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주의 저술가들은 초기 교회가 나사렛 예수를 오해했다고 주장했다. 기독교 전통과 신약성경을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며, ‘이성의 시대‘의 가치와 일치하고 보다 단순하고 개연성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견해를 밝히려고 하였다. 그 결과 우리가 지금 "역사적 예수 • 탐구"로 알고 있는 운동이 18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다 - P538

라이마루스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모두 잘못된 기초 위에 세워졌다고 확신하였으며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릴 만한 큰 책을 쓰려고 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로 나온 책의 제목이 『이성적으로 하나님을예배하는 사람들을 위한 변명 An Apology for the Rational Worshipper of God이었다.  - P539

이 책은 합리주의 비평의 기준에 따라 정경 성서 전체를 비판했다. 하지만 논쟁을 일으키는 것을 원치 않았던 라이마루스는 책을출판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그가 죽기까지 필사본으로 남아 있었다. - P539

존 에버렛 밀레이의 부모와 함께 집에 있는 나사렛 예수」(1849-1850). 당시 이 그림은 전통적인 성스러운 상징들은 제거하고 가난한 노동자의 가정을 실제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크게 비판을 받았다. 사실 밀레이는 나무, 못, 그리스도의 손에 난 상처, 발에 난 피 같은 여러 가지 십자가 상징들을 이 그림 속에 그려 넣었다. 많은 면에서 이 그림의 자연주의는 ‘역사적 예수 탐구‘의 자연주의와 상응한다. - P539

1774년에 출간되었으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대체로 볼펜뷔텔 단편』 Wolfenbüttel Fragments 이라 불리는 이 책은 다섯개의 단편을 싣고 있으며 일관되게 부활의 역사성을 비판하고 있다. - P540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목적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달린 마지막단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지식의 본질을 다루고,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가 초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변경된 것이 아니냐는문제를 제기하였다. 라이마루스는 예수 자신의 믿음과 의도가 사도적 교회의 믿음과 의도와는 전혀 달랐다고 주장하였다.  - P540

라이마루스에 의하면, 예수가 사용한 언어와 하나님상은 유대 묵시환상가들의것으로서 시대나 정치적으로 극히 한정된 범위에만 국한된 것이었다. 예수는 로마의 지배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렸던후기 유대교의 사상을 이어받았으며, 또 이 과업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십자가에서 버림받아울부짖었던 일은 자기가 착각하고 틀렸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P540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그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라이마루스는 보았다. 그들은 예수가 품었던, 외국의 압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라는 구체적이고 정치적인 비전 대신에 ‘영적 구원‘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냈다. 또 예수의 죽음으로 야기된 혼란을 덮어버리고자 예수의 부활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 P540

그 결과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이 인간의 죄를 위한 속죄가 된다는 식으로, 예수는 결코 알지 못했던 교리들을 고안해 냈으며 그런 개념을 성서 본문에 끼워 넣음으로써 성서를 자기들의 신념에 일치시켰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신약성서는 억지로 끼워 넣은 거짓된 내용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사도적 교회는 역사적인 진짜 예수는 우리에게 감추고, 그대신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는 자라는 거짓된 신앙의 그리스도를 주장하였다. - P540

라이마루스가 비록 당시에는 거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그가제기한 문제들은 그 후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특히 그가 진정한 역사적 예수와 꾸며낸 신앙의 그리스도를 확고하게 나누어 구분한 것은 극히 중요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P541

신약성경에서 묘사하는 그리스도가 교리적으로 조작된 것이 아니냐는 합리주의의 의혹이 증가하면서 그 직접적 결과로 나타난 것이 ‘역사적 예수 탐구‘다.
역사적인 인물인 진짜 예수를 재구성하고 나아가 그에게서 사도들이덧입힌 교리적 개념을 벗겨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 P541

그 결과 역사적 예수의 생애를 구성하는 바탕이 되는 신약성경자료의 본성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모아졌다. 신약성경 전체와 구체적으로는 공관복음서에 새로운 문학 이론을 적용함으로써, 예수의인격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확고하고 실제 그대로의 초상을 찾을 수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 P541

역사적 예수 탐구는 19세기에 자유주의 개신교의 등장과 더불씬 더 정교한 형태로 나타났다  - P541

나사렛 예수의 인격과 메시지를 이렇게 일관되게 종말론적으로 해석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낯설고 먼 인물,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묵시적인 사람이라는 그리스도상이었다. 따라서 예수는 1세기 유대교라는 이질적이고 묵시적인 세상에서 나온 낯선 인물로 우리에게모습을 드러내며, 그래서 슈바이처가 남긴 유명한 말대로 "그는 알수 없는 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 P543

브레데에 의하면, 마가는 자기가 얻은 자료에다 마음대로 자신의 신학을 집어넣어서 역사라는 껍질로 치장한 신학적인 그림을 그려냈다. 마가복음은 객관적인 역사가 아니라 사실은 역사를 창조적이고 신학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 P543

만일 브레데의 주장이 옳다면, 마가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신학적 산물이며 그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까닭에 그이야기의 배후로 파고들어 예수의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진짜‘ 역사의 예수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를 세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그런 까닭에 ‘역사적 예수탐구‘는 종말을 맞게 된다. - P543

켈러에 의하면 그가 이와 같은 주장을 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리스도는 ‘역사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초역사적인 인물로 보아야 마땅하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일에는 역사비평 방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544

역사비평 방법으로는 예수의 초역사적인(따라서 초인간적인) 특성들을 제대로 다룰 수 없었으며 그래서 그 특성들을 부정하거나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역사비평 방법은 그 안에 내재된 교리적 전제들로 인하여 아리우스주의나 에비온주의‘의 그리스도론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 P544

• 에비온주의Ebionitism
초기 시대의 그리스도론이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다른 인간과는 달리특별한 카리스마적 은사를 받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완전한 인간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 P544

불트만은 예수를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완전히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역사는 그리스도론에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 P545

예수가 존재했다는 사실과, 기독교의 선포(불트만은 이것을 케리그마[kerygma]라고 부른다)는 그의 인격을 근거로 한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잘 알려져 있듯이 불트만은 그리스도론의 역사적 요소 전체를 하나의 단어 "그것"으로 축소해 버렸다.  - P545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선포(케리그마)의 배후에 있다는 그것을 믿는 것뿐이다. 이러한 구호를 앞세워 그리스도론은 역사에 관여하는일을 접고 완전히 물러나 긴 시간동안 잠복하게 되었다. - P545

불트만에 의하면 우리는 케리그마의 배후로 들어가서 그 케리그마를 ‘자료‘로 사용하여 ‘역사적 예수‘와 그의 ‘메시아 의식‘ 또는 ‘내적 삶‘, ‘영웅적 행동‘을 재구성해 낼 수 없다. 그런 역사적 예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육신을 따른‘ 그리스도일 뿐이다. 우리의 주가되시는 분은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선포되는 예수 그리스도다. - P545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탐구는 대체로 에른스트 케제만이1953년 10월에 역사적 예수의 문제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케제만의 주장에 따르면, 복음서 저자들은 자기들의확고한 신학적 관심사와는 별개로 나사렛 예수에 관한 역사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역사적 정보를 공관복음서의 본문을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복음서는 케리그마와 역사 이야기를 모두포함하고 있다. - P546

• 공관복음서synoptic gospels
복음서의 첫 세 권(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가리키는 말, "개요"를 뜻하는그리스어 synopsis에서유래한 이 용어는 세 권의 복음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대해 비슷한 개요를 제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 P546

 이와는 달리 케제만은이 땅 위의 예수와 높임 받은 그리스도의 동일성이 나사렛 예수의 행위와 설교 속에 역사적으로 근거한 것임을 신학적으로 단언하고 있는것이다. - P546

 옛 탐구에서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의 불연속성에비추어볼 때 신앙의 그리스도는 허구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객관적인 역사 연구를 통해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가정한 데 반해, 케제만은 그러한 재구성은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주장하였다.
- P547

이처럼 ‘새로운‘ 역사적 예수 탐구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을 분명히 밝히는 데 관심이 있었다. ‘최초의 탐구‘가 신약성경의 그리스도상이 신뢰할 수 없는 것임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새로운 탐구‘는 예수 자신의 선포와 예수에 관한 교회의 선포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상을 굳건히 다지는 결과를 낳았다. - P547

‘제3의 탐구‘는 여러 가지 공통된 요소가 있으며, 특히 예수의 유대인 신분을 강조하고 1세기의 유대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팔레스타인의 사회상을 배경 삼아 예수를 이해할 필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 P549

다양한 ‘역사적 예수탐구‘를 통해 특히 중요한 것으로 드러난 한 가지 주제는 나사렛 예수의 부활의 역사성이었다.  - P551

레싱이 볼 때, 다른 사람의 증언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인간의 지적 자율성을 파괴하는 일이다. 오늘날에는 부활에 상응하는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활은 현대인의 경험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신약성경의 기록을 신뢰하는가? 레싱에게 부활은 실제로일어나지 않은, 잘못 이해한 사건에 불과하다. - P552

 이렇게 해서죽은 예수가 가공의 부활한 그리스도로, 적절한 용어로 말하면 신화적인 부활한 그리스도로 변형되었다.
슈트라우스가 이 논쟁에 기여한 독특한 점은 ‘신화‘-복음서 저자들의 사회적 조건과 문화적 관점의 반영 - 라는 범주를 도입한 것이었다.  - P552

따라서 복음서 저자들의 저술이 일부분 ‘신화적‘이었다고 말한 것은 그 저술들의 온전성에 도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저술들이기록되던 시대의 전근대적인 사고를 지적한 것이었다.  - P552

불트만의 주장에의하면, 역사란 "개별 사건들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이루어진,
결과들의 닫힌 연속체다. 따라서 다른 기적들과 마찬가지로 부활도자연이라는 닫힌 계closed system 를 파괴하게 된다. - P553

볼트만의견해에 따르면 부활에는 객관적인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었다. 이런이유로 바르트는 복음서에 나오는 빈 무덤에 관한 이야기를 크게 강조하게 되었다. 빈 무덤은 있을 수 있는 모든 오해를 막아 내는 필수적인 표징"이다. 빈 무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단순히 내면적이거나 정신적이거나 주관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족적을 남겨 놓은 사건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 P554

바르트의 주장에 의하면, 바울과 여러 사도들이 요구한 것은 "충분히 입증된 역사적 보고들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결단"이었다. 역사적 연구는 그러한 신앙을 정당화하거나 보증해 줄 수 없으며, 또한 신앙은 역사적 탐구의 잠정적인 결과를 근거로 삼을 수도없다.  - P555

어쨌든 신앙은 빈 무덤이 아니라 부활한 그리스도에게 응답하는 것이다. 빈 무덤 그 자체만으로는 부활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다지는 데 별 효과가 없다고 바르트는 분명하게 밝혔다. 그리스도가무덤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반드시 그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그의 시체를 훔쳐 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가 죽은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 P555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의 신학 작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예수의 부활은 증거를 아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증언하는 객관적인 역사 사건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불트만은 부활을 제자들의 경험 세계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본 반면에 판넨베르크는부활이 보편적이고 공적인 역사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하였다. - P556

이것은 곧바로 부활의 역사성이라는 문제를 낳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계몽주의에 속한 한 사상가 집단은 소위 예수의 부활에 대해우리가 아는 지식은 신약성경 안에 있는 것이 전부라고 주장하였다.
오늘날에는 부활에 상응하는 현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성경기록의 신뢰성이 크게 의문시될 수밖에 없었다.  - P556

이와 유사하게 에른스트 트릴치 Ernst Troeltsch, 1865-1923 는 역사의 동질성을 주장하였다. 예수의 부활은 역사의 동질성을 완전히 깨뜨린 것이며 그런 까닭에 그역사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판넨베르크는 먼저 논문 「구속 사건과 역사」에서, 그리고 이어서 예수 신과 인간』에서 답을 제시하였다.  - P556

• 역사비평적 방법historicocriticalmethod
성경을 포함해 역사적 문헌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그 문헌들의 바른 의미는그것들이 기록되던 때의특수한 역사적 조건에 비추어서 확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P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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