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엘리사가 죽은 아이를 살린 일이 있었는데,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그대는 가족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사시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기근을 명령하셨으니 기근이 칠 년 동안 계속될 것이오." 여인은 거룩한 사람의말대로 그곳을 떠났다.  - P433

"당신의 아들아람 왕 벤하닷이 나를 여기로 보내어, ‘제가 이 병에서 낫겠습니까?"
하고 당신에게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대답했다. "가서 ‘왕께서는 살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고 전하시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셨는데, 사실 그는 죽을 운명이오." 그러더니 엘리사는 하사엘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의 마음을 읽었다. 하사엘은 속내를 들킨 것 같아 고개를떨구었다. 그때 거룩한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 P434

12 하사엘이 말했다. "내 주인께서 어찌하여 우십니까?"
엘리사가 말했다. "그대가 장차 이스라엘 자손에게 무슨 일을 행할지 내가 알기 때문이오.
그들의 성을 불태우고
젊은이들을 살해하고
아기들을 메어치고
임신부의 패를 카를 것이오. - P434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오년에, 유다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었다. 그는 서른두 살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렸다.  - P435

그는 이스라엘 왕들의 삶을 따랐고, 아합집안과 결혼하여 그 가문의 죄를 이어 갔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악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 다윗을 생각하여 유다를 선뜻 멸하지 않으셨다. 다윗의 자손을 통해 등불이 계속 타오르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 P435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십이년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유다의 왕이 되어 다스리기 시작했다. 아하시야는 스물두 살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밖에 통치하지 못했다.
- P436

그의 어머니는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 아달랴다. 그는 아합 가문이 행한 대로 살고 다스렸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죄의 길을이어 갔다. 결혼이나 죄짓는 것으로도 아합 가문과 한통속이었다. - P436

하루는 예언자 엘리사가 한 예언자 수련생에게 명령했다.
"너는 기름 한 병을 준비하여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님시의손자요 여호사밧의 아들인 예후를 찾아라. 그를 찾거든 동료들로부터 불러내어 뒷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기름병을 꺼내 그의 머리에붓고 ‘ - P436

하나님의 말씀이다.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는다‘ 하고 말하여라. 그러고 나서 문을 열고 속히 거기서 도망쳐라. 잠시도 지체해서는 안된다" - P436

예후가 일어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젊은 예언자가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말했다.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 P437

너의 임무는 너의 주인인 아합 가문을 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종예언자들이 죽임당한 일-이세벨이 하나님의 모든 예언자를 죽인일을 되갚아 줄 것이다. 아합 가문은 모조리 망할 것이다. 그 딱한무리를 내가 모두 없애 버릴 것이다. 내가 반드시 아합 가문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가문,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 가문과 똑같은 운명을 맞게 할 것이다. 이세벨은 죽어서 이스르엘 넓은 들판에 있는 개들에게 먹힐 것이요. 땅에 묻히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문을 열고 급히 도망쳤다. - P437

요람이 예후를 보고 큰소리로 말했다. "좋은 날이요, 예후!"
예후가 대답했다. "좋기는 뭐가 좋다는 말이오? 당신 어머니 이세벨의 음란한 창녀 짓과 주술이 나라를 더럽히고 있는데, 어찌 좋은 일이 있을 수 있겠소?" - P439

25-26 예후가 부관 빗갈에게 명령했다. "어서 그를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져라. 너와 내가 그의 아버지 아합 뒤에서 전차를 몰던때를 기억하느냐?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될 운명을 선고하셨다. ‘내가 어제 살해당한 나봇과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으니, 네가 정확히 이 땅 위에서 그 값을 치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니 그를 들어다 이 밭에 던져버려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대로 이루어졌다!" - P439

33 예후가 "그 여자를 아래로 던져라!" 하고 명령하니, 그들이 이세벨을 들어 창밖으로 던졌다. 그녀의 피가 벽과 말에 튀었고, 예후는 자기가 탄 말의 말발굽으로 그녀를 짓밟았다. - P440

35-36 그들이 그녀를 묻으러 나갔으나, 두개골과 손발 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그들이 돌아와서 예후에게 말하니, 그가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 곧 디셉 사람 엘리야가 전한 말씀이다.
이스르엘 밭에서개들이 이세벨을 먹을 것이다.
37 이세벨의 몸은 이스르엘 땅에서개의 배설물처럼 될 것이다.
옛 친구와 연인들이
‘이것이 정말 이세벨이 맞는가?‘ 하고 말할 것이다." - P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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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난잡한 종교에 탐닉한 그녀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육욕을 좇는 바알 숭배,
그에 따르기 마련인 그 모든 난잡한 성생활,
나는 안중에도 없이한껏 꾸미고 남자들을 쫓아다닌 일에 대한 대가 말이다.
하나님의 메시지다! - P655

14-15
"이제, 내가 하려는 일은 이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그녀를 다시 광야로 데려갈 것이다.
우리가 첫 데이트를 했던 곳으로.
나는 거기서 그녀에게 구애하며,
장미 꽃다발을 선물할 것이다.
‘비탄의 골짜기‘를 ‘희망의 땅‘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어린 소녀였을 적 그랬던 것처럼,
막 이집트에서 나왔을 적 그랬던 것처럼, 나를 대할 것이다." - P655

"바로 그날에, 내가 응답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메시지다.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할 것이며,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올리브기름에 응답하고,
그것들 모두는 이스르엘에 응답할 것이다.
- P656

나는 그녀를 좋은 땅에 심어,
‘자비를 못 얻음‘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자‘에게 ‘너는 이제 내게 귀한 자‘라고 말해 주고,
그는 내게 주는 내 하나님이십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 P656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 주목하라! 하나님의 메시지다!
하나님께서 백성 모두를 고발하신다.
"신실한 자 아무도 없다. 사랑하는 자 아무도 없다.
하나님에 대해 초보적인 지식이라도 가진 자 아무도 없다.
- P657

악담과 거짓말과 살해, 도둑질과 문란한 성생활,
무정부 상태, 끊임없는 살인들!
이 모든 일 때문에 땅이 울고,
땅의 모든 것이 비탄에 빠졌다. - P657

"그러나 비난할 대상을 찾지 마라.
손가락질할 생각마라!
너, 제사장인 네가 바로 피고다.
너는 벌건 대낮에 비틀거리며 다닌다.
너를 따라 예언자들도 밤새도록 비틀거린다.
네 어머니도 다를 게 없다.
내 백성이 파멸한 것은그들이 무엇이 옳고 참된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네가 지식에 등을 돌렸기에,
나도 너희 제사장들에게 등을 돌렸다.
네가 하나님의 계시를 알려고 하지 않으니,
나도 더 이상 네 자녀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제사장들은 그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죄를 짓는다. - P658

"이스라엘아, 너는 네 삶을 스스로 파멸시켰다.
유다도 같이 끌고 내려갈 생각은 마라!
길갈의 음란한 산당에 가지 말며,
죄의 도시 베델에 가지 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거나,
‘하나님이 너희에게 복 주신다‘는 실없는 소리를 하고 다니지 마라.
- P659

이스라엘은 노새처럼 완고하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이 어린양을 치듯그를 드넓은 초장으로 인도하실 수 있겠느냐?
에브라임은 우상에 중독되었다.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 P659

 나는 너희, 에브라임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그렇다. 이스라엘아, 나는 너희를 꿰뚫어 보고 있다!
에브라임아, 너는 음란한 종교에 푹 빠졌다.
이스라엘 전체가 뿌리까지 썩었다.
. - P660

그들은 오고 싶어도 하나님에게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악한 삶이 나쁜 습관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쉬는 숨까지도 창녀의 숨이다.
그들은 나 하나님을 보아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 P660

그들이 네 뼛속까지 파고드는 내 말을 전한다.
빛처럼 번득이는 내 심판에,
너희가 깨어 있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찾는 것은 너희의 변함없는 사랑이지, 더 많은 종교가 아니다.
- P663

내가 원하는 것은 너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지, 더 많은 기도회에나가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언약을 깨뜨렸다. 아담처럼!
너희는 나와의 신의를 깨뜨렸다. 은혜를 모르는 비열한 인간처럼! - P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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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를 활용하지 실제로 그 역사적 예수에 관한 논증이 옳아서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비슷한 부류끼리 끌린다. 문제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어떤목회자와 신학자가 예수 세미나의 연구를 활용하는가? 어떤목회자와 신학자가 톰 라이트의 연구를 활용하는가?" - P62

근현대의 역사적 예수 탐구는 유럽의 이신론자deist들이시작했다. 그들은 증거를 반反교회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다.  - P62

 이신론자들의 목표는 진실과 허구, 즉 교회가 지어낸 이야기에서 예수에 관한 진실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야기꾼이 지어낸 이야기에서 이야기를 지우고, 제도교회가 만들어낸 초인 뒤에 감춰진 역사적 인물 예수의 정체를 알아내기를 원했다. - P63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은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칭송하기 전의 예수 있는 그대로의 예수로 돌아가기 위해 마태오의 편집과 마르코의 신학을 무시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 P67

공관복음이라고 해서 다르게 평가할 이유는 없다. 여하튼 나는 예수가 악마에게 시험을 받은 이야기가 신명기와 시편에서 흥미로운 하가다식 이야기를 뽑아내 만든 세련된 그리스도교인 기자의 작품이라는 많은 학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 P69

*‘하다‘는 유대 율법 해석과 관련 없는, 민담, 역사적 일화, 도덕 권면등을 담은 랍비 문서를 가리킨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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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주의 저술가들은 초기 교회가 나사렛 예수를 오해했다고 주장했다. 기독교 전통과 신약성경을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며, ‘이성의 시대‘의 가치와 일치하고 보다 단순하고 개연성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견해를 밝히려고 하였다. 그 결과 우리가 지금 "역사적 예수 • 탐구"로 알고 있는 운동이 18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다 - P538

라이마루스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모두 잘못된 기초 위에 세워졌다고 확신하였으며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릴 만한 큰 책을 쓰려고 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로 나온 책의 제목이 『이성적으로 하나님을예배하는 사람들을 위한 변명 An Apology for the Rational Worshipper of God이었다.  - P539

이 책은 합리주의 비평의 기준에 따라 정경 성서 전체를 비판했다. 하지만 논쟁을 일으키는 것을 원치 않았던 라이마루스는 책을출판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그가 죽기까지 필사본으로 남아 있었다. - P539

존 에버렛 밀레이의 부모와 함께 집에 있는 나사렛 예수」(1849-1850). 당시 이 그림은 전통적인 성스러운 상징들은 제거하고 가난한 노동자의 가정을 실제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크게 비판을 받았다. 사실 밀레이는 나무, 못, 그리스도의 손에 난 상처, 발에 난 피 같은 여러 가지 십자가 상징들을 이 그림 속에 그려 넣었다. 많은 면에서 이 그림의 자연주의는 ‘역사적 예수 탐구‘의 자연주의와 상응한다. - P539

1774년에 출간되었으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대체로 볼펜뷔텔 단편』 Wolfenbüttel Fragments 이라 불리는 이 책은 다섯개의 단편을 싣고 있으며 일관되게 부활의 역사성을 비판하고 있다. - P540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목적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달린 마지막단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지식의 본질을 다루고,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가 초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변경된 것이 아니냐는문제를 제기하였다. 라이마루스는 예수 자신의 믿음과 의도가 사도적 교회의 믿음과 의도와는 전혀 달랐다고 주장하였다.  - P540

라이마루스에 의하면, 예수가 사용한 언어와 하나님상은 유대 묵시환상가들의것으로서 시대나 정치적으로 극히 한정된 범위에만 국한된 것이었다. 예수는 로마의 지배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렸던후기 유대교의 사상을 이어받았으며, 또 이 과업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십자가에서 버림받아울부짖었던 일은 자기가 착각하고 틀렸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P540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그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라이마루스는 보았다. 그들은 예수가 품었던, 외국의 압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라는 구체적이고 정치적인 비전 대신에 ‘영적 구원‘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냈다. 또 예수의 죽음으로 야기된 혼란을 덮어버리고자 예수의 부활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 P540

그 결과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이 인간의 죄를 위한 속죄가 된다는 식으로, 예수는 결코 알지 못했던 교리들을 고안해 냈으며 그런 개념을 성서 본문에 끼워 넣음으로써 성서를 자기들의 신념에 일치시켰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신약성서는 억지로 끼워 넣은 거짓된 내용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사도적 교회는 역사적인 진짜 예수는 우리에게 감추고, 그대신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는 자라는 거짓된 신앙의 그리스도를 주장하였다. - P540

라이마루스가 비록 당시에는 거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그가제기한 문제들은 그 후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특히 그가 진정한 역사적 예수와 꾸며낸 신앙의 그리스도를 확고하게 나누어 구분한 것은 극히 중요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P541

신약성경에서 묘사하는 그리스도가 교리적으로 조작된 것이 아니냐는 합리주의의 의혹이 증가하면서 그 직접적 결과로 나타난 것이 ‘역사적 예수 탐구‘다.
역사적인 인물인 진짜 예수를 재구성하고 나아가 그에게서 사도들이덧입힌 교리적 개념을 벗겨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 P541

그 결과 역사적 예수의 생애를 구성하는 바탕이 되는 신약성경자료의 본성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모아졌다. 신약성경 전체와 구체적으로는 공관복음서에 새로운 문학 이론을 적용함으로써, 예수의인격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확고하고 실제 그대로의 초상을 찾을 수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 P541

역사적 예수 탐구는 19세기에 자유주의 개신교의 등장과 더불씬 더 정교한 형태로 나타났다  - P541

나사렛 예수의 인격과 메시지를 이렇게 일관되게 종말론적으로 해석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낯설고 먼 인물,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묵시적인 사람이라는 그리스도상이었다. 따라서 예수는 1세기 유대교라는 이질적이고 묵시적인 세상에서 나온 낯선 인물로 우리에게모습을 드러내며, 그래서 슈바이처가 남긴 유명한 말대로 "그는 알수 없는 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 P543

브레데에 의하면, 마가는 자기가 얻은 자료에다 마음대로 자신의 신학을 집어넣어서 역사라는 껍질로 치장한 신학적인 그림을 그려냈다. 마가복음은 객관적인 역사가 아니라 사실은 역사를 창조적이고 신학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 P543

만일 브레데의 주장이 옳다면, 마가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신학적 산물이며 그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까닭에 그이야기의 배후로 파고들어 예수의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진짜‘ 역사의 예수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를 세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그런 까닭에 ‘역사적 예수탐구‘는 종말을 맞게 된다. - P543

켈러에 의하면 그가 이와 같은 주장을 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리스도는 ‘역사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초역사적인 인물로 보아야 마땅하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일에는 역사비평 방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544

역사비평 방법으로는 예수의 초역사적인(따라서 초인간적인) 특성들을 제대로 다룰 수 없었으며 그래서 그 특성들을 부정하거나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역사비평 방법은 그 안에 내재된 교리적 전제들로 인하여 아리우스주의나 에비온주의‘의 그리스도론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 P544

• 에비온주의Ebionitism
초기 시대의 그리스도론이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다른 인간과는 달리특별한 카리스마적 은사를 받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완전한 인간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 P544

불트만은 예수를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완전히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역사는 그리스도론에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 P545

예수가 존재했다는 사실과, 기독교의 선포(불트만은 이것을 케리그마[kerygma]라고 부른다)는 그의 인격을 근거로 한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잘 알려져 있듯이 불트만은 그리스도론의 역사적 요소 전체를 하나의 단어 "그것"으로 축소해 버렸다.  - P545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선포(케리그마)의 배후에 있다는 그것을 믿는 것뿐이다. 이러한 구호를 앞세워 그리스도론은 역사에 관여하는일을 접고 완전히 물러나 긴 시간동안 잠복하게 되었다. - P545

불트만에 의하면 우리는 케리그마의 배후로 들어가서 그 케리그마를 ‘자료‘로 사용하여 ‘역사적 예수‘와 그의 ‘메시아 의식‘ 또는 ‘내적 삶‘, ‘영웅적 행동‘을 재구성해 낼 수 없다. 그런 역사적 예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육신을 따른‘ 그리스도일 뿐이다. 우리의 주가되시는 분은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선포되는 예수 그리스도다. - P545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탐구는 대체로 에른스트 케제만이1953년 10월에 역사적 예수의 문제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케제만의 주장에 따르면, 복음서 저자들은 자기들의확고한 신학적 관심사와는 별개로 나사렛 예수에 관한 역사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역사적 정보를 공관복음서의 본문을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복음서는 케리그마와 역사 이야기를 모두포함하고 있다. - P546

• 공관복음서synoptic gospels
복음서의 첫 세 권(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가리키는 말, "개요"를 뜻하는그리스어 synopsis에서유래한 이 용어는 세 권의 복음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대해 비슷한 개요를 제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 P546

 이와는 달리 케제만은이 땅 위의 예수와 높임 받은 그리스도의 동일성이 나사렛 예수의 행위와 설교 속에 역사적으로 근거한 것임을 신학적으로 단언하고 있는것이다. - P546

 옛 탐구에서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의 불연속성에비추어볼 때 신앙의 그리스도는 허구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객관적인 역사 연구를 통해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가정한 데 반해, 케제만은 그러한 재구성은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주장하였다.
- P547

이처럼 ‘새로운‘ 역사적 예수 탐구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을 분명히 밝히는 데 관심이 있었다. ‘최초의 탐구‘가 신약성경의 그리스도상이 신뢰할 수 없는 것임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새로운 탐구‘는 예수 자신의 선포와 예수에 관한 교회의 선포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상을 굳건히 다지는 결과를 낳았다. - P547

‘제3의 탐구‘는 여러 가지 공통된 요소가 있으며, 특히 예수의 유대인 신분을 강조하고 1세기의 유대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팔레스타인의 사회상을 배경 삼아 예수를 이해할 필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 P549

다양한 ‘역사적 예수탐구‘를 통해 특히 중요한 것으로 드러난 한 가지 주제는 나사렛 예수의 부활의 역사성이었다.  - P551

레싱이 볼 때, 다른 사람의 증언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인간의 지적 자율성을 파괴하는 일이다. 오늘날에는 부활에 상응하는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활은 현대인의 경험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신약성경의 기록을 신뢰하는가? 레싱에게 부활은 실제로일어나지 않은, 잘못 이해한 사건에 불과하다. - P552

 이렇게 해서죽은 예수가 가공의 부활한 그리스도로, 적절한 용어로 말하면 신화적인 부활한 그리스도로 변형되었다.
슈트라우스가 이 논쟁에 기여한 독특한 점은 ‘신화‘-복음서 저자들의 사회적 조건과 문화적 관점의 반영 - 라는 범주를 도입한 것이었다.  - P552

따라서 복음서 저자들의 저술이 일부분 ‘신화적‘이었다고 말한 것은 그 저술들의 온전성에 도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저술들이기록되던 시대의 전근대적인 사고를 지적한 것이었다.  - P552

불트만의 주장에의하면, 역사란 "개별 사건들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이루어진,
결과들의 닫힌 연속체다. 따라서 다른 기적들과 마찬가지로 부활도자연이라는 닫힌 계closed system 를 파괴하게 된다. - P553

볼트만의견해에 따르면 부활에는 객관적인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었다. 이런이유로 바르트는 복음서에 나오는 빈 무덤에 관한 이야기를 크게 강조하게 되었다. 빈 무덤은 있을 수 있는 모든 오해를 막아 내는 필수적인 표징"이다. 빈 무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단순히 내면적이거나 정신적이거나 주관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족적을 남겨 놓은 사건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 P554

바르트의 주장에 의하면, 바울과 여러 사도들이 요구한 것은 "충분히 입증된 역사적 보고들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결단"이었다. 역사적 연구는 그러한 신앙을 정당화하거나 보증해 줄 수 없으며, 또한 신앙은 역사적 탐구의 잠정적인 결과를 근거로 삼을 수도없다.  - P555

어쨌든 신앙은 빈 무덤이 아니라 부활한 그리스도에게 응답하는 것이다. 빈 무덤 그 자체만으로는 부활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다지는 데 별 효과가 없다고 바르트는 분명하게 밝혔다. 그리스도가무덤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반드시 그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그의 시체를 훔쳐 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가 죽은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 P555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의 신학 작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예수의 부활은 증거를 아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증언하는 객관적인 역사 사건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불트만은 부활을 제자들의 경험 세계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본 반면에 판넨베르크는부활이 보편적이고 공적인 역사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하였다. - P556

이것은 곧바로 부활의 역사성이라는 문제를 낳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계몽주의에 속한 한 사상가 집단은 소위 예수의 부활에 대해우리가 아는 지식은 신약성경 안에 있는 것이 전부라고 주장하였다.
오늘날에는 부활에 상응하는 현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성경기록의 신뢰성이 크게 의문시될 수밖에 없었다.  - P556

이와 유사하게 에른스트 트릴치 Ernst Troeltsch, 1865-1923 는 역사의 동질성을 주장하였다. 예수의 부활은 역사의 동질성을 완전히 깨뜨린 것이며 그런 까닭에 그역사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판넨베르크는 먼저 논문 「구속 사건과 역사」에서, 그리고 이어서 예수 신과 인간』에서 답을 제시하였다.  - P556

• 역사비평적 방법historicocriticalmethod
성경을 포함해 역사적 문헌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그 문헌들의 바른 의미는그것들이 기록되던 때의특수한 역사적 조건에 비추어서 확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P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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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나부입니다. 아직도 연나부의 수장은 전 국상 명림수부이옵니다. 비록 동해 바다 외딴섬에 유배되어 있긴 하나 그의입김은 연나부 전체에 작용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화로 속의 잿불에서 다시 불씨가 살아나는 법이옵니다. 죄인 명림수부야말로 화로 속의 잿불이옵니다. 차제에 사약을 내려 연나부의 음모 세력들에게 경종을 울리도록 해야 하옵니다."
국상을두미는 전부터 대왕이 명림수부를 살려둔 것에 대해우려하고 있었다. - P267

대왕 구부는 국상을두미의 지휘 아래 기우제지낼 준비를하라 일렀다. 궁궐을 가운데 두고 국내성 서쪽에는 국사가동쪽에는 종묘가 있었다. 국사는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고,
종묘는 역대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는 왕실의 사당이었다. - P268

치는 동쪽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처음 연화를 만났을때 같이 태백산 천지에 올라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태백산 언저리를 가늠하며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쪽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들며 마른번개가 쳤다. 먹구름 위로 붉은 기운이 뻗쳐오르고 있었다. 잠시 후 용이 트림을 하듯 천둥소리가 쿠르릉, 하며 울렸다. - P270

고구려는 수곡성을 백제에게 빼앗길때인삼재배의 중심지인 부소갑까지 잃었다. 그리하여 청목령을 경계로 그 남쪽은백제 땅이 되었고, 백제왕 구는 그곳에 성을 쌓음으로써 부소갑 이남 지역을 백제 권역으로 확실하게 묶어놓았다.
- P272

백제가 전부터 부소갑을 호시탐탐 노려온 이유는 그곳에서생산되는 양질의 인삼이 중원에서 비싼 값으로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부소갑을 백제에게 빼앗기면서, 그 인근 지역에서 나오는 인삼 생산량의 8할 이상을 잃었다. - P272

고구려가 발해와 황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는 부소갑에서 생산되는 인삼을 해로를 통해 요동반도나 산동반도와직거래를 했었다.  - P272

그러나 백제가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고구려는 육로를 통해 패수. 압록강·요하 등을 건너 중원으로진출하는 어려운 노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런데 부갑마저도백제에게 넘겨주면서 고구려는 인삼 교역의 주도권까지 빼앗기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 P272

적의 기병 수백 기가야습을 하여, 낮에 폭염 속에서 일하다 지쳐 곤하게 잠든 삼농인을 마치 보쌈이라도 하듯이 자루에 담아 말 위에 싣고 도망친것이옵니다."
"보쌈이라? 허허, 해괴한 일이고, 어찌 저들이 무고한 삼농인을 붙잡아 갔단 말이더냐?"
대왕의 목소리는 분노에 가까웠다. - P273

백제가 부소갑 서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갑비고차(강화도)란 섬에 대단위 인삼 재배단지를 만들고 있는데, 붙잡아간 고구려 삼농인들로 하여금 영농기술을 전수케 하기 위함인 것 같사옵니다." - P273

고구려 풍속에는 아기를 낳은 지 스무하루가 되는 날을 삼칠일이라고 하는데, 이때 금줄을 내리고 이웃들도 아기를 볼수 있었다. 이러한 민가의 풍속대로 대왕도 삼칠일이 되기만을기다리고 있다가 동궁전으로 거둥했다.
- P274

풍속에 따라 동궁빈은 삼칠일 이른 아침에 삼신에게 보리밥과 미역국을 올렸다. 그러고 나서 산모도 미역국을 먹고, 처소앞에 쳤던 금줄을 걷어냈다. 시녀들은 수수경단이다 보리떡이다 해서 음식을 장만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P274

"담덕이 어떨까 싶네. 두미 국상과 논의한 결과 짐이 담議자를 국상이 덕분자를 내놓았지. 기본 뜻으로는 말 담 자인데,
그 안에는 ‘깊고 그윽하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 덕 자 또한기본은 크다는 뜻인데, 그 안에는 ‘은혜를 베풀다‘, ‘바로 서다‘
라는 의미가 들어 있네. 여보게, 아우! 담덕이 어떠한가?" - P276

구부는 다시 부왕의 위패 앞으로 옮겼다. 녹슨 화살촉이 거기 그대로 있었다. 그는 화살촉을 손에 들고 바라보았다. 날카롭고 딱딱한 쇠의 촉감이 그의 폐부를 찔렀다.
그야말로 절치부심의 세월이었다.  - P278

시신을 부검한 어의가 부왕의 사인을 화살에 묻힌 짐독이 순식간에 온몸에 퍼져 해독이 불가능해 붕어하였다고 말했을 때, 그는 백제군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 길이 없었다.
독이 묻지 않은 화살을 맞았다면 그리 위험할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다. 그러나 짐독은 해독하기 쉽지 않은 맹독에 속했다. 이는 적이 부왕을 겨냥해 죽이기로 작정하고 쏜 화살이 분명했다. - P279

그래서 우리는 이번 기회에 수곡성을 탈환하고 부소감을 되찾은 다음, 고구려의 국경을 남쪽 한수 북변까지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래야만 부소갑의 인삼 재배지를 되찾을 수 있고, 저 중원의 제국들과 해상을 통한 인삼 교역도 가능해지게 될 것이오. 부소갑의 인삼교역은 국고에도 적지 않은 보탬이 되기 때문에 결코 좌시할 수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오."
- P281

이때 을두미는 연나부를 대표하는 대사자 연소불이 갑자기전쟁 반대론에서 전쟁불사론으로 생각을 바꾼 것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부터 연소불이 동부욕살 하대곤과 사돈을 맺기로 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하대곤의 아들 해평과연소불의 딸 정화 남자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P283

"짐은 이번에 원정군의 군사문무를 겸비하고 있는 국상을 대동할 계획이었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우 이련에게만국내성을 맡길 수 없는 노릇이고, 국상도 궁궐에 남아 국내성을안전하게 지켜주셔야 짐이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소이다."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이제 소신이 더 이상 원정을 반대할 수는 없게 되었사옵니다.  - P284

다만 동해고도에 있는 죄인 명림수부에 대한 처단을 가납하여 주시기 바라옵니다."
을두미는 연나부의 싹부터 잘라내 만약에 있을지 모를 저들의 준동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P284

대왕 구부는 국내성에서 날랜 군사로 기병 1천을 뽑았으며,
젊은 장수 동관을 선봉장으로 삼아 출진할 준비를 갖추도록했다. 동관은 고국원왕 시절 연나라에서 고구려로 망명하여 장하독을 지낸 동수의 아들로, 여러해 전 동맹축제에서 해평과추수 다음으로 뽑힌 청년 장수였다. - P286

성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것은 국내성에서 차출한 기병 1천으로 족하니, 손 장군은 적을 속이는전략만 잘 구사해 주시오."
"폐하, 기병 1천으로 가능하겠사옵니까? 평양성 기병 1천을더 차출해 보강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평양성 기병 1천은 따로 비밀리에 이동시켜 수곡성 서문 근처에 매복시키도록 하시오. 국내성 기병 1천이 서문을 부수고 성안으로 공격해 들어갈 때 합류토록 하면 되겠군!" - P287

백제가 성곽을 새로 쌓은 청목령은 부소갑의 최후 방어선이었다. 대왕은 세작들을 미리 앞으로 보내 고구려 기병들이 청목령으로 출진한다는 소문을 민가에 퍼뜨리게 했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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