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어머니는 손재주가 없는 분이다. 음식은 물론 집안 살림을 깔끔하게 정리하거나 당신의 외모를 관리하는 것에 이상할 정도로 손이 무디다. 25년 전 처음 결혼해서 시댁에 갈 때부터 지금까지 집 안이 정돈된 걸 본 적이 없다. 명절을 치르기 위해 시댁에 내려가 마당을 들어설 때부터 숨이 턱 막힌다. 앉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방을 대충 청소하고 당장 먹을 김치를 만들고 제상에 올릴 음식을 만든다. 송편을 만들 때는 어머니가 쌀가루에 물을 왕창 붓기 전에 미리 ‘제가 할게요’ 하는 소리를 꼭 해야 한다. 한번은 내가 만든 나박김치에 밀가루 끓인 물을 부어 아연실색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머리를 감고 나서 빗질을 하지 않는다. 단추가 달린 상의를 입을 때도 단추를 다 잠그지 않는다. 시댁은 경북의 산골로 우거진 숲과 청정한 공기, 깊고 푸른 인공호수가 펼쳐져 있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집에서 몇 발자국만 바깥으로 걸으면 그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어 지저분한 집이 더욱 쓰레기장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게으른 분은 아니다. 명절 때에는 손수 두부와 메밀묵을 쑤고 방앗간에 가서 여러 가지 떡을 뽑아 온다. 장에 가서 과일과 명절 때 오는 자손들을 위해 고기를 사고 동태, 오징어 등을 엄청나게 많이 사온다. 때로는 비린내가 심한 생선과 기름이 너무 많이 붙어 있는 육류, 때깔만 좋았지 속이 비고 상한 과일들을 싸게 샀다고 자랑하는 어머니. 그 많은 것들을 어떻게 집으로 옮겨 왔을까 싶다. 고추 농사와 오미자 농사를 혼자 짓기 때문에 마당과 마루에는 수확해 놓은 오미자와 종이 박스, 널어놓은 고추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오랜 기간 동안 지켜본 바에 따르면 어머니는 농사일을 하느라 집안일을 할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도 못 느끼는 것 같다. 하루 종일 들에 나가 일하고 돌아와 밥을 먹고 자리에 누워 티브이를 보다 잠이 들면 다시 해가 뜨고 들에 나가야 하니 집안을 깨끗하게 치울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제일 고역인 것은 여름 휴가철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며칠 자야하는 시댁의 여름은 온갖 쓰레기와 모기 때문에 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이들이 좀 자라자 할머니 댁에서 보내는 여름휴가를 가지 않겠다고 한다.
“좀 치우고 살아요.” 아들들이 어머니에게 몇 번인가 잔소리를 했다. 그러면 “알았다” 하면서 말을 잘라 버린다. 나도 몇 번인가 답답한 마음에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시골에 내려 가면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아 입을 열지 못하고 만다. 그리고 지금은 관절염과 척추관 협착증 때문에 거동이 조금 불편해져서 집안은 그 전보다 더욱 무질서해졌다. 아마 어머니는 자신의 습관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한 번 집안을 치워줄 수는 있지만 며칠 안 되어 집안은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걸 몇 번 보고 난 뒤에는 모두 포기한 눈치였다. 나는 어머니의 내면이 궁금했다. 깔끔하고 단촐한 살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단 말인가. 다른 사람의 살림살이를 두 눈으로 봤을 텐데 그런 마음이 생기지를 않는다는 말인가.
어느 명절날 아침에 제사를 지내고 밥을 먹던 때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손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면서 “내가 이 손으로 농사를 짓고 자식을 키웠다”라며 자랑스럽게 손을 흔드신 적이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생활에 대한 자부심과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낸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일평생 쉼 없이 일해 온 자신의 두 손에 대해 매우 정당한 평가를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삶에 대해 가졌던 나의 판단이 올바르지 못했다는 걸 느낀다. 어머니가 정갈한 살림 솜씨와 세상을 보는 지혜가 없다고 생각한 건 도시에서 대학 교육을 받고 아파트에서 살아 온 나의 편견이나 한계였다. 자신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삶의 가치와 의미를 손으로 보여주고 그 손을 귀하게 여긴다면 어머니는 잘 살아온 것이다. 너무 가난하고 척박하여 아무 것도 의지할 수 없을 때, 부지런한 손에 의지하여 한평생을 살았고 현재도 칠십의 나이에 자식에게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부박함에도 농사를 짓는 어머니의 생각은 옳다. 오늘 나는 이문재의 시를 읽으며 어머니를 생각해 봤다.
나는 손이다.
나는 손이었고 손이어야 한다.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눈에 빼앗긴 몸을 추슬러야 한다.
귀에 빼앗긴 마음을 찾아와야 한다.
수시로 눈을 감아야 한다.
틈틈이 귀를 막아야 한다.
자주 숨을 죽여야 한다.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손이 손으로
손에게 자극해야 한다.
*
손이 세상을 바꿔왔듯이
손이 다시 세상을 바꿀 것이다.
나는 손이다.
너도 손이다.
-이문재 시「손의 백서」 중에서