accusation, don‘t think? - P1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제 테오도시우스의 뒤를 이은 것은 장남 아르카디우스(Arcadius)와 차남 호노리우스(Honorius)였다. 아르카디우스는 열여덟 살이었지만, 호노리우스는 겨우 열 살밖에 되지 않았다. 두 아들 이외에 테오도시우스에게는, 4년동안 공동 황제였던 그라티아누스의 이복누이인갈라와 관계해서 낳은 딸이 있었다. 테오도시우스가 죽은 해에 이 황녀는 대여섯 살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 P24

이탈리아의 로마사 연구자인 파리베니의 말을 빌리면, 열여덟 살인 아르카디우스와 열 살밖에 안된 호노리우스는 다음과 같은 인물이었다.
"늘 황궁 안에서 살면서, 민중과는 멀리 떨어진채 어떤 접촉도 없고, 병사들도 자기네 최고사령관이 말을 타고 군대를 지휘하는 모습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제위에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오로지 선제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 P28

도나우강을 건넜는지에 대해 카시우스 디오의 『로마사』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트라야누스의 『다키아 전쟁기』중에서 남아 있는 것은앞에서도 말했듯이 다음 한 줄뿐이다.
"inde Berzobim, deinde Aizi processimus"
번역하면 "베르조비스로, 그리고 아이지스로 우리는 진군했다"가된다.
베르조비스는 오늘날 루마니아의 레시차라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 - P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아손의 아르고 원정대원 중에 펠레우스라는 영웅이 있었다. 펠레우스는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신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이었다. 인간인 그가 여신과 결혼한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신들의 은총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 P1035

트로이아 전쟁 때 전사한 아킬레우스와 이아손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아르고 원정대원이었던 펠레우스가 바로 이 아킬레우스의 아버지였다. 그러니까 트로이아 전쟁과 아르고호의 원정은 거의 같은 시대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 P1036

입고 있는 ‘키톤‘은 군데군데 해져 있다. 그럴 수밖에. 켄타우로스들은 옷을 입지 않으니 펠리온산에서 옷을 입는 사람은 이아손뿐이었을터이다. 키톤은 직사각형 천을 어깨에 걸치고 편으로 앞뒤를 여민 다음허리띠를 매게 되어 있는 그리스의 전통 의상이다. - P1037

높이가 1600미터 정도로 만만치 않은 펠리온산이다. 숲속의 작은 시골역 밀리에스에서 내리면 펠리온산을 오를 수 있다. 펠리온산 정상에는 ‘제우스 아크라이오스‘, 즉 ‘높은 곳의 제우스신‘을 모시던 사당이 있다. 산 중턱에는 군데군데 동굴이 있는데, 그리스인들은 신화시대의 켄타우로스 케이론이 이아손과 함께 살던 동굴이 그중의 하나라고 믿는다. - P10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프레차투라란 대단하고 특별한 일도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해내는 경지, 이른바 ‘무기교의 기교‘다. 훗날 이 말은 궁정인을 넘어 천재 예술가들의 노련함을 표현하는 데 쓰였고, 오늘날에는 패션에 관한 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
스프레차투라는 그냥 무심히 행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 몸에 완벽히스며들도록 오랜 시간과 고된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멋에 이를 수 있다는말이다. 로마가 어떤 도시인지 잘 담아낸 표현이 아닐까. - P14

독일의 괴테 역시 그런 이방인이었다. 그는 로마를 여행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로마에서 시작하는 역사는 세계 어느 곳의 역사와도 다르게 읽힌다.
다른 데서는 바깥에서 안으로 향하는데, 여기서는 안에서 바깥으로향한다. 모든 것은 이곳에 모여 있다가 이곳으로부터 퍼져나간다. 로마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 P15

그런데 헬레니즘은 로마제국이 계승하고성해 널리 퍼뜨렸고, 지역 종교에 불과했던 그리스도교도 로마 교회를ㅣ치며 세계 종교의 위상에 올랐다. 로마는 고대 로마 문명의 중심지였으1. 로마 가톨릭교회의 본산이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 정도의 차이는 있만서양문명은 로마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 P15

카이사르의 시대로부터 약 1600년이 지났을 무렵엔 천문학이 더 블전해 지구의 공전 시간도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1년의 ㄱ이는 365.25일에서 365.2422일로 조정됐다. 다시 말해 그레고리우력은 율리우스력의 1년 단위에서 11분 14초를 뺀 방식이다. -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생들은 여러 가지로 당황해하고 있었다. 우선 그 인사말의 짧음 때문이었다. 교장의 훈화가 줄잡아 30분, 훈육주임이나 교무주임의 지시사항 등속이 또 30분, 으레전체조회를 섰다 하면 한 시간씩 몸을비비 꼬는 것으로 습관되어 온 학생들 입장에서 미처 1분이 못 되는 인사말이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다음이, ‘나‘를 ‘저‘로낮춰 말하는 점이었다. 교장을 비롯하여 모든 선생들은 ‘나‘였을 뿐 - P145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반대세력을 형성하거나 옹호하는것이 아니었다. 그가 하는 일은 그 세력의 주동인물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해서, 정치의식을 버리고 학업에 전념하는 학생이 될 것을설득하는 것이었다. 그는 곧 각 학교에 퍼져 있는 사회주의 학생조직으로부터 ‘파괴분자·반동분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 P146

그건 학생들의 저돌적인 정치의식이 낳은 쓰디쓴 비극이었다. 아직 스무 살이 못 되고, 책을 들어야 할 손에 몽둥이를 들게 한 그 이념이라는 것에 그는 순간적으로 치를 떨었다. - P147

이 사건으로 김범우 선생이란 존재는 순천·벌교바닥은 말할 것도 없고, 여수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몽둥이 휘두르며 덤비는 네사람을 거뜬히 물리친 무용담도 무용담이었지만, 학생들을 더욱감동시킨 것은 그 네 학생을 극구 변호해서경찰서에서 빼낸 것이었다. 그 일처리로 하여 좌익학생들도 더 이상의 적대감을 가질 수가 없게 되었다. 김범우 선생은 좌익에 물든 학생들을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극렬한 행동을 하다가 경찰서에 붙들려 들어간학생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학교의 구분을 두지 않고 노력했다. 좌익조직에서 보면 그는 확실히 눈엣가시였지만 그렇다고 증오스러운 적도 아니었다. - P148

필요한 말은 거의 하지 않는 무게감, 세상의 이치를 훤히 아는 것같은 해박함, 그 누구도 무시하지 않을 것 같은 겸손함, 거의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진행해가는 꾸준한 행동성, 그러나 그분의 절대적 매력은 이런 모든 것들이 모아져 이루어진 것 같은 그 어딘지우울한 듯하기도 하고, 쓸쓸한 듯하기도 한 범접하기 어려운 사색적이고도 지성적인 분위기였다. - P149

김범우가 사색적이고 지성적이라면 염상진은 야성적이고 행동적이었다. 이것은 서로 다른 개성일뿐저울눈금을 움직이게 하는 무게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 P1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