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아 문학과지성 시인선 454
김이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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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너무 가깝다.

 

현재의 시공간과 내가 동시적으로 반응한다. 느끼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나는 그 순간의 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게 주어진 ‘현재’이고 모든 지각이 일어나는 ‘나’인데 붙잡을 수 없다. 현재라는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나는 떠내려가는 사실만을 인식할 뿐이다.

 

현재의 시간은 나의 기억 속에서 재현됨으로써 인식되는 사건이다. 인간에게 기억하는 능력이 없다면 현재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현재가 없다면 과거나 미래는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렇다면 시간은 바로 나이고 나는 시간이다. 그 작동원리는 기억이고 잘 기억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김이듬은 그 순간을 포착해서 시를 쓴다. 방금 기차에서 내린 그는 열차 침대 아래 넣어둔 카메라를 두고 내렸음을 알아차린다. 인터넷 중고 시장에서 구입한 물건이 카메라가 아니라 벽돌임을 알게 된다. 잃어버린 귀고리를 찾기 위해 7층부터 지하까지 뛰어다닌다. 또한 정갈한 수도승 같은 요가 선생이 진한 화장을 하고 짜증 난 표정으로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행동에 무섭게 집중한다. 무성하게 일어나는 잡생각들 속에서 삶이 지닌 속악한 속성과 연결 고리를 끄집어낸다. 그의 시는 일상성 속에 드러나는 삶의 본질을 보여주기 때문에 잘 읽힌다. 잘 읽힐 뿐만 아니라 인상적으로 남는다. 시인의 펄펄 살아있는 감각과 끝까지 끌고 나가는 힘, 삶을 끌어안는 모습은 생을 향한 강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눈 뜨자마자

 

눈 뜨자마자 뛰어내렸어

급히 신발을 구겨 신고

배낭을 끌어안고

 

곧바로 떠나가는 기차 꽁무니를 물끄러미

아뿔사, 내 카메라 백

조심스레 열차 침대 아래 밀어 넣어둔

 

번쩍하고, 순식간에 터지는 이것은

눈앞이 캄캄할 정도로 선명해지는 이것은

아, 잃어버린 것들

 

아마도 내 안에는 먹통 플래시가 있어서

대상을 놓친 순간 펑, 작동하나 봐

 

눈 뜨자마자 뛰고 눈 뜨자마자 사진을 찍고 이를

갈기도 했지 눈 뜨자마자 밥숟가락 쥐고 전화를 받

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어 한 때는 눈 뜨자마자 입

맞추고 가슴을 비며대며 설명해줘요 내게, 사랑! 발

음하기도 했지만 성에 눈뜨는 게 사랑을 느끼는 건

아니잖아

 

눈 뜨자마자 죽은 아기가 있었지

눈을 뜨는 바람에 나는 고유한 걸 잃어버린 것 같아

우물쭈물하는 사이

검표원이 나를 쏘아보고

사랑에 눈뜨기 전에 돈맛에 완전히 눈뜬 소녀처럼

나는 웃었지 어디든

어슴푸레한 개찰구를 빠져나가자마자 나는

현지 화폐로 바뀌는 것 같아

 

 

 

빈티지 소울

 

카메라 대신 벽돌입니다 상자를 여니 벽돌 반

장이 나왔어요 믿을 수 없지만 깨끗한 벽돌입니다

왜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아니라 벽돌인지 물어보려

고 해도 연락두절이네요

(중략)

 

희미하게 어둠이 퍼져갑니다 보통 저녁입니다 골

백번의 골백번 더 살아본 날입니다 어이없고 참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지만 똑 같은 사기 사건도 수십

만번째입니다. 사소한 사기가 삶이지요

(중략)

 

내 영혼은 중고품입니다 수거함에서 꺼낸 붉은 스

웨터처럼 팔꿈치가 닿고 닳은 영혼입니다 누군가가 미

처 봉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기억입니다 불현듯 바다

에서 솟아올랐거나 화산에서 흘러내린 먼지입니다

(중략)

 

당신이 왜 떠났는지 압니다 비애와 슬픔의 차이도

알고 저 모퉁이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왜 나한테 눈

을 흘기고 가는지도 압니다 똑같은 일을 수십만 번

겪었으니까요 벽돌이 내게 온 이 상황에 대해서도

분개할 만한 일종의 흥미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건망증에 미달하는 기억력 때문에 나는

자신이 없습니다 카메라를 받기도 전에 선입금했고

또다시 사람을 믿었습니다 다행히 내 기억은 내 영

혼은 약을 쳐야 기어 나오는 벌레 같아서 마치 없는

것처럼 또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것입니다

 

 

 

잡스러워도 괜찮아

 

요가원에 등록했다 인도에서 수련하고 온 선생은

정갈한 수도승 같은 인상이다 옴 샨티 낮고도 맑은

목소리가 좋다 눈을 감고 마음을 바라보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내겐 갖가지 생각이 떠오른다고 하자

차차 잡념을 버리게 될 거라며 웃는다 웃는 미간 사

이에서 밝은 빛이 퍼져가는 듯하다

 

며칠 후 지하철역에서 선생을 봤다 감색 요가복

대신 가죽점퍼에 청바지, 상투처럼 묶었던 머리칼을

풀어 내리고 있다 무언가에 짜증이 난 표정이다 그저

그렇다 평범하고 너무나 평범한 행인이다 화장이 진

해서인지 그 빛나던 밝은 빛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더 좋아진다

 

명상 자세로 눈을 감는다

막대기를 내려놓는다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기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을 때는

언제나 맛있고 옴 옴 옴

이 순간 훨씬 무성해지는 잡생각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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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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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지 않은 풍경(최영미)

 

어디론가 갈 곳이 있어

달리는 바퀴들이 부러웠다.

앞만 보고 질주하다

길모퉁이에서 부드럽게 꼬부라지는

빨갛고 노란 불빛들이 부러웠다.

 

비에 젖은 8차선 대로는 귀가하는 차들이 끊이지 않고

 

신호등을 읽었다면,

멈출 때를 알았다면,

나도 당신들의 행렬에 합류했을지도......

 

내게 들어왔던, 내가 버렸던 삶의 여러 패들은

멀리서 보니 나름대로 아름다웠다.

 

하얀 가로등 밑의 물웅덩이에 빗방울이 떨어져

보석 같은 빛을 탁탁 튀기며

지루하지 않은 풍경을 만들고

 

번쩍이는 한 뼘의 추상화에 빠져

8월의 대한민국이 견딜 만한데

이렇게 살아서, 불의 계절을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비 오는 밤을 젖지 않고

감상하는 방을 주신 신에 감사하며,

독한 연기를 뿜었던 입 안을 헹구고

내 밑에서 달리는 불빛들을 지웠다.

 

 

 

 

사막(이문재)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어떤 경우(이문재)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나이 들어 지나간 삶을 반추하며 현재의 삶에 감사하는 시인의 시를 읽는 일은 의미 있다. 하지만 어쩐지 불편하고 아쉽다. 내가 시인처럼 딱 그런 생각을 하는 중인데도 그렇다. 최영미의 『도착하지 않은 삶』이나 이문재의 『지금 여기가 맨 앞』은 깨달음이나 아포리즘적인 구절이 많은 시집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각자에게 절실한 삶의 깨달음이 생기는데 시인도 사람이니까 그런 시를 쓰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나는 시에서 만큼은 다른 지점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시의 효용은 감각의 극대화에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감수성을 일깨우고, 그 순간에 경험된 감각으로 새롭게 나를 느끼는 것이 시를 읽는 즐거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각적인 장르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개인의 개성은 고착화되고 감각은 무뎌진다. 살면서 겪은 실패와 상처, 혹은 확신으로 사람은 딱딱해지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꿈은 실현 가능한 것에 맞춰지고 자기가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생각과 감각은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통제 가능한 상황을 선호하게 되고 개인의 관습이 침해받는 것에 불같이 화를 내게 된다. 개인의 보수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아슬아슬하고 감질나고 서툴고 격렬한 감각을 시를 통해 읽는 것은 재미있다. 어쩌면 나는 의미보다는 재미를 선호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내게 있어 시는 청춘의 장르이다. 푹 익은 묵은지나 담근 술이 아니라 샛노란 참외의 지린 맛이나 싸구려 포도주를 홀짝이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어렸을 때는 아는 것이 없고 연약한데도 세계를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엄마와 아빠, 여름 분수, 쏟아지는 비, 짙은 초록의 숲을 처음 느꼈을 때의 기억은 강렬하고 생명력이 넘친다. 이제 그 감각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데에만 감각을 사용한다면 슬픈 일이다. 감각은 현재 진형행으로 작동되고 새로워질 때 아름답고 에너지가 넘친다.

 

이문재 시인의 다음 시들은 조금 허술해도 아름답다.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조금은 고독하게

 

어릿광대처럼 자유롭지만

망명 정치범처럼 고독하게

 

토요일 밤처럼 자유롭지만

휴가 마지막 날처럼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고독하게‘중에서

 

 

 

그대를 놓친 저녁이

저녁 위로 포개지고 있었다.

 

그대를 빼앗긴 시간이

시간 위로 엎어지고 있었다.

 

그대를 잃어버린 노을이

노을 위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대를 놓친 내가

나를 놓고 있었다.

 

오른 손에 칼을 쥐고

부욱ㅡ

자기 가슴팍을 긋듯이

 

서쪽 하늘

가늘고 긴 푸른 별똥별 하나.

 

                    - ‘별똥별 ’전문

 

 

너무 밝아서 성냥 불꽃이 잘 안 보여도 뭐 괜찮고

정오에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것들은

모두 제 그림자에 집중하고 있어서 다들 말끔하고

 

맑으면서도 맵싸하고 칼칼하면서도 그윽한 국물에다

식으면 조금 서글퍼지는 밀가루 내음이 어우러질 것인데

 

                                    -‘국수생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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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민음의 시 131
김소연 지음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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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슬한 바람에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서랍장에서 긴팔 옷을 꺼내 세탁을 한다. 바람과 햇빛에 바짝 말린 옷에선 잘 구운 빵 냄새가 난다. 숲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쌉쌀하고 아릿한 늦여름의 열기를 맡는다. 지독하게 자신을 사랑했던 날들에 대한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자기 스스로가 빛이었으므로 주위는 어둠으로 캄캄했던 날들. 자주 넘어져 멍이 들고 물기 많은 바람에도 몸살이 났던 기억들. 생을 연료 삼아 스스로를 사각사각 갉아먹으며 시간이 흘렀다.

 

청춘의 시간은 상처나 흉터보다는 희미한 흔적으로 남는다. 하루의 시간은 담벼락에 늘어선 나무 그림자처럼 길어졌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머리속에선 괘종시계가 울린다. 강렬했던 시간들은 자잘한 일상으로 채워지고 열정 대신 안정감을, 기쁨 대신에 만족을 원하는 마음이 된다. 온갖 것들이 발광하듯 증식하고 부패하는 여름의 맛보다 헐렁한 가을이 편안해진다. 헐렁한 가을에 헐렁한 옷을 입고 헐렁한 얼굴로 숲을 걷는 맛은 늦가을 들판에서 깻단을 태우는 냄새처럼, 오래된 영화 음악을 듣는 것처럼, 아늑하고 허전하다.

 

 

청춘의 사랑은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까닭에 병에 가까웠다. 열정의 에너지는 소진되었지만 그 기억과 감각은 몸 어디쯤에 남아있다. 어둔 새벽 3시의 흐린 별빛을 보는 일이나 쏟아지는 산성 장대비에 몸을 내주는 일, 몇 날 며칠 술독에 빠져 헤매는 일, 그 절망적인 고독과 일탈의 검푸른 독성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여름과 가을 사이, 지나간 시간의 결을 더듬는 일은 나무의 잎맥을 더듬는 일처럼 까칠하고 아련하다.

 

 

 

그림자 없는 생애를 살아가기 위해

지독하게 환해져야 하는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빛의 모퉁이에서

 

 

 

 

십일월의 여자들

 

보기에 좋고 불편한 속옷은

벌써 오래전에 장롱 서랍 깊이 넣어두었다

그걸 다시 꺼내 입을 날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일 집을 나서지만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해마다 여행 가방은 부풀어올랐다

떠날 수가 없었다

 

길게 늘어난 그림자도

나이가 들어 있었다

영락없이 얇고 흐릿했다

 

바람이 불면 미치도록 펄럭이다

식량을 담으면 봉긋하고 얌전해지는

구멍가게 비닐봉지와도 같았다

 

싸가지가 없다고 어린 딸을 때리던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 있었고

딸에게 의지하여 딸이 된 엄마는 그러나

싸가지가 없을수록 눈물겨웠다

 

망치는 있고 못이 없었던 시절을 지나와서

이제는 온몸 모서리가 못 자국으로 헐어 있었다

 

전설의 고향에서 배운 바대로

아내가 베를 짜는 밤을 엿보지 않는 남자와

일가를 이루기도 했다

 

어디든 간에

몸을 덮어두기 위해 입는 이 옷을

벗어 걸어두는 데가 모두 집이기를 바랐다

 

ㅡ 나를 안고 싶으니.

그럴 때 말고 바로 이럴 때

 

 

 

 

이 몸에 간질간질 꽃이 피었네

 

오래도록 밟아서 생긴 숲길을

아무 작정 없이 걸어보았네

화장을 하지 않아도

눈치 채는 이가 없었네

품에 안겼던 사내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게 되자

심장에 뿌리를 박고

분꽃들이 만개했네

다 알 만한 물방울이

풀 끝에 맺혀 있었네

아득히 들리던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가 그칠 때

땀구멍을 뚫고 채송화가 피었네

멀리 누런 벼들은

논바닥에 발톱을 벗어둔 채

누워 있었네

나는 발이 시렸네

발가락 사이로 패랭이가 피었네

허벅지를 타고 나팔꽃이 만개했네

오래도록 밀봉해 둔 과실주를

아무 작정 없이 열어 독배하였네

새들이 울어댈 때 귓속에 길이 열렸네

길을 잃어도 길 속에 있었네

 

 

 

 

불귀 · 2

 

이해한다는 말, 이러지 말자는 말, 사랑한다는 말, 사랑했다는 말, 그런 거짓말을 할수록 사무치던 사람, 한 번 속으면 하루가 갔고, 한 번 속이면 또 하루가 갔네, 날이 저물고 밥을 먹고, 날이 밝고 밥을 먹고, 서랍 속에 개켜 있던 남자와 여자의 나란한 속옷, 서로를 반쯤 삼키는 데 한 달이면 족했고, 다아 삼키는 데에 일 년이면 족했네, 서로의 뱃속에 들어앉아 푸우욱, 이 거추장스런 육신 다 삭히는 데에는 일생이 걸렸다지, 원앙금침 원앙금침, 마음의 방목 마음의 쇠락, 내버려진 흉가, 산에 들에 지천으로 피고 지는 쑥부쟁이, 아카시아, 그 향기가 무모하게 범람해서, 나, 그 향기 안 맡고 마네, 너무 멀리 가지 말자는 말, 다 알 수 있는 곳에 있자는 말, 이해한다는, 사랑한다는, 잘 살자, 잘 살아보자, 그런 말에도 멍이 들던 사람, 두 사람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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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문학동네 시인선 57
윤희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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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복잡한 날이면 서글픈 마음이 된다. 대체로 복잡한 생각이라는 게 누군가를 미워한다든가, 어떤 일을 피하고 싶어서 마음이 분주해지는 경우인데 더 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갇힌 기분이 된다. 그렇다고 생각이 멈춰지는 것도 아니다. 복잡해진다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현재의 에너지가 부족하면서 동시에 끊어내기도 힘든 상태이니 그렇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가 권태를 낳는다. 권태를 느끼는 마음은 빈 공간을 허용하지 못한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머물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스스로를 소외시킨다. 그럴 때는 꿈조차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 악순환을 끊어낼 방법이 있는가? 아마 시간이 유일한 답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은 나의 의지가 달성해 낸 결과가 아니다. 어쩌면 그러기에 견딜 수 있는 무능일 것이다.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가끔 나는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가끔은 제 정신?) 그럴 때 시가 읽혀진다.

 

좋은 시는 굳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에 닿는다. 나에게 마음이라는 게 있고 쓸쓸함이나 정겨움이라는 감정이 그 안에 있어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존재하는 마음의 자리. 두고 온 것을 다시 찾을 수 없다 해도 가끔은 그 곳에 가게 된다.

 

 

도너츠

 

눈 내리는 날

한 가운데 텅 빈 마음자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스산한 바람만 불었다

비움으로 끝내는 남아 있는

중심의 괴로움을 처음에는 몰랐다

중심은 사라지고

주변은 드러나는 풍습이 그만큼 낯설다

그렇다고, 마음이 갇히지도 않았고 열리지도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다 먹혔을 때만

둘이 서로에게 고요히 번진다

안과 밖에 서로에게 스민다

둘이 다투지 않는 고즈넉함이다

너와 내가 하나이듯이

빛과 어둠이 하나이듯이

밤과 낮이 하나이듯이

마치 정신과 육체가 둘이 아니라 하나이듯이

그대로 하나의 몸이다

그리고, 흩어진다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서울 지하철 2호선

 

떠났던 곳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되돌아온 곳은 이미 지났던 곳이다

기억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이다

나는 떠났던 때의 내가 아니다

그래서 낯설다

 

얼떨결에 두고 온 것이 있다면

다시 찾을 수 없다

헤어진 사람이 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다

(중략)

 

보이는 것은 원이지만

말하고 싶은 것은 선이다

 

그럴수록 원을 만들고 있는 연결고리의 이음새는 든든하다

 

입으로 꼬리를 물었지만 먹을 수 없다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나 입으로 꼬리를 물고 있으므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끝내는 입도 없고, 꼬리도 없는 셈이다

 

날마다 일탈을 꿈꾸면서도

일탈이 곧 해탈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알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오늘도 돌고, 돈다

 

미안하지만 해탈은 없다

 

 

 

우리는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시간을 견디며 살아간다. 잘 견딘다는 것은 마음에게 자리를 주는 것이고 그 공간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삶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어떤 일을 피하고 싶어 생각이 많고 마음이 분주한 날, 태풍의 중심처럼 고요해진 마음의 빈자리를 떠올리며 시를 읽는다. 도너츠 혹은 지하철 순환선, 그 상징의 빈 공간을 들여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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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8-04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너츠라는 시 참 좋죠 ? 초록 님이 이 시집 읽으셨군요. 반가운데요..

내이름은초록 2014-08-05 01:28   좋아요 0 | URL
도우넛 도너츠 어릴 적에는 도나스라고 불렀어요. 꽈배기와 도나스 ㅎㅎㅎ 지금도 재래시장에 가면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솥에서 고리 모양의 밀가루 반죽이 금새 부풀어 동동 떠있는 도너츠를 볼 수 있어요. 단순한 맛과 폭신한 감촉에 가운데가 뻥뚫려 있어 먹고 나면 아쉬웠어요. 배를 채워주는 음식은 아니었죠. 좋은 시집 있으면 또 추천해 주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8-11 12:41   좋아요 0 | URL
시인 이름이 갑자기 생각 안 나는데 시집 젬ㄱ 제목이 그 인연에 울다, 라는 시집이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시집인데 시집에 굉장히 좋습니다.
 

 

나의 시어머니는 손재주가 없는 분이다. 음식은 물론 집안 살림을 깔끔하게 정리하거나 당신의 외모를 관리하는 것에 이상할 정도로 손이 무디다. 25년 전 처음 결혼해서 시댁에 갈 때부터 지금까지 집 안이 정돈된 걸 본 적이 없다. 명절을 치르기 위해 시댁에 내려가 마당을 들어설 때부터 숨이 턱 막힌다. 앉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방을 대충 청소하고 당장 먹을 김치를 만들고 제상에 올릴 음식을 만든다. 송편을 만들 때는 어머니가 쌀가루에 물을 왕창 붓기 전에 미리 ‘제가 할게요’ 하는 소리를 꼭 해야 한다. 한번은 내가 만든 나박김치에 밀가루 끓인 물을 부어 아연실색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머리를 감고 나서 빗질을 하지 않는다. 단추가 달린 상의를 입을 때도 단추를 다 잠그지 않는다. 시댁은 경북의 산골로 우거진 숲과 청정한 공기, 깊고 푸른 인공호수가 펼쳐져 있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집에서 몇 발자국만 바깥으로 걸으면 그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어 지저분한 집이 더욱 쓰레기장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게으른 분은 아니다. 명절 때에는 손수 두부와 메밀묵을 쑤고 방앗간에 가서 여러 가지 떡을 뽑아 온다. 장에 가서 과일과 명절 때 오는 자손들을 위해 고기를 사고 동태, 오징어 등을 엄청나게 많이 사온다. 때로는 비린내가 심한 생선과 기름이 너무 많이 붙어 있는 육류, 때깔만 좋았지 속이 비고 상한 과일들을 싸게 샀다고 자랑하는 어머니. 그 많은 것들을 어떻게 집으로 옮겨 왔을까 싶다. 고추 농사와 오미자 농사를 혼자 짓기 때문에 마당과 마루에는 수확해 놓은 오미자와 종이 박스, 널어놓은 고추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오랜 기간 동안 지켜본 바에 따르면 어머니는 농사일을 하느라 집안일을 할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도 못 느끼는 것 같다. 하루 종일 들에 나가 일하고 돌아와 밥을 먹고 자리에 누워 티브이를 보다 잠이 들면 다시 해가 뜨고 들에 나가야 하니 집안을 깨끗하게 치울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제일 고역인 것은 여름 휴가철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며칠 자야하는 시댁의 여름은 온갖 쓰레기와 모기 때문에 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이들이 좀 자라자 할머니 댁에서 보내는 여름휴가를 가지 않겠다고 한다.

 

“좀 치우고 살아요.” 아들들이 어머니에게 몇 번인가 잔소리를 했다. 그러면 “알았다” 하면서 말을 잘라 버린다. 나도 몇 번인가 답답한 마음에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시골에 내려 가면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아 입을 열지 못하고 만다. 그리고 지금은 관절염과 척추관 협착증 때문에 거동이 조금 불편해져서 집안은 그 전보다 더욱 무질서해졌다. 아마 어머니는 자신의 습관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한 번 집안을 치워줄 수는 있지만 며칠 안 되어 집안은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걸 몇 번 보고 난 뒤에는 모두 포기한 눈치였다. 나는 어머니의 내면이 궁금했다. 깔끔하고 단촐한 살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단 말인가. 다른 사람의 살림살이를 두 눈으로 봤을 텐데 그런 마음이 생기지를 않는다는 말인가.

 

어느 명절날 아침에 제사를 지내고 밥을 먹던 때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손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면서 “내가 이 손으로 농사를 짓고 자식을 키웠다”라며 자랑스럽게 손을 흔드신 적이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생활에 대한 자부심과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낸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일평생 쉼 없이 일해 온 자신의 두 손에 대해 매우 정당한 평가를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삶에 대해 가졌던 나의 판단이 올바르지 못했다는 걸 느낀다. 어머니가 정갈한 살림 솜씨와 세상을 보는 지혜가 없다고 생각한 건 도시에서 대학 교육을 받고 아파트에서 살아 온 나의 편견이나 한계였다. 자신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삶의 가치와 의미를 손으로 보여주고 그 손을 귀하게 여긴다면 어머니는 잘 살아온 것이다. 너무 가난하고 척박하여 아무 것도 의지할 수 없을 때, 부지런한 손에 의지하여 한평생을 살았고 현재도 칠십의 나이에 자식에게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부박함에도 농사를 짓는 어머니의 생각은 옳다. 오늘 나는 이문재의 시를 읽으며 어머니를 생각해 봤다.

 

나는 손이다.

나는 손이었고 손이어야 한다.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눈에 빼앗긴 몸을 추슬러야 한다.

귀에 빼앗긴 마음을 찾아와야 한다.

 

수시로 눈을 감아야 한다.

틈틈이 귀를 막아야 한다.

자주 숨을 죽여야 한다.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손이 손으로

손에게 자극해야 한다.

 

*

 

손이 세상을 바꿔왔듯이

손이 다시 세상을 바꿀 것이다.

 

나는 손이다.

너도 손이다.

 

-이문재 시「손의 백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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